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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4화 (4/225)

# 4

第一章 출래파(出来吧)! [나와라!] (4)

음사는 귀식대법(龜息大法)을 준비했다.

그가 숨어든 곳은 커다란 바위 밑이다.

마공관에 도착한 바로 그 다음 날에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해서 만들어 두었다.

안에서는 바늘만 한 구멍으로 바깥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 육안으로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기에 귀식대법까지 펼쳐서 숨을 죽이고, 체온마저 떨어트리면 천시지청술(天視地聽術)을 펼쳐도 찾을 수 없다.

누강도 이곳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숨으라고 한 것이다.

‘후우우우웁!’

숨을 가늘고 길게 뿜어낸다.

숨을 흘리면서 몸에 깃든 탁기를 쏟아낸다. 급하게 토해내지 않는다. 누에에서 실을 뽑듯이 가늘고 길게 이어낸다.

더불어서 체온도 떨어트린다.

그는 점점 귀식대법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만약 이 상태에서 저들에게 발견된다면 아주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동면하던 뱀이 발각되었을 때, 어찌 되는지 봤는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죽을 것이다.

그렇기에 귀식대법은 일말의 의심조차 떨쳐버리고 자신 있게 펼쳐야 한다.

‘난 발각되지 않아!’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만이 제대로 된 귀식대법을 만들어 준다.

음사는 자신 있게 귀식대법을 펼쳤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발각되지 않은 자신의 은신술(隱身術)을 믿었다. 그런데!

‘웃!’

편안한 마음으로 귀식대법을 펼치던 그의 눈이 귀신을 본 사람처럼 부릅떠졌다.

복면인이 새빨간 고양이를 들고 나타났다.

‘저, 저건 사향혈묘(麝香血猫)!’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그였지만, 사향혈묘를 보자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사향혈묘는 영물이다. 남만(南蠻) 밀림에서 살아남은 맹수이기도 하다. 한낱 고양이를 보고 맹수라고 하면 웃기는 말처럼 들릴 것이다. 허나 사향혈묘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원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다.

사향혈묘는 냄새를 무척 잘 맡아서 모든 은자(隱者)들에게 천적으로 여겨진다.

사람 냄새라면 천 리 밖에서는 맡아 낸다는 놈.

사향 냄새를 풍기면서 숨은 자를 귀신처럼 찾아내는 놈.

‘틀렸군.’

음사는 사향혈묘를 보는 순간, 숨기를 포기했다.

사향혈묘 앞에서는 은신술도 필요 없다. 바위 밑이 아니라 땅속 깊이 숨어있어도 발각된다. 그럴 바에는 제대로 된 몸으로 검이나 쓰고 죽는 게 낫다.

스으으으으읏!

그는 진기를 이끌어 귀식대법을 풀기 시작했다.

“흐흐! 역시 이놈은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니까.”

사향혈묘를 껴안고 있는 자가 느물느물 웃으면서 말했다.

음사는 숨은 곳에서 제 발로 기어 나왔다. 그리고 복면인들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의 최대 무공은 은신술이다.

잘 숨고, 숨어서 이동하고, 정신을 분산시킨 후에 급습한다.

그는 정통무인이 아니다. 정통무인을 자처한 적도 없다. 그는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 검을 사용한다. 결코 이기기 위해서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수법들이 사향혈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제가 할까요?”

복면인 중에 한 명이 말했다.

누강을 죽인 복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사 앞에 나선 자는 구환도(九環刀)를 사용한다. 대도(大刀) 도배(刀背)에 큰 고리를 아홉 개나 달아놔서 움직일 때마다 쩔렁쩔렁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신경을 자극한다.

음사는 검을 들어 올렸다.

누강은 절공 십오참쾌를 싹수 있다고 생각되는 후인에게는 아낌없이 전수했다.

음사도 생각만 있었다면 십오참쾌를 전수 받을 수 있었다.

허나 그는 전수 받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누강을 넘어서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철저하게 누강의 복심으로 살아갈 생각이었다. 죽는 날까지.

그래서 광가십육검(廣家十六劍)을 고집한다.

검을 잡은 손이 옆으로 들렸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살짝 눕혔다.

그 모습을 보고 복면인이 말했다.

“광가십육검인가?”

음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는 이 순간, 너무 놀라서 눈만 부릅떴다.

“으음…….”

누강이 미약한 신음을 쏟아낸다.

