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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25화 (2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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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章 패류(敗類) (5)

타탁! 타탁!

어둠 속에서 모닥불이 타들어 간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 속에 마른 나무를 집어넣는다. 불길이 곧 나무를 휘감는다.

꿀꺽!

고개를 푹 숙인 채 불기를 쬐고 있던 괴인이 호로병을 들어 술을 마셨다. 그때,

“후후! 검왕이 강호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 이래도 되는 건가?”

음침한 음성과 함께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우람한 체격…… 힘으로 한몫할 것 같은 장한이다. 넓적한 얼굴에 가시처럼 날카로운 수염이 박혀 있다. 두 눈은 금방이라도 불길을 토해낼 듯 이글거린다.

마의 하늘, 혈천혈도 진구량이다.

검왕은 적 중의 적이 나타났는데 눈길도 주지 않았다.

꿀꺽!

그가 호로병을 들어서 다시 술을 마셨다.

“후후! 찬밥 대접도 괜찮군. 신경 쓰지 않아서 좋아.”

혈천혈도가 터벅터벅 걸어와서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검왕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혈천혈도가 검왕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나올 사람은 나오고,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고. 태도를 분명히 하는 건 어떤가!”

그의 음성이 쩌렁 밤하늘을 울렸다. 그러자,

“흐흐흐!”

“킥킥!”

역시 음침한 웃음과 함께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검왕과 일전을 겨룬 바 있는 유계판서와 흑포사추다.

그들이 스르륵 미끄러지듯 다가와 모닥불 가에 이르렀다.

“앉으라는 말도 없고.”

“우리가 손님은 아니잖아? 의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불평불만은 하지 말자고. 깨진 주제에.”

두 사람이 키득거리면서 불 곁에 앉았다.

세 사람이 검왕을 쳐다봤다. 그러나 검왕은 여전히 눈길을 주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혈천혈도가 말했다.

“나오지 않으려면 꺼져!”

검왕에게 한 말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 한 말이다.

혈천혈도의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바람도 없는데 주변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스으읏!

귀신이 일으키는 바람처럼 모골만 살짝 건드린다. 그리고 한 사람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그는 모닥불로 다가오지 않았다.

“저놈이 비형은잠인가? 형씨, 웬만하면 여기 와서 앉지?”

유계판서가 살광이 번뜩이는 눈길로 비형은잠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비형은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유계판서의 말을 철저히 무시했다. 혈천혈도의 말도 무시했다. 다만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현재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동참한다는 의사표시만 했다.

“이렇게 되면 사대사(四對四)군.”

혈천혈도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응답하는 사람은 없다. 혈천혈도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었기 때문에.

마공관에 연류된 자가 십마 중에 네 명이다.

마군 쌍첨수괴, 강신천마, 십조잔괴, 천살마노.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뒤만 쫓는 자가 네 명이다.

혈천혈도, 유계판서, 흑포사추, 비형은잠.

한 놈은 죽었다. 패갑철마.

한 놈이…… 아니다. 한 계집이 남는다. 백화요희(百花妖姬).

백화요녀는 무림을 떠난 사람처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마공관이 깨져서 마급이 흘러나왔다는 데도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고 있다.

정상은 분명히 아니다.

마공관에 관계된 네 명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안다.

그놈들은 마공관 사태 이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증발하듯이 싹 사라졌다.

“백화는 나타나지 않을 것 같고…… 검왕, 무게는 그만 잡고, 우릴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혈천혈도가 혈광을 뿜어내며 말했다.

검왕은 십마 중 누구도 초빙하지 않았다. 하지만 혈천혈도는 검왕이 자신들을 불렀다고 말했다.

혈천혈도의 말에 놀라는 사람은 없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들 모두 지금에서는 검왕이 자신들을 불렀다고 생각한다.

누강과 누미를 마인들 앞에 내던졌다.

평소의 검왕이라면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직접 가로막았으면 가로막았지 뒤로 빼지는 않는다.

