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21화 (21/225)

# 21

第五章 패류(敗類) (1)

후두둑! 후둑!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굵은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방울…… 그러다가 곧 화살처럼 굵은 빗방울이 되어서 쏟아져 내렸다.

허나 아무도 빗방울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붉은 화탄이 터진 쪽을 쳐다봤다. 저 멀리 고갯길을…….

“후후! 옵니다.”

야차삼십락이 깨알만 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아니, 모두가 발견했다. 굵은 빗방울이 시야를 가리지만 점 하나가 나타났고, 아주 느리게 걸어온다.

그가 검왕이다.

보이는 것은 깨알만 한 점 하나뿐이지만, 그가 검왕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누미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해서 누강 곁으로 갔다.

패갑철마와 야차삼십락은 그녀의 움직임을 알아챘지만 제지를 하지는 않았다.

검왕이 나타난 마당에 누미나 누강에게 신경 쓸 여유는 없다.

“검왕이 강신천마를 꺾었다는데…… 사실일까?”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검왕은 십마를 장난감처럼 꺾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강신천마를 들먹인 것은 패갑철마의 무공이 강신천마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바윗덩어리 같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력!

강신천마와 패갑철마는 누가 더 단단한 쇳덩어리인지 비교 대상으로 거론된다.

두 사람도 서로를 의식한다.

단단함으로 십마의 위치에 오른 것 또한 서로를 자극한다.

언젠가는 한 번 크게 싸워야 할 상대.

비겁하게 잔수를 쓰지 말고 진정한 단단함만으로 우직하게 싸워야 할 상대

강신천마가 무너졌다.

소문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단 일 초에 꺾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패갑철마도 무너진다.

일 초는 과장된 말일 게고…… 이삼십 초까지 버틸 수 있겠지만, 결국 무너질 게 자명하다.

“저희가 먼저.”

야차삼십락 중에 한 명이 말했다.

패갑철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다가오는 점만 쳐다봤다.

야차삼십락에게는 무언의 승낙으로 비쳐지는 대목이다.

“뭔가 단단히 틀어졌다.”

“뭐가요?”

누강과 누미가 모기만 한 소리를 주고받았다.

“야차삼십락…… 저놈들, 패갑철마 밑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위라고도 할 수 없지만 밑을 자처하는 놈들이 아니야. 자신들이 전력을 다하면 그 누구라도 쉽게 웃지는 못한다고 자신하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

누미는 말하지 않고 눈빛만 반짝였다.

그녀가 보기에도 야차심십락은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다. 헌데 지금은 패갑철마에게 복종한다. 형식적인 굴종이 아니라 완벽한 굴종이다.

야차삼십락 같은 자가 자웅을 결해 보고픈 상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게 정상인가?

그들 위에 강력한 통제장치가 있다.

조직이다!

‘십마가 가담해 있고…… 보아하니 중요한 위치도 아닌 것 같아. 우리 같은 사람에게 달려들 정도라면. 야차삼십락이 꼬리를 내릴 정도여야 하고…… 뭐지?’

그녀가 생각을 하는 동안, 깨알만 한 점이 조그마한 주먹돌만 하게 커졌다.

‘숙조!’

누미는 검왕을 단번에 알아봤다.

몇십 년 동안 산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이제 막 튀어나온 듯한 몰골, 가슴까지 늘어진 산발머리…….

“너흰 이제 죽었어.”

누미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패갑철마가 들었다. 그래서 뒤돌아 누미를 봤다. 정말 그럴까 하는 듯 흰 이를 드러내면서.

누미는 얼른 검을 고쳐잡고 누강 앞을 가로막아 섰다.

패갑철마가 자신들을 인질로 잡고 검왕을 협박할 수 있다. 그러면 검왕은 틀림없이 굴복할 게다.

최소한 누미의 생각에는 그랬다.

패갑철마는 두 사람을 인질로 삼을 생각이 없는 듯 다가오는 검왕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쒜엑! 쒜에엑!

야차삼십락의 투망이 펼쳐졌다.

질주하는 마차를 단숨에 낚아채 버린 그물망이 검왕 한 사람을 잡겠다고 활짝 펼쳐졌다.

앞뒤좌우 위아래…… 빠져나갈 공간이 없다.

검왕이 질주하는 마차에 타고 있었다면 그물코를 건드리겠지만, 지금은 그저 한가운데 서 있을 뿐이다.

촤아아악!

야차삼십락은 검왕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는지 떨어지는 투망에 더욱 힘을 가했다.

투망이 빗방울 가리며 내리찍는다.

순간, 검왕이 허리춤에서 무엇인가를 잡아 뺐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잡앗!”

“도주한다! 놓치지 마!”

야차삼십락은 이런 반응에 익숙하다는 듯, 서둘지 않고 진형을 변형시켰다.

몇몇 사람이 뒤로 물러서면서 투망의 범위를 조정했다.

뒤에 처져 있던 사람도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왔다.

모두가 검왕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투망 범위를 재조정한다. 아주 익숙하게.

헌데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헉!”

“앗!”

야차삼십락 중 두 명이 헛바람을 내질렀다.

빠르다! 너무 빠르다! 인간이 이토록 빠를 수가 있었나?

퍽! 퍽!

둔탁한 소리가 울리면서 투망을 잡고 있던 두 명이 무너졌다.

서른 명이 펼쳐낸 거대한 투망은 한순간에 조각조각 났다.

그러나 야차삼십락은 당황하지 않았다. 싸우다 보면 이런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촤락! 촤라라락!

야차삼십락이 투망을 두 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휘돌렸다.

투망 끝에 매달린 납덩이가 요란한 소리를 흘리며 휘돈다. 서른 명이 일제히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천지사방에 난리가 난 것처럼 요란하다.

