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40화 (40/225)

# 40

第八章 투생(投生) (5)

회임, 회임, 회임…….

누미는 둔중한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회임이라니……,’

누미는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했다. 바짝 마른 것 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애벌레와 독나방!

화천은 자신을 애벌레에 빗대어 말했다.

앞으로 사랑스러운 독나방이 될 것이다. 어떤 독을 뿜어낼지 모르겠지만, 독분(毒粉)을 풀풀 날리면서 많은 사람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역할을 할 게다.

이것이 화천이 말한 독나방이다.

무엇인가?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몸뚱이를 이용할 생각이 아니었던 것인가?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서 한 달 내내 정사를 벌인 것이 아니었나?

‘회임이라니. 말도 안 돼.’

누미는 고개를 내둘렀다.

화천의 말을 안 믿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어쨌든 회임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딱히 무엇이라고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정말 회임이라면…… 낳아서는 안 돼.’

누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태기를 전혀 느낄 수 없지만, 회임이라는 말을 듣자 본능적으로 배에 손이 갔다.

날이 밝았다.

“시원한 쪽이야, 섭섭한 쪽이야?”

“……,”

“목석을 넘어서 바윗덩이군.”

화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와 약속한 공식적인 관계는 끝났다.

화천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선택을 해야 한다.

허나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촌장이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촌장이 화천을 죽일까 하는 문제는 둘째치고 먼저 말이라도 해봐야 하니까.

누미가 아침 찬이슬에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마을에는 언제 들어가?”

“촌장님을 뵈려고?”

“……,”

“흠! 그런 쪽으로 선택했군.”

“그런다고 했잖아.”

“어쨌든 여한은 없어. 믿을지 모르겠지만 너와 한 달을 지낸 게 나에게는 최대의 행복이었다. 네가 괴로워하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지. 후후!”

화천이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마을에는 언제 들어가?”

누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게 말했다.

“곧. 이제 곧.”

화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스스스스스!

기척이 감지된다. 뱀이 기어가는 듯 은밀하면서도 기분 나쁜 느낌이 모골을 울린다.

“흐흐흐!”

“키키키!”

곧이어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무리를 하셨어.”

“화요 님의 분노를 어찌하시려고. 크크크!”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지옥굴에서 방금 기어 나온 듯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만 들린다.

“건방지군. 조용히 해라.”

화천이 한마디 했다.

그러자 괴소가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기척도 느낄 수 없다.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듯하다.

‘굉장한 무공이야!’

누미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녀는 자신의 무공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검왕에게 사사를 받은 이후에는 가끔 남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신기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평소의 무공은 아니다.

누강보다도 한 수 아래.

그녀는 자신의 무공을 그렇게 생각한다.

허나 그런 무공으로도 개미 기어가는 소리 정도는 감지한다. 새들이 날고, 다람쥐가 뛰노는 기척은 엿듣는다.

이들은 전혀 탐지되지 않는다.

최소한 누강을 넘어선 고수들이다.

헌데 그런 자들이 화천의 말 한 마디에 숨죽인다. 화천이 화를 내면 감당할 수 없다는 듯.

잠시 후, 숲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는 머리에 도관(道冠)을 썼다. 옷도 도복(道服)이다. 손에는 학우선(鶴羽扇)을 들었다.

매우 정갈한 모습이다.

그가 화천 앞으로 걸어야 깊이 허리를 숙였다.

“중원에는 잘 다녀오셨는지.”

“신수가 더 좋아졌군.”

“신수는 공자님이 더 좋아지셨죠. 요미검체와 한 달간의 동거라…… 하하하!”

“무슨 뜻이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뜻으로 웃었냐고?”

“아! 네…… 요미검체가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라면 목숨까지 걸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죠.”

“후후후! 그게 너와 내가 다른 점이지.”

“그런가요?”

“허리를 굽히는 자와 허리를 펴는 자의 차이일 수도 있고.”

“하하! 오래 사는 자와 단명하는 사람의 차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오래 살고 싶나?”

“할 수가 없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세세 영원토록 살고 싶은 게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게 네가 추구하는 도냐?”

“하하하!”

도인이 웃었다. 그러면서 몸을 옆으로 돌려세웠다.

화천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으로 보인다.

화천은 누미를 슬쩍 쳐다본 후, 거침없이 걸어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누미는 도인에게 가로막혔다.

화천이 걸어가자 그녀도 뒤따라서 걸어가려고 했는데, 도인이 앞을 막으며 웃었다.

“소저는 잠시 저와 담소를 나눈 후에.”

도인이 그런 말을 하면서 길을 가로막았는데도 화천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뒤돌아보지 않았다.

화천이 떠나고 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누미를 둥글게 에워쌌다. 아니, 누미를 중심에 두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앉았다.

도인은 앉지 않았다. 옷이 구겨지는 게 마뜩지 않은 듯.

“무공을 봅시다.”

도인이 부드럽게 말하며 누미 발치에 목검을 던졌다.

“지금까지 배운 무공, 알고 있는 무공, 구결로만 아는 무공은 구결을 읊고…… 지금 우리 앞에서 선보인 무공 외에 다른 무공이 단 하나라도 적발될 시에는…….”

도인이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그었다.

“내가 왜 무공을 선보여야 되죠?”

누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도인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전혀 급하지 않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이곳 규칙이니까.”

“싫다면 죽일 건가요?”

“공자님 손을 탄 여인인데 어찌 죽이겠소. 그냥 돌아가는 선에서 그칠 것이오. 돌아가시겠소?”

