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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章 악사천리(惡事千裏) [나쁜 소문이 금세 퍼진다] (2)
두 사람은 십 리 길을 걸어오는 동안 일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힘들지?”
“아뇨.”
간간이 주고받는 말이 산새 소리와 어울릴 뿐이다.
마공관에는 마인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한 줌 재밖에 남지 않은 폐허에서 마서를 찾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의 눈길은 곧 이곳에도 미칠 것이다.
발걸음이 한 걸음 늦어서 미처 마공관으로 뛰어들지 못한 마인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누가 나타나든 누미 혼자서 상대하기는 버겁다.
누강은 싸울 수 없는 상태다.
지금도 그는 누미에게 부축을 받고 있다. 누미의 어깨에 손이라도 얹고 있어야 움직인다.
이런 상태로는 이류고수조차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주위를 세심하게 기울였는데…… 사람 모습이라고는 그림자도 안 비친다.
이곳이 마공관 주위가 맞나?
마공관에서 석벽만 열었을 뿐인데…… 어른 몸통만 한 석벽을 경계로 이런 신천지가 존재했나? 이곳을 통해서 마공관 절벽 위로 올라갈 수는 없나? 그럴 수만 있다면 굳이 십리사로를 이용할 필요가 없을 텐데.
검왕이 열었던 동굴 석벽도 현음자 작품이다.
검왕은 기관진학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글에도 소질이 없다. 학문을 닦을 시간만 되면 꾸벅꾸벅 졸다가 회초리를 맞기 일쑤였다.
누강은 검왕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다.
그런 검왕이 석벽을 설치했을 리는 만무하다. 본인 스스로 석벽 기관장치를 찾아냈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우연히 파진도를 습득해서 기관진식을 이용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 말은 다른 사람은 속일지언정 누강만큼은, 검왕을 아는 사람은 속이지 못한다.
검왕에게 파진도를 건네주면 머리 아프게 이런 걸 왜 주냐고 짜증 낼 게다.
누군가가 검왕에게 마공관 기관진식을 이용할 수 있게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건 짐작이지만 검성 성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말 야속하신 분이에요. 여기 누가 있다고 혼자 줄행랑을 놓았는지…….”
“쯧!”
누강이 혀를 차서 나무랐다.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그러잖아요.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없는데. 말동무도 할 겸 같이 가면 오죽 좋아요?”
“허어!”
누강이 기어이 눈을 부라렸다.
누미는 그래도 자신이 옳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누강의 무게가 온전히 어깨에 걸린다.
상당한 무게다. 거기에 걷고 있는 길이 산비탈이라서 발걸음을 떼기가 용이치 않다.
그래도 누미는 누강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정말 너무해!’
그녀는 검왕이 떠나던 순간을 계속 상기했다.
석벽이 열리고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이 아렸다.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빛을 보려니 저절로 실눈이 떠졌다.
“아! 눈부셔.”
그때 왜 그 말을 했는지. 그때 왜 손을 들어 햇살을 가렸는지.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 바로 옆에서 무엇인가 거무스레한 것이 번뜩였다.
검왕이다! 검왕이 동굴 밖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된다.
“수, 숙조!”
엉겁결에 검왕을 부르고 말았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간다는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검은 그림자…… 아니, 검은 그림자가 사라진 방향을 멀거니 주시했다.
검왕은 처음 모습을 보일 때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사라졌다.
그 순간이…… 검왕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왜 이렇게 허전하지?’
그녀도 마음이 왜 이토록 시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아아아아아……!
볼을 살짝 건드리는 바람이 불어왔다가 지나간다.
‘으음!’
누강은 속으로 침음했다.
누군가 미행하고 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이용하면서 은밀히 뒤따른다.
귀를 기울여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안공(眼功)을 펼쳐도 보이는 게 없다.
뒤따르는 자들은 상당한 고수들이다. 상처를 입지 않은 몸으로도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귀선부!’
누강은 제일 먼저 귀선부 복면인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마공관 밖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던 절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기관진식을 꿰뚫고 있다.
그렇다면 검왕이 열었던 석벽의 존재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귀선부 복면인들이 뒤쫓고 있나? 왜? 자신과 누미가 그들에게 무슨 이용가치가 있다고?