상처 입은 누강과 풋내기에 불과한 누미가 마인들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갓난아기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누강과 누미를 마인들 앞에 내놓은 것은…… 일종의 언질이다.

검왕이 마인들의 최고수들인 십마에게 말한다. 무슨 일인지 궁금한 사람만 나와라. 내가 말해주마.

이 자리에 있는 네 명은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흑포사추의 경우에는 충격이 심했다.

검왕은 그를 살려주었다. 일격을 격중시켰는데…… 그 일격에 죽일 수 있었는데…… 그 일격이 아니더라도 죽일 마음만 있었다면 이격을 터트릴 수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십조잔괴 등등을 죽이지 않은 것처럼 살심이 무뎌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헌데 검왕은 패갑철마는 단매에 죽였다.

충격이 와락 밀려왔다.

지금 이 자리에는 십마 중에 네 명이 있다.

혈천혈도의 혈천성을 이끌고 있는 인물로 마의 하늘이라고 불린다. 또한 십마 중에서 가장 강할 것으로 추측된다. 검성 성주와 비견되는 자이니.

그러나 그들 네 명이 합공해도 검왕을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패갑철마가 일검에 죽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술?”

검왕이 옆에 놓인 포대 자루에서 호로병 몇 개를 꺼내 모닥불 위로 건넸다.

역시 검왕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 명이 호로병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마개를 열어 거침없이 술을 마셨다.

검왕은 멀리 떨어져 있는 비형은잠에게 호로병을 던졌다.

비형은잠이 호로병을 받았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는지 마시지는 않았다.

“밤이 기니 서둘 것은 없지만……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미인지라. 마공은 언제부터?”

“…….”

“마공관을 깼나?”

“…….”

“마공관의 마공을 수련한 건가?”

“…….”

“혈영마공은 마공관의 무학이다. 그것은 본좌가 가장 잘 알지. 아무 말도 필요 없고…… 혈영마공, 한 수 보여줄 수 있나? 그럼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이 끝나자 검왕이 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을 하늘로…… 팔은 어깨높이까지 수평으로…….

츠읏!

기이한 음향이 들린다 싶은 순간, 손바닥 껍질이 확 벗겨졌다.

선홍빛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투박한 선홍빛이 아니라 투명한…… 너무 투명해서 핏줄과 뼈까지 환히 보이는 아주 맑은 선홍빛이 드러난다.

“혈! 혈영!”

혈천혈도가 눈을 부릅떴다.

다른 사람들은 혈천혈도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그들도 혈영마공에 대해서는 들었지만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한다. 검왕이 보여주는 한 수가 그저 특이한 기공처럼 보일 뿐이다.

“대단한 거요?”

유계판서가 혈천혈도에게 물었다.

“음!”

혈천혈도는 신음만 흘렸다.

검왕은 곧 손을 내렸다.

그의 손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언제 선홍빛을 드러냈냐 싶게 짙은 살색이다.

검왕이 호로병을 잡고 술을 마셨다.

꿀꺽!

검왕이 술을 마시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마는 검왕의 눈빛을 봤다.

싸늘하다. 어둡다. 침침하다.

검왕은 산 사람의 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 없는 눈길을 띠고 있다.

‘검왕이 아니다!’

검왕? 맞다. 검왕은 분명히 검왕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검왕은 그들이 알고 있던 검왕, 예전 검성의 첨검(尖劍) 역할을 하던 그 검왕이 아니다.

검왕은 변했다.

꿀꺽! 꿀꺽! 꿀꺽!

술 마시는 소리가 잔잔하게 어둠을 일깨웠다.

방금 전의 한 수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검왕이 마공을 수련했으며, 그것도 마공 중에서 최상위에 있는 혈영마공을 극성까지 연마한 듯하다.

검왕은 정(正)을 버리고 마인이 되었다.

검왕이 호로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난 죽는다.”

“부…… 작용인가?”

유계판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간혹 마공을 잘못 수련하면 부작용에 시달린다. 약물 복용을 잘못했을 때처럼…… 주화입마(走火入魔)라는 요물에 걸려든다. 그리고 서서히 죽어간다.

