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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章 대타(代打) (5)
누미는 칠채환홍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
검왕에게 검초를 배우기는 했지만 초식명을 일일이 말해주지는 않았다.
검속에 따라서 검광이 달리 발산된다.
엄밀히 말하면 무채색 농담(濃淡)에 지나지 않지만, 멀리서 언뜻 보면 일곱 가지 색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누미는 이 검초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기는 까다롭고, 실전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는…… 초식 시연을 할 때나 적합한 검초라고 생각했다.
기교에 치우친 검초다.
헌데 커다란 바윗덩이는 이 검초를 알아본다. 그것도 매우 즐거워한다.
타타탕!
바윗덩이와 철강장검이 부딪쳤다.
육신 하완(下腕)과 쇠로 만든 검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그런데 마치 쇠와 쇠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명쾌하고 청아한 소리다.
“크하하하하! 아쉽구나! 이제 겨우 일성(一成)이라니!”
바윗덩이가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그 말에 누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검초를 배울 때, 검왕은 투박한 음성으로 ‘됐다’하는 말을 했다.
무척 못마땅한 어투였지만 검왕이라는 사람 자체가 무뚝뚝하니 신경 쓰이지는 않고.
됐다!
검초를 완성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겨우 일성의 성취란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단다.
이런 걸 숙조는 왜 됐다고 했을까!
‘치잇! 조금 더 지도해주지!’
검왕이 못내 원망스럽다.
무공 사사를 직접 받을 경우, 사부가 약간만 신경을 써주면 금방 삼, 사 정도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그 정도도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제자가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사부가 게을러서다.
무공을 수련한 기간이 매우 짧다고는 하지만…… 겨우 일성이라니!
누미는 바윗덩이의 팔뚝을 가격한 검이 위로 퉁겨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위험!’
그녀는 즉시 검초를 변형시켰다.
촤라라락!
시리디시린 검광이 햇볕에 반사된 연어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그녀의 검이 일순간에 십여 자루로 늘어난 듯이 보인다. 어느 검이 진검이고, 어느 검이 환상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좋다! 분광십검(分光十劍)!”
바윗덩이는 쇠기둥 같은 팔뚝을 휘저어 검광 열 가닥을 일시에 쓸어냈다.
까까까까깡!
충돌음이 연달아 일어났다.
누미는 이번에도 뒤로 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전개한 모든 검초가 퉁겨진다.
누미는 얼굴색이 하얗게 질린 채 바윗덩이를 쳐다봤다.
바윗덩이가 실실 웃으면서 공격해 오기에 망정이지…… 그가 질주하는 말들을 쳐죽일 때처럼 무지막지하게 공격해 왔다면 벌써 끝났을 것 같다.
‘너무 강해!’
쒝! 쒝! 쒝!
연달아 화살을 쏜다.
사실, 화살을 쏘는 것도 힘들다.
몸속에 바늘 수십 개가 꽂혀 있다. 살짝만 움직여도 온몸이 욱신거린다.
마군의 혈무기는 사람을 살아있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만든다.
달리던 말이 죽었다. 마차는 부서졌고, 누미는 패갑철마…… 십마와 겨루느라 정신없다.
촤락! 촤라라락!
투망들이 누강의 화살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침없이 덮쳐왔다.
‘틀렸군.’
쉽게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절감했다.
신법은커녕 보법조차 밟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방을 덮는 투망을 어떻게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저들 중에 한 명이라도 죽이는 것이다.
스읏!
덮쳐오는 투망을 무시한 채 화살을 겨눴다. 투망을 전개한 서른 명 중 오직 한 명만 노렸다.
‘지옥길에 너라도 동반해야 되지 않겠나.’
탕!
화살을 놓았다.
사실상 누강이 쏠 수 있는 마지막 화살이다.
“잠깐!”
누미가 급히 손을 들어 패갑철마를 제지했다.
“……?”
분광십검을 밀어내고 막 뛰쳐 들려던 바윗덩이가 조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쳐다봤다.
패갑철마가 무언 중에 말을 건넨다.
무슨 일이냐? 유언이라도 남기겠다는 것이냐?
누미가 급히 말했다.
“일 년만! 일 년만 시간을 줘요!”
“뭐라고?”
“일 년이면 당신을 이길 수 있어요.”
“크하하하! 그러니까 네 말은…… 일 년이면 내 목을 따러 올 테니까 일 년만 기다려 달라?”
“맞아요.”
“크하하하핫!”
패갑철마가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됐어!’
누미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하고픈 말은 일 년을 기다려 달라는 것이 아니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허점을 보여달라는 말이었다.
쉬익!
그녀가 쾌속하게 신형을 쏘아냈다. 패갑철마를 향해서가 아니라 뒤로…… 누강을 향해서.
촤라라라락!
검 끝에 투망이 걸린다. 누강을 향해 덮쳐들던 투망들이 거적데기 들춰지듯 허공에 던져진다.
“와욧!”
누미가 다른 투망을 향해 검광을 쏘아내며 말했다.
그녀가 투망을 걷어내는 시간은 길지 못하다. 아주 짧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간다. 지금 바로 누강이 움직여서 포위망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누미는 투망을 걷어내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누강을 쳐다봤다.
누강…… 움직이지 않는다.
급히 움직여도 모자랄 판인데…… 누워있는 자세 그대로 옅은 웃음만 흘린다.
‘혈…… 무기…….’
누미는 답을 잃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패갑철마만 없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누강이 몸 하나만 간수할 수 있어도 있는 힘껏 싸워보겠는데.
“후후후! 어린 게 잔머리만 가득하구나. 하하하!”
패갑철마는 서둘지 않았다.
이미 독 안에 든 쥐다. 실력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 건들기만 해도 잡을 수 있다.
