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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32화 (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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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章 환사(幻邪) (2)

세상 사람들 중에서 혈천혈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를 무시하는 사람도 없다.

그는 십마 중에 일인이다. 하지만 그를 십마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십마가 마의 하늘인 마천(魔天)이라면 혈천혈도는 하늘 위에 하늘, 천외천(天外天)이다.

그는 다른 십마보다도 월등히 강하다.

그는 단숨에 마인들을 통합했고, 검성에 맞설 수 있는 혈천성을 이뤄냈다.

강하다. 아주 강한 마인이다.

옳은 안목이다. 또 잘못된 안목이다.

혈천성을 이뤄낸 저력은 무공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혈천혈도를 모른다. 그들이 아는 것은 강한 면모밖에 없다. 거칠고 투박하며 무식할 정도로 단순한 성격을 지닌 폭군 정도로 생각한다.

강함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이 있다. 치밀함, 잔혹함, 그리고 뛰어난 책략!

“어떠냐?”

“죽었습니다.”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그럼 어떤 걸 물으셨는지……?”

회회문사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구리 같은 놈.”

“더더욱 알아듣기 힘든 말씀을.”

“이놈에게서 말을 들어야겠어. 준비해.”

“죽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하시는 건지…… 무엇을 준비하라고 하시는 건지 도무지……”

“야!”

“네. 말씀하십시오.”

“장난 아냐.”

회회문사는 그 말을 듣고야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뒀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불가합니다.”

“준비해.”

“불가합니다.”

“이번 대답에는 네 목숨을 걸어라. 준비해.”

“……알겠습니다.”

회회문사가 힘들게 말했다.

혈천혈도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 목숨을 걸라고 주문했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번에도 불가하다고 말했다면 당장 손을 썼을 테고, 목숨을 잃었을 게다.

혈천혈도는 판단이 매우 빠르다.

회회문사가 말했다.

“어느 선까지 입을 열게 만들까요?”

“전부다. 전부 다 들어야겠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회회문사는 힘들게, 정말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한다는 듯 싫은 음색으로 말했다.

음혼차류환시사(陰魂借流還尸死)!

결코 펼쳐져서는 안 되는 저주의 사법이다.

음혼차류환시사를 창안해 낸 마고(魔姑)조차도 치를 떨면서 도리질을 했다. 두 번 다시, 그 누구도 이런 종류의 사법을 연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저승에 든 영혼을 다시 불러내어서 말을 시키는 사술(邪術)은 많다.

영매를 통하는 방법도 있고, 분혼(分魂)하여 영과 영이 접촉하는 방법도 있다.

검왕에게서 무엇인가를 알아내고자 한다면 방법은 많다.

하필이면 왜 음혼차류환시사인가!

‘마고…… 비밀로 하고자 했다면 비급조차도 남기지 말았어야지. 무성이 아깝다고 그런 것을 숨겨가지고는…… 휴우! 언젠가 한 번은 써먹을 줄 알았다만…….’

회회문사는 혈천혈도에게 읍했다.

이제 음혼차류환시사를 시전하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한다.

회회문사는 검왕을 발가벗겨서 반듯한 석판에 눕혔다.

“하아!”

검왕의 모습을 보자 감탄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검왕의 알몸은 잘 깎아놓은 조각상 같다. 멋있다는 느낌을 지나쳐서 아름답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내도 아름다울 수 있다.

회회문사가 검왕의 알몸을 보고 찬탄을 할 수 있는 것은…… 검왕은 죽은 사람답지 않게 생생하기 때문이다. 죽은 게 아니라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죽은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천하제일의 미인도 죽은 후에는 아름답지 않다. 살아있을 적에는 뭇 청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을망정 죽은 후에는 아무도 닿지 않으려고 한다.

사기(死氣)가 전신을 뒤덮기 때문이다.

그렇다. 죽은 사람이 아름답게 느끼려면 사기가 없어야 한다. 아직 사기가 깃들지 않은 육신만이 아름답다.

검왕이 그런 상태다.

검왕은 죽은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원정지기(元精之氣)가 육신을 감돌고 있다. 그래서 살을 만지면 딱딱하게 굳어있으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이 감지된다.

음혼차류환시사는 바로 이 원정지기를 건드린다.

원정에 강한 자극을 가해서 뇌를 일시적으로 되살린다.