누미는 발치에 떨어진 목검을 발로 차서 허공에 띈 후, 손에 움켜쥐었다.

“본문 무학이 보고 싶은 건가요?”

도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벽검문의 무공이 강하기는 하지만 글쎄…… 솔직히 중원 무공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소저의 무공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는 쪽이 정확할 것 같소.”

누미는 아미를 상큼 찡그렸다.

도인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화천의 무공이나 시종으로 보이는 자의 무공만 보아도 이들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매우 강하다.

스읏!

누미가 목검을 수평으로 들어 올렸다.

검왕이 가르쳐주었고, 화천이 새롭게 선보인 일검직자를 펼친다.

스으으읏!

목검이 도인을 향해 찔러간다.

이 수법 하나면 그녀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리는 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헌데!

탁!

도인이 손에 들고 있던 학우선으로 목검 끝을 가볍게 두들겼다.

그러자 목검에 깃들었던 진기가 증발하듯이 쏙 빠져나갔다. 힘 잃은 목검이 무기력하게 뻗어 나간다.

일검직자를 장난처럼 해소시켜버린 도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수법 말고…… 소저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으니까. 초식을 봅시다. 어떤 초식을 배웠는지, 어느 정도나 구사하는지.”

“결국은 본문의 무공을 보여달라는 거잖아요.”

“싫으면 돌아가던가.”

누미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한 달 동안 능욕을 당했는데…… 촌장 얼굴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나.

스으읏!

그녀는 검왕에게 배운 검성 성주의 무공부터 펼치기 시작했다. 뒤로 미루기는 했지만 결국은 적벽검문의 무공도 펼쳐야 할 것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정말 요미검체 맞아?”

앉아있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불쑥 말했다.

“그러게. 무슨 요미검체가 이래.”

다른 한 명이 말을 받았다.

둘러앉은 십여 명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도인이 말했다.

“하하! 장님이 느끼기에는 알은 그저 알일 뿐이지. 독수리 알인지 참새 알인지 알 길이 있나.”

“가도(假道), 그럼 요미검체가 맞다는 말이야?”

“아직 금이 가지 않은 알…… 일단 껍질을 깨야 하는데…… 애 좀 먹겠군. 회임까지 시켰으니.”

순간, 누미는 들고 있던 목검을 떨어트릴 뻔했다.

도인 입에서도 회임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럼 회임이 정말 되었단 말인가?

앉아있던 자들 중에서 눈이 가늘어서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자가 말했다.

“요미검체라면 부화가 된다는 건데…… 난 도무지 보이지 않아. 뭐가 될 것 같은가?”

도인이 말했다.

“아름답거나 화려한 나방이 되지는 못할 것 같고…… 후후! 독나방? 시작부터 원한을 품었으니 태생이 악(惡)이라…… 악접(惡蝶)이 되겠군.”

화천이 한 말과 같다.

앉아있는 자들 중에 한 명이 그 말을 받았다.

“악접이라도 될 수 있으면 다행이지. 내 눈에는 알도 깨지 못하고 썩어버릴 것 같아. 영 시원찮아서.”

그들 십여 명은 숲으로 숨어들었다.

누미는 도인을 따라서 그들이 간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화천이 간 쪽과도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촌장을 만나러 가나요?”

“촌장님은 내일 뵐 거요. 거처를 마련해 줄 테니, 오늘은 여독을 푸시오.”

“그것도 이곳 규칙인가요?”

“하하하!”

도인이 웃으며 앞서 걸었다.

누미는 도인을 뒤따라가면서 주변을 살폈다.

헌데…… 아무것도 없다. 눈여겨볼 것이 전혀 없다.

두 사람은 길 없는 산길을 더듬어 걸어간다. 잡초를 헤쳐가면서 걷는다.

“길이 험하네요.”

“정확하게 말하면 길이 없소. 우린 없는 길로 가는 것이오.”

“절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마을로.”

“마을로 간다면서 왜 없는 길로 가죠? 제 존재를 드러내면 안 되나요?”

“하하하! 이곳엔 원래 길이 없소. 길을 만들면 곧 메워지지. 길을 만들 수 없는 곳이오.”

도인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도인은 누미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되물었다.

“이곳에 대해서 전혀 모르오?”

“몰라요.”

“이곳이 저주받은 땅이라는 것도?”

“…….”

“하하하! 공자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해주셨군. 그럼 어쩌나? 일은 이미 저질러졌는데?”

“무슨 일이요?”

“단귀도(斷歸途).”

“단……귀도? 무슨 말이에요?”

“나가는 길이 끊겼다는 뜻이오. 조금 전부터 소저는 이곳 사람이 된 게요.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는.”

“강제로 억류하겠다는 뜻이군요. 놀랍지도 않아요.”

“아니, 아니. 나가고 싶으면 얼마든지 나가시오. 얼마든지. 여기서는 나가고자 하는 사람을 말린 적이 없소. 나갈 수만 있다면 나가라고 권하고 있소.”

“……?”

누미는 도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을 돌아본다.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숲이다. 흔한 나무다. 흔한 풀이다.

도인이 말했다.

“깊게 들어오지 않았으니 나가는 길은 알 것이고…… 나가보시오. 아까 그 공지까지만 무사히 나갈 수 있다면…… 내 목을 주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물론 막는 사람은 없소. 아무도. 이 저주받은 땅이 부리는 심술 외에는.”

도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