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第二章 호료(好了)! [됐다!] (2)
동굴에서 튀어나온 흑의인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살아온 듯 지저분했다.
흑발이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졌다.
윤기 잃은 머리카락이 수세미처럼 마구 뒤엉켜 있다.
얼굴에도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씻지 않고 살았는지 얼굴에 검은 각질이 덮였고, 그조차도 쩍쩍 갈라져서 붉은 핏줄기까지 보인다.
입고 있는 흑의는 때 묻고 삭아서 회색으로 변색되었다.
사내는 신을 신고 있지 않다. 맨발로 튀어나왔다. 헌데 발 색깔이 입고 있는 흑의 색깔과 똑같다.
사내는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해 보인다.
허나 복면인들은 그런 사내를 보면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흑의인의 손에 들린 뾰족한 돌조각!
저 돌조각에 일곱 명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일 호흡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절명했다.
허나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돌조각보다도…… 사내의 눈이 더 무섭다.
사내의 눈은 죽은 자, 사자(死者)의 눈이다.
사내의 눈에는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다. 세상을 쳐다보고, 복면인들을 훑어보지만 그 어떤 감정도 묻어나지 않는다.
죽는다!
사내를 보면 무조건 그런 생각이 든다.
옷깃만 살짝 건드려도, 말을 걸기만 해도, 곁에 다가서기만 해도 소에 들린 돌조각이 머리를 찍을 것 같다.
흑의인이 무심히 복면인들을 쳐다봤다.
뚜벅! 뚜벅!
복면인들 중에 한 명이 무거운 걸음걸이로 걸어왔다.
스릉!
그는 걸음을 옮기는 중에 검을 뽑았다. 오른 쪽에서 하나, 왼쪽에서 하나…… 쌍검을 뽑아 양손에 쥐고, 흑의인에게 혈광을 쏘아내면서 걸었다.
다른 복면인들이 길을 터줬다.
저벅! 저벅! 탁탁! 타타타탁!
천천히 걷던 그가 조금 빨리, 아주 빨리, 그러다가 끝내는 힘차게 뛰었다.
마군, 그가 흑의인을 노려보면서 질주하는 명마처럼 달려나간다.
“검왕!”
마군이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일갈을 내질렀다.
그의 고함 소리에 마공관을 기웃거리던 산새들이 화들짝 놀라 날아올랐다.
쒜엑!
한순간, 마군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양손에 들린 검이 화려한 불꽃놀이를 일으켰다.
파라라락!
검 두 자루가 허공에서 수십 자루로 늘어났다. 마군의 기, 혈무기가 쌍검을 통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푸른 하늘을 붉은 노을로 물들여 간다.
꽈르르르릉!
쌍검 두 자루가 뇌전처럼 내리꽂혔다.
누강과 싸울 때, 그는 이런 신위를 선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아무런 기운도 드러내지 않았다. 본신 내공인 혈무기를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순간, 마군의 모습은 혈룡(血龍)을 연상케 했다.
흑의인이 혈룡의 혈무기에 휘감겼다.
거대한 고래가 새우를 꿀꺽 집어삼켰다. 강력한 혈무기, 붉은 노을이 흑의인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순간!
꽝!
붉은 노을 속에서 화약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붉은 노을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흑의인이 서 있다. 여전히 돌조각을 들고, 무심한 눈으로 마군을 쳐다본다. 붉은 노을을 보지 못한 듯…… 동굴에서 튀어나온 모습 그대로 서 있다.
마군이 서 있다. 그는 꽤 낭패를 당한 듯하다.
얼굴을 가린 복면이 절반쯤 찢어져서 너풀거린다. 입고 있는 옷도 여기저기가 뜯겨져 있다.
쌍검 두 자루 중 한 자루는 땅에 떨어져 있다.
손에 들고 있는 다른 한 자루는 중간 부분부터 부러져 반 토막만 남았다.
마군이 검을 놓쳤다. 마군의 검이 부러졌다.
“큭!”
마군이 어깨를 움찔거리면서 격한 기침을 쏟아냈다.
입가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가는 실처럼…… 허나 입술 전체가 붉은 피로 물들어있다.
마군이 큰 손해를 봤다.
흑의인은 복면인들을 쓱 훑어봤다.
