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第一章 출래파(出来吧)! [나와라!] (5)
마군은 절묘하게 검을 썼다.
피가 흐르다가 멈췄다. 지혈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도와준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스스로 멈췄다. 어느 정도만 피가 흐르고는 감쪽같이 멈췄다.
몸은 움직일 수 없다.
눈으로 보는 것은 가능하다. 귀로 소리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꼼지락거릴 수 없다. 그저 죽은 사람마냥 널브러져 있어야 한다.
고통은 없다.
아프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아마도 상처 부위가 마비된 것 같다.
누강은 땅바닥에 널브러져서 자신이 관할했던 마공관을 지켜봤다.
몇몇 복면인이 움직인다. 마공관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죽은 자들을 집어서 내던진다.
다른 곳에서 움직이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무엇을 하는지 마고(魔庫) 근처를 바쁘게 오고 간다.
‘저, 저놈들!’
누강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의도를 읽었다.
마고를 폭파시키려고 한다. 지금 마고 주변에 화약을 매설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고 파해(破解)를 생각해 왔다.
마고 안에 설치된 기관진식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막연히 현음자의 여타 기관진을 참고로 해서 파해 방법을 추측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폭파다.
현음자가 기관진을 오 겹으로 깔아 놨다. 다섯 개의 층층 구조가 깔려있다.
각각의 기관진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굳이 힘들게 파해할 필요가 무엇인가. 마지막 한 겹만이 남을 때까지 하나하나 폭파시켜 나가면 되지 않나. 그럼 마지막 한 겹의 기관진만 남을 때까지 편하게 기관을 뚫으면서 마서는 온전히 보전시킬 수 있다.
물론 현음자의 기관진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생각해 낸 파해방법이다.
실제로는 쓸 수 없는 방법인 게다.
그런데 저들…… 복면인들이 그 방법을 쓰려고 한다. 무모하게…… 자칫하면 마서가 송두리째 날아가는 결과가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과감하게 결행한다.
‘저놈들!’
누강은 자신이 상처를 입은 것보다, 수하들이 죽었을 때보다 더 분노했다.
‘숙부! 숙부!’
그는 처절하게 숙부를 불렀다.
동굴 속에 숙부가 머물고 있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숙부가 모습만 보이면 저 만행을 막을 수 있다. 마군은 물론이고 면사여인도 숙부는 어쩌지 못할 터이니.
“이놈은 그래도 명색이 고수인데 따로 묻어줘야 하는 거 아냐?”
“귀찮아.”
“하기는…… 죽은 놈은 누구나 똑같지. 묘비를 세워주는 것도 아니고.”
복면인들 두 명이 음사의 육신을 들어서 구덩이 속에 집어 던졌다.
쿵!
누강은 음사의 육신이 허공에 붕 떴다가 떨어지는 모습을 봤다.
음사의 육신을 끝으로 시신들이 모두 치워졌다. 아직도 따뜻한 피가 식지 않았을 것 같은 육신들이 차디찬 구덩이 속에 던져져서 서로 뒤엉켜 있다.
마고 주위에서 얼씬거렸던 복면인들이 시신 구덩이 속에 무엇인가를 던져넣었다.
저들은 시신까지 폭파시키려고 한다.
누강의 생각은 맞았다. 복면인들이 슬슬 뒤로 물러서면서 긴 줄을 풀어놓는다.
폭약에 연결된 도화선이 길게 늘어진다.
누강은 무심히 그들을 쳐다봤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설혹 마고가 폭파되어도 숙부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욱 확실하게 알았다.
희망은 없다.
마고는 폭파될 것이고, 시신들은 한 줌 혈수로 변할 것이다. 찢어진 살과 뼈가 구덩이 안을 가득 채울 것이다.
복면인들의 살수는 감쪽같이 지워진다.
누가 마공관을 급습했는지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힌다.
모든 게 끝났다.
자신 역시 곧 죽는다. 지금은 숙부를 끌어내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지만, 곧 저들도 숙부의 의중을 알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면 자신을 죽이고 떠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런 상황에서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숙부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숙부는 무림을 떠났다.
두 번 다시 검을 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피눈물을 쏟으며 애검(愛劍)을 분질렀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검, 검왕(劍王)의 검이 그렇게 부러졌다.
- …….
숙부, 검왕이 애검을 분지른 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어두운 침묵이다. 모두를 정말로 소름 끼치도록 무심한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떠나갔다.
그렇게 세상을 등진 분이 이만한 일로 다시 돌아올 리 있는가.
누미를 마인들에게 내던진다는 것은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놓겠다는 뜻이다.
누미는 죽는다.
그녀가 현명하다면 곤욕을 당하기 전에 혀를 깨물어 자진할 것이다. 능욕을 참는다고 해도 결국은 간살(姦殺) 당하게 될 것이니…… 목숨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누미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는다.
그녀는 충분히 현명하다. 이곳에 던져지는 순간, 자신의 운명을 읽을 것이다.
분한 것은 오늘의 일이 영원히 묻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마공관을 급습했다. 그리고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마공관이 초토화되었다.
누강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관주가 된다.
아니,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마공관이 무너졌는데 무능, 유능은 따져서 무엇하나. 걱정되는 것은 귀선부의 오늘 행동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을 거라는 점이다.
설혹 자신의 목숨이 붙어 있어서, 마공관을 급습한 자들이 귀선부 무인들이라고 백번을 말한들 소용없다. 귀선부에 마군이 있다는 말은 더더욱 할 수 없다.
정도 무림 제일문파를 자처하는 검성에, 그것도 최고 중심처에 마인이 있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마공관에서 벌어진 일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말해도 믿지 않는다.
