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第一章 출래파(出来吧)! [나와라!] (3)
“웃! 음사님, 저, 저, 저기!”
“봤다.”
음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싸늘하게 말했다.
“경종을…….”
원래 망루에서 번을 서기로 되어 있던 무인이 음사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허나 이 순간, 음사는 이미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수하 무인에게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뎅뎅뎅뎅뎅뎅!
좁은 협곡에 경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기관진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중이다. 티끌만 한 허점이라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본다.
마공관 안에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기관진이 설치되어 있었다니!
도대체 가마가 어디로 사라졌을까? 기관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출입구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누강을 쫓아서 처음 마공관을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주변을 살피는 것이었다.
십리사로를 구석구석 살폈다.
삼면 절벽도 살폈다. 마공관을 빙 돌아서 정말로 호곡 위로 올라갈 수 없는지, 호곡을 둘러싼 삼면 절벽을 살필 수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두들겨 봤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절벽을 따라가면서 혹여 있을 지도 모를 틈바구니를 찾았다.
쥐가 들락거리는 쥐구멍조차도 알고 있어야 한다.
마공관 전체를 살피는데 두 달이 소요되었다.
한눈에 쓱 훑어봐도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공간을 그야말로 이 잡듯이 뒤졌다.
헌데도 마공관 최고 중심부에, 그것도 가마를 맨 장한 네 명이 사라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자존심 상하지 않나.
헌데 더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이제는 기문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가마꾼들이 사라진 지점도 안다. 그런데도 흔적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절벽을 세밀히 훑어봤지만 감지되는 것이 없다.
귀신이 곡할 정도로 감쪽같다.
이 기관진학은 누구의 작품인가?
귀선부가 이용하고 있으니 검성 수뇌부들은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되고…….
역시 현음자의 작품이다.
가마꾼이 사라진 기관진도 오 겹 마공관처럼 아는 사람만 출입을 허용하는 지상 최고의 금제구역이다.
그런데…… 기관진 안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저들은 사라진 가마꾼이 아니다. 가마 같은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난생처음 보는 놈들…… 숫자도 많고…… 검은색 경장에 검은 복면까지 했다.
틀림없이 싸우려고 온 놈들이다.
선자불래(善者不來)요 내자불선(來者不善)이라.
복면을 하고 떼거리로 우르르 달려드는 놈들치고 좋은 뜻으로 오는 놈이 있던가.
답답한 것은…… 음사가 경종을 울리는 것 같은 하찮은 일을 수하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한 것은……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으면서도 서둘지 않고 천천히 다가서는 복면인들에게서 황야의 늑대 같은 흉폭함을 읽었기 때문이다.
오늘 피가 튄다.
오늘 많은 사람이 죽는다.
아직 저들이 누군지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 자들인지 모른다. 기관진 안에서 튀어나왔으니 귀선부 무인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그렇다면 싸울 일은 없다. 가마처럼 저들도 이곳을 통과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싸움을 말하기에는 이르다.
그래도 음사는 피비린내를 맡았다. 느꼈다. 그래서 최후의 말일지도 모를 말을 옆에 있는 수하에게 남겼다.
“최선을 다해라. 네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라.”
“누구…… 컥!”
복면인이 다짜고짜 검광을 흩뿌렸다.
복면인 앞을 막아섰던 마공관 무인은 말도 채 끝맺지 못하고 풀썩 꼬꾸라졌다.
쓰러진 몸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 땅을 적셨다.
“엇! 저놈들!”
“저, 저놈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마공관 무인들은 느닷없는 경종 소리와 피바람에 당황했다. 하지만 허둥대지는 않았다. 그들은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고, 질서정연하게 검진(劍陣)을 갖췄다.
“이놈들…… 기민해졌네. 이런 놈들이 아니었는데. 대가리가 바뀌었다고 이렇게 달라지나?”
“이놈들이 바뀐 걸 보니까 누 당주가 더 아까워지는군.”
“어쩔 수 없지.”
복면인들은 마공관 무인들의 쾌속한 움직임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두렵기는커녕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는 듯 흥겨워 보였다. 그때,
슈우우웃!
저 멀리…… 십리사로 초입 부근에서 마공관 무인들이 사용하지 않는 낯선 폭죽이 솟구쳤다.
