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第二章 호료(好了)! [됐다!] (4)
우하하하하핫! 우하핫!
이른 새벽,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시각인데 난데없는 웃음소리가 마공관을 쩌렁쩌렁 울렸다.
“응?”
누강은 벌떡 일어나 앉으려다가 다시 배를 움켜잡고 쓰러졌다.
갑작스럽게 움직여서 고통이 뼛속까지 울린다. 아물어 가던 상처가 다시 갈라진 모양이다.
“이게 무슨 소리죠?”
누미가 벌떡 일어나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만! 움직이…… 지…… 마라!”
누강이 고통에 쩔쩔매면서 힘들게 말했다.
마공관은 호로곡이다. 호로곡은 무엇이든지 안으로 가두는 성질을 지닌다. 소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흘린 소리는 벽에서 벽으로 부딪치며 회음(回音)을 만들어 낸다.
마공관 안에서 거침없이 웃었을 때, 지금처럼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된다.
허나…… 그런 웃음과 지금 밖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저 웃음소리에는 아주 강한 내공이 실려 있다.
십리사곡이 아니면 감히 방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한 고수다.
누미가 밖으로 뛰쳐나가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우하하핫! 하하하하하!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웃음소리가 한동안 회오리쳤다.
누강은 몹시 탁하게 들려오는 웃음소리에서 불현듯 한 사람을 떠올렸다.
“강신천마(剛身天魔)!”
“강신…… 강신천마라고요?”
누미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만히…… 가만히 있어라. 경거망동하지 말고.”
누강은 간신히 고통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강신천마는 신장이 구 척에 이르며, 몸무게는 이백팔십 근에 이른다는 거인이다.
선천적인 강골(强骨)인 셈이다.
그는 거기에 철포삼(鐵布衫)과 금종조(金鍾罩)를 수련해서 신체를 더욱 강화시켰다.
강신천마는 육신에 철갑을 씌워버렸다.
그러나 외문기공(外門奇功)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운이 좋은 것인지, 본인이 찾아 나선 것인지는 모르지만 강신천마는 혈음마벽(血陰魔壁)이라는 절정마공을 얻었다.
내가(內家)의 철포삼이라고 불리는 혈음마벽은 강신천마가 수련한 외공을 더욱 단단하게 보강시켜 주었다. 외공의 약점도 단숨에 틀어막았다.
그는 명실공히 지상 최강의 몸을 가진 자가 되었다.
강신천마가 무림에 나선 지 이십 년…… 정도무림은 그를 제거하지 못했고, 그는 십마(十魔) 중에 한 명이 되었다.
그런 그가 마공관에 나타나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그런데,
“킥킥킥! 이봐, 쇳덩어리. 설마 그거 혼자 꿀꺽하려고 한 건 아니겠지? 키키키!”
갈가마귀가 우짖는 듯 몹시 듣기 거북한 음성이 강신천마의 웃음을 가로막았다.
누미가 이번에는 또 누구냐는 표정으로 누강을 쳐다봤다.
누강은 인상을 심하게 찡그렸다.
단지 몇 마디 들은 것만으로는 상대를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짐작은 가능하다. 강신천마에게 ‘쇳덩어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같은 십마…… 이런 목소리라면?’
누강이 생각에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을 때,
“십조잔괴(十爪殘怪).”
어둠 안쪽에서 얼핏 들으면 딱딱한, 그러나 아는 사람이 들으면 매우 편안한 음성이 들려왔다.
“십, 십조, 십조잔괴!”
누미의 눈이 거의 찢어지기 직전이다.
강신천마에 이어서 십조잔괴까지…….
평생 무림을 떠돌아도 한 명 만나볼까 말까 하다는 십마가 두 명씩이나 나타났다.
어둠이 출렁 흔들렸다.
누강과 누미는 동굴 안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고 생각했다.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바람이 얼굴을 스쳐 간다고 느꼈다.
그야말로 아주 미미한 바람이 스쳐 갔을 뿐…… 동굴에 검왕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둠은 똑같은 어둠인데 무엇인가 빠졌다는 느낌이 든다.
‘검왕이 밖으로 나갔어.’
“크카카카카! 쇠꼬챙이, 이거 가지고 싸울 것 없다. 나 반, 너 반. 됐냐?”
“키킥! 좋은 조건. 됐다.”
