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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章 전투서열(戰鬪序列) (3)
그는 틀린 말을 했다.
‘그 누구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고? 후후!’
그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결전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그 말이 맞다. 일대일의 승부에서도 자신 스스로 싸워야 한다. 하지만 무림이란 곳…… 세력과 세력의 충돌에서는 반드시 대신 싸워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는 대신 싸워줄 사람으로 음악오귀를 택했다.
대신 싸워줄 사람으로 유화아를 택했다.
그들을 선발한 기준은…… 없다.
기준 같은 것은 없다. 쓰다가 버릴 물건들은 지금 당장 조금만 쓸모 있어도 된다.
저들은 쓰다가 버릴 물건들이며, 그를 대신해서 싸워줄 도구다.
쓰다가 버릴 물건!
그렇다. 저들의 용도는 딱 그 정도에서 그친다.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없다.
음악오귀에게 몸에 맞는 옷, 마신천강기를 주었다. 유화아에게는 몸에 맞지 않는 옷, 투살진기를 주었다.
하나같이 마공의 최정점에 있는 무공들이다.
저들이 저 무공을 극성까지 수련할 경우, 그를 능가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는 혈영마공을 능가할 수 있다.
반드시 능가한다는 것이 아니라 수련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공 자체로는 우열을 가리지 못한다.
그런 무공을 저들에게 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저 정도는 수련해야 그를 대신해서 싸워줄 수 있다.
둘째, 느낌이 좋았다.
음악오귀는 평생을 음행으로 일관해 왔으니 마공이 어울린다. 어떤 사마공을 수련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저들을 보는 순간, 딱 마신천강기가 떠올랐다.
유화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정종무공을 수련했다. 그녀가 수련한 정종심공과 투살진기는 서로 섞이지 않는다. 살심을 억누르는 심공과 살심을 북돋는 심공이 어떻게 어울리나.
하지만 유화아를 보는 순간 투살진기가 떠올랐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만 취하자는 심정으로 그 무공들을 던졌다.
아니, 아니다…….
최소한 저 정도는 수련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남아…… 쓰다가 버릴 물건들인데…….’
저들을 데려올 때, 기본적인 생각은 쓰다가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점점 변하고 있다. 저들을 쓰기는 하되,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이런 것은 마음의 변화에 해당하지 않는다. 원래 그의 마음이 이런 식이었다.
습(習)이란 이래서 무섭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같이 손발을 맞춰서 일한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어가는 모습, 보지 못한다.
“으음!”
“으윽!”
음악오귀가 먼저 깨어났다.
그들은 머리가 부서졌다. 피를 철철 흘린다. 하지만 목숨은 잃지 않았다. 몽둥이가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마신천강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마신천강기가 한목숨을 부지시켜 주었다.
“제길! 살았군.”
음악일귀가 투덜거렸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은데…….”
음악삼귀도 일귀를 따라서 투덜댔다.
검왕의 수련방식…… 수련의 질을 단시간에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할 때 사용한다.
즉, 시간이 없다.
그들은 곧 마신천강기를 써야 한다. 마신천강기를 최대로 펼쳐야 될 만한 상대들에게.
몽둥이에 맞아서 머리 깨져 죽는 게 편하다?
죽는 게 좋을 사람은 없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고 했다. 하지만 마신천강기를 사용해야만 살아남을 정도라면…… 험난한 앞날이 예고된다.
험난해도 보통 험난한 게 아니다.
그들은 정신을 차렸지만 망연자실, 상처를 치료할 생각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그때, 탁탁! 하고 부싯돌 켜는 소리가 울렸다.
화악!
부싯돌이 불길을 일으킨다. 작은 불꽃이 횃불로 옮겨붙으며 큰 불꽃을 낳는다.
불길 속에 머리를 산발한 괴인이 보인다.
“씻고, 입어라.”
괴인은 짧은 말만 남긴 채 뒤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갔다. 어둠 저편으로.
