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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章 대타(代打) (2)
“폐인이나 다름없는 놈이!”
“그놈이 아냐. 계집이야.”
“계집은 건들기만 해도 나가떨어질 것 같았는데…… 그 계집이 그렇게 강했나?”
“하여간 적벽검문 애새끼들은 사내나 계집이나 한결같이 독종들이라니까.”
화남십랑이 야밤에 암습을 가하고도 튕겨났다.
열 명 중에 한 명은 즉사했고, 두 명은 심각한 중상을 입어서 거동조차 불가능하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누강과 누미를 잡는 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 일은 그야말로 손을 들어서 코만 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 소일거리였다.
저들을 잡고 난 다음에 어떻게 빠져나가나.
그들은 주변에 모여든 같은 마인들을 걱정했다.
헌데…… 바닥부터 삐걱거린다. 두 연놈을 잡는 일부터가 쉽지 않게 되었다.
화남십랑이 쫓겨났으니…… 자신들의 무공을 견주어봐서 화남십랑을 상대하기 버겁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예 공격할 생각을 놓아버렸다.
그렇다고 마경에 대한 미련이 가신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객잔 주위를 서성거린다. 주위를 맴돌면서 혹여 어떤 부스러기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고대한다. 누강과 누미는 그들을 일약 절정고수로 올려줄 발판이 될지도 모른다.
“쉽지 않게 됐구나.”
“제깟 놈들이 어쩌려고요. 숙조가 지켜보고 있잖아요.”
‘적벽검문으로 가자.’
누강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눌러 삼켰다.
지금 몹시 피곤하다. 무엇보다도 굶주린 들개들이 슬금슬금 모여들고 있는 마당에 일초반식조차 펼칠 수 없는 몸으로 무림을 떠도는 것은 무리다.
적벽검문으로 가서 쉬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는데…… 막연히 이대로 버텨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검왕이 누미를 직접 지도했다.
이런 일은 적벽검문의 가규(家規)에 위배된다.
자식은 아비에게서.
모든 일은 위에서 아래로 순차적으로 흘러야 한다. 그래야 무리가 없다.
무공전수는 질서가 더욱 뚜렷하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전수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수한다.
예외는 없다. 아버지의 능력이 아들만 못하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직접 손자에게 전수하는 법은 없다.
그런 일은 자칫 위계질서를 해친다.
검왕이 가규를 모를 리 있는가. 알면서도 직접 누미를 지도했다. 그것도 타문의 무학인 조원검공을 전수했다.
조원검공은 당대 제일의 절학이나…… 적벽검문 문도가 배울 무공은 아니다. 조원검공은 꺾어야 하는 무공이지 수련하는 무공이 절대 아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이것저것 사정을 따질 형편이 아니라는 뜻이다.
누미가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
검왕의 말뜻은 명확하다. 검왕이 싸워야 하는데, 자신이 싸우기 싫으니 누미가 싸우라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그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검왕이 이토록 염려하는 일이라면 대단히 위험한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차를 준비해라.”
“마차요? 그 정도로 심하세요?”
“활도 준비해라.”
“……!”
누미가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적벽검문 문도는 검 이외에 다른 병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헌데 활이라니.
‘하기는 숙조도 돌조각을 사용했어. 돌조각? 돌창이지, 돌창. 후훗!’
누미는 검왕을 생각하자 괜히 마음이 들떴다.
검왕은 사내가 아니다. 숙조일 뿐이다. 본가의 어른으로 대접해야 한다. 헌데도 숙조만 생각하면 마음이 들뜬다.
숙조는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러나 봤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눈동자, 까만 눈동자. 너무도 맑은 눈동자.
또 봤다. 오똑한 콧날.
말을 할 때마다 드러나는 하얀 이.
가만…… 본 것이 그것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을 모르고 있잖아?
그렇다. 숙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도 모른다.
다만 숙조의 모든 것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약관을 겨우 넘긴 나이에 검왕이라는 칭호를 받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적벽검문은 검귀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검왕은 검귀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듣기로는 적벽검문의 검공을 모두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독창적인 검학을 추구하는 중이라고 한다. 겨우, 겨우 약관을 넘긴 나이에.
