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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96화 (196/200)

기공술사 196화

“역시나 네놈이 소중히 여기는 노인이 맞나보군.”

천마가 마충을 들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천애랑은 마충을 구하기 위해 곧장 신형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천마가 마충의 목을 틀어쥐자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당장 이 늙은이의 목을 비틀어주지.”

“…….”

“크크큭.”

협박이 통하자 천마는 낮게 웃었다.

천애랑은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러곤 부동심을 떠올리며 천천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마음을 진정시킨 천애랑은 덤덤하게 말했다.

“천하의 천마가 인질을 잡아 협박을 해?”

천마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천애랑의 말처럼 천마는 누군가를 인질잡거나 협박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누군가를 처절하게 상대할 필요도 없는 게 첫째요, 천마신교 교주인 천마의 위신이 둘째의 이유였다.

하지만 천마가 이렇게까지 행동한 이유가 있었다.

“본좌가 살면서 가장 신경이 거슬리는 녀석들이 누구인지 아나?”

“…….”

“기공가문. 네놈들이다.”

과거 기공가문과의 전투를 떠올린 천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교의 교주가 되기 전에도, 교주가 된 후에도 그에게 그런 패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천마에게 그날의 기억은 꿈에서라도 지우고 싶은 치욕이었다.

그런 천마에게 있어 천애랑은 치욕의 잔재였다.

그래서 천마는 천애랑을 확실하게 죽임으로써 기공가와의 악연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부상까지 당했었다. 심지어 죽지 않고 살아난 천애랑의 도발까지 이어진 상황.

이는 천마에게 있어 치욕의 잔재 위에 자존심마저 깊게 구겨진 셈이었다.

“고민했다. 단순히 네놈을 죽여서 과연 본좌의 심기를 달랠 수 있을지를.”

“…….”

마충의 안위 때문에 천애랑은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천마의 말을 들었다.

천마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깟 것을 죽인다고 이 심기가 달래질 것 같지 않더군. 그래서 생각했다.”

천마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제는 가족이라고는 없는 네 녀석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으득.

천애랑은 피가 나도록 이를 악 다물었다. 그 모습에 천마가 즐거운 듯 낮게 웃었다.

“그래. 네놈의 여러 인연들 중 의각원이라는 데가 가장 깊어 보이더군.”

“그래서 납치를 했다……?”

살기가 느껴지는 천애랑의 말에 천마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찾느라 고생했다. 네 녀석들의 장단에 맞춰 이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온 천하를 뒤지고서야 간신히 찾았으니까.”

천마의 말을 조용히 듣던 제갈청은 탄식을 했다.

‘아아. 마교가 전면전을 선택해 우리처럼 전력을 모으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신룡대주나 무림맹이 다른 곳에 신경을 못 쓰게 하려고. 패착이다. 나의 패착이야.’

천애랑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날 협박해 어쩌겠다는 거지?”

천마가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꿇어라. 당장 내게 머리를 조아리고 네놈의 두 팔을 잘라라. 그렇게 한다면 이 노인네를 살려주마.”

“……그러지 말거라.”

기절한 줄 알았던 마충의 입에서 힘겨운 목소리가 나왔다.

“할아버지!”

천애랑이 놀라 소리치니 마충이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천마의 뜻에 따르지 말라는 의미였다.

고통스러워하는 마충과 천애랑의 모습들에 천마가 앙천대소를 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그의 웃음에 따라 천지가 진동했다.

“크으윽.”

“끄윽.”

인근의 무인들은 음공이라도 당한 듯 황급히 내공으로 귀를 막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한참을 웃던 천마가 천애랑을 재촉했다.

“왜? 못하겠나?”

말과 함께 천마의 손이 마충의 목을 강하게 쥐었다.

“끄어어억.”

목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마충이 버둥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천애랑이 분노 가득한 사자후를 터트렸다.

“천마아아아아!”

콰과과과광!

기함할 기파에 갈라지던 땅이 천마의 앞에서 멈췄다.

천마가 막은 것이 아니었다. 천애랑이 순간적으로 기를 제어해 멈춘 거였다.

천마가 웃었다.