패갑철마가 말했다.
“일 년을 원했나? 가라. 일 년을 주마.”
“네?”
누미가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단, 너만 가도록. 저자는 놓고 가.”
누미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그럴 수 없어요. 아량을 베풀려면 크게 베푸세요.”
“크하하하핫! 아량? 아량 같은 거 없다. 결정해라. 꺼질 거면 꺼지고 뒈질 거면 뒈지고.”
누미는 이를 악물고 검을 들어 올렸다.
자신이 싸우는 동안만이라도 야차삼십락을 묶어뒀으면 좋겠다.
자신의 승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누강이 공격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가 부질없는 소망인가?
‘가장 빨리 승부를 내야 돼!
스읏!
검을 어깨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크하하하! 일검직자(一劍直刺)인가? 아서라. 그걸 쓰기에는 내력이 터무니없어.”
패갑철마가 한눈에 검초를 알아봤다.
일검직자? 그녀는 검왕이 최후절초라고 알려준 마지막 검초의 이름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일검직자는 엄밀히 말해서 초식이 아니다.
일검직자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압도하는 내력이 필요하다. 압도까지는 하지 못해도 최소한 비등한 정도라도 되어야 펼칠 수 있다.
상대보다 약한 자가 일검직자를 펼친다면…… 장난하나?
쒜에에엑!
누미는 검초를 쳐냈다. 검신합일(劍身合一), 검과 몸이 하나가 되어서 패갑철마를 찔러갔다.
- 검으로 찌르지 마라. 몸이 앞서 나가서도 안 된다. 무엇으로 찌르는지 모르는 상태가 좋다. 최소한…… 그 상태는 되어야 이것을 쓸 수 있다.
이것, 일검직자!
쒜에에에에엑!
파공음이 일어났다. 패갑철마와 그녀의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검이 패갑철마를 찌른다.
“쯧! 어린 것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니까.”
패갑철마가 웃으면서 손끝을 퉁겼다. 그러자,
타앙!
손가락이 정확하게 검신에 닿았다. 검신을 퉁겨냈다. 누미의 전신 내력이 집중된 검을…… 그리고 검신이 부러져 나갔다. 너무 진기가 밀밀해서 부러진다.
“컥!”
누미는 내부가 진탕되는 충격을 받고 비칠비칠 물러섰다.
역시 안 된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일검직자를 사용할 경우, 이런 결과가 벌어진다. 어린아이가 막무가내로 목검을 휘두르는 것보다도 못한 결과가 일어난다.
더군다나 그녀는 검왕이 일러준 상태가 되지 못했다.
몸이 앞서 나갔다. 그 후, 검으로 찔렀다. 진정한 검신합일이 되지 않았다.
“잡앗!”
패갑철마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야차삼십락, 그들이 누강을 향해 걸었다. 그때,
펑!
먼 하늘…… 들판을 가로 지르고, 조그마한 야산을 서너 개쯤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폭음이 울렸다. 붉은 연막이 피어났다.
“검성!”
야차삼십락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검성이 아니다. 검왕이야.”
“혈무(血霧)라…….”
패갑철마가 광안(狂眼)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먼 하늘에서 피어나는 붉은 연막은 마인들에게는 아주 잘 알려진 표식이다.
검왕이 건네는 일종의 사망선고다.
검왕은 무림을 종횡할 때 특정 마인을 처단하기에 앞서서 항상 저 연막을 터트려 자신을 알렸다.
알고나 당해라. 검왕, 내가 왔다.
붉은 연막이 피어나면 정확히 반 시진 뒤에 시신 한 구가 널린다.
그래서 붉은 연막을 혈무, 핏빛 안개라고 부른다. 반드시 피를 부른다고 해서.
검왕이 혈무를 터트렸다.
그가 마공관을 깨고 나온 후, 직접 죽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십마들이 패했다고는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다른 마인들도 마찬가지, 죽지는 않았다.
당시 마공관에 있던 마인들은 검왕이 살수를 썼다고 한다.
마공관에는 복면을 한 자들이 있었는데, 검왕은 그들 중 몇 명을 순식간에 눕혔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조차도 입으로만 전해질 뿐이다. 시신을 봤다는 사람이 없다. 현재, 누강과 누미가 공격을 받고 있는데도 그는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는다.
그리고 느닷없이 혈무가 터졌다.
“후후후! 검왕, 이 자식…… 감히 내게 혈무를? 크하하하핫! 날 죽이겠다는 거냐! 크하하핫!”
패갑철마가 붉은 연막을 향해 웃어젖혔다.
형평성에서 어긋난다.
검왕은 다른 십마를 죽이지 않았다. 부러트리기만 했다.
그런 검왕이 굳이 패갑철마에게 혈무를 던진 것은 왜일까? 왜 패갑철마만은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형평성에서 어긋나.’
비형은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왕이 흑포사추를 죽이지 않고 무너트리는 장면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더욱 의아하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검왕의 행보가 시작되었다는 짐작뿐이다.
패갑철마를 죽임으로써 무림 행보가 시작된다.
검왕이 무엇을 획책하는지 모르지만, 그 일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
‘그래! 패갑철마, 저 인간!’
비형은잠 머릿속에 옛날 사건 하나가 후딱 스쳐 갔다.
패갑철마…… 검성 성주와 맞닥트려서 반쯤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했다. 꼼짝없이 죽을 뻔했는데,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도주했다고 한다.
물론 소문이다.
허나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검성 성주라면 이를 갈 것이다. 조원검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것이다.
헌데 정말로 조원검급이 나타났다.
패갑철마는 누강을 노리고 나타난 게 아니다. 마공관의 마급 따위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누미를 노리고 나타났다.
비형은잠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이건 검왕이 파놓은 함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