폭죽 소리가 전혀 다르다. 마공관의 폭죽은 날카로운 소성(簫聲)을 흘리는데, 지금 솟아오르는 폭죽은 약간 혼탁한 탁성(濁聲)을 흘린다. 폭죽이 마공관 것보다 무겁다는 뜻이다.
퍼엉!
폭죽이 터졌다. 진갈색…… 마공관에서 전혀 쓰지 않는 색이다. 폭죽 모양은 응축된 공이 터질 때처럼 사방으로 비산한다. 우산처럼 곱게 흘러내리는 마공관 것과 전혀 다르다.
복면인 중에 한 명이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입구는 틀어막았다. 이 안에 있는 자들은 서른한 명. 실수 없이 처리해라.”
“숨어라.”
“당주님!”
“저들…… 귀선부 정예다. 상대가 안 된다.”
“훗! 당주님 답지 않으신 말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갈(喝)!”
누강이 노한 표정으로 일갈을 터트렸다. 허나 다시 말을 이었을 때, 그의 음성은 어느 때보다도 차분했다.
“귀선부에서 왜 우릴 공격하는지 모르겠다만…… 아마도 아까 기관진 안으로 들어간 이령과 연관이 있겠지. 할 수 있다면 이유를 캐봐라.”
“그런 이유로 숨으라고 하시면 당주님이 빠져나가십시오. 뒤는 제가 막겠습니다.”
“후후! 빠져나가는 것은 쉬운 일인 줄 아나?”
“…….”
음사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당주 말이 맞다.
귀선부가 마공관을 친다.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
마공관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마공관 자체가 난공불락이지만, 검성이 검을 빼 들면 뼈조차 추리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 못한다.
그런 곳을 검성 귀선부가 공격하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나.
저들이 바깥쪽에서 공격해 왔다면 마공관도 지금처럼 쉽게 농락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삼면 절벽은 검성 성주도 들어서지 못한다.
십리사로는 일당백의 절지(絶地)다. 한 사람이 막아서면 능히 백 명을 감당할 수 있다.
물론 마공관 무인들은 무공이 높지 않다. 한직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인데 무공이 높으면 얼마나 높겠나. 마공관 무인들끼리는 하는 농담이 있다. 곳간에 보리 석 되만 있어도 마공관 지킴이는 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마공관은 그런 무공만으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다. 마공관은 무공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절진으로 지키는 것이기에 진을 운용할 사람만 있으면 된다.
지금은 철저히 허를 찔렸다.
바깥에서 쳐들어오지 않고 안에서 치고 나온다면 막을 방도가 없다.
마공관을 만든 현음자도 지금 일어나는 이런 개 같은 경우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귀선부 복면인들은 철저하게 준비하고 왔다.
마공관 초입에 있는 경계 무인부터 척살해서 입구를 틀어막은 게 바로 그 증거다.
저들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도 명확하다. 멸살!
오늘, 마공관 모든 무인들이 죽는다. 관주 누강을 비롯해서 모든 무인들이.
음사가 도망치고자 한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숱하게 살인을 저지른 귀선부 망나니들이 목표물을 놓치는 실수를 할까?
“케엑!”
“커억!”
마공관 무인들이 썩은 짚단처럼 베어진다.
복면인 삼십여 명은 하나같이 고수들이다. 저들 중 대여섯 명은 음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거기에 비하면 마공관 무인들은 누강이 부임한 이래로 지옥 같은 수련을 거쳐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어린애처럼 보인다.
쉬익! 커억!
검이 흐르면 피가 튄다.
복면인들은 너무 많이 왔다. 저 정도의 무공이라면 강한 자들 대여섯 명만 왔어도 된다. 그 정도만 왔어도 마공관을 초토화시키기에 충분하다.
바깥에서 공격해 온다면 저들 전부가 최고수라도 어림없지만, 안에서 급습한다면 넘치고도 넘친다.
“숨어라. 할 수 있다면 저놈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봐라.”
누강이 재차 말했다.
음사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가 아는 누강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든 마공관을 지켜내라고 할 사람이다. 맡은 일은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면서.
임무를 입 밖에도 내지 않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절망스럽기 때문일 게다.
음사도 상황을 읽는다.
그렇다. 절망스럽다. 너무 절망스러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누강은 마지막 인사도 받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다, 당주님! 당주님!’
