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第十章 전투서열(戰鬪序列) (2)
유화아가 말했다.
“검왕이 작심하고 손을 쓰면 우리 모두 단매에 죽어.”
꿀꺽!
누군가 마른침을 삼켰다.
음악오귀도 유화아의 말에 동의한다. 검왕의 몽둥이를 피할 방법도, 견뎌낼 강함도 없다.
“매타작이 시작되면 우린 죽어. 방법이 없어.”
유화아가 그런 말을 해도 대꾸하는 사람은 없다. 유화아의 음성 속에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들어있다. 아주 강한 자신감이 포함되어 있다.
삶에 민감한 음악오귀가 그런 희망을 보지 못할 리 없다.
음악일귀가 말했다.
“방금 말했지만 우리가 수련한 것은 마신천강기다. 하지만 성취도는 매우 미약해. 그 정도로는 검왕을 막을 수 없고…… 이제 그만 뜸 들이고 방법을 말해주었으면 좋겠…….”
“사과부터 해.”
“사, 사과? 무슨 사과?”
“무릎 꿇고 사과해. 내게 더러운 말을 했던 모든 것들, 음탕한 모든 말들. 모두 사과해.”
“끄응! 좋아, 사과한다.”
“무릎 꿇고!”
“저 계집이!”
음악오귀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음악일귀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무릎 꿇었다. 사과한다.”
그가 무릎 꿇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유화아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칠흑 같은 어둠이 삼켜 버렸다. 허나 그가 무릎을 꿇었다는 느낌은 생생하게 전해진다.
“형님!”
“하! 무릎까지…….”
다른 음악오귀들이 탄식했다.
그러나 유화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너희 모두…… 무릎 꿇고 사과해.”
“음!”
“최대한 정중하게. 두 번 다시 입에 음탕한 말을 담으면 인간이 아니라 개새끼라고 말해.”
그녀의 입에서 험악한 말까지 튀어나왔다.
“제길!”
음악이귀가 투덜거리면서 무릎을 꿇었다.
“사과한다. 두 번 다시 음탕한 말을 입에 담으면 내 개새끼다.”
그가 아주 쉽게 말했다.
음악일귀가 무릎을 꿇은 마당에 굳이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유화아가 말한 개새끼…… 유화아에게는 힘든 말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아주 쉬운 말이다. 평상시 웃으면서 주고받는 농담만도 못한 말이다.
그 정도 말은 얼마든지 해준다.
“난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쨌든 사과한다.”
음악오귀가 유화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현재, 그들의 무공은 유화아보다 훨씬 높다.
유화아는 투살진기를 억지로 배웠다. 정녕 배우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수련했다.
음악오귀는 처음부터 작심하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마신천강기가 어떤 공부인지 안다. 이것만 수련하면 단숨에 십마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니, 그 이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십마의 무공은 마공관에 소장되지 못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보면 마공관 무공을 수련한 마인이야말로 마공에서는 갑중갑(甲中甲)이다.
낮이나 밤이나 이를 악물고 수련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그들의 무공은 급진전했다.
유화아가 밀실에 접어들 무렵, 음악오귀는 파릉에서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무인들이 되어 있었다.
유화아는 음악오귀에게 일수만에 제압당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식으로 마혈을 제압하지 않았다. 아주 강하게 눌러서 아예 기절까지 시켜 버렸을 게다. 하지만 그때는 바람이 스치는 듯 부드러웠다.
손속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뜻이다.
유화아는 그런 점도 알지 못했다.
지금은 음악오귀 중에서 어느 한 명이 나서도 그녀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모든 게 어둠에 묻혀 있다.
그녀는 음악오귀를 파릉에서 만난 음악오귀 정도로 생각했다.
음악오귀도 그녀처럼 검왕 앞에서 쩔쩔맨다. 파릉에서 두들겨 맞을 때와 달라진 점이 없다.
저들이 수련한다는 마신천강기, 자신과 거의 비슷한 정도일 게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한다.
“한 번만 더 그따위 음담을 늘여놓으면 죽여 버릴 거야.”
“끄응!”
탁탁! 화악!
부싯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불빛이 일어났다.
작은 불빛은 횃대에 옮아 붙자마자 큰 불빛이 되어서 밀실을 환히 밝혔다.
‘검왕!’
음악오귀와 유화아는 귀신처럼 머리를 산발하고 서 있는 청년을 쳐다봤다.
누더기 옷, 치렁하게 늘어진 머리.
그는 한 손에 부싯돌을, 다른 손에는 횃대를 들었다.
무방비 상태다!
- 절대로 선제공격하지 마. 먼저 움직이면 그나마 쥐꼬리만 한 기회도 없어져.
유화아의 말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때는 어둠만 존재할 때다. 지금을 횃불이 밝혀졌다. 더군다나 검왕은 무방비 상태다.
음악오귀가 눈짓을 주고받았다.
‘하자!’
‘할 수 있을까?’
‘믿져야 본전! 어차피 뒈질 바에는. 이 계집 말대로 한다고 해도 된다는 보장도 없고.’
‘죽는 건 매한가지라 이거지.’
‘하자!’
‘좋아!’
그들이 의견 교환을 끝냈다.
유화아는 그들 사이에 주고받는 눈빛의 의미를 알아챘다. 그래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안 돼! 병신들아!’
유화아가 눈을 부릅떴지만, 음악오귀를 말릴 수는 없다.
쉬이익!
음악오귀가 신형을 움직였다. 검왕을 향해 쏘아갔다.
마신천강기는 육신을 바위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두 발에는 날개를 달아준다. 두 손은 송곳처럼 날카로워진다. 전신은 깃털처럼 가볍다.
