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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六章 낙검(落劍) (1)
그들은 검왕과 짧게 만난 후, 곧바로 흩어졌다.
그들 중에서 검왕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없다. 친분은커녕 원수관계다. 언제든 만나기만 하면 당장 죽이겠다고 으르렁거리던 천적 중에 천적이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다.
검왕이 쓸쓸하게 모닥불을 피우면서 술을 마신다.
수세미처럼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뚫고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춘다.
꿀꺽! 꿀꺽!
술 마시는 소리가 야음을 흔든다.
아니……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제각기 떠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켜보고 있다.
흑포사추는 흑포로 전신을 휘감았다.
그는 어둠과 동화되었다. 그가 어둠인지, 어둠이 그인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
비형은잠은 더욱 찾기 어렵다.
그가 숨으려고 작심했을 때, 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계판서와 혈천혈도는? 그들은 갔나? 가지 않았다. 차분하게 지켜본다.
검왕이 모닥불을 피웠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십 리 밖에서도 보일 법한 불길을 일으켰다.
자신을 환히 노출시키는 방법 중에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숨지 않고 드러냈다는 것…….
모두들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 채 검왕을 쳐다봤다.
사박! 사박! 사박!
캄캄한 숲, 깊은 곳에서 풀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수다!’
그들은 단박에 상대방을 알아봤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다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냈다.
땅을 밟으면서 굳게 밟지 않는다.
기름 위를 미끄러지듯이 살짝살짝…… 지르밟는 식으로 움직이는데, 그러면서도 매우 안정감 있다.
잠시 후, 숲에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내는 뜻밖에도 젊은 청년이다. 신법의 경지로 미루어보아 틀림없이 노마(老魔)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젊은 청년이다. 그것도 너무나 아름다운.
그러나 그들은 청년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았다.
‘음! 어디서 온 놈인가!’
그들은 청년의 정체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느 문파가 청년을 양성해 냈을까?
청년의 나이는 검왕과 비슷해 보인다. 아니면 검왕보다 약간 어리거나.
청년은 그런 나이에 검왕과 같은…… 검왕 앞에 자신 있게 나타난 것을 보면 검왕보다 더 강한 무공을 지녔다는 말인데, 최소한 자신은 있다는 말인데…… 그만한 무공을 어떻게 지닐 수 있을까?
적벽검문이 검왕을 탄생시켰으니 검왕과 버금가는 청년 고수가 또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건가?
아니다. 검왕은 아주 특이한 경우다.
검왕은 무공을 위해서 태어난 무골이다. 무공이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전신(戰身)이다.
적벽검문은 검왕을 배출해 냈지만, 지금도 검왕을 탄생시켰다고 말하지 않는다.
검왕은 자신 스스로 성장했다.
검왕은 적벽검문이 아니라 여타 문파에 입문했어도 능히 오늘날의 성취를 이뤄냈을 무골이다.
검왕의 천재적인 감각은 따를 자가 없다.
헌데 그와 버금가는 청년 고수가 나타났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그들은 청년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떨거지들이 너무 많아. 이들 정도는 해결해 줄 수 있잖아?”
“부탁이시라면.”
숨어서 지켜보던 십마는 깜짝 놀랐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가? 또 한 명이 숲에 있었는데, 왜 발견하지 못했지?
혈천혈도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는 자신이 십마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자부한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비형은잠조차도 자신의 이목을 속이지 못한다. 흑포사추? 저기 저 나무 그늘 밑에 숨어있지 않나.
그런데 이자는 찾지 못했다.
‘누구냐!’
비형은잠 역시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은잠은 기본은 숨는 것이다. 허면 누구로부터 숨는 것인가? 상대방으로부터 숨는다. 상대방에게 발각되지 않게끔 지극히 은밀하게 잠복한다.
이게 기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상대방’은 누구인가?
검왕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다. 허면 모닥불을 보고 달려드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자는 검왕을 바싹 긴장시킬 정도로 초고수일 게다.
지금은 ‘다가오는 누군가’가 상대방이다.
그래서 외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개미가 움직이는 것까지 파악하는 중이다.
헌데 이자…… 누구이기에 촉각에 걸려들지 않았나.
숲에서 걸어 나온 미청년이 검왕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부탁까지 할 생각은 없어.”
“그럼 말씀을 받들 이유가 없습니다.”
“너무 꼬장꼬장해.”
“소인의 임무는 감시인지라. 한시도 눈을 떼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그 감시라는 말, 다른 말로 바꿀 수 없나?”
“이 말이든 저 말이든 같은 의미일 것이니, 익숙해지시지요.”
“하하하!”
청년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부탁하지. 떨거지들 좀 떼어줘. 나, 마공관의 마서를 수련했다는 자와 조용히 있고 싶어.”
“부탁이시라면 기꺼이.”
청년과 숲에 있는 자가 말을 주고받았다.
그때까지, 그들이 몇 마디를 주고받을 때까지 십마는 괴인의 위치를 탐지해내지 못했다. 그때,
쒜에엑!
갑자기 야공 한가운데서 솔개가 날아내렸다.
솔개가 벼락같이 덮치는 곳은 캄캄한 어둠 속,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다. 순간,
“훗!”
어둠 속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어둠보다 약간 색이 다른 어둠이 화라락 피어났다.
까앙! 깡!
곧 이어서 금속음이 터졌다.
“후후후! 십마라기에 그래도 한두 수 하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젖비린내나서야.”
스읏!
야공에서 떨어져 내린 자가 검을 들어 올렸다.
달빛에 반사된 검에서 차디찬 한광이 터져 나온다. 싸늘한 한기가 줄기줄기 피어난다.
검은 이미 피를 먹었다.
그가 들어 올린 검에서 어둠과 흡사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제길! 한 대 얻어맞지만 않았어도.”
