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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44화 (4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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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章 별타차(別打?)[막지마라] (4)

유가장은 어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평온하다.

장원을 방문한 손님은 없다.

시녀도, 하인도 장원에서 일하는 그 누구도 새로운 손님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어디로 갔지?’

유화아도 새로운 손님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어도 대답해 줄 리 없기 때문에.

그녀는 장원 안에서 그들이 머물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헛간을 살펴봤다. 없다.

연무장을 살펴봤다. 폐관 수련을 할 때 이용하는 뒷산도 샅샅이 살폈다. 없다.

“막수선자에게 돌아가거라.”

“어디에 있죠? 물어볼 말이 있어요.”

“누구 말이냐?”

“저까지 눈 뜬 장님 취급하시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아버지는 온화했다. 표정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내용은 단호해서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도 묻지 않는다.

‘이 집에서 내가 모르는 장소는 없어.’

그녀는 그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찾을 것이다. 찾아서 물어볼 것이다. 당신들, 누구냐고!

“저…… 대, 대협. 저희는…….”

음악오귀는 음산한 사내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험한 꼴이라면 볼 만큼 봤다고 자부한다. 배신, 음모, 잔인함…… 인간 세상의 최하층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경험했다.

그래서 말하는데, 음악오귀를 죽음으로 겁박하지는 못한다.

세상을 살고 싶은 대로 산 사람치고 죽음에 연연하는 사람은 없다. 죽으면 죽는 거지 죽음이 무슨 대수냐 하는 심정으로 하고 싶은 짓을 다해왔다.

그런데도 사내 앞에서는 오금이 저린다.

“상처는?”

사내가 이귀에게 물었다.

“괘, 괜찮습니다.”

이귀가 억지로 말했다.

사내는 진심으로 그를 두들겨 팼다.

마치 너 같은 놈은 세상을 살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몽둥이찜질을 했다.

온몸이 멍투성이다.

아직도 몸을 삐끗거릴 때마다 사지관절이 욱신거린다.

사내가 그들 앞에 비급 한 권을 툭 던졌다.

“수련해.”

“네?”

“기한은 한 달. 한 달이 넘어도 수련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놈들인 거고.”

사내가 말을 중도에서 그쳤다.

쓸모없는 놈들…… 그다음 말은 폐기 정리한다는 뜻일 게다.

쓸모없으니 버려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버린다는 뜻은 살인멸구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 뭐가 되었든 한 달 만에 익힐 수 있는 건 아무것도…… 헉!”

일귀는 무심히 사내가 던져 준 비급을 집어들다가 헛바람을 내지르고 말았다.

파르르르!

그가 손을 부들부들 떤다.

“뭐, 뭔데 그러쇼? 헉!”

삼귀가 일귀의 손에 들린 비급을 쳐다보다가 역시 헛바람을 내질렀다.

- 마신천강기(魔神天?氣)

마신천강기!

비급에는 분명히 ‘마신천강기’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마신…… 마신의 천강기!

중원에는 수많은 마인들이 존재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 나타나고…… 마인이라는 존재는 오래가지도 못했지만 뿌리가 뽑히지도 않았다.

그 많은 마인들 중에 마신은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이미 백여 년 전에 명멸한 고인이지만, 그의 존재만큼은 아직도 영원무구하다.

오죽하면 별호가 마신인가.

그는 마의 신이다.

마신은 신공(神功)을 바탕으로 무공을 펼쳤다.

나중에 정도문파 무인들이 마신천강기라고 일컫게 되는 신공인데…… 천강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파괴력에 있어서는 따를 무공이 없는 신공이다.

마신천강기를 검에 실으면 패검(覇劍)이 된다.

마신천강기를 손에 실으면 바위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수공(手功)이 된다.

마신은 평생 초식을 써본 적이 없다.

그런 무공, 마신의 정화가 음악오귀의 손에 쥐어졌다.

“대, 대, 대협. 이건…….”

일귀가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들이 알고 있기로…… 마신천강기는 마공관에 틀어박혀 있다고 들었다.

아! 얼마 전에 마공관이 파훼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검성이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몰라도 많은 마인들이 목격한 바이니 틀림없을 게다.

허나 음악오귀는 마공관을 찾지 않았다.

보물에는 임자가 있는 법이다.

능력없는 자가 마공관의 마서를 기웃거리다가는 횡액을 당하기 십상이다.

마공관이 파훼되었든 어쨌든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마공관에 소장된 마공들이 너무 엄청나기에 아예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무공 중에 하나가 손에 쥐어졌다.

사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기한은 한 달이다. 한 달 안에 익히지 못하면…….”

“쓸모없다고요? 압니다. 방금 전에 들었어요!”

음악오귀는 손에 들린 비급을 쳐다보면서 음충맞게 웃었다.

‘너 이 새끼! 이거 다 익힌 다음에 보자!’

그들은 분명히 장원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없다.

‘장원에 밀실이 있었어!’

그녀는 새삼 놀랐다.

유가장에 밀실 같은 곳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광명정대했다. 언제나 정도만을 걸어왔다. 정도 아닌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밀실은 정도가 아니다.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대부분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무공 수련을 하다보면 보안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는 폐관 수련장으로 충분하다.

유가장 식솔들조차 알지 못하는 은밀한 장소.

처음에 그녀는 주방을 주시했다.

사라진 그들도 사람인 이상 먹어야 살 것이다.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겠지만 먹을 것을 제공받을 게다.

