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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六章 낙검(落劍) (4)
슥! 슥!
노인이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쓴다.
나뭇잎 한 점 떨어져 있지 않은 깨끗한 마당이 노인의 손길을 따라서 다시 한 번 쓸린다.
사박! 사박!
저 멀리서 한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은 쭉쭉 뻗은 느티나무 사이로 걸어온다. 치맛자락을 살살 끌면서.
여인은 서둘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온다.
노인은 여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빗질만 했다. 오직 빗질밖에 할 것이 없다는 듯.
잠시 후, 여인이 다가와 노인 뒤에 섰다.
여인은 잠시 숨을 골랐다.
면사 사이로 여인의 가녀린 숨이 뿜어진다. 숨을 쉴 때마다 면사가 나풀거린다.
여인은 향기로운 방향도 뿜어냈다.
여인이 오기 전까지, 움막 근처에는 풀냄새만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인의 방향으로 가득하다.
향기롭고…… 매혹적이다.
여인이 입을 열었다.
“검왕이 죽었어요.”
슥! 슥!
노인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빗질만 했다.
여인도 입을 다물었다. 그녀도 노인을 보지 않고, 먼 하늘에 눈길을 주었다.
하늘이 푸르다. 새 한 마리가 푸른 하늘을 날아간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노인이 빗질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게냐?”
“확실해요.”
“네가 본 거냐?”
“…….”
“쯧!”
노인이 혀를 찼다.
갓난아기가 바다 한 가운에 떨어졌다면, 누가 도움을 주지 않는 한 죽음이 확실하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스스로 헤엄을 쳐서 살아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검왕의 죽음이 그런 식이다.
노인은 여인에게 직접 목도했냐고 다그쳤지만 쓸데없는 말이다. 검왕의 죽음은 너무 확실해서 의심을 할 수가 없다. 신이라고 해도 그 상황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
여인이 말했다.
“누미를 넘겨줄 생각이에요. 허락을 구합니다.”
“다른 방법은 생각해 봤고?”
“…….”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쯧!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구나. 어찌 이리 마음이 모질꼬.”
“…….”
“알았다.”
노인이 몹시 못마땅한 듯 마지못해서 말을 하고는 다시 빗질을 시작했다.
“검왕이 비형은잠에게 누미를 맡겼어요. 비형은잠을 처리해 주셔야 해요.”
“검왕이 그 정도 할 것이라는 것은 생각했잖느냐.”
“설마 비형은잠에게 맡길 줄은 몰랐어요.”
“원하는 게 뭐냐?”
“비형대(秘刑隊)를 주세요.”
“쓰거라.”
“이미 시작한 일이니 속전속결, 빨리 끝낼 거예요.”
슥! 슥!
노인은 이미 빗질을 시작했다.
여인은 노인의 등 뒤에 까딱 고개 숙여 인사를 고하고는 뒤돌아섰다.
노인이 빗질을 멈췄다.
여인은 느티나무 길을 지나 멀어져 간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서둘지 않고 천천히 간다.
노인이 말했다.
“말해봐라.”
“죽었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노인의 등 뒤로 검은 복면을 하고, 검은색 경장을 입은 무인이 나타나 부복한 채 대답했다.
“직접…… 봤는가?”
“네.”
“흠!”
노인이 빗자루를 잡고 잠시 눈을 감았다.
꼭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빗자루를 잡은 손도 가는 경련을 일으킨다.
“혈영마공은…… 어떻더냐?”
“완벽했습니다.”
“완벽? 허허허! 완벽할 리가 있나. 그놈은 뼛속까지 정종무공으로 각인된 놈인데.”
“완벽했습니다.”
확증하는 말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완벽하게 재현했을 게야.”
노인은 끝내 복면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노인은 완벽이라는 말 대신에 재현이라는 말에 더 힘을 줘서 말했다.
“시신은? 시신은 어떻게 했고?”
“손댈 수가 없어서 버려뒀습니다.”
이번에도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나중에……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을 때…… 뼈나 수습해 주거라.”
“알겠습니다.”
복면인이 깊이 읍했다.
* * *
‘이상해!’
혈천혈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왕과 누강을 만천하에 공개한 곳은 검성이다.
물론 그 전에 마공관이 파괴되었다. 마침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마인들이 몰려들었고, 마공관 사건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기 시작했다.
허나 무림은 경악하기는 했어도 그들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반신반의라고 해야 할까?
헌데 그즈음, 검성이 쐐기를 박았다.
검왕에게 말도 되지 않는 현상금을 내걸었다. 누강도 낯을 들고 다닐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래놓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검왕이 죽었다. 그 순간에도 검성에서는 어느 한 사람 나와보지 않았다.
‘우리만 찢고 까불고 있어. 검성 놈들은 쥐죽은 듯이 있는데, 십마만 날뛰고 있잖아.’
검성은 무엇인가를 안다.
십마는 장님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수고만 한다.
파파팟!
혈천혈도는 신형을 빙글 돌려세웠다.
검왕을 죽인 자는 누구일까? 자신을 비롯해서 십마 두 명을 어린애처럼 가지고 놀던 놈은 누구일까?
검왕은 해답을 쥐고 있다.
스으으읏!
그는 검왕이 눌러앉았던 숲을 향해 치달렸다.
역시 아무도 없다.
검왕을 죽인 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자신들을 쫓던 자, 하인 나부랭이도 없다.
모닥불이 꺼져버린 공터에는 죽은 검왕만 널브러져 있다.