마치 ‘또 싸울 자가 있으면 나서라!’하고 엄포를 놓는 듯했다.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마군이 손해를 보기 전에는 그나마 한판 해보자 하고 생각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투지를 잃어버렸다. 마군이 저럴 정도라면 해보나 마나다.
마군은 흑의인의 손에서 살아남았다.
허나 이것은 흑의인이 손속에 사정을 남겼기 때문이 아니다. 마군이 살아남을 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무공이 뒤쳐졌다면 벌써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있을 것이다.
마군은 검성의 장로들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하는 초고수다.
복면인들은 마군만큼 강하지 못하다.
흑의인은 나서는 자가 없자 등을 돌려 마고로 걸어갔다.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병기를 들고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움찔거렸지만, 끝내 나서지 못했다.
흑의인은 돌조각을 던져버리고, 절명 직전인 누강과 혼절해 있는 누미를 양어깨에 들춰 맸다.
그가 뒤돌아서 뛰쳐나왔던 동굴로 걸어 들어갔다.
복면인들이 주춤거리면서 거리를 좁혔다.
흑의인은 누강과 누미를 들춰 멘 바람에 양손의 자유를 잃었다. 누군가가 공격을 하면 어깨에 짊어진 두 사람 중에 한 명을 떨궈버리지 않는 한, 반격할 수 없다.
그런 점까지 알고 있는데…… 공격할 수 없다.
저벅! 저벅!
흑의인은 서둘지 않고, 천천히…… 복면인들에게 일별도 던지지 않은 채 동굴만 보고 걸었다.
복면인들은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병기를 쳐내지 못했다.
“큭!”
흑의인이 완전히 동굴 속으로 사라지자, 그때까지 꿋꿋하게 서 있던 마군이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무너졌다.
“컥! 컥!”
그는 한 손으로 땅을 짚고 연신 격한 기침을 쏟아냈다.
기침을 할 때마다 붉은 핏물이 한 무더기씩 토해졌다.
복면인들은 마군의 모습을 보면서도 가까이 다가와 거들지 않았다. 아니, 거들지 못했다.
마군은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육신에 가해진 상처보다 더 큰 상처는…… 그가 난생처음으로 패배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가 가장 자신 있는 검으로.
완벽한 패배다!
복면인들이 물러갔다.
그들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십리사로를 이용하지 않고, 암벽 속에 난 비밀통로를 이용해서 잠적했다.
꾸웅! 쿵쿵! 꾸우우웅! 쿵!
밤새도록 지축이 뒤흔들렸다.
복면인들이 물러가면서 현음자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비밀통로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소리다.
절벽에 남아있던 현음자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졌다.
스읏! 스읏! 스으으읏!
누강은 검상(劍傷)에 금창약(金瘡藥)을 바르고 있는 흑의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정말…… 숙부님이십니까?”
누강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입을 뗐다.
스읏! 스읏!
흑의인은 대답 없이 금창약만 발랐다.
“여기서는 밖이 잘 보이는군요. 그럼 이 년 전에 제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보신 겁니까?”
“…….”
“그러셨군요. 너무 하셨습니다.”
누강은 흑의인이 숙부라고 확신했다.
검상에 금창약을 바를 때마다 마른 쑥향이 풍긴다. 금창약을 바른 첫 느낌은 시원하다. 그러나 조금만 있으면 뜨거운 기운이 뼛속까지 저려 울린다.
적벽검문(赤壁劍門)의 비전 금창약이다.
“숙부님이 진작 나셔주셨다면 저들이 죽지 않았을 수도…….”
누강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목에 있는 인영혈(人迎穴)이 강한 힘으로 꾹 눌렸다. 그리고 그는 깊이 혼절했다.
누강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동굴 안에는 밝은 달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낮이 밤으로 바뀌었다.
아니다. 겨우 반나절 정도 지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단순한 생각이다. 적벽검문의 금창약이 매우 뛰어나지만 반나절 만에 지금처럼 몸이 가뿐해질 수는 없다.
숙부는 상처가 아물 때까지 깊은 혼수상태로 눕혀놨던 것 같다.
그렇다면…… 시일이 꽤 지났다.
“깨어나셨어요?”