음악오귀는 불이 켜진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 옷이 있다. 옷 다섯 벌이 나란히 개어 있는데, 모두 시커먼 흑의다.
“제길! 검은색이라니. 촌스럽게.”
“옷 색깔로 맞춰 입어야 하는 거야?”
“검왕 저 자식, 우릴 노예로 부릴 셈 아니오? 이렇게 참아야 하는 거요?”
“임마! 참지 않으면! 뒈질래!”
“…….”
음악일귀의 호통에 말 한 마디 거들었던 음악이귀를 꾹 입을 닫아야만 했다.
“이건!”
흑의를 만져보던 음악삼귀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혀, 형님! 이것 좀 보세요!”
음악삼귀는 여전히 놀란 눈으로 손에 들고 있던 흑의를 음악일귀에게 건넸다.
음악삼귀의 심상치 않은 행동에 음악일귀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옷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손이 옷에 닿는 순간, 그의 눈도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교피(鮫皮)!”
“이거 교피, 상어 가죽 맞죠?”
“음! 검은색 교피…… 그럼 이게 흑염교피?”
“흑염교피로 만든 옷이라니!”
음악오귀가 놀란 눈으로 옷을 쳐다보았다.
교피는 귀하다. 하지만 무인들의 눈에는 크게 귀하지 않다. 약간 좋은 사치품 정도다.
허나 교피에 특수한 약물처리를 하면 무가지보(無價之寶)가 된다.
어떤 약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모종의 약물을 쓰면 교피가 검은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도검도 불침하는 갑피(甲皮)가 된다.
이를 흑염교피라고 부른다.
흑염교피는 매우 귀해서 손바닥만 한 작은 조각조차도 값을 매기지 못한다.
무인들은 흑염교피로 심장 부위를 가리거나 목 또는 팔목에 아대 형식으로 차곤 한다. 그 정도의 작은 조각밖에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흑염교피로 옷을 만들었다.
“이것도 마공관에 있던 건가?”
“제길! 우리가 어떤 일에 휘말린 거요?”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일.”
“미치겠네.”
그들은 천하의 보물을 얻었지만 마냥 기쁘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보물보다 더한 일을 해야 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고.
“씻기나 하자. 우리가 언제 내일 걱정하고 살았냐.”
음악일귀가 반은 포기한 듯 허탈하게 말했다.
“으음!”
유화아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몸이 물 먹인 솜처럼 무겁다.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다.
그녀는 몸과 마음이 불쾌해서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씻고 갈아입어.”
옆인지 뒤인지 알 수가 없는데,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씻고 갈아입어?’
그녀는 누가 이런 말을 하나 싶어서 뒤돌아봤다. 그리고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다섯 흑의인을 봤다.
“웃!”
그녀는 깜짝 놀랐다. 경계심이 불현듯 확 일어났다.
그러나 음악오귀는 그녀의 반응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계집아, 너무 까불지 마라.”
“뭐야!”
“지금은 네가 발가벗고 설쳐도 관심 없다.”
“……”
“지금 울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니까 더 이상 신경 건드리지 말고. 검왕 말만 전하는 게다. 씻고, 옷 갈아입어.”
음악일귀가 한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음악오귀가 입은 옷으로 보이는 흑의와 씻을 수 있는 물 한 통이 놓여 있었다.
검왕은 그들에게 바싹 마른 건포 한 무더기와 냄새가 역한 거름종이를 내밀었다.
“욱! 이게 뭐요?”
음악이귀가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검왕이 내민 거름종이에서는 아주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똥냄새 같기도 하고, 생선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냄새만 맡고도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검왕이 태연히 말했다.
“독약이다.”
“도, 독약? 독약을 왜?”
검왕이 또 무심히 말했다.
“천력파혈(天力破血).”
“처, 처, 천!”
음악오귀는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유화아도 마찬가지다. 어찌나 놀랐는지 입만 쩍 벌렸다.
