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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94화 (194/200)

기공술사 194화

남림야수왕 맹건과 북해빙궁주 설엄.

주변을 압도할 만한 덩치의 두 사람 사이로 남림의 열기와 북해의 한기가 맞부딪혔다.

단지 상대를 탐색할 뿐일 기세싸움이지만 두 절대고수의 기운은 범인을 초월했다.

절로 대기가 떨리고 그 기파가 주변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멀찍이서 지켜보던 정도무림의 무인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천애랑은 맹건과 설엄 사이에 발을 들였다. 그러자 팽팽했던 두 사람의 기운이 손쉽게 끊어졌다.

“……!”

“……!”

맹건과 설엄이 놀란 눈을 했다.

화경의 경지에 오르고 자신의 기운에 대해서만큼은 완벽한 통제를 이루던 두 사람이기에 지금의 상황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괴물이로군 괴물이야.”

맹건이 미소와 함께 두 손을 들며 뒤로 물러났다. 설엄도 진심으로 무언가를 할 생각이 아니었기에 순순히 물러났다.

“저. 신룡대주님……?”

기라성 같은 절대고수들 사이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애랑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맹의 군사부에서 보낸 무인이 쭈뼛거리며 서있었다.

“무슨 일이오.”

“군사께서 찾으십니다.”

***

간이 집무실에서 천애랑은 제갈청과 마주했다.

‘그새 더 수척해졌군.’

무림맹주가 실종되고, 주요 간부들도 부상이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지금. 맹의 모든 대소사를 제갈청이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으로 가득 모이는 정도무림의 인사들을 반기고, 척후대의 정보들을 살피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격 탓도 있겠지.’

완벽주의자적인 제갈청의 성격이 그를 더 몰아붙이는 듯 했다.

천애랑에게 자리를 안내하며 제갈청이 입을 열었다.

“전쟁이 곧 시작될 듯하여 불렀네.”

“그렇소?”

현재 숭산 자락 평야에 모인 두 세력의 분위기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놀랄 것도 없었다.

“정보원들이 파악한 바로는 마교도 진심인지 마교 상위 서열을 가진 고수들도 대부분 모인 것 같더군.”

천애랑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교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보려고 했던 바. 이번 전쟁에 대한 마교의 진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천마의 여부.’

이에 대해 제갈청이 말했다.

“군사부의 망원경이나 정보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마가 이곳에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네.”

“흐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마교에서 이렇게 움직인 것은 천마의 지시가 아니면 말이 되지 않네.”

제갈청의 해석은 이러했다.

‘전쟁이란 거대한 강의 흐름과 같아서 한 번 흐르기 시작하면 중간에 작은 물줄기는 바꿀 수 있어도 거대한 강 자체의 흐름을 바꾸긴 어렵다고.’

이번 정마대전을 대하는 마교의 핵심 전략은 정도무림의 분열과 고립이었다.

“다른 지역의 승세를 포기하고 지금처럼 전면전을 준비하는 행태는 분열과 고립이라는 전력과 맞지 않다는 말이오?”

천애랑의 질문에 제갈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내 예상이지만 분명 천마는 저 어딘가에 있을 것이네. 아마 자네를 호시탐탐 살피고 있겠지.”

“흐음.”

천애랑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대평야에서 맞부딪치는 회전(會戰)이 발생할 테고, 수적으로 불리한 무림맹의 상황에 내가 나선다…… 설마 나의 힘을 빼고자 함인가?’

낙양에서 드라쿠를 죽인 지 꽤 시일이 흘렀기에 마교에서도 분명 그 상황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을 것이다.

‘마교 내에서도 한 손 안에 드는 고수가 드라쿠라 했으니.’

마교의 입장에선 천애랑의 존재를 가장 경계하는 게 지당했다.

‘드라쿠를 압도했다는 나의 경지를 살피고 움직이려는 건지도 모르겠군. 그게 아니면 아직 부상이 완치되지 않은 건가?’

천애랑이 천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제갈청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현재로선 마교의 저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걸 떠나서 신룡대주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네.”

“어떤 걸 말이오?”

천애랑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제갈청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가 나오기 전까진 절대 전장에 나서지 말게.”

“이유가 있소?”

“자넨 누가 뭐라 해도 정도무림의 마지막 희망일세. 또한 천마에게만 집중해도 모자를 상황이고. 그러니 천마가 없는 전쟁에서 힘을 뺄 필요는 없다 생각하네.”

“흐음.”

천애랑은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제갈 군사가 이리 따로 불러서 당부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전쟁이란 눈이 달리지 않은 양날의 검과 같다. 적을 죽일 수 있다면 아군도 죽을 수 있는 것이 전쟁.

‘소중한 이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도 나서지 말란 소리겠지.’

천애랑은 침음을 흘렸다.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소중한 이들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며 참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확실히 다른 문제였다.

천애랑의 대답이 늦어질수록 제갈청의 표정은 더욱 진중해졌다.

