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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八章 투생(投生) (3)
“내 이름은 화천(華天)이야”
동행한 지 보름째 되는 날, 미공자가 이름을 밝혔다.
“강호 초행이라서 별호는 없고…… 우리 마을 사람들은 월중수(月中藪)라고 부르지.”
“…….”
“월중수…… 후후! 달 속에 숨겨져 있는 밀림이라는 뜻이야.”
“…….”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겠는데, 내 성격은 매우 신중해. 여간해서는 속마음을 읽을 수 없지. 그래서 그런 호칭으로 불리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아.”
누미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미공자가 하는 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을 귓가로 흘려듣는다.
“우리는 사람이 적어. 마을 사람이라야 모두 합쳐도 겨우 백 명 남짓밖에 안 돼.”
누미는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다.
미공자…… 화천의 말은 다소 충격적이다.
겨우 백 명도 안 된다고? 마을 사람들 전체 인구가?
미공자는 어디서 왔고, 뭐하는 사람인가? 어느 문파가 미공자처럼 강한 자를 만들어 낼 수 있나.
화천이 말했다.
“우리 마을에는 촌장님이 수령이야. 촌장님 말 한 마디에 죽고 살고…… 모든 것을 하지. 결혼도 촌장님 명령이 있어야 하고…… 하하! 죽는 것도 촌장님 허락을 받아야 해.”
“그럼 저를 겁탈하라는 것도 촌장님 명령인가요?”
“아니, 그건 내 독단. 이 사실이 알려지면 큰일 난다니까. 그러니까 난 어떻게든 네 환심을 사야 돼. 우린 강호에서 만나 서로 사랑한 끝에 통정한 게 되어야 한다고.”
‘아!’
누미는 퍼뜩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화천은 보름째 되는 날,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지금 그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화천이 누미의 표정을 읽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촌장님 밑에는 일월(日月) 양장(兩將)이 있어.”
“…….”
“모두 합쳐도 백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인데…… 그 마을이 둘로 갈라져 있는 셈이야. 일과 월.”
‘월중수!’
화천은 월장 밑에 있는 사람이다. 아니면 월장이거나.
“난 월장의 수제자 중에 한 명일 뿐이야. 월장은 제자를 두 명 키웠는데, 내가 그중에 한 명인 셈이지.”
“두 명 중 누가 더 강해요?”
“하하하!”
화천은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화천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그는 정말로 누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음을 얻기 위해 지극정성을 바치는 것처럼 보였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무공 몇 수 가르쳐주지.”
“무공은 적벽검문 무공으로도 충분해요.”
“내게 졌잖아.”
“…….”
“적벽검문 무공의 최강자는 검왕 아닌가? 그 검왕이라는 친구, 내가 죽였어.”
짐작하고 있던 터이다.
사실…… 이제 검왕의 얼굴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한때, 검왕을 흠모한 적이 있다. 이런 말을 하면 그렇지만…… 그가 사문의 어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적벽검문 사람들은 모두 같은 성씨를 쓰기 때문에 혼인할 수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그를 한 사내로 좋아했다.
검왕은 매력 있는 사내다.
허나 이제는 더럽혀진 몸이다. 다른 사내의 손때가 묻은 몸이다.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고…… 이미 화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검왕을 연모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검왕을 잊는다. 일부러 잊는다.
“잘 봐. 두어 번만 수련하면 익힐 수 있도록 자세히 선보여줄 테니까.”
화천이 움직였다.
그의 손은 칼이다. 발은 창이다. 다른 손은 방패가 된다. 또 다른 발은 철퇴가 되어 내리찍는다.
화천은 구수(九手) 오십사초(五十四招)를 시전했다.
“봤어?”
“별다를 게 없네요.”
“하하하! 잘 수련해.”
화천이 웃었다.
그가 선보인 무공은 정말 대단하다. 누미의 눈에도 검성의 검학과 견주어 한 치 떨어지지 않는 절학으로 보인다.
그런 무공을 아낌없이 선보인다.
“일단 초수를 익혀. 운기법은 나중에 말해줄게.”
화천은 음식수발을 손수 했다.
그가 주방에 가서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그릇에 예쁘게 담아서 가지고 온다.
“들어봐.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
“짜군요.”
“그런가? 우린 남방 사람이라서 조금 짜게 먹지. 그런 점을 감안해서 일부러 심심하게 했는데.”
“먹을 만해요.”
“다음에는 더 심심하게 하지.”
“원래 이런 성격이에요? 아니면 내 환심을 사려고 그러는 거예요?”
“둘 다. 원래 이렇기도 하고, 환심도 사야지 되고.”
누미는 화천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화천은 무척 찬 사람이다. 화천의 행동에서 차가운 한기를 느낀 적이 한두 번 아니다.
음식은 그녀의 입맛에 맞았다.
‘간이 딱 맞아. 내 입맛을 세심하게 살폈어.’
방은…… 그가 말한 대로 한방을 썼다.
침상도 하나다. 잠자리만은 항상 같이한다. 그리고 매일…… 정사를 벌인다.
“강압적으로 겁탈당했다고 말하면 어떻게 돼요?”
누미가 불쑥 물었다.
화천의 열기가 온몸을 뒤덮었을 때다. 이제 곧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되던 때다.
화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물론 그녀가 떨림을 느낄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다. 허나 떨고 있다. 분명히.
“죽어.”
화천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욕정의 끝을 향해 줄달음치던 사람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 경직된다.
“그렇게 말해도 돼요?”
“되지.”
“마저 끝내요. 오늘 일과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요.”