흑포사추가 찢어진 흑포를 풀어 던지며 중얼거렸다.
그는 검왕에게 일격을 당했다. 지금도 그때 상처가 욱신거린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갈비뼈가 부러질 듯 아프다. 갈비뼈에서 일어난 통증이 뒷골까지 울린다.
거기에 사내의 무공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높다.
흑마공(黑魔功)이 일순간에 깨졌다.
흑포로 일궈내는 방충마벽(防衝魔壁)도 종잇장처럼 찢겼다.
흑포사추가 지금처럼 낭패를 당해본 건 검왕이 처음, 이자가 두 번째다.
평생동안 적수가 없다고 무림을 활보하다가 하룻밤 새에 두 차례나 곤혹을 치른다.
“후후! 후후후!”
사내가 웃으면서 쾌속하게 쏘아왔다.
그는 속전속결을 원하는 것 같다. 한시 빨리 귀찮은 떨거지들을 처리할 생각이다.
“쳇! 너무 안하무인 아닌가!”
유계판서가 어둠 속에서 툭 튀어나오며 사내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사내는 흑포사추를 노리고 있다. 그의 검은 흑포사추를 노리고 검초를 전개하는 중이다.
유계판서는 완벽한 기회를 잡았다.
‘옆구리가 비었잖아, 병신아!’
쒜에에엑!
여간해서는 꺼내지 않는 판관필(判官筆)이 사내의 옆구리를 훑었다. 헌데!
까앙! 쉐에엑! 까앙! 깡깡깡!
흑포사추를 향해 들이치던 검초가 느닷없이 변하더니 방향을 틀어 유계판서를 노렸다. 마치 처음부터 유계판서를 노리고 검초를 전개했을 때처럼 정확하고 현묘하다.
유계판서는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웃!”
깡깡깡! 깡깡!
“웃!”
깡깡!
유계판서는 연신 이 악문 소리를 흘렸다.
검과 판관필이 부딪치자, 손목이 끊어질 듯 아파 왔다.
내력 차이가 너무 뚜렷하다. 힘에서 차이가 워낙 벌어지기 때문에 판관필이 일으키는 변화는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형편없이 밀리는 수밖에 없다.
“뭐 이런 놈이…….”
유계판서가 주르륵 뒤로 밀려나며 중얼거렸다.
그가 애지중지 아끼는 판관필은 이미 걸레처럼 헤져서 너덜거렸다.
반면에 사내의 검은 너무도 멀쩡하다. 달빛에 반사된 한광이 눈 시리게 번쩍인다.
“유지자문이 아니다.”
혈천혈도가 앉아있던 곳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유지자문이 아니라고?”
유계판서가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저놈이 쓰는 무공…… 정종무공(正宗武功)이다. 마공이 아냐.”
“그래?”
“어디서 온 놈이냐!”
스릉!
혈천혈도가 칼을 뽑으며 물었다.
“하하하! 내 무공이 정종무공이라. 혈천성 성주라는 놈이 이렇게 한심한 눈을 가지고 있으니.”
사내가 묘한 소리를 했다.
‘음!’
비형은잠은 잠시 고민했다.
검왕과 미청년은 아직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있다.
미청년이 검왕 앞으로 걸어갔지만, 검왕은 여전히 술만 마시고 있다.
그들은 곧 싸울 것이다.
비형은잠은 검왕이 말한 자, 혈영마공을 일수에 깨트릴 자가 바로 저 미청년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저 청년이 정말로 검왕을 벨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미청년이 하대를 하고 있는 자, 수하처럼 보이는 자가 십마 중에 세 명을 상대하고 있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
중원 천지에 십마를 저런 식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검성 성주도 저런 식으로 싸우지 못한다.
예전까지는, 검왕이 마공관을 깨트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금은 검왕만이 저런 식으로 싸울 수 있다.
헌데 그렇게 싸우는 자가 또 나타났다. 그것도 미청년이 아니라 그가 부리는 수하다.
‘길(吉)보다 흉(凶)이 많다!’
그는 판단이 서는 순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신형을 쏘아냈다.
스으으으으읏!
그가 안개처럼 조용히 사라져갔다.
원래……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이 자리에 남아있었던 것은 정말 검왕을 벨 수 있는 자가 나타날 것인지, 벤다면 어떤 식으로 베는지 궁금해서였다.
절정의 싸움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보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남았다.
허나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검왕이 무너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면…… 여기서 선택이 남는다.
계속 남아서 검왕이 무너지는 것을 볼까?
검왕이 무너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검왕이 쓰러지든 이기든 상관없다. 다만 어떤 무공이 나타날지, 어떤 싸움이 되는지 그게 보고 싶었던 것이다.
또 하나, 선택이 있다.
검왕의 말대로 누미를 챙기는 일이다.
검왕은 누강의 목숨보다 누미의 목숨을 중요하게 말했다.
누미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아마도 오늘부터 벌어질 싸움,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코끝에 베이기 시작하는 혈풍(血風)의 중심처에 누미가 있을 것이다.
누미는 중요한 변수다. 반드시 살아야 한다.
비형은잠은 두 가지 중에서 잠시 선택을 망설였다. 하지만 곧 결단을 내렸다.
검왕이 한 말…… 그는 진정으로 말했다.
검왕은 지금 정도의 편에 서 있지 않다. 그렇다면 혈영마공을 드러내는 일도 없었을 게다.
그는 마도의 편을 들지도 않는다.
지금 검왕은 중원 무림의 입장에서 미청년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사람을.
혈천혈도는 저들이 유지자문이 아니라고 했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자리를 한시바삐 벗어나야 한다.
‘누미를 지켜달라고? 지켜준다! 왜 지켜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스르르르르륵!
어둠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