그들은 적벽검문의 정령(精靈)을 마고 마기의 제물로 주려고 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의 이용가치는 끝난 게 아닌가? 뭐 또 남은 게 있나?
한 가지, 검왕이 왜 같이 동행하지 않았는지는 알 것 같다.
검왕은 이들과 조우하기 싫은 게다. 검왕이 이들을 두려워할 리는 없고…… 그냥 싫은 게다.
“여긴 좀 험해요. 조심하세요.”
누미가 종알거린다.
누강은 누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뒤따르는 존재에 신경이 쓰여서 연신 눈을 밝히고,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도 잡히는 것은 없지만.
* * *
고(告)
검왕(劍王) 특호(特號) 필사(必死).
죄명(罪名) - 마공관(魔功關) 집멸(集滅), 마경(魔經) 탈취(奪取)
방조혹은신지제공시(傍助或隱身地提供時) 여검왕동죄(與劍王同罪)
목격자입즉거보(目擊者立即舉報).
신보시(申報時), 장금(獎金) 은(銀) 일만(一萬)
검성(劍城) 육장(六長) 보(保)
“이거…… 이거 뭐라는 거죠?”
누미가 공고(公告)를 보고 어이없어서 물었다.
“검왕에게 추살령이 내려진 것 같구나.”
누강이 침중하게 말했다.
“검왕이 특호라고요? 필사? 이건 무조건 보는 즉시 죽이라는 거 아녜요? 마공관 집멸, 마경 탈취라니요! 세상에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요!”
“조용히 해라.”
누강은 혹 다른 사람이 듣지 않을까 싶어서 주위를 살펴봤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서인지 아직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저러나…… 검왕에게 엄청난 포상금이 걸렸다.
신보시 장금 은 일만이다.
검왕을 잡는 것은 논외로 한다. 그를 발견하고 신고만 하는 데도 은 일만 냥을 주겠다는 것이다.
은 한 냥이면 쌀 네 석을 산다. 곡창지대인 남부 쪽으로 내려가면 일곱 석까지 살 수 있다.
은 일만 냥이면 단숨에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
부자도 보통 부자가 아니다. 아주 거대한…… 상단을 이끌어야만 벌 수 있는 큰 부자가 된다.
검성에서 많은 자들에게 포상금을 걸었지만 이렇게 많이 걸기는 처음이다. 아마 검성이 생긴 이래 처음일 게다. 솔직히 검성에 그만한 돈이 있기나 한지 의문스럽다.
그래도 검성이 내건 약속이니 반드시 지킬 것이다.
그만큼 검왕만큼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필살의 표현이다.
누강은 공고를 승인한 사람을 주목했다.
보통 이런 공고는 형당주(刑堂主)가 승인한다. 형당주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집행한다.
이번에는 육장 이름으로 선포되었다.
검성 서열 여섯 번째…… 검성주부터 오장까지 비운을 당했을 때, 곧바로 검성주로 등극할 사람.
아니다. 그는 서열만 육장일 뿐, 사실상 차기 검성주로 내정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검성주가 직위를 내려놓으면 당장 그가 단좌(單坐)를 차지할 게다.
검성주의 아들, 천도(天劍) 가후명(茄后明).
그가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포고령을 내렸다.
검왕과 더불어서 검성의 쌍검으로 불리던 그가…… 검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그가…….
‘이렇게 되면 숙부 옆에 서 있기만 해도 만고 죄인이 되는 건가? 그래서 혼자 가신 거군.’
검왕은 사태가 이렇게 번질 줄 예측했던 것 같다.
“이거 신보시 맞죠? 추살시(追殺時)가 아니고 신보시. 그러니까 어디 있는지 알려주기만 하면 은 일만을 주겠다는 거 아녜요? 이것들, 미친 거 아냐!”
“어허! 얘가…….”
누강은 황급히 손을 들어 누미의 입을 틀어막았다.
누미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도 읽었겠지만 주의하지 않고 지나간 부분이 있다.
방조혹은신지제공시 여검왕동죄.
여검왕동죄…… 검왕과 같은 죄로 묻겠다는 것이다. 마공관을 파괴하고 마결을 탈취한 죄는 추살인데…… 그 죄를 동조자에게까지 묻겠다는 거다.
그리고 여기서 방조는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다.