파릉에서 만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쒜에에에엑!
다섯 명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검왕을 찢어 죽일 기세로 달려든다.
“아!”
그들의 모습에 유화아는 적지 않게 놀랐다.
너무 빠르다. 저들이 저렇게 빨랐나? 한 치의 빈틈도 없다. 저들의 연수합격이 저렇게 치밀했나?
파릉에서 저런 모습을 봤다면 싸울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게다.
저들의 공격 모습은 그녀의 상상을 넘어섰다. 그녀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
꽈앙!
첫 번째 격돌이 일어났다.
음악오귀와 검왕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음악오귀의 양손이 검왕을 격타했다. 그리고 작은 밀실이 쩌렁 울렸다. 바윗덩이 떨어지는 소리가 터졌다.
‘통했어!’
유화아는 눈을 부릅떴다.
검왕이 당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음악오귀의 장(掌)을 정통으로 맞았다.
‘너무 강해!’
그녀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음악오귀가 이토록 강한 줄 알았다면 어제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말하지 못했을 게다.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추이를 살폈다.
음악오귀는 매우 음악한 자들이다. 저들이 검왕을 쳤다면, 그 다음은 그녀에게 화살이 날아올 게다.
‘어떻게 막지?’
헌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쒸익!
육장을 얻어맞은 검왕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몽둥이를 휘둘렀다.
몽둥이가 음악오귀의 머리를 두들겼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피가 터진다. 부서진 머리뼈가 비산하는 듯한 환상이 보인다.
“피햇!”
음악오귀 중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늦었다. 너무 늦게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두 명이 더 머리를 내주고 말았다.
퍼억! 퍼억!
머리가 부서진다. 핏물을 비산시키며 쓰러진다.
검왕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키고 있다. 즉사할 수 있는 손속을 떨쳐 내고 있다.
“거, 검왕 제발!”
음악이귀가 두 손을 들어서 머리를 감싸쥐었다.
퍼억!
몽둥이는 사정없이 격타되었다. 그것도 정확하게 머리를 때렸다.
음악이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머리를 감쌌던 두 팔은 축 늘어졌다. 아마도 팔목 뼈가 분질러진 것 같다.
덕분에 음악이귀는 머리가 깨지는 횡액을 면했다.
혼절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다른 음악삼귀들처럼 피를 흘리지는 않는다.
음악일귀는 전혀 다른 방어를 했다.
털썩!
그는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때리쇼!”
음악일귀는 반항을 포기한 듯하다. 순순히 머리를 내놓고 눈까지 질끈 감았다.
쒜에엑!
음악일귀의 머리를 향해 몽둥이가 내려쳐졌다. 그리고,
퍼억!
혹시나 하는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설마 죽이기야 하랴 하는 마음이 깨졌다.
검왕은 사정없이 내려쳤다. 음악일귀의 머리는 여지 없이 깨졌고, 핏물이 터졌다.
음악일귀가 상반신을 부르르 떨더니 피시식 쓰러졌다.
“왜 이러는 거죠?”
“삶이냐 죽음이냐. 택하라고 했다.”
“어떻게 당신을 이겨요! 이길 수가 없잖아요!”
“죽는다는 소리군.”
스읏!
검왕이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적어도 저들은 삶을 택했다.”
“뭐라고요!”
유화아가 놀란 눈으로 쓰러진 음악오귀를 쳐다봤다.
음악오귀는 죽었다. 지금도 깨진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두 눈을 꼭 감겨 있다.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누가 봐도 죽었다.
“투살진기를 써라.”
“쓸 거예요. 쓸 수밖에 없잖아요!”
“최선을 다해서 써라.”
“그럴…….”
유화아는 검왕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툭 쏘아붙이다가 얼어붙은 듯 입을 다물었다.
저들은 삶을 택했다고 했다.
음악오귀는 살아 있다. 검왕이 살았다고 말했으니 분명히 살았다. 그리고 저들이 죽지 않은 이유는…… 마신천강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서.
마신천강기가 저들의 목숨을 보호하고 있다.
검왕에게 맞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산단 말인가. 하지만 산다. 한 줄기 생명의 끈…… 마신천강기가 생명의 끈을 꽉 움켜쥐고 있다.
이것은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마신천강기 본연의 힘, 사용하지 않아도 늘 사용하는 것처럼 유지되는 힘을 뜻한다.
그 힘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면 산다.
‘아!’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검왕이 어제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았다.
투살진기를 써도 좋고 쓰지 않아도 좋다. 써도 막지 못하고, 쓰지 않아도 막지 못한다. 써도 죽고, 쓰지 않아도 죽는다. 당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나머지는 투살진기에게 맡긴다.
투살진기가 한 가닥 숨결을 움켜잡고 있다면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정도가 아니라면 죽는다.
그녀는 투살진기를 그 정도로 깊이 있게 수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겨우 아픔을 달래주는 정도였다. 수박 겉핥기에 그쳐 왔다.
“어제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우리 중 한 명이 당하자고 했어요. 검왕이 누군가를 때릴 때, 그 사람은 죽어요. 당할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다른 다섯 명이 일시에 달려들면 적어도 바짓자락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어요.”
“…….”
“어제 저녁까지,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때리겠다.”
“네. 때리세요.”
“살든 죽든…… 기본적인 것은 배워라. 무림은……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네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 부모형제도 네가 죽을 자리에는 있어 주지 않는다.”
“그런 것 같네요.”
쒸익!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몽둥이가 내려쳐졌다.
따악!
몽둥이는 그녀의 머리를 격타했다.
머리가 깨진다.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얼굴을 적신다. 봉목이 벼락 맞은 듯 크게 떠진다. 그리고…… 쓰러졌다.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