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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章 악사천리(惡事千裏) [나쁜 소문이 금세 퍼진다] (5)
“상처는 어떤가?”
“멀쩡합니다. 당장이라도 스무 놈쯤 벨 수 있습니다.”
“흰소리치는 걸 보니까 살았군.”
“제가 언제 죽은 적이나 있었습니까? 하하! 크윽!”
음사가 복부를 움켜쥐고 인상을 찡그렸다.
단지 입을 벌려서 크게 웃었을 뿐인데, 창자가 튀어나오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백살마창! 그놈의 새끼!”
음사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태황도마에게 베였다. 백살마창에게 기습을 당했다. 비겁하게도 등 뒤에서 창을 찔렀다.
그 순간, 그는 죽었다.
몸을 땅에 뉘면서 고통에 일그러진 누강의 모습을 보는 게 이승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살아서 웃을 수 있는 것…… 기적이다.
한 가지, 웃을 수 없는 점이 있다.
“그놈들…… 처리할 수는 없으셨습니까?”
음사가 웃음을 거두고 물었다.
“…….”
검왕은 대답하지 않는다.
검왕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겠지.
그러나 음사의 머릿속에는 속절없이 쓰러져가는 수하들이 떠오른다. 커다란 구덩이에 던져져서 살도 뼈도 추스를 수 없이 폭사되어 버린 수하들.
검왕이라면…… 마군을 비롯해서 그 일당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
검왕은 왜 늦게 나왔나.
수하들이 죽기 전에 마군 일당을 쳐주었으면 오죽 좋았나.
음사가 툴툴 웃었다.
“압니다. 이미 은거하신 분이시니…… 하지만 너무 억울해서…… 그놈들 얼굴이 눈에 밟혀서.”
“수하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괴롭나?”
“당연히 괴롭죠. 그놈들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어찌 괴롭지 않겠습니까.”
“조카님의 기억 속에 네 얼굴이 새겨졌을 수도 있었다.”
“……!”
“죽지 마라. 죽는다는 건…… 누군가를 슬프게 하는 일이니까.”
음사는 그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검왕은 죽음의 아픔을 안다. 죽음의 아픔 때문에 은거까지 하신 분이 아니던가. 검을 분지르고, 영원히 무림을 떠난다고 선포하게 만든 죽음.
깃발은 바람이 불어야 휘날린다.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때와 상황이 맞아야 한다.
바람도 없는데 깃발이 휘날릴 수 없듯이…… 검왕이 움직일 시점에 자신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시기가 그 전에 도래했다면 수하들도 살았을 것이고, 시기가 조금만 늦었다면 자신 역시 커다란 구덩이에서 수하들과 함께 폭사되었을 게다.
마침 그때 검왕이 움직였고,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검왕이 자신을 구해준 것은 단지 그 이유뿐이다.
“검은…… 다시 잡으신 겁니까?”
“아니.”
‘거짓말!’
음사는 소리를 흘리지 않고 피식 웃었다.
검이란 놈은…… 요물이다. 검을 쥐고 수련을 할 때까지, 검은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놈은 착하고, 얌전하며, 기운을 북돋워 주기까지 한다.
검으로 사람을 찌르는 순간, 베는 순간…… 피가 솟구치는 순간…… 사람이 목숨을 잃는 순간…… 검은 요악한 웃음을 흘리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 너, 이제 걸려들었어. 넌 이제 영원히 날 놓지 못해.
은거? 누가 마음대로 은거하나.
검을 놓는다고? 누구 마음대로?
검왕은 단지 이 년 동안 쉬었을 뿐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겨우 이 년, 겨우 이 년이다.
피눈물을 쏟으면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검을 분질렀지만 겨우 이 년을 쉬었다.
무림은 살짝 발끝만 담가도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한다.
검왕은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돌아왔다. 이미 검을 쥐었다.
음사가 정신을 수습하며 말했다.
“귀선부에 대해서 아시죠?”
“…….”
“이령이라는 여자였습니다. 마공관에 찾아온 손님이. 이미 만나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
검왕이 몸을 일으켰다.
‘이령에 대해서…… 듣고 싶지 않다는……?’
음사는 검왕의 반응에 눈빛을 반짝였다.
검왕은 웬만하면 이야기 도중에 등을 돌리지 않는다. 누가 말하든 끝까지 들어준다.
검왕이 말허리를 끊고 일어서는 것은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령을 잘 알아!’
검왕이 말했다.
“운기 도중에 백회(百會)에서 찌르는 동안 고통이 느껴지거든, 강하게 밀어붙여 봐. 지금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 그게 무슨……? 조금만 자세히…….”
음사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자 다시 복부가 찢어질 듯 아파왔다. 허나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검왕의 말은…… 무인이라면 꿈에서까지 간절히 원하는 기연을 말한다.
백회혈(百會穴)을 밀어붙이라는 말은 천지관통(天地貫通)을 의미한다. 운기를 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대주천(大周天)이 일어나는 환상의 세계에 들어섬을 뜻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다!
이게 어찌 된 건가? 자신은 아무런 느낌도 갖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그러나 검왕은 매정하게도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이미 방문을 넘어서고 있었다.
* * *
누강과 누미를 공격하면 검왕이 나타난다.
무림에서 절정고수라는 말을 듣는 사람치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림은 이 사실을 모른다.