허나 그녀는 곧 그 생각을 버렸다.

아버지는 그들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시녀 취영이를 고향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들을 본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녀 자신을 외면하고 있는 것도 딸이기 때문에 많이 봐준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취영이처럼 유배되었거나 은밀한 곳에 갇혔을 게다.

그토록 비밀을 요하는데 주방에 공개할 리가 있나.

평소 아버지는 외도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 분이 외도를 했을 때는 둘 중에 하나, 어색하거나 아니면 하늘도 놀랄 만큼 치밀할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다.

이번 일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급작스럽게 어디 밀실 같은 곳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장소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오래전부터 생각했고, 준비했다.

다시 말해서 하늘도 놀랄 만큼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뜻이다.

발견할 수 없다. 아버지가 직접 말해주기 전에는 백 년을 뒤져도 찾지 못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찾았다.

“벡부님께 말씀드리겠어요.”

“…….”

“이번 일은 우리 유가장에 매우 중요해요. 절 공격했던 음악오귀가 장원에 머물고 있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어떻게 음악오귀가 유가장에 발을 디뎌요?”

“누가 발을 들였다고 그러느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알겠어요. 어쨌든 백부님께 말씀…….”

“알고 계시다.”

“네?”

“유가장에 아무도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 알고 계시다.”

‘아!’

유화아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아버지의 말은…… 음악오귀와 그 사내가 유가장에 들어선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백부님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녀는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백부님이…… 용인한 일이죠?”

“무엇을 말이냐?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구나.”

“그럼 이건 어떤가요? 검성 성주님께 말씀드리는 것은?”

“…….”

아버지가 즉답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검성과 교분이 깊었다.

아버지가 말했던 그 남자, 늘 죽음을 몰고 다닌다는 그 남자도 검성 사람이다. 그 남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한 적은 없지만 검성 사람이라고 자신한다.

그 남자가 검성에서 온 사람이라면…… 검성 성주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별로 기대하지 않고 말해봤다.

헌데 아버지가 침묵한다. 그리고 의외로 침묵이 깊어진다.

아버지가 한참만에 말했다.

“여기서 멈춰라.”

“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깊이 들어서면…… 네 인생은 순탄치 못하게 된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널 보호해 줄 수 없다는 뜻이다. 혈류(血流)에 휘말려도. 그러니 여기서 멈춰라.”

“아버지는 이미 휘말리셨잖아요. 말해주세요.”

그녀가 봉목을 빛내며 말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생각을 하고 있어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휴우!”

아버지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필이면 이때…… 하필 이때 하산을 시켜가지고…… 몇 년만 더 데리고 있었어도.”

아버지의 독백이 막수선자에 대한 원망처럼 들렸다.

유화아는 재촉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독백에서 그녀도 이미 아버지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곧…… 그녀가 알고 싶은 모든 것을 알게 될 게다.

아버지가 안쓰러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게는 가전무공을 전수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모르겠느냐?”

아버지의 음성에는 진한 아쉬움이 섞여 있다. 지금이라도 그녀가 눈과 귀를 닫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허나 그녀는 그런 바람보다는 아버지가 전한 말에 놀라고 말았다.

‘아!’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녀가 막수선자에게 보내진 것은 열 살이 겨우 넘었을 때다.

지금부터 십여 년 전이며…… 막수선자의 봉황검법이 뛰어난 절기라서 보내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다. 이런 일에서 비켜서 있으라고 보내진 것이다.

“십 년 전부터 진행된 일인가요?”

아버지가 미간에 깊은 골을 만들며 말했다.

“아마도 이것이 이 애비가 네게 해주는 마지막 말이 될 것 같구나. 그러니 잘 들어라.”

“…….”

“이제부터 네 앞에는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유화아는 아버지의 말에서 섬뜩한 전율을 느꼈다.

아버지는 잔잔하게 말했을 뿐인데, 정말로 그녀 앞에 한 폭의 지옥도가 그려졌다.

피가 흐른다. 사람이 죽어서 널부러져 있다.

“이 애비는 혈류를 벗어나지 못한다. 혈류 앞에서 이 애비는, 아니, 우리 유가장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후후! 하루살이를 죽여본 적이 있느냐?”

“…….”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루살이를 죽여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떻게 죽이는지는 안다. 그저 손만 대면 된다.

하루살이를 죽이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없다.

아버지가 그런 존재란다. 하루살이 같은.

어쩌면…… 아버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음악오귀는 만만치 않은 마인이다. 십마에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악명이 매우 높다.

그런 음악오귀도 방갓사내에게는 하루살이에 불과했다.

만약 방갓사내가 유가장을 친다면…… 아버지가 그와 싸운다면…… 아버지 역시 하루살이가 될 것이다.

헌데, 헌데 말이다. 방갓사내가 유가장에 몸을 숨겼다.

이 말은 방갓사내처럼 고강한 자도 누군가로부터 숨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 세상,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아버지가 그럴진대, 자신은 어떻겠는가. 음악오귀조차가 상대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아버지의 염려가 이해된다.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다.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형국이다. 이제 와서 아버지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사부님께 돌아갈 수는 없다.

무슨 일인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또 유가장에 몸을 숨긴 그 방갓사내는 누군가?

유화아는 가장 쉬운 질문부터 했다.

“그 사람, 그 사람은 누구죠?”

머릿속에 방갓사내가 그려졌다.

아버지는 짧게, 그리고 아주 강렬하게 말했다.

“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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