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95화
“소교주다!”
정파무인들에게 있어 소교주 찬호의 등장은 위험보다 기회로 느껴졌다.
“마교의 소교주를 잡아라!”
“소교주를 잡아 정도무림의 정의를 높이 세우자!”
“소교주를 잡아라!”
“소교주를 잡는 이가 영웅이다!”
정파무인들은 소교주를 잡기 위해 득달같이 내달렸다.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우후죽순 덤비는 모습에 천애랑은 눈을 찌푸렸다.
‘설마 찬호를 얕보고 있는 건가.’
그간 찬호는 마교의 소교주로서 정파에게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천마의 폐관에 따라 교주 대행을 하고, 혈교를 멸하면서 잠시 존재를 드러낸 적이 전부였다.
이조차도 정보의 차단이 있었으니 정파에서 마교 소교주는 미지의 존재였다.
‘생각보다 젊다.’
소교주 찬호를 처음 본 정파무인들의 생각이었다.
무림에선 보이는 나이로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됨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교주를 잡으면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그리고 무림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탐욕이 정파무인들의 이지를 흐트러뜨렸다.
찬호를 바라보는 정파무인들의 눈이 이글거렸다.
“소교주님을 보호해라!”
찬호의 호위들이 찬호를 둘러쌌다. 그러나 찬호는 호위를 물렸다.
“되었다. 물러나라.”
찬호는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찬호와 정파무인들의 거리가 이 장까지 좁혀지는 순간.
찬호의 손이 천천히 검병에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전장에 바람이 불었다.
단일 세력으로 천하일통을 노리는 마교.
그곳의 소교주라는 직책은 단순히 혈연 따위로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찬호가 보여주었다.
사사사사사사삭!
찬호의 쾌검이 지나는 곳마다 정파 무인들이 쓰러졌다.
“커억!”
“무, 무슨…!”
“크윽!”
“소교주를…….”
찬호에게 달려들었던 정파무인 여럿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절로 주춤하게 만드는 대단한 무위였지만 무림맹의 입장에선 눈앞에 나타난 마교의 소교주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합격술을 펼쳐라! 반드시 소교주는 잡아야 한다!”
순식간에 찬호를 둘러싸고 정파무인들의 합격술이 펼쳐졌다.
“나서지 말라.”
호위들이 다시 찬호를 보호하려 했지만 찬호는 그들을 물리고 정파무인들을 향해 나아갔다.
쿠구구구구구!
찬호의 전신에서 기함할 마기가 하나의 파도가 되어 정파무인들을 향해 뻗어갔다.
마기의 파도에 휩쓸린 무인들이 경악을 했다.
“무슨 마기가!”
“크으윽! 흘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호신강기를 펼쳐라!”
이곳에 모인 이들은 나름 정파의 정예들이었지만 찬호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는 이들이 적었다.
순식간에 수십의 사상자들이 생겨나자 찬호를 바라보는 정파무인들의 눈동자에 작은 두려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멍청한 것들.”
그때, 남림야수왕 맹건이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마교의 소교주라고? 이왕 싸울 거라면 이런 약한 녀석들이 아니라 나처럼 강한 놈과 싸워야 하지 않겠냐.”
남림야수왕의 말에 찬호는 덤덤하게 마기를 끌어올렸다.
그 모습에 남림야수왕은 이가 드러나게 웃고선 크게 사자후를 뱉어냈다.
“흐아아아아아아!”
남림야수왕의 포효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남림야수왕의 몸에서 강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두 사람이 붙는다고?’
친분이 강한 두 사람의 격돌에 천애랑의 눈이 커졌다.
두 사람은 당금 무림에서 강함으로는 능히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인물들이다.
그러다보니 천애랑은 우려와 동시에 호기심이 들었다.
‘남림야수왕의 외공은 강기로도 쉬이 뚫을 수 없는 경지다. 그와 반대로 찬호의 쾌검은 무엇이든 베어버릴 수 있고.’
까아아아앙!
남림야수왕의 주먹과 찬호의 검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이를 시작으로 두 사람은 빠르게 공방을 주고받았다.
까아앙! 콰과과광!
거대한 기파의 영향력이 순식간에 주변을 초토화 시켰다.
“피, 피해라!”
“거리를 벌려라!”
정파무인들은 위험천만한 기파를 피해 거리를 벌렸다. 그와 반대로 찬호의 호위들은 자리를 지키며 찬호의 뒤에 시립해 있었다.