무인들 대부분은 검왕과 검을 맞대서 이길 자신도 없다. 허니 검왕을 공격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일부…… 지극히 일부가 이 사실을 안다.
그들은 검왕을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든 싸울 수 있는 상대라고 여긴다.
당연히 검왕을 연구한다.
처음에는 검왕의 무공을 보지만, 나중에는 성품부터 기호음식까지 살피게 된다.
검왕의 약점은 무엇인가?
인간에게 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리 없다.
당사자인 누강도 이런 사실을 안다.
마군이 자신을 죽이지 않고 숨을 붙여놓은 것도 검왕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돌아다니지 마라.”
“약은 지어와야죠.”
“…….”
누강은 눈을 감았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공격해 온다면 당하는 수밖에 없다.
누미는 절정고수를 상대하지 못한다. 자신은 삼류무인조차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중상이다.
누미가 돌아다니든 자신 곁에 붙어있든 달라질 게 없다.
“금방 다녀올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휴우!”
누강은 밝게 웃으면서 나가는 누미를 보면서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누미는 객잔(客棧)을 나서자마자 잰걸음으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잰걸음도 부족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신법을 전개하고 싶다.
마을을 벗어나 논을 가로질렀다.
쉬익! 쉬익! 쉬익!
잰걸음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두 발은 벌써 신법을 즈려밟고 있다.
몸이 종이처럼 가벼워지면서 좁은 논둑길을 치달린다.
‘숙조…… 숙조님!’
그녀의 마음은 벌써 검왕을 그리워한다. 검왕에게 달려간다. 몸이 달려가고 있지만…… 마음은 벌써 검왕에게 도달해 있다. 검왕과 마주 서 있다.
‘오늘은 기필코 머리를 잘라드릴 거야!’
그녀가 검왕을 생각하는 사이, 두 발은 드디어 주위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쉬이이익!
그녀는 거침없이 신법을 전개했다. 산속으로 빨려들 듯이 뛰쳐들어갔다.
약속된 장소!
검왕이 보인다. 숙조가 벌써 와있다.
‘숙조!’
누미는 활짝 웃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그려졌다. 순간,
쒜엑!
검왕이 사라졌다 싶은 순간, 귓가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위험!’
누미는 본능적으로 공격을 알아챘다. 굉장히 위험한 공격!
산사태가 일어나면 흙과 돌이 무너져 내린다. 거침없이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산사태에 살의(殺意)가 있는가?
살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흙과 돌에 무슨 생각이 있겠나. 허나 무너져 내리는 흙더미 속에 휘말리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녀에게 몰아치는 공격이 그런 종류다.
스으읏!
그녀는 달리는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신형을 앞으로 쭉 뽑아내어 공격을 지나치려고 했다. 헌데!
턱!
갑자기 배에 빨랫줄이 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빨랫줄이 늘어져 있는 곳으로 힘껏 달려들었을 때의 느낌…… 무엇인가가 배에 걸리고…… 타격을 준다!
“크윽!”
그녀는 신음을 쏟아내며 뒤뚱뒤뚱 물러섰다.
“허보(虛步)! 허보조차 잊었군.”
퉁명스런 말이 귓가를 울렸다.
이 목소리…… 이 음성…… 정말 듣기 싫다. 인간의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담겨있지 않다. 검왕은 다 좋은데, 이 음성만 어떻게 좀 안 되나?
“허보! 알아요!”
“각보(却步)!”
쒜에엑! 꽈앙!
누미는 검왕이 일러준 대로 각보를 밟았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에서 불이 번쩍 튄다.
“악!”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말한다고 듣는 멍청이라니.”
“이……!”
누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손을 확 내렸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검왕을 노려보면서.
사람을 놀려도 유만분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검왕의 춤사위를 지켜봤다.
촤아아악! 촤아악!
검왕이 춤을 춘다. 소맷자락을 너울거리면서, 파도가 몰아치듯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누미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검왕을 따라서 춤을 추고 싶다. 저 정도의 춤사위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
그녀는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스읏! 스읏!
검왕은 그녀가 따라서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춤에 흠뻑 빠져서 춤을 춘다.
누미는 손을 들어 올렸다. 발도 움직였다. 검왕이 하는 것처럼 옷자락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우러나도록 크게 힘을 썼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촤악! 촤라락! 스읏! 스으읏!
검왕이 춤을 추고, 그녀가 따라서 춘다.
“아버님께는 왜 비밀로 해야 되는 데요?”
“본가의 무학이 아니니까.”
“본…… 가의 무학이 아니라고요? 이게요? 이게 적벽검문의 무공이 아니에요?”
“후후! 조카님이 아시면 크게 화내실 거야.”
“그럼 어느 파의 무학이에요?”
“조원검급(照元劍級).”
텅!
조원검급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누미는 입을 쩍 벌렸다.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이게…… 이게 그…….”
말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마음속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이게 그…… 내가 알고 있는 그것…… 그 조원검급을 말하는 거예요? 검성 성주의 무학, 검의 최고봉이라는 조원검급의 조원검법이란 말예요?’
검왕이 그녀의 물음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조원검급이야.”
“마, 맙소사!”
누미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무 놀라서…… 정말로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중원 제일의 검학, 조원검공!
검성 성주의 검공인…… 조원검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