탁탁! 탁!
복면인이 도화선 앞에서 부싯돌을 켰다.
‘숙부…… 후후!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숙부가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만에 그 이름을 듣게 되자 불현듯 보고 싶다는 생각이 치민다.
쾅! 꽈앙!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이 두 번 울렸다.
마고에서 첫 번째 폭음이 울리고, 시신을 던져 넣은 구덩이에서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한순간, 붉은 운무가 아침 안개처럼 피어났다.
누강은 혈무 사이로 점점 가라앉는 뿌연 먼지를 쳐다봤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마고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마고의 윗부분만 살짝 보인다.
그러나 결과는 익히 짐작된다.
“정확해!”
“하하! 현음자도 별거 아니네.”
복면인들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그들은 다시 마고 주변을 얼씬거렸다. 방금 전보다 훨씬 활기차게 움직이면서.
“끝내…….”
동굴에서는 대답이 없다.
“끝내!”
면사여인이 앙칼지게 고함을 질렀다.
동굴은 여전히 침묵한다.
“정말 날 어디까지 추락시킬 건데? 내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
“얼굴만 보자. 얼굴만 보여주면 갈게.”
“…….”
“호호! 호호호!”
여인이 가늘게 웃었다.
입으로 웃는 웃음이 아니다. 뱃속에서부터 스륵스륵 피어나는 웃음이다.
“나…… 끝까지 가보려고.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 어쨌든 해보려고.”
여인이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사박! 사박!
그녀가 가마를 향해 걸었다.
가마꾼들은 이미 가마 문을 열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여인이 가마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철저하게…… 부숴!”
“재고를!”
마군이라 지칭된 복면인이 강하게 말했다.
“넌 아무 권한도 없어. 그러니 더 이상 재고니 어쩌니 말하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여인의 마지막 말은 굉장히 차분했다. 흔들리지 않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복면인의 눈에서 붉은 혈광(血光)이 솟구쳤다.
섬뜩하다. 소름이 쫘악 끼친다.
면사여인이 있을 때, 복면인은 다른 복면인과 다르지 않았다. 특출한 기도(氣道)가 보이지 않았다.
면사여인이 가마를 타고 사라지자, 복면인의 전신에서 혈광이 피어난다.
마군 도군악이 무림을 활보할 때 펼쳤다는 혈무기(血霧氣)다.
“음! 검왕…….”
그가 동굴을 노려보면서 가는 신음을 흘렸다.
검왕은 검을 쓰는 모든 무인들의 공동 표적이다. 검을 쓴다는 사람치고 검왕과 겨뤄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마군도 그렇다.
그런 심정을 읽었음인가? 복면인 중에 한 명이 말했다.
“들어가 볼까요?”
“네가?”
“네. 위험하다 싶으면 즉시 물러서면 되니까요.”
“후후! 이령이나 되니 그나마 발길을 들여놓은 것이다. 너라면 저곳에 발을 딛는 순간 즉사한다.”
마군이 동굴 입구에 서 있는 금석(禁石)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돌에 ‘진입자사(進入者死)’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분명히 무림 은거고인이 남기는 경고다.
“그래도 들어가 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
말을 꺼냈던 복면인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리만 긁적거렸다.
마군은 그 모습에 피식 웃어버렸다.
면사여인이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 힘으로 뭉개버릴 수 있는 곳이라면 진작 했다. 결코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게다.
마군이 싸늘하게 말했다.
“부수기나 해라!”
복면인들은 마고를 아주 쉽게 요리했다.
그들은 폭약만 쓴 게 아니다. 여러 명이 분주하게 좁은 구멍을 들락거리면서 기관을 해체해 나갔다.
그 모습이 매우 질서정연하다.
‘알고 왔다!’
누강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복면인들이 마고를 파해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저들은 이미 파해도를 마련했다.
마고 안에 어떤 기관진이 설치되었는지 안다.
어떻게 하면 자물쇠 없이, 어떤 수순으로 해체해 나갈지 안다.
마고가 해체되고, 마서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때…… 멀리…… 십리사로 쪽에서 무인 너덧 명이 치달려 왔다.
다른 때 같으면 일보일보가 죽음의 땅이 되었을 십리사로이건만 지금은 무풍지대를 거닐 듯 편하다.
쉬익! 쉬익! 쉬이익!
바람이 일렁인다 싶은 순간, 어깨에 여인을 들춰 멘 일단의 무리가 도착했다.
마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들은 미리 정해놨던 듯 여인을 망루 기둥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혼절해 있는 여인을 기둥에 꽁꽁 묶었다.
‘누미…….’
누강도 여인을 봤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애잔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면사여인이 한 말은 모두 사실이 되었다.
마서는 파헤쳐질 것이다. 마공관이 파해되었다는 소문이 흘러나갈 것이고, 마인들이 달려들 게다. 그리고 그중 누군가는 누미를 갈가리 찢어놓을 게다.
누강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은…… 그런다고 해서 숙부나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숙부는 누미를 잘 모른다. 면사여인이 누미에 대해 말한 것으로 봐서는…… 어쩌면 지금 처음 알았을지도 모른다.
숙부에게 누미는 길에서 만난 여인이나 다를 바 없다.
숙부는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해 있어도 나오지 않았다. 하물며 처음 보는 여인, 낯선 여인이 간살 당하는데 뭐가 애틋하다고 나올 것인가?
차라리 그것보다는 마공관 파해가 더 큰 충동일 텐데…….
마고에서 기관을 해체하던 복면인이 마군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두 번째 기관을 폭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