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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章 전투서열(戰鬪序列) (1)
한 달 남짓한 시간에 투살진기를 수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일은 무공 천재 혹은 문일지십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도 할 수 없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하지만 하늘이 두 쪽 나야 살 수 있다고 하면 살 수 없는 것이다.
할 수 없다.
몇 번을 말해도 확실하다. 할 수 없다.
쒜에에엑!
공기가 흔들린다. 미약한 바람이 느껴진다.
검왕이 공격해 온다.
그녀는 어깨부터 움찔거렸다.
그녀는 음악오귀가 어떤 식으로 맞았는지 안다. 그리고 맞을 때 얼마만큼 아팠는지도 안다. 그녀 역시 그런 식으로 매타작을 당해왔으니까.
퍼억!
어김없이 일격이 터졌다.
검왕은 여자라고 봐주는 법이 없다.
‘으음!’
그녀는 옅은 신음을 흘리면서 뒤뚱뒤뚱 물러섰다.
비명, 애절함, 원망, 분노…… 어떠한 말과 행동도 검왕을 막을 수는 없다.
검왕은 무조건 두들겨 팬다.
몽둥이찜질을 당하기 싫으면 둘 중 하나, 피하거나 막아야 된다.
봉황검법? 소용없다. 그녀가 알고 있는 어떤 초식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검왕은 어둠을 꿰뚫어 본다.
검왕은 눈으로 보지 않고 감각으로 움직이는 재주가 있는 듯하다.
어둠 속에서도 대낮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는 검왕을 막을 재주가 어디 있는가.
유일한 방법이라면 오직 하나, 진기(眞氣)밖에 없다.
검왕의 공격을 몸뚱이로 받아낼 수 있게끔 강한 진기를 길러야 한다. 검왕의 공격을 튕겨내도 좋고, 흡수해도 좋다.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한다.
허면 그녀는 이쪽 방면에서 알고 있는 공부가 있는가?
투살진기!
한 시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머릿속에 구겨 넣다시피 외워 버린 투살진기가 있다.
투살진기는 진기를 내뿜어서 상대를 격살한다.
유화아는 투살진기의 운용법을 알지 못한다. 진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식으로 상대를 격살하는지…… 비급 중반부 이후는 읽지를 못했다.
한 시진 동안 겨우 초반부, 연성하는 과정만 읽었다.
그것을 사용한다.
퍽퍽퍽! 퍽퍽퍽퍽!
검왕의 공격은 무자비한 매타작으로 이어졌다.
바람이 느껴진다. 어느 부위로 몽둥이가 떨어지고 있는지 감지한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
슷! 퍽!
몽둥이를 피하고자 몸을 움직인다. 허나 이미 몽둥이가 육신을 강타한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그 후부터,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이후부터……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몽둥이가 날아들면 맞는다.
퍽! 퍽! 퍽!
아프다. 너무 아프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진기를 일으켜서 맞은 부위를 살핀다. 응혈된 피와 근육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 어혈을 풀어준다.
그녀는 진기를 그런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런 것 외에 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퍽퍽퍽!
다른 쪽, 어둠 한 켠에서 매타작 소리가 들렸다. 헌데,
“흐흐흐!”
뜻밖에도 웃음소리가 들렸다.
음악오귀 중 둘째, 검왕에게 가장 지독하게 맞은 사람이다.
그러자 음악일귀가 대뜸 소리쳤다.
“바보야! 조용히 해!”
“형님은 참! 뭐가 무서워서 입을 다문단 말이오!”
“입 다물라니까!”
“못하겠소!”
“아이쿠!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해.”
그러자 음악이귀가 자신을 얻은 듯 힘차게 말했다.
“야! 검왕!”
“…….”
“뭐하냐! 빨리 때리지 않고! 왜? 힘이 빠졌냐? 흐흐흐! 어린놈이 벌써 진이 빠져가지고. 요즘 네 몽둥이, 어린아이 장난 같다는 거 아냐? 간지러워, 새끼야!”
“아이쿠!”
말은 음악이귀가 했는데, 한숨은 음악일귀가 내쉬었다.
“그렇군.”
어둠 속에서 짤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시 매타작이 시작되었다.
따악! 퍽퍽! 따악!
내리치는 소리가 별로 다르지 않다. 헌데 맞는 사람은 사뭇 다른 소리를 낸다.
“아이쿠!”
음악이귀는 더 이상 호기롭게 말하지 못했다.
“아! 잘못! 잘못잘못! 잘못했소!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퍽퍽퍽!
피 끓는 애원에도 불구하고 매타작은 그치지 않았다.
검왕은 그런 사람이다. 마음이 얼음처럼 차가워서 눈물 같은 것은 보지 않는다.
“저 병신 때문에! 아이쿠! 악!”
음악오귀들이 뱃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진 비명을 토해냈다.
‘적응했었어!’
유화아는 눈빛을 반짝 빛냈다.
음악오귀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매타작에 시달린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몰아치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는다.
그런데…… 저들이 매에 적응했다.
어느 순간부터 매 맞는 소리가 달라졌다. 여전히 비명을 내지르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처절하지 않다.
“아악!”
“큭!”
지금 저들은 절절이 끓어오르는 비명을 내지른다.
그래, 이 소리다. 이 비명이다.
이 비명이 그녀의 비명과 흡사하다.
원래 비명이란 이처럼 처절해야 한다. 무의식중에 불쑥 튀어나와야 한다.
처음 그녀가 암흑 속에 들어왔을 때, 그때 저들은 이런 비명을 질렀었다.
‘적응했단 말이지, 매에.’
사실…… 그녀도 적응하는 중이다.
검왕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를 맞는 아픔이 예전에 비해서 훨씬 덜해졌다.