육신은 죽었지만 뇌는 미미하게 살아있는, 본인 스스로 생각은 하지 못하지만 묻는 말에 대답 정도는 할 수 있는 아주 미약한 생명력을 끌어낸다.

원정은 육신 전체를 보호한다.

원정지기가 흩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뇌 역시 완전한 사멸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마고는 이런 점에 착안해서 음혼차류환시사를 창안해냈다.

음혼, 깊숙이 숨어 있는 혼이…… 차류, 본연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흐름을 타고……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흐름에 영향을 받아서…… 환시사, 죽었던 육신이 되살아난다.

음혼차류환시사를 아무에게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은 숨이 떨어지는 순간에 원정지기도 흩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정반대로 말해야 한다. 원정지기가 소멸되는 순간에 숨이 떨어진다.

그러니 사법일망정 내공이 정순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시전조차 해보지 못한다.

허면 마고는 왜 이 사법에 치를 떨었을까?

음혼차류환시사를 당한 시신은 일시간 광시(狂尸)가 된다.

주위에 있는 모든 생명을 말살시키고자 하는, 생명 있는 것들을 질투하는 광마가 된다.

죽은 자를 또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칼이 무용지물이다. 화살에 머리가 꿰뚫려도 살아서 움직인다. 그러면서 잠력은 가공할 정도로 폭발한다. 양손으로 사람을 찢어 죽일 정도로 괴력을 지닌다.

검왕에게 무엇을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회회문사는 솜에다가 물을 적셔서 검왕의 몸을 닦았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먼지 한 올 닿지 않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닦았다.

그런 후, 준비해 놨던 화침(火針)을 꽂기 시작했다.

백회혈(百會穴)에 시뻘겋게 달군 불침을 찌른다.

치이익!

화침이 살과 뼈를 태우면서 들어간다.

회회문사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도 망각한 채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화침을 놓았다.

침놓는 자리는 모두 칠백이십 혈이다.

침이 빼곡히 꽂혀서 말 그대로 고슴도치가 된다.

한 대, 한 대…… 각기 길이가 다른 화침을…… 각기 다른 깊이로 찌른다.

침을 다 꽂은 후에는 두 번째 단계로 돌입한다.

회회문사가 꽂은 침은 대롱 형태로 되어 있다. 안이 텅 빈 공침(空針)이다.

회회문사는 공침 안에 마고의 독액(毒液)을 흘려 넣었다.

조심…… 조심…… 독액이 살에 묻지 않도록 조심해서 한 방울씩 똑똑 떨어트려 흘려 넣는다.

마고의 독액 속에는 미량의 부시독(腐屍毒)도 섞여 있다.

부패를 빠르게 진행시키지만 그만큼 자극도 강하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사용하면 치명적인 극독으로 작용하지만 죽은 시신에게 쓰면 부패를 가속시키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검왕은 죽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이 닿아도 상관없다.

회회문사는 산 사람이다. 살짝만 닿아도 살이 썩어들어간다.

그는 근 두 시진에 걸쳐서 공침 속에 독액을 흘려 넣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준비 끝났습니다.”

“반응은 어때?”

“아직까지는 별문제 없습니다.”

“원기는 괜찮고?”

“성주님께서 보셨을 때보다 두 배 이상 강해졌습니다. 입을 벌리기 직전의 석류 같습니다.”

“하하하하!”

혈천혈도가 크게 웃었다.

‘만족!’

회회문사는 혈천혈도의 웃음소리로 성주의 마음을 눈치챘다.

성주는 지금 아주 흡족해한다.

혈천혈도가 평소에는 잘 쓰지 않던 용참대도(龍?大刀)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검왕이 난리를 피면 대단할 게다. 주변을 단단히 틀어막도록.”

“성주님 안위가 염려됩니다.”

“하하하하! 내가 마고인 줄 아느냐!”

혈천혈도가 자신 있게 말했다.

과거, 마고는 음혼차류환시사를 시전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끝은 좋지 않았다. 마고는 결국 시마의 수공(手功)에 팔 하나를 뜯기고 말았다.

억지로 영혼을 되살린 시마는 악마 이상이다.

“그래도…… 상대가 검왕입니다.”

회회문사는 여전히 안색을 풀지 못했다.

마고가 말하기를…… 시마는 살아있을 때보다 두 배, 혹은 세 배 이상 강해진다고 했다.

