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1화 (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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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章 악사천리(惡事千裏) [나쁜 소문이 금세 퍼진다] (1)

검왕이 걷고, 마인들은 물러선다.

마인들은 검왕의 의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방향을 틀지 않는다. 뒤로, 뒤로…… 십리사로로 밀려난다.

“제길! 이게 뭔 꼴이야!”

누군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이 기폭제라도 된 듯 여기저기서 희망을 놓지 못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판 붙어봐도 될 것 같은데.”

“저놈도 사람이잖아. 칼로 쑤시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고.”

“한 명인데…… 제길!”

그러나 말들만 앞설 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저벅! 저벅!

검왕이 천천히 걸어온다. 그리고 마인들은 죽기보다도 싫은 후퇴를 한다.

누강은 싸울 수 없는 상태다.

단순히 검에 베이기만 했다면 어떻게든 일어서보겠는데, 그놈의 혈무기 때문에 운기를 할 수 없는 처지다.

기로(氣路)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느낌이다.

잘 닦아놨던 길이 움푹움푹 패이고, 흙이 유실되어서 도저히 걸어갈 수 없는 길로 변한 것처럼.

그런 사람에게 검왕이 말해왔다.

“지켜주세요.”

“음! 알겠습니다.”

누강은 차마 못 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검왕이 그의 상태를 모르고 한 말은 아니다. 너무 잘 알면서도 말해왔다. 누강이라면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것인데…… 숙부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나.

누강은 마인들을 쓸어봤다.

마인들은 십리사로에 줄지어 늘어서 있다.

십리사로는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기에도 위험한 곳이다. 한 명씩 절벽에 등을 찰싹 붙이고 서 있어야 한다. 그래도 계곡 밑에서 불어오는 강풍 때문에 어질어질하다.

마인들은 절벽에 찰싹 달라붙어서 차마 물러서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늘어서있다.

욕심이 뭔지…… 저 정도로 밀려났으면 깨끗이 포기하고 돌아갈 만도 하건만.

“도와드려라.”

누미에게 한 말이다.

“네.”

누미는 당연하다는 듯이 검왕의 하대를 받아들였다.

검왕에게 누강은 족질(族姪)이 된다. 그럼 누미는 족질의 딸이니 촌수로 따지면 까마득한 후인(後人)이다.

누미는 하대를 들으면서도 괜히 기뻤다.

‘날 가족으로 받아들였어. 검왕…… 저 사람의 가족이 된 거야.’

“으음! 저거 한 방이면 끝나는데…….”

“이거야 원…….”

마인들이 탄식했다.

차라리 검왕이 마공관을 지키고 있다면 수긍이나 한다. 척 봐도 위독해 보이는 자가 엇비스듬히 누워서 간신히 검만 쥐고 있는데, 나아갈 생각을 못 한다.

굉장한 절망감이 엄습한다.

누강을 제치고 나아가기는 쉽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국 죽음이다. 검왕의 분노를 검으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자신이 없다.

누강을 세워놓지 않고 팻말 하나만 세워놨어도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검왕이 이런 존재였나?

“이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는데…….”

“강하기야 했지. 쯧!”

마인들은 물러서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못한 채 십리사로에서 서성거렸다.

검왕은 십마 중 세 명을 단숨에 쓰러트렸다.

그런 신위를 직접 자신들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더 이상 모험을 할 수가 없다. 그때!

꽈아아아아앙!

마공관 중심처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마공관을 비롯해서 십리사로 전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엇! 마, 마고가 폭발했다!”

“마고, 맞아?”

“저기는 마고가 있던 곳이야. 검왕, 검왕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어!”

누군가 던진 마지막 말은 간신히 붙들고 있던 자제심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마고가 폭발했다!

이 말은 마고에 숨겨져 있던 마경(魔經)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뜻이다.

“에잇!”

십리사로 가장 안쪽에 있던 자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신형을 쏘아냈다.

쒜에에엑!