일검에 즉사한 줄 알았던 누강이…… 당주가…… 아직 살아있다.

그와 마주 선 복면인이 음사의 눈길을 따라가서 누강을 쳐다봤다. 그리고 음사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아직 살아있어서 놀랐나?”

“…….”

“누 당주는 죽는다. 이건 불변이야. 다만 지금 죽을 때가 아닌 것뿐이지.”

그때, 복면인의 등 뒤에서 싸늘한 일갈이 쏟아졌다.

“말이 많다!”

누강을 벤 복면인이 눈에 한기를 담고 쏘아본다.

구환도를 든 복면인은 아주 짧은 순간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도 자신이 실수했다는 점을 깨달은 듯했다.

스읏!

즉시 구환도가 쳐들렸다. 촌각의 여유도 주지 않고 음사를 향해 쏘아왔다.

파앗!

음사도 반사적으로 따라서 움직였다.

깡깡! 깡깡깡! 깡깡!

구환도와 검이 맞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구환도는 수림을 집어삼키는 광풍처럼 움직였다. 구환도에서 쏟아지는 기세가 무척 거세서 어지간한 힘으로는 맞부딪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음사는 거침없이 부딪쳤다.

원래 광가십육검은 패검(覇劍)이다. 힘을 위주로 하는 초식을 펼치는 강검(剛劍)이다. 음사가 음유를 택하면서 은밀하고 조용해졌을 뿐, 본질은 강력한 파괴다.

“하하! 좋군!”

구환도를 든 자가 호쾌하게 웃었다.

음사도 상대의 무공을 알아냈다.

“태황도마(太皇刀魔)! 네놈이 어찌!”

음사가 노갈을 내질렀다.

마군 쌍첨수괴 도군악도 이 땅을 밟아서는 안 될 자다. 이 땅에서 숨도 쉬어서는 안 된다. 태황도마도 마찬가지다. 십리사로 안으로는 한 걸음도 들어설 수 없는 자다.

어찌 마서가 소장된 땅을 마인이 짓밟는단 말인가.

“그래도 보는 눈은 있군. 오랜만에 써보는 무공인데 단숨에 알아보다니. 키키!”

태황도마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도초를 변화시켰다. 순간,

우르르릉!

마른하늘에 번개가 친다. 구환도가 움직일 때마다 뇌성벽력이 일어난다.

일신의 모든 진기를 한 점, 도신(刀身)에 모아 터트린다. 뇌정결도(雷霆決刀)!

음사는 즉시 신형을 뒤로 빼냈다.

그가 가진 병기, 검으로는 뇌정결도를 받아낼 수 없다. 구환도가 부딪치는 순간, 애병은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리고 구환도는 여세를 몰아 육신을 양단낼 게다. 헌데!

푹!

신형을 뒤로 쭉 뽑아내던 음사가 또다시 눈을 부릅떴다.

등 뒤에서부터 복부까지…… 화끈한 통증이 느껴진다. 등과 배 전체가 불에 덴 듯 뜨겁다.

그는 고개를 내려 배를 쳐다봤다.

굵직한 창 한 자루가 붉은 피를 묻힌 채 삐죽 솟아 나와 있다.

등 뒤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무리 급하다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면 안 되지.”

‘이 창……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는데…….’

“야, 이놈은 내 거라고 했잖아!”

“시간을 너무 끌었어.”

“그래서 가로챘다는 거야?”

“가로챈 게 아니라 이놈이 내 영역으로 들어왔다니까.”

“하!”

“하하! 나중에 내 거 하나 가로채라. 하하!”

복면인들이 음사를 가운데 두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음사는 무릎을 털썩 꿇었다. 두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 버티고 서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봤다. 눈길 하나!

‘당주!’

누강이 쳐다보고 있다. 쓰러진 몸을 일으켜 세우지는 못하지만 의식은 돌아왔는지 자신을 쳐다본다.

누강의 눈길에 애잔함이 흘러나온다.

음사는 그런 점을 의식해서 애써 밝게 웃었다. 기왕이면 활짝!

쿵!

그가 무너졌다.

복면인이 누강의 멱살을 움켜잡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누강은 두 발을 딛고 활보하던 자신의 땅을 육신으로 훑으며 질질 끌려갔다.

복면인은 누강을 들어 올려 삼면 절벽 중 한 곳으로 집어 던졌다.