검왕은 천하무적이었다.

은거하기 전에는 십마와 견줄 정도였지만 마공관의 마공을 접한 후에는 십마 정도는 우습게 여기는 정도가 되었다. 그런 사람의 무공이 두 배 이상 증강된다면…….

혈천혈도는 죽는다. 결코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가 계속해서 ‘불가(不可)’를 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절대로 검왕을 깨워서는 안 된다. 죽은 영혼…… 편히 쉬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하하! 네 염려대로 내가 죽는다고 해도 여한은 없다. 검왕이 일수에 당한 마당인데 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놈들이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내면 제일 먼저 나가떨어질 사람은 나와 검성의 늙은이일 것이니.”

저벅! 저벅!

혈천혈도가 묵직한 소리를 울리며 걸어갔다.

검왕이 누워있는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전신에 침을 빼곡히 꽂고 있어서 괴기스럽게까지 비친다. 더군다나 공침 안으로 흘려 넣은 독액이 독성을 토해내고 있어서 악취가 매우 심하게 풍긴다.

“넌 그놈을 기다렸어.”

혈천혈도가 용참대도를 옆에 높고 검왕에게 다가서며 중얼거렸다.

혈천혈도의 머릿속에 미공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십마 세 명을 상대하던 시종 모습도 생각난다.

아무도 그들이 누군지 몰랐다. 허나 검왕은 알았다. 검왕은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에게 죽기 위해서.

그들은 누구인가? 어떤 놈들이기에 그토록 강한 무공을 지녔나?

검왕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이미 은거를 선포한 놈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갑자기 나타나서 그놈들을 기다리다가 그놈들 손에 죽었나? 왜 죽음을 택했나?

검왕에게 물어볼 말이 많다.

중원을 뒤져보면 검왕 대신에 답해줄 놈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런 놈을 찾는다는데 막막하기만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까마득히 모르던 놈들을 무슨 수로 찾나.

찾으면? 그놈들과 싸울 수도 없는데 뭘 어쩌겠다고?

검왕이 말해야 한다. 그놈들이 누군지 알아내서 상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해줘야겠다.”

혈천혈도는 양손을 들어 올렸다.

파라라랑!

공기가 은은하게 진동을 일으킨다. 바람이 전혀 들 수 없는 밀실인데, 유등 불꽃이 펄럭인다.

“하아아앗!”

혈천혈도는 양손에 진기를 운집한 후, 검지는 검지와 엄지는 엄지와…… 두 손가락을 맞댔다.

파라라라라라락!

양손에 운집한 진기가 맞댄 두 손가락을 통해서 돌고 돈다. 빠르게 전륜(轉輪)한다.

진기가 회전하고…… 회전하면서 일으킨 구심력이 주변의 기운마저 빨아들인다. 혈천혈도의 모든 진기가 운집되고, 밀실에 깃든 차가운 기운들마저 흡수된다.

돌고 돈다. 빠르게 돈다.

이 순간, 혈천혈도는 없다. 오직 빠르게 도는 진기만 존재한다.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가장 강한 힘, 뇌륜(雷輪)이다.

혈천혈도는 맞댄 양손을 서서히 내려서 검왕의 단전 부위에 갖다 댔다.

파파팟! 파파파팟!

검왕의 단전 부위에도 화침이 꽂혀있었다. 화침을 통해서 독액이 스며드는 중이었다.

엄지와 검지가 만든 둥근 원은 화침을 찍어눌렀고, 화침은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혔다. 검왕의 살을 파고 들어가…… 종래는 침두(針頭)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묻혔다.

혈천혈도는 손을 계속 내렸다.

꾸우우우욱!

검왕의 단전이 극심한 압력에 찌그러들었다.

배꼽 밑에 마치 망치로 떡을 쳤을 때처럼 둥그런 구멍이 생겼다.

“하아아아아앗!”

혈천혈도는 더욱 강하게 손을 내리눌렀다.

진기로 검왕의 단전을 파괴한다. 타격으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압력으로 파괴한다. 검왕의 단전으로 파고든 화침들은 이미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서 둥그런 철환(鐵丸)이 되어 있을 게다.

철환을 퉁긴다.

철환으로 뇌를 친다!

“하아아아앗!”

마지막 단계, 양손이 단전에 닿았다. 그래도 계속해서 내리누른다.

탕!

드디어…… 철환이 퉁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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