“그래. 조심해야지. 네놈의 소중한 사람이 네놈의 공격에 죽으면 어떡하려고?”

“커허억!”

천마가 손에 힘을 풀자 마충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쯧쯧. 소중하다면서 대신 희생은 하지 못하는 위선이 정파의 잡것들과 비슷하군.”

천마의 비아냥에 천애랑의 두 눈에 핏발이 가득 섰다.

천마는 천애랑의 고통을 즐기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소교주 찬호가 있는 곳이었다.

압도적인 위엄과 함부로 나서기 어려운 분위기에 정파무인들이 절로 뒷걸음질을 치며 길을 비켰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찬호가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그래. 내 소교주를 오랜만에 보는군. 그새 꽤 성장을 했구나.”

“교주님의 하해와 같은 지원과 이해 덕분입니다.”

찬호의 겸양에 천마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걸 잘 아는 녀석이 그런 짓을 하나?”

“……무슨 말씀이신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찬호는 갑작스런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촤악!

천마의 손날이 휘둘러지자 찬호의 왼팔이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

예상외의 행동에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던 장내의 모두가 놀란 눈을 했다.

소교주를 호위하던 마교 무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엉거주춤 자세를 들썩였다.

촤차차차착!

천마의 손이 움직이자 엉거주춤 들썩이던 소교주의 호위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건방지게 본좌의 행사에 불순한 움직임을 보이다니. 이는 마땅히 즉결참형의 이유다. 그렇지 않나 소교주.”

천마는 찬호를 보며 물었다. 찬호는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팔을 지혈하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순순한 찬호의 태도에 천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지혈을 하거라. 그래도 본교의 소교주가 검조차 제대로 못 잡으면 안 되니 신경을 썼다.”

“감사합니다.”

“만약 한 번 더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면 더 이상 본좌의 배려는 없을 것이다.”

천마의 시선을 따라간 찬호는 그 끝에 송소걸이 있는 것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찬호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찬호를 바라보는 천애랑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천마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는 천애랑이기에 천마의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를 살리다…….’

과다출혈로 창백해진 찬호의 모습이 눈에 깊게 박혀왔다.

이어 천애랑의 시선에 마충의 모습이 들어왔다.

“……!”

마충의 얼굴에 검붉은 핏발이 가득 섰다. 이는 사혈을 찍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내공으로 사혈을!’

천마가 찬호와 대화하며 만들어진 잠시의 틈을 마충이 노린 듯했다.

천애랑은 마충의 입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

‘미… 안… 하… 다?’

이어 마충의 두 눈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러곤 마충의 신형이 축 늘어졌다.

“할아버지…….”

천애랑이 낮게 읊조렸다.

부모와 같은 존재인 천단호 할아버지의 생전 지우이자 새롭게 가족이 된 마충.

천애랑에 있어서 마충은 천단호와 마찬가지로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눈앞에서 자결하는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일깨웠다.

슬픔이 폭풍처럼 찾아올수록 천애랑의 두 눈은 더욱 차갑고 깊어졌다.

“천마아아아아!”

천애랑이 포효하자 좀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다시 한 번 마인들과 정파무인들이 허겁지겁 거리를 벌렸다.

“형님…….”

송소걸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천애랑을 부르자 천애랑은 차갑게 말했다. 그 대상은 근처에 있던 설동이었다.

“설동! 당장 소걸이와 사람들을 물려라. 명령이다.”

“충!”

천애랑의 분위기에 압도된 설동은 장난기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어 천애랑은 천마에게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천애랑의 일보마다 거대한 내기가 대지의 결에 흘러들어갔다.

“쯧. 모양 빠지게 되었군.”

천마가 혀를 찼다. 천애랑을 농락하려 생전 처음 인질이란 걸 잡았건만 싱겁게 돼버렸다.

천마는 마충을 대충 던지고는 천애랑에게 신형을 날렸다.

이에 천애랑은 크게 진각을 밟았다.

토룡승천(土龍昇天).

대지의 결에 꾹꾹 담아놨던 내기가 단숨에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화산이라도 폭발한 듯한 광경에 자리를 피하지 않던 사람들이 휩쓸렸다.

“가, 가세.”