머리맡에서 사근사근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
“저 미아(美兒)예요.”
“아! 미아. 넌 괜찮냐?”
누강은 퍼뜩 혼절 상태에 빠졌던 누미가 떠올랐다.
“괜찮지 못해요.”
“왜? 어디 상한 데라도……?”
“제 걱정은 마시고 몸이나 추스르세요.”
“숙부! 숙부님은?”
“안에 계세요.”
누미가 어둠에 푹 잠긴 동굴 안쪽을 쳐다봤다.
“음!”
누강은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마공관은 깨졌다. 하지만 숙부가 버티고 있는 한,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다.
“넌 어디가 불편하고?”
“가슴요.”
“가슴? 가슴이 왜?”
“…….”
누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강도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귀선부 복면인들이 납치해오는 과정에 어디를 크게 맞았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흘려버렸다.
누강의 목숨, 누미의 목숨…… 이 두 사람의 목숨은 숙부를 움직이지 못한다. 이 두 사람 때문에 숙부가 검을 들고 나서서 귀선부 복면인들과 싸운 것이 아니다.
누강은 그 사실을 상반신을 일으켜 세울 정도로 몸이 회복된 다음에야 알았다.
누미는 매일 가슴을 소독한다.
누미의 가슴에는 대침(大針) 다섯 개가 박혀있다.
숙부가 손을 써서 심장을 거쳐 가는 대혈(大穴) 다섯 군데를 침으로 봉해놓았다.
매일매일…… 대침을 타고 썩은 피가 흘러나온다.
어떤 때는 고름이 같이 묻어나올 때도 있다.
한참 젊은 처자의 봉긋한 가슴이 침과 고름과 썩은 피로 얼룩졌다.
“마령(魔靈)…… 마령…….”
누강은 마령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마고가 귀신처럼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마물로 여겨졌다.
한 겹 옹벽만 남긴 마고는 여전히 화약을 품고 있다.
지금이라도 누군가 나타나서 도화선에 불을 지피기만 하면 여지없이 깨져버린다. 귀선부 복면인들이 마고 다섯 겹을 깨트렸으니 저 벽도 틀림없이 깨질 것이다.
헌데 저 벽이 깨지면 마령이 튀어나온다.
마서(魔書)는 그 자체로 혼을 가지고 있다. 마인들의 숨결과 저주를 품고 있다.
그것들이 한군데 모였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저주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백여 년 동안 농축되어 왔다.
마령은 특정한 마기(魔氣)를 말한다.
마서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
누강과 누미는 마기의 제물로 바쳐졌던 것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 마기와 극성인 남자와 여자, 적벽검문의 성기(聖氣), 순기(順氣), 정기(正氣)를 수련해 온 두 남녀…… 마기가 가장 바라던 먹이다.
마기에 침범 당한 육신은 마인들에게도 좋은 노리개가 된다.
흔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미친놈, 미친년이 되는 것인데…… 정신이 어긋났으면서 무공이 강하고 말까지 잘 듣는 순둥이라면 누구든 부리고 싶어 할 게다. 마인이라면 특히.
면사여인이 말한 것, 누미를 마인들의 노리개로 던지겠다는 말은 그런 뜻이었다. 결코 능욕을 한다거나 간살해 버리는 간단한 방법이 아니었다.
숙부는 마기가 새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숙부나 나서서 마군과 복면인들을 친 것은 오직 하나, 마고 때문이었다.
“후후! 그러면 그렇지.”
누강은 숙부가 밉지 않았다. 원래 그런 분이었으니.
“안에 계신 분이 검왕이세요?”
누미가 물어왔다.
“진면목을 보지 못했지만…… 맞을 것 같다.”
“숙조(叔祖)님 나이가……?”
누미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응? 아! 후후후! 얼굴을 뵌 거로구나.”
“네.”
누미의 얼굴이 도화빛으로 물들었다.
누미는 검왕을 처음 만난다. 누강이 누미를 양녀를 받아들인 것도 얼마 되지 않으니 당연히 검왕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누미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가만있자…… 숙부님 나이가…… 신축년(辛丑年) 생(生)이시니…… 이제 스물넷이시구나.”
“네에?”
누미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물넷? 검왕? 누강의 숙부?
이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지 않았다. 연결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