“카카카! 그럼 물건을 꺼내볼까?”
강신천마가 호쾌하게 웃으며 길게 늘어진 도화선으로 다가섰다.
귀선부 복면인들이 마지막으로 설치했던 도화선이다. 마고를 열 수 있는 마지막 줄이다.
“킥킥! 그래, 어떤 게 있는지 보자. 빨리 열어봐.”
강신천마와 십조잔괴는 오래전부터 손발을 맞춰온 듯 한통속이 되었다.
그러나 강신천마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방금 말을 마친 십조잔괴도 눈에 흉광을 떠올리더니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들 뒤에 흑의 괴인이 서 있다.
흑의인은 돌조각을 들고 있다. 굉장히 뾰족한 돌인데…… 일부러 다듬은 돌은 아니고…… 동굴 천정에 늘어져 있던 종유석을 끊어가지고 나섰다.
“누구지?”
“몰라.”
“저런 놈이 왜 아직까지 소문도 안 난 거야? 초출(初出)인가?”
강신천마와 십조잔괴가 나직이 말을 주고받을 때,
휘리릭!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바보놈들 같으니. 네놈들은 정녕 저놈이 누군지 모른단 말이냐!”
그들 뒤에서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허리가 구부정한 노파가 괴장을 들고 내려섰다.
강신천마와 십조잔괴는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듯 놀라지 않았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들의 눈은 흑의인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망구, 저 자식이 누군데 그래?”
십조잔괴가 흑의인을 예리하게 살피며 물었다.
“검왕.”
“거, 검왕!”
“저놈이 검왕?”
노파의 말에 강신천마와 십조잔괴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과거, 검성이 내밀었던 비장의 패(牌).
검왕이 검성에 존재할 때, 사마외도(邪魔外道)는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십마는 검왕을 벼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검왕보다 하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후! 잘 만났군. 은거했다고 해서 상당히 아쉬웠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는군.”
강신천마가 손가락을 우두둑 꺾었다.
“저 노파는 누구죠?”
“천살마노(天殺魔奴).”
“훅!”
누미가 짧게 헛바람을 삼켰다.
십마 중 세 번째 인물이 나타났다.
마공관에…… 마서가 있는 곳에…… 마인들이 줄 지어서 나타나고 있다.
마공관에 모인 사람은 저들이 전부가 아니다.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 모두 각기 다른 병장기를 지닌 채 어슬렁거린다.
그들의 숫자는 거의 이십여 명에 달한다.
허나 그들은 마고 주변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서 돌아가는 상황만 지켜본다.
십마가 이곳의 주인이다.
“검왕이 저들을 모두 상대할 수 있어요?”
“글쎄…… 모르지.”
“그럼 저라도 어떻게…….”
누강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서. 괜히 정신 분산시키지 말고.”
쿵쿵! 쿵쿵쿵! 타타타타탓!
강신천마가 검왕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빠르게 걷는다 싶었는데, 마음이 급했는지 끝내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쒝!
검왕도 마주쳐갔다.
“카하하하하!”
강신천마가 크게 웃으면서 등에 메고 있던 감산도(砍山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달려오는 검왕을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휘이잉!
감산도가 폭풍을 일으킨다. 거센 광풍을 일으켜 검왕을 휘감는다. 감산도가 벼락처럼 육신 위로 떨어진다.
퍽퍽!
짧고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는 아니다. 검왕은 병기다운 병기조차 들지 않았다.
격타음! 누군가 맞았다!
사람들이 싸움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서 눈을 부릅떴다.
너무 짧은 순간에 격돌이 벌어졌다.
수십 초는 겨뤄야 승부가 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뜻밖에도 단 일 초에 판가름이 났다. 그때,
쉬이익!
뒤에서 지켜보던 십조잔괴와 천살마노가 쏜살같이 뛰쳐나가 강신천마의 등을 떠받쳤다.
“큭!”
강신천마는 짧고 굵은 신음을 흘렸다.
그의 허리에서는 붉은 선혈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두 사람이 강신천마의 등을 떠받쳤을 때는 피가 이미 흥건히 흘러나와 바지를 적시고 있었다.
“깨…… 진 거야?”
십조잔괴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말을 했다.
철포삼이 깨졌다. 금종조가 깨졌다. 내가의 철포삼이라고 알려진 혈음마벽도 깨졌다.
