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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41화 (41/225)

# 41

第九章 별타차(別打岔)[막지마라] (1)

쏴아아아!

계곡 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그는 목까지 잠기는 깊은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앉아서 진기를 이끌고 또 이끌었다.

몸을 회복시키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검에 맞은 상처가 매우 위중했다. 즉사를 하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절대고수가 검을 쓰면서 실수할 리 있나.

그가 살아난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지극히 치밀한 계획이었으며, 하늘의 보살핌까지 받아야만 완성할 수 있는…… 성공률이 일 푼도 안 되는 자살 계획이었다.

거의 반 죽다 살아났다.

스읏!

손바닥에 진기를 운집해본다.

진기가 원활하게 움직인다.

음혼차류환시사를 당하면 잘 드는 칼로 전신을 삼백육십 토막으로 자른 것보다 더한 고통을 느낀다.

또 딱 그만큼의 상처를 입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헌데도 진기가 원활하게 움직인다.

‘대단해.’

검왕은 자신 스스로 놀라워했다.

혈영마공…… 그가 수련한 혈영마공은 세상에 숱하게 알려진 혈영(血影)의 원류다.

동물은 계절에 따라서 털갈이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털갈이를 한다. 옛 피부가 벗겨져 나가고 새로운 피부가 생긴다. 근육도 마찬가지, 옛 근육이 사라지고 새로운 근육이 자란다.

칠 년이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장육부 전체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사람도 신체 변화를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혈영마공은 이런 과정에 주목했다.

신체 변화를 빠르게 진행시킬 수 없을까?

사람의 피부를 얇게 벗겨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싹 벗겨낸다. 허면 불그죽죽한 속살이 드러난다.

이런 일을 하자면 엄청난 고통이 뒤따를 게다.

허나 그렇게 했다고 하면…… 사람은 곧 새 피부를 만들어낸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상처를 아물게 한다. 육신의 모든 힘이 상처치료에 집중된다.

이런 식으로 하면 칠 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피부를 새롭게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칠 주야 정도면 넉넉해진다.

말이 되는가?

물론 말이 되지 않는다.

허나 이런 실험은 실제로 행해졌다.

혈영(血影)의 혈(血)은 자신의 피부를 벗겨냈을 때 드러나는 속살을 의미한다. 속살의 색깔이 마치 피를 뒤집어쓴 듯 벌겋기 때문에 혈이라는 말을 쓴다.

이런 실험은 다른 쪽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피부를 벗겨내는 과정은 똑같다. 하지만 상처 치유에 쓰이는 약 대신에 벌건 속살에 소금을 뿌린다. 허면 붉은 땅에 하얀 꽃가루, 눈이 쌓인 듯한 모습이 된다.

곤설인(滾雪人) 혹은 홍전백화(紅田白花)라고 불리는 고문수법이다.

곤설인은 혈영마공을 창안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니…… 곤설인이 시행된 지 오륙백 년을 헤아리는 것을 감안하면 혈영마공의 창안 시점은 거의 칠팔백 년 전일 게다.

혈영마공을 펼치면 붉은 그림자가 생긴다는 등 어쩌고저쩌고하는 말들은 모두 흰소리다.

혈영마공이 마공이 된 이유는 사람 가죽을 벗겨내는 잔인한 무공이기 때문이다.

헌데…… 이런 무공 속에 놀라운 진가가 숨겨져 있다.

음혼차류환시사를 당하고도 멀쩡하다. 혈루마옥의 검을 맞고도 살아있다.

회복력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됐어.’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검을 맞기 전에 비해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다. 완전하게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촤아악!

물살이 갈라지면서 바윗덩어리처럼 단단한 육신이 드러났다.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다. 온몸에 상처 아닌 곳이 없다.

이번 싸움 때문에 얻은 상처가 아니다. 검성의 일원으로 활약할 때, 마인들로부터 받은 흔적이다.

상처 하나에 한 목숨이 담겨 있다.