검왕이 냄새나는 거름종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마신천강기를 팔구 성 정도까지는 쓸 수 있을 것이다. 약효가 두 시진밖에 되지 않지만…… 두 시진 동안 일대 마성이 되어 보는 것도 괜찮겠지.”
“거, 검왕!”
음악일귀가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서 검왕을 불렀다.
검왕은 그의 안색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름종이를 내밀었다.
“모두 여섯 개다. 하나씩 넣어둬. 꼭 필요할 때가 있을 테니까.”
“이게 필요하단 말이오?”
“이런 것을 쓰지 않으면 좋겠지만.”
검왕이 고개를 내둘렀다.
‘천력파혈단!’
유화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희대의 마단(魔丹)을 손에 쥐었다.
천력파혈단은 전신 잠력(潛力)을 일시에 촉발시켜주는 희대의 독약이다.
천력파혈단을 복용하면 평소 빌빌거리던 약골 사내도 천하장사로 둔갑한다.
무인의 경우에는 무공이 두 배, 세 배로 급신장한다.
검왕은 마신천강기를 팔구 성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겨우 사오 성에 불과한 마신천강기를 단숨에 최고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투살진기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다.
봉황검법의 전수자가 일시간에 최대의 마인으로 둔갑하는 게다.
허나 검왕이 말한 대로 약효가 두 시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두 시진이 지난 후에는 전신 기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기력 없는 허물만 남는다.
기가 빠져나간 혈맥!
피부는 탄력을 잃고 구십 노인처럼 쪼글쪼글해진다. 머리카락도 푸석해진다. 썩은 종이처럼 만지기만 해도 부서진다. 그러다가 종래에는 기어이 혈맥이 파열된다.
딱 두 시진만 절정고수가 되었다가 죽는 것이다.
독약? 맞다. 천력파혈단을 복용하면 딱 두 시진 후에 죽는다. 도저히 삶을 구할 수 없는, 정말 손톱만큼이라도 삶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복용하는 독약이다.
천력파혈단을 욕심내는 사람은 없다.
천력파혈단 두 개를 복용한다고 해서 두 배만큼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 개나 두 개나 효능이 똑같다.
음악오귀가 무심히 천력파혈단을 새 거름종이에 다시 감싼 후, 목갑에 집어넣고 있다.
‘천력파혈단까지…….’
유화아는 새삼 부르르 몸을 떨었다.
검왕은 음악오귀를 강제로 부리고 있다. 지금 당장 죽고 싶지 않으면 일을 하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저들에게 마신천강기와 천력파혈단을 준다.
앞으로 걸어가지 않으면 지금 죽일 것이고, 앞으로 걸어가도 결국은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검왕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유화아는 음악오귀가 그런 것처럼 천력파혈단을 새 거름종이로 잘 쌌다. 역한 냄새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도록 두 겹, 세 겹 꼼꼼하게 감쌌다.
그것을 목갑에 집어넣고 품에 찔러넣었다.
흑염교피로 만든 옷은 매미날개처럼 얇고 가볍다. 흑의만 입을 것이 아니라 다른 옷을 위에 걸쳐 입어야 한다. 다만 이곳에는 다른 옷이 없기 때문에 흑의만 입는다.
흑의는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
몸의 굴곡이 한눈에 드러난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횃불이 하나밖에 켜있지 않아서 몸을 감출 수 있는 어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둠 안쪽에 숨어있으면 굴곡진 몸이 보이지 않는다.
목갑이 흑염교피와 한 몸이라도 된 듯 찰싹 달라붙었다.
검왕이 말했다.
“한 시진 후에 나간다. 나가는 동안 혹여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면…….”
검왕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눈길이 유화아를 쳐다보는 듯하다.
이곳은 유가장 제삼문 지하에 마련된 밀실이지 않은가.
검왕이 말을 이었다.
“모두 죽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