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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章 악사천리(惡事千裏) [나쁜 소문이 금세 퍼진다] (4)
꽝!
“마공관이 깨졌다고? 난 그 말을 왜 지금에야 듣는 거야!”
혈천혈도(血天血刀) 진구량(辰苟涼)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일갈을 내질렀다.
“일찍 파악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핏빛 혈의(血衣)를 입은 무인이 고개를 숙였다.
혈천혈도가 와락 구겨진 서신을 허공에 흔들며 말했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봐!”
“이 년 전에 누강이 마공관주로 부임했는데…… 그때 검왕이 마공관에 잠입한 것 같습니다.”
“알아! 여기 적혀 있잖아! 내가 궁금한 것은 검왕이…… 검왕이 왜 그랬냐는 거다! 그놈이 뭐가 부족해서?”
혈천혈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리쳤다.
“그것은 속하도…… 어쨌든 그놈이 마공관주의 비호 하에 마공관에서 이 년 동안 파해법을 연구했고, 마고를 폭파시켰다. 이것이 검성의 주장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같은 소리를 반복하게 만드네. 그러니까 네 대가리로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안 됩니다.”
“말이 안 되는 말을 왜 자꾸 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흐흐흐! 흐흐흐흐흐!”
갑자기 혈천혈도가 음충맞게 웃었다.
검왕이 마서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그놈이 늘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죽는 날까지 적벽검문의 무공을 절반만이라도 완성했으면 좋겠다고.
적벽검문 검공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 놈이 무엇 때문에 마서에 관심을 가지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이 적벽검문 검공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놈인데…… 그런 놈이 왜?
“검성 이놈들…… 흐흐흐! 뭔 짓을 하고 있기는 한데…….”
진구량의 눈에서 혈광이 솟구쳤다.
그는 구겨진 서신을 다시 폈다.
서신에는 마공관이 어떻게 부서졌으며,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상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강신천마, 십조잔괴, 천살마노…… 이놈들이 본좌도 지금에야 알게 된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
“누군가에게 언질을 들은 듯합니다.”
“이 새대가리야, 그런 건 나도 생각해!”
“죄송합니다.”
“다른 놈들도 있었다며?”
“스무 명 남짓…… 마공관에서 흘린 국물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기웃거린 모양인데…….”
“야!”
“네?”
“너 정말 새대가리지?”
“…….”
“방금 전에 말했지. 본좌도 이 사실을 지금에야 알았다고.”
“네. 들었습니다.”
“그 새끼들은? 그 새끼들은 언제 누구에게 언질을 들었기에 본좌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쪼르르 달려간 거야?”
“음! 거기까지는…….”
“그걸 조사해야 될 것 아냐!”
“즉시 조사하겠습니다.”
“일단 그놈들 명단부터 작성해. 그 후,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잡아들여. 그다음은 알지?”
“넷!”
혈의를 입은 무인이 허리를 팍! 숙이며 대답했다.
수하들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 혈천혈도는 침중한 안색으로 서신을 노려봤다.
“무슨 일이냐?”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방금 전…… 핏빛 혈의를 입은 무인에게 말할 때와는 사뭇 달라진, 얼음처럼 차가운 음성이다.
그는 흥분하지 않았다. 흥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 같다.
“검성이 칼을 뽑아든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감정 없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목표는?”
“저희 혈천성(血天城)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평생 동요가 없을 것 같던 혈천혈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혈천성은 검성의 최대 상극이다.
정도 무림에 검성이 있다면 마도 무림에는 혈천성이 있다. 정도 무림이 마인에 대한 전권을 검성에 위임했다면, 마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혈천성에 맡겼다.
검성과 혈천성은 백여 년이나 싸워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를 말살하기 위해 노력한다.
헌데…… 이런 혈천성이 목표가 아니다?
혈천혈도도 그렇게 생각한다.
마공관을 파괴하는 일은…… 정녕 상상 밖이다.
혈천성은 지난 백여 년간 마고를 노려왔다. 마경이 밀집된 보고를 노리지 않으면 무엇을 노리겠나. 허나 털끝 하나 건들지 못했다. 십리사로를 들어서지 못했다. 마공관에 설치된 기관진식을 파해하지 못했다.
철옹성 같던 마공관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
검왕이 이 년간 노력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미친 소리!
검왕이 아니라 검왕 할애비가 십 년을 연구해도 뚫리지 않을 기관진식이다.
검왕이 무슨 짓을 했다는 게 중요하지 않다. 마고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천하무림에게 마고의 비중은 어느 정도나 될까?
모르긴 해도…… 이런 것을 딱 부러지게 단정 지어서 말할 방법은 없지만…… 천하무림인에게 마고는 검성이나 혈천성만큼이나 중요한 존재로 여겨질 게다.
혈천성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마고를 파괴한다? 말도 안 된다.
혈천혈도의 미간에 새겨진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어둠 속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혈광도(血狂刀)가 이번 일에 개입된 자들을 잡아오겠지만, 그들에게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안다. 검성이 개입했다. 이것밖에 주워들을 게 없겠지. 그래서…….”
“생각을 거두시지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는 혈천혈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말했다.
“거둬라?”
“삼마를 치실 생각이시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뭔가 알겠지.”
“그자들 역시 아무것도 모를 겁니다.”
“그놈들은 마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놈들이다. 십마라는 위치도 있고…… 모를 리 있나.”
“모릅니다.”
어둠 속 음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삼마와 검왕의 싸움을 살펴보면…… 그 싸움의 요체는 검왕이 강하다는 겁니다.”
“터무니없이 강하지.”