그는 물 밖으로 걸어나가 바위 위에 널어두었던 누더기 옷을 집어 들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빨아두었는데, 어느새 바싹 말라있다.

누더기 옷…….

예전에는 무복이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기울 데가 없는 누더기 옷이 되었다.

한 번 기운 곳에 한 목숨이 담겨 있다.

옷이 찢어진 곳과 그의 몸에 나 있는 상처가 일치한다.

그는 옷을 입고, 검을 찼다. 그리고 치렁하게 자란 머리를 뒤로 질끈 묶었다.

비로소 그의 용모가 백주 대낮에 환하게 드러났다.

미공자처럼 빼어난 용모는 아니지만 평범한 용모도 아니다. 준수하면서도 강인하다.

한때, 그는 검성 제일의 미공자였다.

아름답고, 여려 보이고…… 어떻게 검이나 쓸 수 있을까 염려되기까지 했다.

그를 처음 본 사람은 검을 잡지 말고 글에 집중하라고 했다.

열이면 일곱 여덟은 그런 충고를 할 정도로 곱상하게 생겼었다.

그러나 그는 검을 잡았고, 마인들은 처단했다. 한 명, 또 한 명…… 죽여나갔다.

그러는 동안에 용모도 변했다.

곱상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강인한 사내만 남았다. 여리던 눈빛 대신 사나운 사자의 눈길만 남았다. 여인처럼 붉던 입술은 햇볕에 그을려 검붉은 빛을 띤다.

그나마 오관이 뚜렷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준수한 모습이 남아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 주먹질만 하면서 살아온 파락호의 모습만 남았을 게다.

검왕은 젖은 몸을 닦지도 않고 옷을 입었다.

평생 편한 잠자리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 들개처럼 밖으로 떠도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매우 흔하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태양을 쳐다봤다.

눈을 감아도 태양은 붉게 보인다. 꼭 감긴 눈꺼풀 너머로 붉은 열기가 느껴진다.

“본색이 너무 강렬하면 숨길 수 없는 법이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그는 의미가 깊을 것 같은 소리를 중얼거렸다.

* * *

“찾았습니다.”

면사여인이 말했다.

“역시 혈루마옥이더냐?”

“그렇습니다.”

“혈루마옥이…… 어떻게 저주의 땅을 벗어났을꼬?”

“혈루마옥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들 능력 정도라면 하늘도 뒤집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호랑이가 우리를 튀어나왔다…… 쯧!”

노인이 혀를 찼다.

“혈루마옥을 상대할 곳은…… 적벽검문뿐입니다.”

“적벽검문을 화살받이로 쓰자는 게냐?”

“…….”

면사여인은 침묵으로 뜻을 알렸다.

적벽검문을 아끼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물불 가릴 수 없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적벽검문을 아끼다가는 중원이 파괴된다.

“적벽검문은 이미 많은 희생을 치렀거늘…….”

“…….”

이번에도 면사여인은 침묵했다.

안다. 적벽검문은 검왕을 내놨다. 누미도 내놨다.

누강은 곁다리에 불과하니까 거론하지 않겠다.

검왕과 누미, 적벽검문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기재들을 내놓은 것이다.

이제 그만한 인재를 또 어디서 찾겠나.

적벽검문의 절기는 대가 끊길 공산이 높다. 한 대만 절전되어도 완전히 사장되는 것이 무공이니, 향후 삼십 년 정도만 지나면 적벽검문이라는 문파를 아는 사람도 없을 게다.

그만하면 최선을 다했다.

허나 나머지도 요구해야 한다. 이왕 얻어낼 바에는 뿌리까지 뽑아내어야 한다.

지금은 그게 최선이다.

“넌…… 네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항시 생각해요.”

“그래서?”

“두 번, 세 번, 네 번, 열 번. 제가 틀리면 어쩌나 하고 고쳐서 생각해요.”

“흠!”

“그러다 보면 행동해야 할 때가 다가오죠.”

“그럼 행동한다는 게냐?”

“그때까지 생각한 것을 바탕으로…… 저는 정답은 아니겠지만 최선은 다했다고 생각해요.”