쿵!

누강은 절벽에 부딪히며 다시 혼절했다.

그가 의식을 다시 찾았을 때, 세상은 해가 떨어져서 캄캄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복면인들이 군데군데 횃불을 밝혀놔서 사위를 둘러보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앞쪽으로는 복면인들이 빙 둘러 서 있다.

그를 스쳐 지나갔던 가마도 보이고, 가마꾼도 보인다. 그들은 복면인들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등 뒤로 절벽의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가마도 복면인들도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저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자신은 왜 살려둔 것일까?

의문이 고개를 쳐드는 순간…… 누강은 또다시 혼절했다. 마군에게 베인 상처는 즉사하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깊었다.

“얼굴만 보여줘.”

“…….”

“누 당주를 살려줄 생각이야. 마공관이 파괴되고, 마서가 없어질 텐데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잖아.”

“…….”

“나와. 나오기만 하면 이 모든 일, 내가 책임질게.”

“…….”

“나 독하게 마음먹고 왔다고 했잖아. 그냥 얼굴만 보여줘. 그러면 즉시 돌아간다니까.”

“…….”

“후후! 잔인한 사람. 내가 알기로 혈육이 이 사람뿐인 것 같은데, 이제는 혈육도 외면하겠다는 거야? 이러면 누 당주가 처참하게 찢겨져.”

면사 여인이 절벽 동굴을 향해 말했다.

그녀는 조용조용히 말했다. 허나 그녀의 음성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동굴에 틀어박혔다.

동굴에서는 아무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가마꾼들의 희롱소리가 들렸다.

“누 당주를 끔찍이 생각했는데, 이제는 누 당주도 버리네요. 흐흐!”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여기 틀어박힐 때는 세상 모든 인연을 다 끊은 거라니까.”

가마꾼들은 면사여인 앞에서 마군보다도 더 자유스럽게 말을 주고받았다.

“시끄러워.”

여인이 그들을 향해 매섭게 쏘아봤다. 그러자 가마꾼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여인이 동굴을 향해 고혹적인 웃음을 던지면서 말했다.

“당신 마음 알았어. 사실 내가 이럴 것, 눈치챘지? 아마도 누 당주가 이곳에 던져졌을 때 눈치챘을 거야. 그동안 오죽 마음 준비를 했겠어. 내가 그런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해?”

“…….”

“어제 말했잖아. 나 독하게 마음먹고 왔다고. 벌써 이 말 세 번째네? 내게 비장의 수가 있어. 누 당주에게 딸이 있다는 거 알아? 그건 몰랐지? 있어. 믿어.”

“…….”

“내가 어떻게 할지 차근차근히 말해줄까? 먼저 이곳을 파해할 거야. 마서를 세상에 꺼내놓고 마인들에게 소문낼 거야. 마공관이 파괴됐다고. 그러면 이곳은 마인들 집합처가 될 거야. 마두 백여 명 정도 모이는데 하루 정도면 될걸? 누 당주의 딸을 그들에게 던질 거야. 그 여자, 꽤 예쁜 편이니까 괜찮은 대접 받을걸? 마지막으로 말할게. 얼굴만 보여줘.”

“…….”

동굴은 여전히 조용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수, 숙부!’

누강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혼절한 와중에 여인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숙부! 숙부가 살아있었구나!

그는 자신이 이곳에 좌천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면 그렇지. 멀쩡했던 녹림검왕이 그토록 갑자기 자살할 리가 있나. 아내를 죽이고도 실실 웃던 놈인데 뭐가 그리 죄스럽다고 자진까지 하나.

귀선부의 농간이었다.

아니, 괜찮다. 모두 괜찮다. 숙부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아무런 여한이 없다.

그는 여인이 하는 말을 모두 들었다.

여인이 누미(縷蘼)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다. 허나 존재가 발각되었으니 누미가 겪을 고통이 익히 짐작된다.

마두들에게 던져진 여자.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후후후!’

그는 절반은 빠져나간 혼백을 간신히 붙잡으면서 피식피식 웃었다.

웃음을 흘릴 상황이 아닌데,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귀선부라고 했나? 이령? 마군도 있었고…… 음사를 공격한 자는 태황도마, 음사를 죽인 자는 백살마창(百殺魔槍)…… 또 어떤 놈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숙부를 건드렸다면 너희 모두 죽는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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