중원 무림 여인들 중에서 검왕을 흠모하지 않는 여인은 없다.
미추를 떠나서, 성격을 떠나서…… 일단 무림에서 거둔 성공만으로도 검왕을 흠모한다.
누미도 당연히 흠모한다. 존경한다.
헌데 그 흠모의 대상이 자신 곁에 있고, 늘 대화할 수 있고, 편안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성격이 매우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좋다.
누미는 검왕을 생각하느라고 누강의 다음 말을 흘려들었다.
“연노(連弩)도 준비해라.”
“네. 네? 연노요?”
“쯧! 정신을 어디다 두고…… 준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준비할 수 있으면 해라.”
“연노까지요?”
누강이 손을 들어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붕대로 칭칭 감겨진 배.
활과 연노는 누강 자신이 사용할 것이다.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이니 그것이라도 써야겠다.
“우리…… 전쟁이라도 치르는 거예요?”
“밖을 봐라.”
누미가 일어서서 창문을 열고 밖을 쳐다봤다.
“사람이 많냐?”
“네.”
“몇 명이나 되지?”
“굉장히 많아요. 그럼……?”
누미가 고개를 홱 돌려 누강을 쳐다봤다.
누강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곳은 촌구석이다. 사람이 많아도 저렇게 많을 수 없고…… 사람이 많다고 해도 거의 대부분이 무인일 수는 없는 거지. 저들 중 절반은 기회를 엿보는 여우일 게고, 나머지 절반은 무식하게 달려드는 늑대일 게다.”
“왜요?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요?”
“나도 이유 좀 알았으면 좋겠다.”
누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미는 강호 경험이 풍부하지 못하다. 일천하다. 하지만 신중한 성격이다.
저들 전부가 자신들 두 사람을 노린다.
아마도 마공관이 파괴된 일, 혹은 검왕과 관계된 일일 게다.
‘아버님 곁을 떠나서는 안 돼.’
그녀는 누강에게 받은 지시를 점소이에게 부탁했다.
“가급적이면 빨리 준비해줘요. 돈은 넉넉히 줄 테니까.”
“연노는 구하기 힘들겠는뎁쇼.”
“연노가 없으면 아무거나 좋아요. 병자가 무기로 쓸 수 있는 것이면 아무것이나 주워오세요. 단검도 좋고 철편(鐵片)도 괜찮아요. 쓸 만하겠다 싶으면 모두 가져오세요.”
“말도 비루먹은 말 밖에는…… 아시다시피 이곳은 촌구석인지라.”
“괜찮아요. 준비해주세요.”
누미는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강은 마차를 타는 성격이 아니다. 아무리 아파도 결코 누워있지 않는다.
- 동물은 말이다. 속이 썩어 문드러져도 누워있지 않지.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하게 풀을 뜯어 먹는단다. 하지만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은 알아. 그래서 죽을 자리를 찾아가지. 가족들로부터 떨어져서 태연히 걸어가는 거야. 죽을 자리…… 후후! 가족들이 보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 도착하면 또 풀을 뜯어 먹어. 태연히. 그러다가 풀썩 꼬꾸라지는데…… 쓰러지면 눈만 몇 번 끔뻑이다가 끝이란다.
- 왜 그렇게 해요?
- 아픔을 드러내는 것? 아프다고 말하는 것? 동물들의 세계에서 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곧 포식해 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니까. 내가 약해서 잘 달리지 못하니까, 저항하지 못하니까 날 노리면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소리니까.
누강은 무림을 동물들의 세계와 비유하곤 했다.
약함을 드러내면 공격당한다.
무림이 아닌 세상에서는 약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인간적인 도리가 있다.
물론 무림에도 그런 도리는 있다.
허나 친구보다 적이 더 많은 곳이 무림…… 약한 자가 공격당한다는 것은 철칙이다.
그런 누강이 누워있다. 아프다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 자존심인 서 있지도 못할 만큼 아픈 게다.
무인이 아픔을 드러냈다. 허면 공격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이치…… 꼭 무슨 일이 없다고 해도…… 누강이 검성 당주로 있으면서 원한 맺은 사람이 없겠나.