후퇴하라는 설동의 말을 무시하던 무림맹의 중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급히 후퇴를 했다.

천애랑은 천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토룡유운(土龍流雲).

비산한 땅거죽들이 천애랑의 손짓에 따라 용의 형상이 되었다. 그러곤 천마를 향해 쏘아졌다.

천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용을 보며 주먹을 뻗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파천멸겁(破天滅劫).

모든 마기의 최상위에 위치한 천마신공. 그러한 천마신공의 마기가 천애랑이 만든 토룡을 향해 쏘아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앙!

거대한 충돌에 모래먼지가 흐드러졌다 사라졌다.

천애랑의 신형을 찾아 고개를 돌리던 천마는 미간을 좁혔다. 찰나의 순간에 천애랑이 마충의 시신을 챙겨 거리를 벌리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건방진……!”

천마의 신형이 사라졌다.

설동에게 마충을 넘긴 천애랑도 다가오는 천마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궁극에 이른 두 사람의 공격이 맞부딪혔다.

뇌룡강림(雷龍降臨). 광역(廣域).

천살만화장(天殺萬化掌). 만개(滿開).

대상을 지정하지 않은 무차별적인 낙뢰가 천애랑의 주변을 지배했다.

이에 맞서 붉게 달아오른 천마의 손바닥이 공간을 가득 매웠다.

낙뢰와 붉은 손바닥이 마구잡이로 충돌했다.

파가각! 콰광! 파가가가각! 콰아앙!

“고작 이 정도로 되겠더냐!”

천마의 두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천마현신(天魔現身). 절대영역(絶對領域).

천마신공 파천멸겁으로 사방에 흩뿌려졌던 마기가 빠르게 모여들었다. 그러곤 일전의 전투에서처럼 천애랑을 강하게 붙잡았다.

“학습능력이 떨어지는구나.”

일전처럼 승기를 잡았다 여긴 천마가 낮게 웃었다.

“이번엔 확실히 죽여주마.”

천마현신에 따라 거대하게 유형화된 마신의 손바닥이 천애랑을 향해 휘둘러졌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천애랑은 침착하게 몸을 압박하는 마기를 보았다.

순리를 따르는 일반적인 기운이 아닌 역천의 흐름을 가진 마기이지만 이 또한 분명 자연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것.

‘그래. 이것 또한 자연의 기운이라.’

천애랑은 전신을 개방해 주변을 감싼 마기를 받아들였다.

흡성대법 같은 현상에 천마가 놀란 눈을 했다. 하지만 그는 천애랑이 객기를 부린다 생각했다.

“그대로 죽어라!”

거대한 마신의 손바닥이 천애랑을 짓눌렀다. 천마의 의도대로라면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마기 덩어리인 손바닥이 천애랑에게 닿기 전 흩어지며 천애랑의 주위를 맴돌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어력와 공격성을 잃은 마기들이 앞서처럼 천애랑에게 흡수된 것이다.

“어떻게……?”

지금의 상황은 모든 마(魔)의 종주이자 이러한 마기를 다루는 천마신교. 그곳의 교주이자 탈마의 경지에 오른 천마조차 듣도 보도 못한 경우였다.

천애랑은 내부를 관조했다.

‘집중해야 한다.’

천마의 마기를 흡수해 다루는 것은 거친 풍랑 위에서 배를 모는 것과도 같았다.

잠시라도 주의를 잃는다면 그대로 배가 전복될 상황이었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반개한 천애랑의 두 눈이 천마처럼 검게 물들었다. 이어 천애랑은 축지법으로 신형을 날려 천마의 몸을 붙잡았다.

이 모든 게 촌각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래봐야 달라진 건 없다!”

천마는 천마현신으로 천애랑을 밀쳐낸 후 반격하려 했다. 그러나 이내 천마는 당혹스런 상황을 마주했다.

‘마기가 안 움직여?’

탈마의 무인이 자신의 기운 하나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설마 이놈이……?’

천마는 모골이 송연해왔다.

과거 천석산 기공가주와의 전투에서 느꼈던 감각이 지금의 상황과 맞물려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은 천마 그에게 있어 하나의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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