쒜엑! 팟! 파악!

검왕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투망이 일으킨 돌풍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손을 썼다.

투망이 퉁겨나간다.

퍽! 퍽!

투망을 휘두르던 야차삼십락이 썩은 짚단처럼 무너진다.

쓰러진 자들은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복부를 움켜쥔 자도 있고, 얼굴을 감싼 자도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죽었어!’

누구나 쉽게 생각된다.

검왕은 십마를 죽이지 않았다. 단지 꺾기만 했다.

마공관이 무너진 이래…… 검왕이 살인을 한다. 한 점 망설임 없이 깨끗한 손속으로.

퍼억! 퍽!

한 명이 또 퉁겨나갔다.

그는 옆구리를 연달아 두 번이나 찍혔다.

“누구냐!”

패갑철마가 검왕에게 물었다.

“…….”

검왕은 묵묵부답, 싸늘한 눈으로 패갑철마를 쳐다봤다.

패갑철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모습은 검왕이되 손속은 마인이구나.”

“…….”

“방금 전에 펼친 무공…… 움직이면 한 점 핏빛 기류만 보인다…… 맞나?”

“…….”

검왕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허나 패갑철마의 말은 아주 큰 범종소리가 되어서 여러 사람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움직이면 한 점 핏빛 기류만 보인다…… 혈영잔류(血影殘流)!

혈영신마(血影神魔)의 혈영마공(血影魔功)!

혈영신마는 전설에만 등장하는 초고수, 초마인이다.

태산(泰山)에서 무림 정예 일천 명을 상대로 싸워서 이겼다는 전설이 있다.

구대문파 장문인들이 혈영신마를 만날까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생전에 혈영신마가 어떻게 했든…… 그의 무공은 마공관에 소장된 것으로 추측된다.

검왕이 혈영잔류를 사용했다면…… 야차삼십락의 협공을 깨트린 빠름이 혈영잔류라면…… 검왕이 정말로 마공관의 마학들을 수련했다는 말인가!

스읏!

패갑철마가 허리춤에서 묵직한 대부(大斧)를 꺼내 들었다.

“후후후! 어쩌다가 검성의 제일기재가 마도의 길로 들어섰을까?”

“…….”

“좋아! 인정한다. 혈무를 봤을 때는 저런 건방진 놈! 했지만, 인정하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

“죽이겠나? 아니면 내 말을…….”

스읏!

검왕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뭉툭한 석도(石刀)가 보인다.

마공관에서 사용한 돌조각을 문지르고 문질러서 도 형태로 갈아낸 것 같다.

아직은 투박하다. 무엇을 벨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허나 검왕은 저 투박한 석도로 야차삽십락 중 열두 명을 저승으로 보냈다.

“후후! 죽이겠다는 뜻이군.”

패갑철마가 대부를 들고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쒜엑! 퍽! 쿵!

패갑철마가 너무도 간단하게 무너졌다.

십마 중 일인인데…… 세상을 조롱하며 살던 사람인데…… 강풍 앞에 선 촛불처럼 싱겁게 쓰러졌다.

푸왁!

패갑철마의 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피가 내를 이루어 흐른다. 길옆 도랑으로 흘러간다.

“괜찮습니까?”

검왕이 누강에게 말했다.

그는 쓰러진 패갑철마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엉거주춤 서 있는 야차삼십락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나? 아! 난 괜찮습니다.”

누강이 설마 자신에게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던지라 급히 몸을 추스르며 말했다.

검왕은 누미를 향해 석도를 겨눴다.

누미는 곧 반응했다. 자신에게 석도를 겨누는 것…… 많이 봤다.

그녀는 즉시 검을 들고 검왕 앞에 마주 섰다.

스읏!

검왕이 천천히, 느리게 찔러온다.

‘너무 쉬워!’

그녀는 즉시 검을 쳐내려고 했다. 철검으로 석도를 밀쳐낸 다음, 내쳐서 목을 치면 이긴다.

스읏! 스으으읏!

검이 기름 위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밀려온다.

‘웃!’

누미는 속으로 경악성을 내질렀다.

처음에는 아주 간단해 보였는데…… 석도가…… 밀리지 않는다. 철검으로 밀어내도 밀리지 않고 계속 다가온다. 어떤 힘을 가해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상상의 결과다.

그녀는 철검을 쳐내지 못하고 주춤 한 걸음 물러섰다.

스으읏!

석도, 석도, 석도…… 석도가 밀려온다.

아니, 아니, 아니다. 검왕…… 그가 걸어온다. 석도가 다가오는 게 아니라 검왕 자신이…… 태산을 압도하는 힘을 풍기면서 천천히 걸어온다.

‘부딪치면 죽는다!’

누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형편없는 공격, 반격하기 아주 쉬운 공격, 그냥 옆으로 쳐내기만 하면 되는데.

턱!

계속 밀리기만 하던 누미의 발끝에 쓰러진 말이 걸렸다.

이제 더 이상 밀릴 수가 없다. 밀려날 것도 없다. 이판사판, 결판을 내야 한다.

“이익!”

그녀는 이를 악물면서 철검을 들어 올렸다.

순간, 그녀를 향해 밀려오던 기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엄청나던 압박감이 한순간에 소멸되었다.

검왕이 말했다.

“일검직자다. 잘 부탁한다.”

말을 마친 검왕은 할 일이 없다는 듯 등을 돌려 왔던 길로 걸어갔다.

그는 야차삼십락을 보지 않았다. 누강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무엇을 부탁한다는 것이지 말하지도 않았다.

그가 걸어간다. 뒷모습만 보인 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