“소교주님을 두고 물러날 순 없다. 버텨라!”
호위들의 몸에 생채기가 생기고 피가 몸을 적셔도 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 기세에 정파무인들이 주춤했다.
‘역시 정파 무인들이 기세 측면에서 밀려.’
실력엔 그리 큰 차이가 없었으나 저런 작은 차이점들 때문에 정파가 유리함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천애랑은 혀를 차곤 찬호와 남림야수왕의 대결을 바라봤다.
‘흐음.’
하늘에 닿은 무공들의 향연에 절로 손이 움찔움찔 거렸다.
당장이라도 저 전장에 가득한 고수들을 상대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음에 천애랑은 한숨을 쉬며 인내심을 가졌다.
‘그런데 설동이랑 애들은 어디 갔지?’
천애랑의 시선이 의각원생들을 찾아 움직였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암흑마제와 붙어?’
암흑마제와 암흑마대의 압도적 무위에 고전하는 정파무인 사이로 의각원생들이 끼어들었다.
“으하하하하! 꼭 누구처럼 진지한 표정이 한 대 때려주고 싶게 생겼구나!”
설동의 외침이었다. 이에 추담이 맞장구를 쳤다.
“크하하! 말 한번 잘했다 설동아! 같이 때려주자! 춘석아! 너도 같이 가자!”
“흐아압!”
추나술의 달인인 춘석은 대답 대신 기합성과 함께 설동과 추담, 그리고 본인의 혈들을 두들겼다.
순식간에 근육과 혈관이 달궈지며 세 사람의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뿜어져 나왔다.
이어서 세 사람은 설동이 만든 약을 먹었다. 짧은 시간 모든 세맥을 자극시켜 일시적으로 내공감응력을 높이는 각성제였다.
세 사람은 가진 경지보다 더 높은 감각을 느꼈다.
“아아아아! 힘이 넘친다!”
“간드아아아!”
“아자아아아!”
설동, 추담, 춘석의 일격이 암흑마제를 향했다. 이를 보며 암흑마제는 인상을 썼다.
“건방진 것들.”
암흑마제의 검이 복잡한 궤적을 그리더니 세 사람이 움직이는 모든 방위를 잘랐다.
암흑마제의 성명절기이자 암흑종파를 지켜낸 절초였다.
암흑마제는 이 공격으로 세 사람을 떨궈내고 마저 학살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세 사람이 자신의 공격을 막은 것도 모자라 어느새 지척에 도달해왔기 때문이었다.
“아 씨! 아파라! 너도 이거나 먹고 아파봐라!”
설동이 품에서 꺼낸 가루를 터트리곤 풍기(風氣)를 이용해 암흑마제에게 날려 보냈다.
“흡!”
찰나 간 흡입한 정체 모를 가루에 암흑마제가 급히 호흡을 멈췄다. 그러곤 내공으로 몸 내부에 들어온 가루를 불태우려 했다.
이는 극독을 대처하는 가장 올바른 행동이긴 했다.
그러나 설동이 터트린 가루는 양귀비 가루를 특수하게 건조하고 조합한 일종의 마약이었다.
그리고 설동이 만든 마약이 발발하는 조건은 내공으로 불태웠을 때다.
“으히히히! 어떠냐 이놈아! 너처럼 진지한 누군가에게 써볼까 하고 몰래 개발한 비장의 수다!”
“크윽.”
암흑마제는 어찌할 겨를도 없이 혼미해지는 정신을 부여잡느라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따르는 암흑마대를 찾았다.
“이게 무슨…….”
암흑마제의 어질한 시선에 보인 것은 자신의 수하들이 모두 죽어있는 광경이었다.
수하들의 시체를 밟고 있는 것은 의원처럼 입은 십여 명의 인물들과 그 중심에 서 있는 두 명의 여인, 화란과 송소걸이었다.
“어휴. 화란 언니. 괜찮아요?”
“응. 고마워.”
“이놈들 암흑마대라고 마교에서 되게 강한 녀석들인데 무턱대고 파고 들면 어떡해요.”
송소걸의 걱정 어린 잔소리에 화란이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우리도 강하니까.”
“…….”
송소걸은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천애랑과 전장을 지켜보다가 위험해 보이는 의각원생들의 모습에 무심코 참전하긴 했지만 의각원생들은 분명 강했다.
절정과 초절정의 고수들이 대거 포진한 암흑마대를 사상자 없이 제압했으니까.
