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43화 (43/225)

# 43

第九章 별타차(別打岔)[막지마라] (3)

“누, 누구세요?”

여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악오귀를 갈대 베어 넘기듯이 아주 간단하게 요리해버린 사내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

“말…… 하기 싫으세요?”

“요기 하자.”

“네?”

여인이 무슨 말인가 싶어서 되물었다.

그때, 사내의 말을 들은 음악오귀가 재빨리 움직였다.

그들이 파릉 평평한 곳에 자리를 폈다. 그리고 재빨리 행낭을 뒤져서 건포(乾脯)를 꺼내놓았다.

사내가 건포를 들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빙빙 돌리며 말했다.

“이빨이 약해서 딱딱한 건 씹기 어려운데…….”

“빠,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대부를 들었던 자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신형을 쏘아 사라져갔다.

“어! 도, 도주! 저 사람…….”

여인이 멀어져가는 자, 음악일귀(淫惡一鬼)를 손으로 가리키며 더듬더듬 말했다.

사내는 도주를 개의치 않는다는 듯 음악오귀가 펼쳐놓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음악오귀 중에 사라진 자는 일귀 뿐이다.

이귀는 피곤죽이 되어서 혼절해 있다. 활을 들었던 자가 상처를 살피고 있는데, 정말 심하게 맞았다.

창을 들었던 자도 요혈을 제대로 맞았는지 운신이 어렵다.

음악오귀 중에 남아있는 자들이 많다.

일귀 한 명 놓친다고 해도 남은 네 명을 처리한다면 앞으로 음악오귀의 악행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여인은 사내가 말을 하지 않자, 어색하게 서있기만 했다.

사내는 말을 걸지 않는다.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사람, 누구지?’

여인은 사내를 유심히 쳐다봤다. 허나 아무리 쳐다봐도 기억나는 사람이 없다.

사내는 아예 그녀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는다. 강남제일미녀(江南第一美女) 만화일취(萬花一聚) 유화아(柳嬅娥)를 앞에 두고.

잠시 후, 멀리 사라졌던 일귀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앉아있는 사내 앞에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을 내밀었다. 공손한 모습으로.

“죽을 구해왔습니다.”

“죽이 있던가?”

“끓이게 했습니다.”

사내는 그 말을 듣고서야 죽그릇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멀뚱멀뚱 서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같이 듭시다.”

“사람 패서 얻은 밥은 안 먹어요.”

그녀는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며 말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괜히 심통이 난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여왕 대접을 받아왔기에 오히려 사내가 이상해 보인다.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나!

대체로 사내들은 양면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에게는 가까이 다가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소유하려고 한다. 그리고 감정이 호감에서 소유로 넘어갈 때, 본성을 드러낸다.

그녀는 사내의 본성을 무척 많이 보아왔다.

음악오귀처럼 육체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자들, 무척 많았다. 눈앞에 있는 사내처럼 애써서 미색에 무심한 듯 연기하는 자들도 다수 만나봤다.

사내에 대해서 환하게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내가 가짜로 무심한지 진짜 무심한지 정도는 살필 수 있다.

헌데 이 사내는…… 정말 무심하다.

만약 이것이 연기라면 손뼉을 쳐줄 정도로 완벽한 연기다.

사내가 일귀에게 물었다.

“사람 팼어?”

“아닙니다. 돈을 지불했습니다.”

“얼마?”

“세 푼 지급했습니다.”

“지급했대.”

사내는 일귀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죽 그릇을 내밀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그래? 그럼.”

사내는 혼자서 죽을 먹었다. 한 번 더 먹으라고 권하지도 않고.

사내가 걸었다.

음악오귀는 사내 뒤를 졸졸 따랐다.

흠씬 얻어터진 이귀, 창을 들었던 삼귀, 그리고 활을 들었던 사귀와 오귀…….

사내는 그들에게 따라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헌데도 그들은 마치 목에 개 줄이라도 채워진 양 졸졸 따라간다.

“아씨, 저 사람들 누구예요?”

뒤늦게 그녀를 만난 꼬마 아이가 흠씬 얻어터져서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사내를 보며 말했다.

“죽일 놈들.”

유화아는 짧게 말했다.

그래도 음악오귀는 반응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편한 마음으로 사내 뒤를 쫓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내 뒤를 쫓으면서도 연신 눈에 흉광을 드러낸다. 사내 등을 노려보면서 손을 들썩이기도 한다.

암격(暗擊)을 할 요량이다.

허나 누구도 발작하지 못한다. 암격을 하고 싶지만 영 자신이 서지 않는 듯하다.

하기는…… 음악오귀가 얻어터지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저들의 지금 행동을 단박에 이해할 게다.

음악오귀와 사내의 무공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다.

그녀를 쩔쩔매게 만든 음악오귀인데…… 저처럼 무공이 강한 사람이 왜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을까?

사내가 먼저 파릉을 빠져나왔다.

그 뒤로 유화아와 시녀가 따르고, 두 여인 옆에서 음악오귀가 걸어온다.

사내가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 꼬마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어! 우리도 이쪽으로 가는데?”

유가(柳家) 제삼문(第三門)!

사내가 유가장(柳家莊)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유가는 현재 제칠문까지 허가를 내려줬다.

유가 가주가 제일문을 열었고, 가주의 형제들이 각기 일문씩 열어서 제칠문까지 이어졌다.