매를 맞아도 예전처럼 뼛골까지 울리지는 않는다.
매를 맞을 때는 아프지만 진기로 살짝 어루만지면 금새 부기가 가라앉는다. 어혈이 쫙 풀리면서 언제 맞았냐 싶을 정도로 고통이 싹 가신다.
그녀 역시 이제는 어느 정도 맞을 만하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어느 날…… 한잠 자고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는 낮과 밤이 따로 없다. 몸이 피곤하면 눕고, 누워 있다 보면 졸린다. 허면 잔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낮잠인 게다.
한숨 깊이 자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쭉 켜면 하루가 지난 게다.
하루가 지났다.
배가 고프다. 역시 하루가 지난 게다. 아침을 맞이한 게다.
검왕은 아침에 작은 호로병 하나, 주먹밥 세 개를 내준다.
주먹밥이 항시 따뜻한 것을 보면 아마도 유가장 삼문에서 만든 것일 게다.
검왕은 밀실 밖과 내통한다.
밀실 안에는 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데…… 어디로 통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통하고 있다.
그녀는 손을 더듬어 주먹밥부터 찾았다.
역시 호로병과 주먹밥 세 개가 놓여 있다.
‘오늘은 또 몇 대나 맞으려나…….’
검왕의 매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한때나마 매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바보 같다.
맞을 만하다고 느낄 때, 검왕은 매의 강도를 달리 한다. 더 세게 친다. 몽둥이가 날아오는 위세는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맞는 충격은 훨씬 크다.
검왕은 정말 잘 때린다.
진기를 끌어올려 상처를 쓰다듬으면 대충 아픔이 가신다. 허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 진기로 쓰다듬어도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한다.
맞을 만하면 더 세게 치고, 또 맞을 만하면, 허면 어떻게 알았는지 또 세게 치고……
깊은 잠을 자고 나면 매 맞는 일로 시작해서 매 맞는 일로 하루를 마감한다.
헌데 그날은 음성부터 들려왔다.
“내일, 딱 한 대를 친다.”
‘한 달이야!’
유화아는 퍼뜩 한 달이라는 기간을 떠올렸다.
밀실에 들어온지 얼마나 경과했는지 알지 못했는데…… 어느 덧 한 달이 지났다.
밀실 안에는 깊은 적막이 흘렀다.
음탕한 소리를 즐겨 하는 음악오귀도 이 순간만은 조용했다.
검왕이 말했다.
“단매에 죽겠나?”
“…….”
“살겠나?”
“…….”
“오늘, 선택해라.”
그 말을 끝으로 검왕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은 매타작도 이어지지 않았다.
‘오늘 선택해라? 무슨 이유가 있어!’
그녀는 선택할 것이 없다. 음악오귀도 마찬가지다. 어둠 속에서 두들겨 맞는데 무엇을 선택한단 말인가.
검왕은 삶과 죽음을 선택하란다.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나.
아주 강한 한 대를 때린다면 뼈가 부서질 것이다. 머리를 맞으면 뇌수가 흘러내릴 것이다.
검왕이라면 능히 단매로 때려죽일 수 있다.
그녀가 무슨 수로 검왕의 공격을 막아내겠나. 음악오귀가 무슨 수로 버티겠나.
검왕이 때리면 맞는 수밖에 없고, 인정사정없이 때리면 죽는 수밖에 없다.
무엇을 선택하나.
“계, 계집아. 검왕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했냐?”
무공이라면 유화아보다 훨씬 강한 음악오귀가 오히려 그녀에게 물어왔다.
그만큼 저들도 답답한 것이다.
검왕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 내일이 되면 정말로 손속에 사정을 담지 않고 일격을 내칠 게다.
단매에 죽겠나? 죽는다. 단매를 맞으면 죽는다.
유화아는 음악오귀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저들과는 말을 섞기 싫다. 저들이 죽었으면 싶다. 자신에게 힘이 생기면 저들부터 죽이고 싶다.
저들은 아주 더럽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자체가 역겹다.
‘때린다. 피할 방법은? 없다.’
이것은 확실하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때리면 맞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삶과 죽음의 선택은 그다음에 일어난다.
‘전력을 다해서 치면? 죽는다. 죽지 않는 방법은? 매를 이기는 수밖에 없어. 매를 이겨? 이겨내?’
말은 쉽다. 하지만 무슨 수로 검왕의 일격을 이겨내나.
‘충(衝)!’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상대가 안 될 것은 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맞아 죽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공격이다!
검왕이 쳐올 때 마주 쳐가야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검왕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공격이 시작되었다 싶으면 벌써 타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매를 피할 방법이 전혀 없는데, 무슨 수로 반격을 가하나.
‘진기! 진기밖에 없어!’
적극적인 공격이 아니라 지극히 소극적인,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아주 미약한 공격을 해야 한다.
진기를 일으켜서 매에 대항한다.
매 맞는 부위를 통해서 진기를 방출한다. 작열하는 몽둥이를 통해서 검왕을 타격한다.
그나마 검왕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너희들, 수련한 게 뭐야?”
그녀가 처음으로 음악오귀에게 말을 걸었다.
“너, 너희들?”
“하!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년이.”
유화아가 대뜸 쏘아붙였다.
“그럼 내일 뒈져.”
“…….”
한순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음악오귀 중에서 더 이상 입을 여는 사람은 없다. 아주 조용하다.
“마신천강기. 마신천강기를 수련했다. 한 달 동안 거의 오성 가까이 연성한 것 같다.”
음악일귀가 가장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
“난 너희가 알다시피 투살진기를 수련했어. 성취도는 너희보다 떨어질 거야. 한 사성 정도?”
그녀가 반말을 해도 음악오귀는 성질내지 않았다. 농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직감했다.
그녀의 한마디에 목숨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