설혹 검왕에게 동조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검왕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동조했다고 말하면서 추살을 하는 게 가능해진다.
신보시 은 일만이라는 것은 동조에 대한 죄 역시 단단히 묻겠다는 것이다.
‘이건 아주 대단한 공포정치야. 공포로 무림을 다스리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어. 검왕은 핑계일 뿐…… 평소 눈에 거슬렸던 자들이 쓸려나갈 거야.’
누미의 눈에는 포고령이 검왕을 향한 화살로만 보였다.
누강의 눈에는 검성이 무림을 틀어쥐고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게 만드는 억압장치로 보였다.
“가자. 앞으로는 검왕에 대해서 입도 벙긋거리지 마라. 네 한 몸만 문제가 아니라 적벽검문 모든 사람의 생사가 말 한 마디에 달렸다는 점을 잊지 마라.”
누강은 검왕을 숙부로 호칭하지 않고 ‘검왕’이라고 불렀다.
듣는 귀가 있다. 보는 눈이 있다. 그들에게 꼬투리를 잡히면 적벽검문 전체가 역도로 몰린다. 그리고 검성은 적벽검문을 단숨에 쓸어버릴 만한 힘이 있다.
누미도 누강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누강이 ‘검왕’이라는 말을 힘주어 말할 때, 그리고 주위를 빠르게 훑어볼 때 저간에 깔린 사정을 짐작해냈다.
“모함이죠?”
그녀가 속삭였다.
“쉿! 아무 말도…….”
“알았어요. 조용히 할게요. 그런데…… 분해요.”
“…….”
“숙조께서 근처에 계실까요?”
“너!”
“아, 예. 조용히 할게요.”
누미가 혀를 살짝 내밀며 방긋 웃었다.
예쁘다. 세상이 갑자기 환해진다.
누미는 적벽검문 검성(劍聖)들이 말하는 요미검체(妖美劍體)다.
그녀가 실제로 요미검체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맥(氣脈) 상으로는 틀림없이 요미검체다.
아름다운 검!
천상의 선녀가 검무(劍舞)를 출 때처럼…… 미모에서, 자태에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아름다우면서도 검의 경지는 검성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근골이 뛰어나다.
여인의 몸으로 도산검림(刀山劍林)을 밟고 설 수 있는 천고의 기재!
실제로 누미가 요미검체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누강이 살펴봤을 때, 요미검체였다. 누강의 아비가 살펴봤을 때도 요미검체였다. 적벽검문 검성 두 사람이 확인했을 때도 요미검체였다.
요미검체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검왕과의 만남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마치 검왕이 보옥에 묻은 먼지를 한 겹 벗겨준 것 같다.
검왕이 시연한 십오초에서 무엇을 얻은 것인가?
그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검왕의 십오초도 별거 아니지?”
“어멋?”
누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강을 쳐다봤다.
“왜?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설마…….”
“설마 뭐?”
“아버님, 숙…… 검왕님을 질투하세요?”
“뭐, 뭐! 지, 질투? 그리고…… 뭐? 검왕님? 니이임?”
“그럼요. 질투하지 않고서야 너무도 명확한 차이를 어떻게 그렇게 말하세요?”
“뭐, 뭐, 뭐라고! 너 지금 그게 이 아비에게 할 말이냐!”
“맞아. 확실히 질투야.”
“뭐라고! 이것이!”
“숙…… 아니, 검왕님 말씀이 맞아요. 전 확실히 십일변이었어요. 검왕님의 시연을 보니까 왜 삼변을 인정하지 않으셨는지 확연히 알아지더라구요.”
누강은 깜짝 놀랐다.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고? 시연 한 번 보고?”
“네. 왜요?”
“아, 아니다.”
누강은 쓴웃음을 흘렸다.
검왕은 자신을 위해서도 여러 번 시연을 해주었다. 허나 자신은 마지막 일변을 깨우치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눈으로 봤을 때, 누미는 분명히 십사변을 깨우쳤다.
후반부 삼변이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숙련을 더해가면 완벽해질 것이다.
삼변의 완성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자신의 무공에 결정적인 흠이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빠져있다.
“한적한 곳으로 가자. 나도 좀 쉬어야겠고, 네가 알았다는 부분도 봐야겠다.”
누강은 누미의 부축을 받으면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