유가주의 친형제가 모두 열 명이니, 아직도 삼문이 더 남아있는 셈이다.

사내는 그중에서 세 번째, 유가삼문 앞에 섰다.

“저희 집을 찾아오신 거예요? 누구시죠?”

유화아가 사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사내는 유화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품에 손을 집어넣더니 새끼손가락 굵기의 작은 단소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입에 물고 불었다.

삐이이익!

단소에서 매우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그가 꺼내 든 단소는 연주용이 아니다. 악기가 아니다. 일부 무인들이 신호성을 울리기 위해서 특별히 제작한 연락용 단소다.

사내가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냈다.

차앙!

유화아는 엉겁결에 검을 뽑아들었다.

낯선 사내가 자신의 집 앞에서 무인들이 사용하는 신호용 단소를 불었다.

심상치 않다!

“방금 뭐한 거예요?”

“…….”

“본가에는 무슨 일이에요? 대답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해요!”

그녀는 정말로 검을 쓸 요량이었다.

물론 자신이 이 사내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은 안다. 음악오귀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들보다 월등히 고강한 무인을 무슨 수로 상대하겠나.

그래도 자신의 집이 유린되는 것은 보지 못한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유가장을 쳐다볼 뿐이다. 잠시 후,

꽝! 삐걱!

유가장 대문이 거칠게 열리며 안쪽에서 중년 장한이 튀어나왔다.

“아, 아버지!”

유화아는 튀어나온 사람이 아버지임을 알고 얼굴을 활짝 펴며 반색했다.

유가장 제삼주는 그녀의 반색은 쳐다보지도 않고 방갓 사내에게 다가가 포권지례를 취했다.

“왔는가!”

제삼주의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삼주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제삼주가 취한 포권지례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망부석처럼 서 있기만 했다.

“들어가지.”

제삼주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는 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막수선자로부터 특별히 허가를 받고 반년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도.

“그 사람 어디 있어요?”

“누구 말이냐?”

“저랑 같이 온 사람이오?”

“허허! 누구와 같이 왔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유화아의 봉목에 기광이 출렁거렸다.

“그렇게 말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합(合)!”

“…….”

“취영(翠影)이는 고향집에 좀 보냈다. 집안 살림을 도와야 한다니 앞으로 보기 힘들 게다.”

유화아는 아버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멸구(滅口)는 아니죠?”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 우리…… 무슨 일에 휘말린 거예요?”

유화아는 입을 오므려서 말라버린 입술을 침으로 축였다.

저절로 긴장이 일어난다.

아버지는 취영을 유가장에서 분리시켰다.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 일을 하셨다.

심성이 사악하다면 살인멸구를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취영은 살인멸구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는 취영이 고향집에 갔다고 하지만, 아마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갇혀 있을 것이다.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닐지라도 갇힌 것이나 진배없는 상태일 게다.

취영의 잘못이라면 방갓 사내를 본 것밖에 없다.

그만한 일로 입을 닫아야 한다면…… 그 사내에 대해서 어떠한 호기심도 꺼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유화아가 놀란 것은…… 평생 비밀 없이 살아온 아버지가 이 일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내가 유가장에 들어왔는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음악오귀는 다른 때 같으면 장원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할 마인들이다. 아버지도 음악오귀라고 하면 인상부터 찡그리신다. 만약 다른 장소, 다른 상황에서 만났다면 불문곡직 검부터 뽑아들고 자웅을 겨뤘을 게다.

헌데 아버지는 그들이 들어서는 것을 허락했다.

마인이…… 정도문파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는 유가장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은밀히 숨겨준다.

그럼 방갓사내도 마인인가?

아버지도 마인과 줄이 닿고 있는 것인가?

유화아는 평소 아버지의 성품을 알고 있기에 그 점에 대해서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아버지는 죽으면 죽었지 마인과 손을 잡지 않는다. 허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유가장 제삼주 유기청(柳麒凊)이 말했다.

“오랜만에 집에 왔다만, 날이 밝는 즉시 돌아가야겠다.”

“네?”

“막수선자에게 돌아가서 무공을 수련하거라.”

“아버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무슨 일인지 말해주세요.”

“막수선자가 하산하라고 말하기 전에는 절대로 하산하지 마라. 절대로!”

“말씀해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아요.”

유기청이 강남제일미녀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딸을 그윽한 눈길로 쳐다봤다.

헌데, 유화아는 그 눈길이 싫었다.

지금 아버지가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은 매우 절망적이다. 너무 절망적이어서 마주 쳐다볼 수가 없다. 사형언도를 받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가족을 보는 눈길이지 않은가.

무슨 일인가! 무엇이 아버지를 이토록 곤란하게 만드나.

유기청이 말했다.

“언젠가……이 애비가 한 말 기억나느냐? 이 세상에서 이 애비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네. 기억나요. 할 수만 있다면 저하고…… 그럼 저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

유기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가장 강직한 사람, 정도의 표상!

당금 무림 청년 고수 중에서 그만한 사람이 없다.

허나 불행히도 그는 이미 임자가 있다. 서로 한 시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연인이 있다.

- 피잇! 그런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 정말 아까운데…….

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

그때, 아버지는 다른 말도 했다.

- 유일한 단점이라면 늘 죽음을 몰고 다닌다는 건데…… 그래도 네 짝이었으면 싶은 생각이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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