“버틸 수 있냐?”
천살마노가 물었다.
강신천마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검왕만 쏘아봤다.
검왕은 머리를 살짝 숙인 채 땅을 쳐다본다.
땅을 보는지 어디를 보는지 모르겠는데,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어서 얼굴을 뚜렷하게 볼 수 없다.
“이……!”
강신천마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구 척, 이백팔십 근에 이르는 거대한 덩치가 바윗돌 굴러내리듯 핑그르 무너졌다.
쿵!
십조잔괴와 천살마노는 쓰러지는 강신천마를 받치지 못했다.
검왕이 오른발을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온다!’
십조잔괴는 즉시 잔혈철조공(殘血鐵爪功)을 일으켜 양손을 갈쿠리 모양으로 곧추세웠다.
천살마노는 괴장을 들어 검왕을 겨눴다.
검왕이 단지 오른발을 살짝 움직였을 뿐이지만, 그들은 싸움의 전저를 감지했다.
검왕이 선제공격을 가해온다!
그들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이 미처 준비를 끝내기도 전에 검왕이 바람처럼 달려와 코앞에 이르렀다.
카라라락! 쒜엑! 쒝!
두 사람은 즉각 조(爪)와 장(杖)을 쳐냈다.
강신천마의 전례가 있어서 자신들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힘을 이 한 판에 쏟아부었다.
페엑! 팟!
날카로운 손톱이 허공을 찢었다. 거무튀튀한 괴장이 살아있는 용처럼 꿈틀거렸다.
검왕은 격전을 피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훅! 달려들었다가 쓱! 물러섰다.
십조잔괴와 천살마노는 애꿎은 허공만 찢었다. 그것도 온 힘을 다 쏟아서.
‘허초!’
빌어먹게도 검왕의 움직임은 허초다.
단순히 위협만 가한 것인데, 두 사람은 깜빡 속았다.
“키킥! 놀리기까지 하고. 이거 자존심 상하는데.”
십조잔괴가 양손을 서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의 양손은 진기가 깃들어서 푸르뎅뎅하게 변해 있었다. 길게 자란 손톱은 시커멓게 변색되었다.
극성에 이른 잔혈철조공이다.
천살마노는 혈인장(血人杖)이라는 이름을 가진 괴장을 들어 검왕을 겨눴다.
혈인장은 사람의 피를 먹고 자란다.
죽은 나무로 만든 지팡이가 실제로 자랄 수는 없다. 헌데 혈인장은 사람 피를 머금으면 선홍빛의 맑은 빨간 색, 혈장(血杖)으로 색깔을 바꾼다.
혈인장 전체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다. 단 한 방울만 살짝 떨궈도 붉디붉은 혈장이 된다.
그 모습이 꼭 피를 먹으면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검왕이 동굴에서 떼어낸 종유석을 꽉 쥐었다.
‘그 여자! 그 여자야!’
누강은 귀선부 이령을 떠올렸다.
마공관은 마인들이 발길이 엄금된 곳이다. 마고에 마서가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지만, 특히 마인들은 기웃거리는 것조차 금지된 곳이다.
이곳을 기웃거린 마인은 무림공적이 된다.
검성의 일급 살인 대상자 명단에 오른다.
실제로 지난 백여 년 동안 마공관을 기웃거린 마인은 한 명도 없었다. 마공관에 발길도 들여놓지 못하고 십리사로에서 죽은 자들은 제외하고.
헌데 오늘 갑작스럽게 많은 마인들이 몰려들었다.
스무 명? 두 명도 많다.
갑자기 이들에게 겁이라도 없어진 것인가? 검성이 두렵지 않은가?
마인들의 눈빛을 보면 한결같이 마고로 쏠려있다.
십마와 검왕이 싸우는 일생에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결전조차도 지켜보지 않는다.
오직 한 군데, 마고만 쳐다본다.
틈을 찾는다.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기회만 찾는다.
‘저들도 알고 왔어!’
이곳에 온 마인들은 마고를 터트리기 위해서는 마지막 한 번의 폭발만 남았다는 것을 안다.
폭발 한 번!
한 번만…… 저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십마조차 깜짝 놀랄 마서가 대량으로 우수수 쏟아진다.
마인들의 눈길에 탐욕이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