음사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절규를 목구멍 안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지금부터 자신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저들 손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아니, 우선은 숨어서 지켜봐야 한다. 잘 숨느냐 발각되느냐 하는 첫 싸움이 시작된 게다.
숨는 것? 자신 있다! 음사! 그늘진 곳, 어둑한 곳, 음습한 곳에서 죽음을 선물하는 음사가 아닌가!
“귀선부인가?”
“짐작에 맡기겠소.”
“귀선부가 마공관을 치는 이유는 뭔가?”
“당주, 그만합시다.”
복면인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문답(問答)이 무슨 소용인가. 할 말도 없고, 들을 말도 없다. 너도나도 검 한 자루에 목숨을 건 무인이니…… 지금은 오로지 검으로 말할 때다.
“후후!”
누강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복면인들의 목적은 멸살이다.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온 자들이다. 그러면서도 복면을 했다. 혹시 있을 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한 게다.
그만큼 철두철미한 자들이 물음에 답하겠나.
스읏!
누강이 검을 겨눴다.
십오참쾌는 번개로 비유된다. 순간적으로 번쩍! 빛 한 번 몰아치고는 사라진다. 그러나 번개가 치기 전에는 마치 세상에 없는 듯 고요하다.
스릉! 척!
복면인도 검을 꺼내 기수식(起手式)을 취했다.
그는 쌍검이다. 우검(右劍)은 하늘로 향하고, 좌검(左劍)은 땅으로 늘어트렸다. 쌍검을 쓰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수식, 천지관일(天地貫一)이다.
조용하다. 조용하다. 고요한 적막이 두 사람을 휘감는다.
살육은 이미 끝났다. 누강이 복면인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동안 마공관 무인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시신에서 쏟아진 피 냄새가 지독한 비린내가 되어서 번져나간다.
확실히 이들은 불필요하게 많이 왔다. 아무리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한다고 해도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이다. 음사와 비견되는 고수가 서른이라니.
쒜엑! 까앙!
어느 한순간, 누강이 번뜩 움직였다.
그는 어느새 복면인을 지나쳐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수평으로 들린 검은 땅을 향해 그어져 있다.
복면인은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천지로 갈라져 있던 검이 우검은 전면을 향해 있고, 좌검은 크게 휘둘러져 오른쪽 어깨 뒤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쇳소리도 울렸다.
누강이 복면인을 스쳐 지날 때 망치로 철판을 후려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쌍…… 첨수괴(劍尖手怪)…… 도군악(塗珺鄂)인가? 네가 어떻게 귀선부에……?”
누강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귀선부가 마공관을 급습했다. 이 말을 믿으란 말인가!
마군(魔君)이라고 불리던 마도(魔道)의 절정검객 쌍첨수괴 도군악이 귀선부에 있다. 이 말을 믿으란 말인가!
복면인이 쌍검을 거두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 검도 무뎌졌군. 숨이 두 호흡이나 길어졌잖아.”
두 호흡…… 누강이 몇 마디 말을 한 시간이다.
누강은 복면인의 첫 마디, ‘내 검’이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복면인이 말하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의 육신은 밑동 잘린 통나무처럼 넘어졌다.
쿵!
검성의 일류고수였던 누강이 쓰러졌다.
‘쌍, 쌍, 쌍첨수괴 도군악!’
음사는 누강이 하는 말을 들었다.
사실, 누강은 마지막으로 혼신을 다해서 한 마디를 했는데 복면인에게 말한 게 아니다.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자신의 복심, 음사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다.
복면인은 마군 쌍첨수괴 도군악이다. 너는 절대로 상대가 안 된다. 허니 죽을힘을 다해서 숨어라.
사실이 그렇다.
상대는커녕 숨는 것이나 제대로 해낼지 모르겠다.
마군이 어떻게 귀선부에 있을까?
귀선부가 왜 마공관을 무너트린 것일까?
저 기문진은 언제부터 존재했나?
기문진 안으로 들어간 여인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이들은 언제부터 저 속에 있었나?
의문이 정녕 많다. 그러나 음사는 그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지금은 오직 한 가지 일, 숨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음사가 숨어버렸군요. 나머지는 모두 정리했습니다.”
음사의 귓가에 저들의 음성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