누른빛 한 점이 마공관 안으로 쏘아졌다.

“어딜!”

쒜에에엑!

검을 뽑은 채 단단히 준비하고 있던 누미가 괴이신랄한 초식을 전개하며 마인을 덮쳐갔다.

“비켯!”

마인은 누미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그가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초식으로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달려드는 하룻강아지를 쳐냈다.

깡깡!

도와 검이 부딪치면 불똥을 튀겼다.

그 사이, 다른 마인들이 속속 마공관 안으로 뛰어들었다.

누강은 그들을 막지 못했다. 그들이 자신 곁을 스쳐 지나가는 데도 멀거니 구경만 했다.

사실, 그도 정신이 없기는 마인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숙부가 마고를?’

귀선부 복면인들은 마지막 폭발만은 남겨둔 채 떠나갔다. 그리고 그 폭발을 검왕이 저지시켰다.

당연히 검왕은 마고가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지금 마고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사람도 검왕밖에 없다.

검왕이 왜 마고를 폭발시켰을까?

“비켯!”

누미에게 가로막혀 걸음이 한발 늦어버린 마인이 신경질적으로 공세를 취했다.

누미는 뒤로 물러섰다.

이자와 굳이 생사를 결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간신히 검만 들고 있는 누강의 안위가 중요하다. 벌써 많은 자들이 자신들을 지나쳐서 지나갔는데…… 그들 중에 누구라도 악심만 품으면 누강을 죽일 수 있다.

누미가 물러서자 마인은 앞뒤 보지 않고 신형을 쏘아냈다.

‘직진(直進)!’

누미는 누강을 둘러업고 전면을 향해 쾌속 질주했다.

전면은 절벽이다. 이대로 곧장 치달리면 절벽에 부딪친다. 이제 곧! 곧 부딪친다!

‘직진!’

적벽검문의 비전 음어(陰語)인 혜광심어(慧光心語)가 더욱 강하게 주문한다.

누미는 잠시 치밀었던 의혹을 접고 혜광심어의 주문대로 쾌속하게 질주했다.

쒜에에엑!

그녀가 일으키는 바람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좌(左) 삼보(三步)!’

이런! 어처구니없는! 한참 치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갑자기 좌삼보를 내디딜 수 있나!

쒜에에엑!

그녀는 좌삼보라는 주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달리던 신형을 멈춰 세웠을 때는 벌써 주문을 발한 지점에서 네 걸음이나 달려나간 후였다.

‘역공비(逆空飛)를 배우지 못했구나.’

아! 역공비!

배웠다. 누강이 가르쳐준 십이신법 중에 하나. 다만 그것을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인 줄을 몰랐다.

‘아냐. 그 말도 들었어.’

누강은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실전…… 실전이 문제다.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었지, 몸으로 써보지 않은…… 경험미숙이다. 그때다!

슷!

눈앞에서 무엇인가 불쑥 나타나 그녀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았다.

“엇!”

그녀가 미처 경악성을 토해내기도 전, 멱살을 잡은 손이 그녀를 와락 끌어당겼다.

그녀는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쑥 끌려 들어갔다. 반항을 하기에는 당기는 힘이 너무 억셌다. 그리고…… 끌어당기는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했기에 아무 저항을 하지 않았다.

검왕…… 그다.

검왕에게서는 단향(檀香)이 풍긴다.

씻지도 않는 사람이 향낭(香囊)을 지녔을 리 없는데, 늘 상쾌한 향이 풍긴다.

그가 등 뒤로 다가서는 것을 알 수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어도 어디 있는지 짐작된다.

언젠가부터 검왕을 찾을 때는 단향 냄새부터 맡았다. 그리고 냄새를 따라가면 늘 검왕이 있었다.

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그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도 단향 냄새가 풍긴다.

“일초십사변?”

검왕이 불쑥 물어왔다.