“그게 요체입니다. 강하긴 한데 검왕의 무공이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그리고 검왕은 마고를 폭파하고 마경을 탈취했다. 다시 말해서 공표만 하지 않았을 뿐, 검왕이 마고의 마공을 수련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혈천혈도는 침묵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삼마가 ‘마고 폭파’를 어떻게 알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검성의 입김이 작용했을 게 뻔하니 알아볼 필요도 없다.
자의든 타의든 삼마는 마공관에 발을 들였다.
헌데 그들을 기다린 것은 마고의 마경이 아니라 검왕의 낯선 무공이다.
삼마와 함께 마공관을 밟은 마인 이십여 명은 그 싸움의 증인이다.
그들은 삼마가 검왕에게 나가떨어진 사실을 자신들 입으로 자세하게 전파하고 있다.
검왕이 터무니없이 강해졌다.
마고의 무공을 수련하지 않고는 그렇게 강해질 수 없다.
이 두 가지가 그들이 전파하는 소문의 핵심이다.
혈천혈도가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주시(注視)입니다.”
“지켜보자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검성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전에 움직인다는 것은 장님이 도산검림(刀山劍林) 속을 뛰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너무 싱거운데…….”
혈천혈도는 삼마를 치고 싶다. 그들을 치면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둠이 말했다.
“서신에 빠져있는 이름이 있습니다.”
“무슨…… 누구냐?”
“누강의 복심, 음사!”
“아!”
혈천혈도가 부지불식간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둠의 한 마디로 흐릿했던 안개가 싹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두들…… 아무도 한 사람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혈광도는 물론이고 세상에 떠도는 모든 말에 귀 기울여 봐도 음사에 대한 말은 없다.
마공관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세 사람, 검왕과 마공관주 누강과 누강의 제자인 누미다.
음사는 다른 무인들과 함께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무인들과 함께 큰 구덩이에 묻혔고, 한 줌 혈수가 되어 날아갔다.
이것은…… 아주 잘못되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무도 음사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검왕에 대해서 모른다는 소리다.
검왕의 조문(罩門)은 사람이다.
그가 아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검왕을 절반은 제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검성은 누강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누강을 실전에 투입하면 검왕에게 해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검성 성문 안에서만 일을 시켰다.
적벽검문 무인들도 조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검문 안에만 머문다.
검왕이 마인들을 척결하고 돌아다닐 때, 검문은 단단하게 잠긴 채 열리지 않았다.
이 사실은 모든 사람이 안다.
검성이 누강과 누미를 왜 공적으로 공표하지 않았는지 아는가? 추적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누구든 그들을 치고 싶은 사람은 치라는 뜻이다.
검왕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들…… 누강을 잡아라!
모두들 여기까지는 생각한다. 허나 그 전에…… 검왕이 누강의 복심인 음사를 매우 가까이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죽음을 방관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어둠이 말했다.
“검왕이 마고를 폭파한 건 맞습니다. 또 마인들이 몰려들 것을 알았을 겁니다.”
“검성과 검왕이 한 통속이군. 그놈…… 은거하지 않았어. 은거한 척 연기했던 거야.”
“후후후! 그 말씀은…….”
“이런 내가! 후후!”
혈천혈도가 툴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 자신이 실언했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검왕은 그런 놈이 아니다. 그놈이 은거한다고 하면 정말로 은거한다. 책략이나 계략 같은 것……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데 섞이지도 않는다.
검왕은 은거했다.
지금 검왕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검성이 이끌고 있다. 검왕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움직이도록 조정한다.
음사, 그가 관건이다.
검왕이 음사를 살렸다면, 검왕은 검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검왕의 성품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므로, 검성이 이끄는 대로 끌려간다.
누강이 공격당하고, 검왕이 방어할 게다.
누군가 진짜로 검왕을 노리는 자가 나타날 것이고, 검성은 그자를 잡을 것이다.
검왕이 미끼다.
만약…… 그럴 리는 절대 없지만 만약…… 음사가 정말로 죽었다면…… 검성은 괜히 마고만 폭파한 게다.
이 말은 검왕의 성품이 모질게 변했다는 뜻이다. 누강의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헌데 검왕은 누강을 살렸다.
지켜보라. 검왕을 지켜보라.
어둠, 회회문사(灰灰文士)는 누가 검왕을 노리는지 주시하라고 말한다. 검왕을 노린다기보다는 급격하게 강해진 검왕의 무공을 노리는 것이겠지만.
옛날보다 한층 강해진 검왕은 노릴 수 있는 자.
검왕의 무공을 알고 있는 자.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상책이다.
혈천혈도가 말했다.
“알았다. 네 말대로 하지.”
그래도 회회문사는 안 믿기는지 다시 말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로 먼저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알았다.”
혈천혈도가 차게 말했다.
어둠까지 물러갔다.
혈천혈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청을 서성거렸다.
‘그놈들…… 용서할 수 없어!’
삼마, 그들을 쳐야겠다.
그들을 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
혈천성에 고수가 많지만 삼마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첫째, 그놈들…… 자신에게 아무 언질도 하지 않은 게 괘씸하다.
둘째, 그놈들을 닦달해서 검왕의 무공을 알아야 한다. 도대체 어떤 무공이기에 삼마가 일수에 나가떨어졌는지.
삼마가 그런 식으로 당했다면 자신 역시 일수에 당할 가능성이 높다.
검왕이 그렇게 강했나? 말도 안 돼…….
그렇게 강한 무인을 노리는 자? 말도 안 돼…….
‘강신천마. 너부터.’
혈천혈도가 새빨간 혈광을 피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