화천에게는 모욕적인 말이다. 허나 그는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짓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 같아.’
화천은 정사를 끝내는 것이 하루 일과의 마지막이라는 듯이 사력을 다했다.
아침을 여는 새 소리에 눈을 떴다.
예상했던 대로 화천이 먼저 일어나 있다. 그는 말끔하게 다듬은 모습으로 그녀를 맞이한다.
“세숫물.”
그가 세숫물을 내밀었다.
“이런 것까지 하지 않아도 돼요. 이런 걸 하면 더 이상하게 보여요.”
“말했잖아. 환심을 사야 한다고.”
“차라리 건들지를 말지 그랬어요.”
“그건 안 되지. 욕심나는 여자니까.”
“후환이 두려우면 죽이면 되잖아요.”
“그것도 안 되지. 내가 너와 함께 있는 거, 이미 마을에 보고되었어. 난 어쩔 수 없이 너와 함께 마을로 가야 한다고. 하하하! 그러니 제발 예쁘게 봐줘라.”
화천의 말은 진심 같았다.
누미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
단전에서 뜨거운 열양진기가 피어오른다. 아주 뜨겁게 달궈진다. 그리고 그 뜨거움은 욕념으로 표현된다.
“하아!”
그녀는 종종 의미 모를 숨을 토해냈다.
몸이 뜨거워진다. 욕념이 생긴다. 어떤 때는 자신이 먼저 화천의 몸을 끌어안고 싶어진다.
‘춘약(春藥)?’
어떤 때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다.
화천은 춘약을 쓸 필요가 없다.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몸을 주고 있다. 그가 원하는 만큼 뜨겁게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몸은 열고 있다.
춘약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헌데도 가끔은 그녀가 먼저 사내를 떠올릴 만큼 뜨겁게 몸이 달아오른다.
이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변화다.
‘이것이 사내를 알아버린 몸인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화천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닷새가 될 무렵, 그로부터 겁탈당하고 스무 날이 되는 날…… 단전에서 작은 돌기들이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피부병이 걸린 것처럼 빨간 좁쌀들이 튀어나온다.
“이게 뭐지?‘
그녀는 좁쌀들을 예사로 흘리지 못했다.
좁쌀…… 그곳이 무척 뜨겁다. 간지럽다. 피부병에 걸린 것 같다.
“가는 길에 온천 없어요?”
“아! 그것 때문에?”
화천도 그녀만큼이나 그녀의 몸을 잘 안다.
“피부병 같아요.”
“하하! 피부병이 아냐.”
“이거…… 아세요?”
“단전에서 열양진기가 피어나지?”
“네?”
“내 진기가 극양진기라서 그래. 내 진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거지. 네게는 행운일 테니까…… 지금부터 운기법을 전수해 줄 거야. 이건 받아들일 수 있나?”
“말해보세요.”
“지금은 말해줄 수 없고.”
“알았어요. 편할 때 말해줘요.”
화천은 침상에서 운기법을 말해주었다.
“여인은 극양진기를 담지 못해. 기본. 남자는 극음진기를 담지 못해. 이것도 기본. 그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극음과 극양은 해소시켜야 하는데…… 넌 극약을 받았고, 난 극음을 받았어. 같이 중화하는 게 낫지.”
누미는 화천의 말을 알아들었다.
화천은 ‘중화’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그녀는 다른 말로 받아들였다.
‘이자!’
단번에 화천에 대한 환상이 무너졌다.
조금이나마 그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게 치욕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화천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녀의 몸뚱이다.
그녀는 욕정의 대상이 아니다. 반려자도 아니다. 그는 단순히 무공을 연마할 수 있는 도구로 그녀를 필요로 한다.
그가 극음을 받아들였다고?
아니다. 그에게서는 극음의 어떤 징후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그녀가 알지 못하도록 은밀히 극양을 투입해 왔다. 매일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랬다…… 이거지?’
누미는 멍청이가 아니다. 무공에 관한 한 문일지십, 문일지백이라는 요미검체다.
화천은 그녀가 눈치챌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아니, 눈치채라고 일부러 이런 식으로 말한 게다. 눈치를 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누미가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살아서 화천의 마을까지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촌장에게 강제로 겁탈당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복수의 길이다.
물론 화천의 말이 전부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화천 같은 자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겨우 여인 한 명 겁탈했다고 해서 목숨을 거둘 리 있나.
그 말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허나…… 지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그 말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다.
누미가 싸늘한 눈길로 화천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해요.”
“자 그럼 서로…….”
“시끄러운 소리 말고, 어떻게 해야 돼? 빨리 하기나 해.”
“하하하!”
“분명히 말하는데…… 넌 내가 죽여.”
“그러지 못할 거야. 넌 내 아기를 낳아야 하니까. 그럴 운명이거든. 요미검체는.”
“낳아주지. 몇 명 필요해?”
“하!”
“빨리 하기나 해.”
“내가 말하는 대로 진기를 돌려.”
“…….”
“백회(百會), 영천(靈川)…….”
화천이 혈을 읊어나갔다.
그날 이후, 누미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몸에서는 열양진기가 피어난다. 하지만 피부는 푸석해지고, 살이 쭈그러든다.
화천은 그 사건 이후로도 지극정성을 다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종이 없어도 하등 불편한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보살펴주었다.
그때 그 일만 아니었으면 마음이 흔들렸을 정도로 들이는 정성이 지극했다.
‘이자, 진짜 목적이 뭐지?’
누미는 약속했던 한 달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한 달이라는 기한은 그가 무공을 성취하는 기간일 것이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