“하는 데까지는 했다…….”

“…….”

“알겠다. 적벽검문에는 내가 통보를 넣지.”

“그럼 그렇게 알고 일을 진행시키겠어요.”

면사여인이 허리를 숙인 후, 물러가려고 했다. 그때, 노인이 문득 물었다.

“검왕 소식은?”

면사여인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죽었잖아요.”

“…….”

“성주님, 검왕이 그리우세요?”

“그립지. 허허!”

“제가 너무 모질었나요?”

“됐다. 그만 가거라.”

청수한 용모의 노인이 손을 휘휘 흔들었다.

“검왕이 사라졌습니다.”

면사여인이 사라진 후, 면사여인이 해주지 못한 답을 복면인이 대신했다.

“사라지다니?”

“시신이나 묻어주려고 찾아가 봤는데, 없어졌습니다.”

“검왕을 아는 누군가가 묻어준 것은 아니고?”

“인근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시신이 없더냐?”

“네.”

“흠! 어찌 그런 일이…… 검왕이 죽은 건 확실하고?”

노인은 면사여인에게 물었던 말을 다시 물었다.

이번 물음에는 복면인도 면사여인과 같은 답을 내놨다.

“검왕이 죽는 모습을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틀림없이 죽었으니 그 부분에 대한 미련은 접어두시길.”

“그럼 누가 시신을 가져갔다는 건데.”

“죄송합니다. 시신만이라도 묻어줬어야 하는데.”

“괜찮다. 죽으면 그만인 것이 사람 목숨 아니더냐. 죽으면 벌레에게조차 희롱당하는 것이 이 몸뚱이니라. 괜찮다.”

노인은 괜찮다고 하면서도 실망스런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검왕,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노인의 표정은 검왕에 대한 미련으로 가득했다.

푸드드득!

하늘에서 전서구가 날아와 노인의 어깨에 앉았다.

전서구의 색깔은 흰색과 검정색이 줄무늬처럼 죽죽 그어져 있다.

원래부터 두 색깔이었던 것은 아니고 흰 비둘기에 누군가가 먹으로 줄을 그은 것 같다.

누군가가 검성 성주에게 단독으로 의사를 전달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표식이다.

이런 비둘기가 검성으로 날아들면 성주 외에는 그 누구도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성주가 직접 열어보기를 원하는 전서를 물어왔기 때문이다.

“허허! 이놈…… 오랜만에 왔으면서 용케도 길을 잃지 않았구나.”

노인은 날아온 전서구를 익히 아는 듯 손을 들어서 비둘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둘기도 노인을 아는 듯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노인은 전서구의 발목에 채워진 전통을 살폈다.

전통은 인주로 봉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인주에는 검성 성주만이 파악할 수 있는 낙인이 찍혀 있다.

이로써 성주는 누가 전서구를 보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전서구를 봤을 때, 이미 누가 보냈는지 확인했다. 허나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노인은 전통의 봉인을 뜯어내고 안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들었다.

“수고했다.”

노인은 전서구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전서구가 말귀를 알아들은 듯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노인은 손톱만 한 쪽지를 펼쳤다.

쪽지 안에는 깨알보다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 혈천혈도가 검왕을 데려갔습니다. 음혼차류환시사를 사용해서 죽은 영혼을 끄집어냈고…….

회회문사, 그가 보낸 밀지에는 혈천혈도가 검왕에게 무슨 일을 벌였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노인은 눈을 부릅떴다.

‘음혼…… 차류…… 환시사…….’

노인은 쪽지 속에 적힌 일곱 글자를 읽고 또 읽었다.

혈천혈도가 검왕에게 음혼차류환시사를 사용했다고 해서 놀란 것이 아니다.

음혼차류환시사는 죽은 사람에게만 사용한다.

그럼…… 검왕이 정말 죽었는가. 일말의 희망도 남겨놓을 수 없는 것인가.

“허허! 허허! 그놈…… 그놈…… 죽었군.”

노인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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