‘쥐 잡듯 갈구던 애랑 형님의 노고가 빛을 보긴 하는구나.’
너무 쥐 잡듯 해서 의각원생들이 다소 엉뚱하게 발전한 것 같았지만 뭐 어떤가 싶었다.
‘확실히 엉뚱하긴 하지.’
신체를 강화시키는 괴상한 방법들, 기공가의 심결과 어우러진 변칙적인 공격들, 정파의 입장에선 사이하거나 비겁하다고 꺼려할 마약이라는 수단도 거침없이 사용하는 이들이 의각원생이었다.
‘맹에서 아니꼽게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송소걸은 의각원생들에게 몰리는 정파의 시선을 걱정했다. 그러다 송소걸은 실소를 터트렸다.
‘내가 누굴 걱정하나. 그리고 이들에게 맹의 시선 따위가 중요하랴.’
만약 추후에라도 맹에서 의각원생들에게 어떤 질타라도 날린다면 천애랑이라는 큰 후폭풍이 임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 제 사람은 끔찍하게도 생각하는 애랑 형님이니까. 만약 황제가 따져들면 황제에게도 들이받겠지.’
송소걸이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위명이 자자한 암흑마제도 설동, 추담, 춘석에게 최후를 맞이했다.
***
전투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전장에 참여했던 이들의 6할이 쓰러질 만큼 처절한 전투의 연속이었다.
천애랑은 인상을 쓰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다 쓰러져 가는데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거지.’
천애랑은 안면이 있는 이들이 전장에서 쓰러질 때마다 당장이라도 참전하고 싶은 마음을 참기 어려웠다.
‘빙궁주도, 야수왕도, 당가주도, 심지어 화란도 쓰러졌는데!’
의각원생들의 개입으로 모두 죽기 전에 구출이 되었지만 부상들이 심각했다.
특히 찬호로부터 죽기 직전의 남림야수왕을 빼내던 화란이 큰 부상을 입은 상태다.
‘분명 야수왕이 나의 맹우이기에 구하고자 찬호의 지옥 같은 마기의 칼춤 속으로 뛰어든 거겠지.’
화란이 남림야수왕을 구한 이유가 천애랑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기에 천애랑의 마음은 더욱 타들어 갔다.
“신룡대주. 참아야 하네.”
천애랑의 분노를 읽고 제갈청이 다급히 천애랑을 다독였다.
“우리의 대의를 잊지 말아야 하네. 천마는 분명 이곳에 있네. 자네 또한 거의 확신하고 있지 않나. 저 전장(戰場) 너머의 진형에서 마지막까지 대기하고 있는 마인들의 정체를.”
으득.
천애랑은 이를 갈았다.
제갈청의 말마따나 마교 무인들이 대거 죽어나는데도 마교의 진형에 있는 소수의 전력은 마지막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호위하거나 기다리는 느낌의 행동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천애랑과 제갈청이 시선을 모으고 있는 마교의 진형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천애랑과 제갈청이 그토록 기다리던 천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갈청이 외쳤다.
“천마네! 드디어 천마가 나타났어!”
놀라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제갈청의 목소리가 천애랑의 귓가에 닿았지만 천애랑은 그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안력을 돋운 천애랑의 시선에 천마의 손에 잡힌 누군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천마의 손아귀엔 저항하지도 못하는 마충의 늙은 노구가 들려있었다.
“왜 마 할아버지가 여기에……?”
마충은 의각원의 진법 안에서 가솔들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드드드드드.
천애랑의 감정동요에 따라 대지가 흔들렸다. 또한 짙은 살기가 천애랑의 주위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크흐흠.”
제갈청이 숨이 턱턱 막혀오는 상황에 경악을 하며 천애랑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천애랑이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사라지며 순식간에 전장에 도착했다.
쿠구구구구구구.
천애랑을 중심으로 대지가 더욱 흔들리고 공기 또한 더욱 무거워졌다.
분노하는 천애랑에게로 천마의 신형이 귀신처럼 다가왔다.
천애랑과 천마라는 압도적인 존재감들 앞에서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천애랑은 믿기지 않은 눈으로 천마의 손아귀를 보았다. 의각원의 원주이자 개인적으로 할아버지라 부르는 마충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원주님!”
의각원생들도 마충을 알아보곤 경악성을 뱉었다.
느긋하게 전장의 분위기를 둘러보던 천마의 시선이 천애랑에게 꽂혔다. 이어 천마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