검왕의 죽음을 목도한 사람들이 있다. 직접 목도하지는 못했어도 소문을 들은 자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검왕을 봤을 게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검왕의 시신에 손을 댈 사람은 없다.
십마를 마구잡이로 때려눕히던 검왕이 저런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데, 어느 누가 손을 댈 수 있을까.
검왕의 시신에 손을 댄다는 것은 무슨 일인지도 모를 대사건에 개입한다는 뜻이 된다. 본의는 아니었다고 해도 혈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멀리서 지켜본 것만으로도 족하다.
파파팟!
혈천혈도가 주위를 쓸어봤다.
몇몇 사람이 숨을 죽이고 있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저런 풋내기들쯤은…… 정작 신경 쓰이는 자는 미공자의 명령을 받던 기이한 놈이다.
그자가 숨어있다면 여지없이 당한다.
파파팟! 파파파팟!
주위를 살피고 또 살폈다.
아무도 없다. 무공으로 그를 겁박할 만한 자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또 살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자가 있을 법한 곳에서는 호의(狐疑), 여우가 의심하듯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꼼꼼히 살피는 게 좋다.
‘없어!’
아직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의 느낌에는 아무도 감지되지 않지만 누군가가 있을 수는 있다. 상대는 삼마를 넉넉하게 상대하던 자다.
헌데 이런 의심은 끝이 없다는 게 문제다.
언제고 한 번은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이 바로 위험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익!
벼락같이 신형을 퉁겨냈다.
숲에서 쏘아져 나감과 동시에 검왕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그리고 한순간도 멈칫거리지 않고 곧바로 숲으로 뛰어들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경악성을 내뱉기도 전에.
“이런!”
혈천혈도가 혀를 내둘렀다.
미공자의 솜씨는 매우 깔끔하다. 일순간에 사혈(死穴) 네 곳을 절단해 냈다.
심장을 박살 낸 것보다 더 확실한 죽음이다.
“이놈도 무척 빨랐는데, 이런 놈을 이 지경으로 만든 솜씨라면…….”
혈천혈도는 미공자의 출신 내력을 짐작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상처를 살펴봤다. 갈라진 사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머릿속에 들어있는 모든 무공을 끄집어냈다.
한 번이라도 읽었거나, 우연히 누군가에서 들은 무공까지 모두 생각해 봤다.
스으읏!
그는 손을 들어서 미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사혈을 베어봤다.
베는 자국을 따라가 본다. 베는 시작점과 마지막 점을 살핀다. 그리고 일순간에 움직여 본다.
“원(圓)?”
혈천혈도의 미간이 더욱 깊이 찌푸려졌다.
미공자는 원을 그렸다. 검왕이 달려드는데, 그 앞에서 태연히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원은 검왕의 몸에 작열했다. 둥글게 작열한 것이 아니라 딱 네 곳만 쳤다.
어떻게 이런 사흔이 새겨질 수 있을까?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네 곳만 친다?
그의 기억 속에는 이런 무공이 없다.
“어쨌든 이놈이 입을 열어야 뭔 말이든 들을 수 있겠어.”
혈천혈도는 검왕을 낚아채 등에 업었다.
세상 사람들은 산 사람만 말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죽은 사람도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이 한 말이 산 사람의 말보다 더 정확할 때도 있다.
* * *
“어디로 갈까요?”
“…….”
누강은 잠시 생각했다.
어디로 갈까? 지금 어디로 가야 하나? 무슨 일을 해야 하나?
할 것이 없다. 벌어지고 있는 일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는데, 그중에는 아주 급박한 일도 있는데…… 자신이 나서서 해야 할 일은 전혀 없다.
음사가 말했다.
“누미를 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강은 고개를 흔들었다.
“비형은잠이 뒤따라갔네. 은잠이 지켜줄 수 없다면 우리라고 한들 뾰족한 수가 있겠나.”
“그래도…… 그럼 숙부님께 가보는 게 어떻습니까?”
누강은 이번에도 고개를 흔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가서 검왕의 죽음을 확인하고 싶다.
허나…… 검왕을 믿는다.
너무 검왕을 믿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검왕의 죽음을 접하고도 흔들리지 않는다.
누강은 생각을 굳혔다.
“검문으로 가지.”
“검문입니까?”
“어른들도 지금 중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고 있을 터…… 모르고 있다면 알려드려야 하고.”
“알겠습니다. 헌데 누미도 적벽검문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방향도 같고 하니 기왕이면 뒤를 쫓는 게……”
누강은 고개를 흔들었다.
“숙부님의 뜻이 누미에게 있는지 나에게 있는지 모르겠어.”
“예?”
“육신조차 움직이기 힘든 자네에게 날 부탁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우리 정도 되는 사람들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누강이 말끝을 흐렸다.
십마를 때려눕힌 검왕이 무공으로 목숨을 잃을 정도의 대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중원최강자라고 할 수 있을 무공이 쓰러졌다.
어떤 일인지 모르겠지만 모종의 폭풍이 그야말로 정신없이 휘몰아치고 있다.
곧 죽을 검왕이 조카를 살리기 위해 음사까지 살렸다.
검왕에게 그럴만한 정신적 여유가 있었을까?
자신을 왜 살렸나? 단지 조카이기 때문에 살린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나와 음사의 존재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우릴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린 이미 죽은 목숨으로 치부되고 있어. 검왕까지 죽은 마당에 우리 정도는 잊혀진 거지. 모든 행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누강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검문으로 가자. 가장 은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