누미는 검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방금 전, 마인과 싸울 때 사용한 검초를 말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초십오변 중 십사변까지 깨우쳤냐는 물음이다.

“네.”

누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십일변이다.”

“네?”

“형식만 흉내 내는 것은 초수로 인정할 수 없지. 삼변은 흉내, 진정한 검초는 십일변. 천재는 아니었군.”

“네에?”

“따라와.”

“저, 저 숙조!”

누미가 아미를 상큼 치켜뜨며 소리쳤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아무리 숙조라고 해도, 검왕이라고 해도…….

검왕은 대꾸도 없이 앞서 걸었다.

“이런!”

“망할!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야!”

마인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마고를 이 잡듯이 뒤졌다.

생각했던 대로 마공관을 무너트릴 듯한 굉음은 마고가 폭발하는 소리였다.

마고가 산산조각났다.

장정 허리만 한 돌 파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불탄 책자도 보인다. 마고에 소장되었던 마경으로 보이는데…… 모두가 새카맣게 타서 재만 남았다. 아니, 그 재조차도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려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뭐야! 헛걸음…… 한 거야!”

“마경이…… 마경이…… 아냐, 그래도 한 권쯤은 남아있을 거야.”

마인들은 무너진 돌조각들을 들춰내기 시작했다.

“정말로 마고를 폭파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왜……? 이유를 여쭤봐도……?”

“마고를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마고의 파진도가 유출됐습니다.”

“아! 귀선부의 이령? 그러잖아도 그 여인의 행적을 검성에 보고할 생각입니다.”

“그러지 마세요.”

“네?”

“지금부터 잘 들으셔야 합니다. 지금부터 조카님은 무조건 도주하세요. 검성이 공적으로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잘 아실 겁니다. 그 일에 대비하세요.”

“제가 공적이란 말입니까?”

“그럴 겁니다. 지금쯤 이미 마공관을 파해한 공적으로 공표되었을 겁니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검성은 이유를 묻지 않을 겁니다. 무조건 눈에 띄면 공격할 것이고, 죽일 겁니다.”

“지, 지금…… 즉살령(卽殺令)을 말하는 겁니까? 제게! 제게 즉살령이 내려졌다고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뭐 아시는 거라도 있는 겝니까?”

누강이 답답한 듯 물었다.

검왕은 인상만 찡그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검왕의 미간에 내 천(川) 자가 그려진다.

얼굴에 때가 가죽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고, 수세미같이 거친 머리칼이 이마를 덮고 있어서 뚜렷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미간을 찌푸렸다.

검왕은 무엇인가를 안다.

검왕이 말했다.

“나중에…… 살아남으면 나중에 말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우선은 몸부터 건사하세요.”

“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말씀을 좇아서 몸부터 건사하겠습니다. 이 우질(愚姪)은 걱정마십시오.”

누강이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듯 활짝 웃었다.

검왕이 말했다.

“이곳은 저들도 모르는 곳이니, 여길 벗어나면서부터 적어도 하루 정도는 안전할 겁니다. 그 이후로는…….”

“같이 안 가세요?”

누미가 불쑥 물었다.

검왕은 묵묵히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십일변으로는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 적어도 십이변까지는 터득해야 돼.”

“전 십사변까지 깨…….”

누미는 항변하려고 했다. 십사변까지 깨우쳤노라고.

검왕이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일어섰다. 그리고 너울너울…… 학이 춤추듯이 부드럽게 춤을 춘다. 손끝이 하늘을 찌르고, 발끝이 땅을 찍는다.

“아!”

누미는 탄성만 토해냈다.

누강의 일초십오변은 극쾌(極快)의 결정체다.

검왕의 일초십오변은 극유(極柔)를 드러낸다. 극유 속에 극쾌가 숨겨져 있다.

“부단히 수련해라.”

그릉!

시연을 마친 검왕이 현음자의 마지막 기관…… 그가 은거해있던 어둠 너머에 존재하는 곳…… 후벽로(後壁路)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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