마공도 급하게 서둘러서 수련하면 탈이 난다. 차분 차분히,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검왕이 어쩌다가 혈영마공을 수련했을까?

아무리 혈영마공에 현혹되었어도 그렇지…… 검왕 정도 되는 자가 어찌 뒤탈을 무시했을까.

검왕이 유계판서를 보면서 말했다.

“이 손…… 완벽하다. 누구도 꺾지 못하는 금강석이다.”

검왕이 다시 손을 들어 모닥불에 비쳤다.

살색이 사라지고 선홍빛이 감돈다. 투명한…… 옥으로 만든 손이 불빛에 비친다.

“어때?”

검왕이 흑포사추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흑포사추는 대답하지 못했다.

검왕의 질문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창피해서 말하지 못했다.

지금 검왕은 저 손에 맞은 느낌을 묻고 있지 않은가. 그가 들고 있던 것은 돌조각이지만, 돌조각에 깃든 내력은 혈영마공의 진기이니 저 손에 맞은 것과 다름없다.

“클클클!”

흑포사추가 살광을 번뜩였다.

검왕은 흑포사추의 눈길을 무시하고 여전히 선홍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손을 보면서 말했다.

“이 손은 누구든 찌를 수 있다. 결코 막지 못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한 말이다.

누구든…… 너희 네 명이 합공을 취한다고 해도 막지 못한다. 혈영마공은 최강이다.

그들에게는 이런 소리로 들렸다.

혈천혈도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도주해라.”

“뭐라고!”

“살고 싶으면 도주해라.”

“우릴…… 죽이겠다는 건가? 지금? 후후후! 고작 그런 협박을 하고자 우릴 부른 건가?”

“이 손…… 한순간에 부서질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뭐? 뭐!”

혈천혈도가 눈을 부릅떴다.

검왕은 협박을 하고 있지 않다. 그는 지금 자신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혈영마공이 한순간에 부서질 것이라고 단언하는 중이다. 누군가에게.

이것 역시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

“유지! 유지자문인가?”

“모르지.”

검왕의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누군가’가 있다. 그들이 유지자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혈영마공을 한순간에 깨트릴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살고 싶으면 도주해라.

검왕은 무림 종말을 말하고 있다.

십마에게 도주하라고 말할 정도라면 다른 무인들은 어떻겠는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진다는 소리지 않은가.

누구든 버티면 죽는다.

검왕은 엄청난 대혈겁을 예고하고 있다.

검왕이 말했다.

“부탁이 있다. 누미…… 적벽검문까지 호송해 주면 안 되겠나.”

검왕이 멀리 떨어져 있는 비형은잠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누강이 아니고?”

유계판서가 반문했다.

“조카님까지 살리기에는……”

검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미가 최대 변수가 될 터, 누미는 꼭 살려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

“검왕도 안 된다는…… 아! 방금 안 된다고 했지. 도대체 어떤 놈이 혈영마공을 일수에 부순다는 거야! 흐흐흐! 그 싸움, 꼭 보고 싶은데. 킥킥!”

흑포사추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혈천혈도가 두말 않고, 더 이상 무엇을 묻지도 않고 일어섰다.

“도주하라는 말, 알아들었다. 혈천성, 지금부터 잠적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뜻하는 바 이루길 바란다. 필요하면 부르고.”

혈천혈도가 품에서 영패를 꺼내 검왕 발치에 던졌다.

툭!

한 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혈패(血牌)가 모닥불에 반짝였다.

“사, 상패!”

“혈천상패(血天上牌)!”

유계판서와 흑포사추가 동시에 경악성을 내질렀다.

혈천혈도가 던진 것은 혈천성의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혈천상패다.

혈천혈도가 뒤돌아서 가며 비형은잠에게 말했다.

“저놈이 부탁한 것…… 후후! 검왕도 못할 일을 네게 부탁한 거라면 너도 참 바빠지겠다. 재주껏 도망 다녀야겠어. 하하하!”

그의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어둠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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