누구든 공격해 온다.
마차는 누워서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이를테면 이동하는 성벽이다. 성벽 안에 숨어서 활로 혹은 연노로 저항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적벽검문 문도가 이런 생각까지 할 때는…… 글쎄? 최후가 아닐까?
누미는 총총걸음으로 객잔을 나서는 점소이를 보면서 눈빛을 반짝였다.
‘누구든 오기만 해!’
“빌어먹을!”
꽝!
힘껏 후려친 주먹에 아름드리 고목나무가 거세게 흔들렸다.
“상처는 어때?”
두 사람의 상처를 살펴보던 화남팔랑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한 명이 즉사, 두 명은 중상…… 아니, 세 명이 사망.
계집에게 당한 두 명은 즉사를 하지 않았다뿐이지 상처가 너무 깊어서 살아나기는 틀렸다.
두 명은 결국 죽는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그게 뭐였지? 광풍철겁 사이로 파고든 검 말이야.”
“…….”
이번에도 대답이 없다.
너무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계집의 검이 너무 유유해서 움직임을 읽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검공을 사용하는지 알아볼 틈도 없이 당했다.
“분명한 건 적벽검문의 검이 아니었어.”
화남이랑이 말했다.
“맞아. 적벽검문의 검 중에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유유한 검은 없어.”
화남삼랑이 말을 받았다. 그때,
“키키키! 키키키키키!”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음충맞은 웃음소리만 숲 속 가득히 울렸다.
“누구냐!”
“어떤 쥐새끼야!”
오랑과 구랑이 즉각 퉁기듯 일어나며 사방을 쏘아봤다.
“키키키! 유유한 검이라…… 멍청이들아, 혹시 이런 거 아니냐?”
말이 끝나는 순간, 숲 속에서 검은 광채 한 가닥이 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검은 장포로 뒤집어쓴 괴인이 뒤따라 나왔다.
“흐, 흑포사추(黑袍死錘)!”
“흑포…….”
괴인을 제일 먼저 본 오랑과 구랑이 경악성을 토해냈지만 이미 늦었다.
퍼억! 퍽!
숲에서 쏟아진 검은 광채가 오랑과 구랑의 가슴을 쓸어버렸다.
오랑과 구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발길에 챈 돌멩이처럼 나가떨어졌다.
퍽! 쿵!
두 사람의 육신이 떨어지면서 육중한 소리를 울렸다. 일견하기에도 즉사다.
“흐, 흑포사추님 고정을…….”
화남일랑은 동료 중에 두 명이 즉사했는데도 공격할 생각은 하지 않고 급히 오체투지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키키키! 이놈들아, 이런 거 아니냐니까!”
쒜엑! 퍽! 퍽!
다시 검은 장포 속에서 검은 광채가 번뜩였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두 사람을 연타했다.
“크윽!”
화남삼랑이 비명을 쏟아내며 무너졌다.
그의 가슴은 길게 베어져 있었고, 한 일(一) 자가 새겨진 가슴은 붉은 피를 와락 쏟아냈다.
그래도 그는 비명이라도 질렀다. 화남칠랑은 먼저 당한 두 사람처럼 비명 한 마디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화남칠랑의 가슴도 한 일 자가 그어져 있다.
붉은 피가 샘솟듯이 주르륵 흘러내려 검은 땅을 물들인다. 그리고 핏줄기가 되어 흐른다.
“비, 비슷합니다.”
화남일랑이 급히 대답했다.
흑포 괴인이 말했다.
“흉내만 내본 건데, 정말 비슷하냐?”
“단연코 비슷합니다.”
“키킥! 킥킥킥! 조원검법이군.”
“조…….”
화남일랑은 깜짝 놀라서 말을 따라 하려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흑포괴인이 순식간에 네 명을 저승으로 인도했다. 이제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은 세 명밖에 없다. 그나마라도 목숨을 구하려면 조용히…… 선처를 바라야 한다.
십마!
평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십마라도 해도 광풍철겁에 휘말리면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과의 거리가 이토록 멀었나.
“킥킥! 킥킥킥! 계집이 조원검법을 사용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킥킥킥!”
흑포괴인은 세 사람의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키득키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