“신룡대주. 아니, 기공가주. 확실히 해야 하네. 내가 자네의 계획에 동참해 무림의 모든 명운을 건 것은 자네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내이기 때문이라네.”

제갈청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야. 여기 모인 모든 정도무림인들은 당금의 전투에 모든 사활을 걸었다네. 아마 많은 피가 흐를 것이야. 이러한 사실은 자네나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그러니 자네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하네.”

천애랑은 잠시 고심을 했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천마가 나오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겠소. 약속하오.”

천애랑의 확답을 얻고서야 제갈청의 표정이 풀렸다.

마침 집무실의 문이 조심히 열리며 군사부 무인이 말했다.

“군사님. 마교가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

정파의 반응을 보려는 건지, 아니면 정파의 전력을 갉아놓으려는지 마교에선 간부급들이 아닌 하급 마인들이 내달려오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수천에 달하는 발구름 소리는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다.

하급 마인들이었지만 그들의 표정엔 필사(必死)의 각오가 서려있었다.

그러한 하급 마인들에 맞서 무림맹에서도 무사들이 나섰다.

“놈들이 쳐들어온다! 우리도 가자!”

와아아아아아아!

두 세력 간에 특별한 전술은 없었다.

너른 평야를 중심으로 힘 대 힘의 대 회전(會戰)을 치를 뿐이었다.

순식간에 두 세력은 엉키었다.

까강! 까강까강!

“크악!”

“죽어라!”

병장기의 충격음들과 비명소리가 음율처럼 평야에 가득했다.

이를 지켜보는 무림맹 중진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하급 마인들임에도 저리 강하다니.”

이들도 마교의 저력에 대해서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생각 이상으로 하급 마인들의 무위가 대단했기에 놀라는 거였다.

“역시 마공인가.”

맹의 중진들이 혀를 찼다.

안정적인 심법을 토대로 대기만성을 이루는 정파와는 달리 마교는 빠르게 강해지겠다는 일념 하에 마공을 익힌다.

무공이 성장할수록 마기에 정신이 잠식당해 미칠 수 있다는 큰 위험이 있지만 마공의 효과는 뛰어났다.

무공을 배운지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하급 마인들 일지라도 일류에 달하는 무력을 보일 정도로 초반 성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간혹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라도 나타나면 무공을 익힌 지 10년 만에 절정의 경지를 넘어 보이기도 했다.

이는 정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장이었다.

“힘을 아낄 때가 아닌 것 같소.”

맹의 중진 중 누군가의 말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현재 하급 무인들에게 맹의 무사들이 밀리고 있었다.

천애랑은 상황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숫자에서 밀리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마인들의 독기를 정파인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약육강식이 철저하게 지배하는 마교에 비하면 아무래도 맹의 무사들은 잘해봐야 야생의 들초 느낌뿐일 테다.

‘게다가 저건 잠폭단 아닌가.’

목숨이 다해가던 마인들은 무언가를 먹더니 더 강한 기운을 발휘했다.

독기와 잠폭단.

두 가지의 차이가 맹의 무사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우리도 갑시다!”

장문인, 문주, 가주, 장로 등 맹의 중진들이 수하들을 이끌고 나섰다.

그들이 나서자 확실히 전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경지가 낮은 맹의 무사들이 야생의 들초라면 정도무림의 중진들은 거목과도 같은 인물들.

풍진강호에서 수십 년을 살아남은 이들인 만큼 노련하게 하급 마인들을 도륙해갔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마교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천애랑은 마교 진형을 보았다.

그의 예상대로 마교 진형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들이 합류를 시작했다.

콰과광! 콰아아아앙!

무공이 난무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앞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만 들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어? 흑백쌍마신(黑白雙魔神)이네요.”

천애랑 곁에 있던 송소걸의 말이었다.

“누구?”

“저기 흑색과 백색 가면을 하나씩 쓰고 움직이는 녀석들요. 마교에서 나름 서열 35위, 36위하는 놈들이에요. 경지는 초절정으로 알려져 있고요.”

천애랑은 눈에 이채를 띠며 흑백쌍마신을 봤다. 마치 하나의 몸이라도 되는 듯한 유기적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흑백쌍마신을 보타문의 여승들이 상대했다.

‘검에 매우 능한 여인들이군.’

보타문 개개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합격술이 일품인지라 흑백쌍마신이 애를 먹고 있었다.

‘별다른 개입이 없다면 보타문에서 흑백쌍마신을 제압하겠군.’

전황을 지켜보던 송소걸이 다시 놀란 표정을 했다.

“이런. 혈영마신(血影魔神)이에요. 단검술과 투척술의 달인인데 마교 서열 25위의 고수에요. 혈영마신대도 함께 왔네요!”

혈영마신으로 불리는 사내와 그를 따르는 혈영마신대는 등장과 동시에 암기들을 날렸다. 그 모습이 마치 사천당문의 만천화우와 비슷했다.

이에 맞서 당정아가 이끄는 사천당문의 무인들이 마주 암기를 날렸다.

따다다다다다당!

신묘한 투척 기술들에 허공에서 암기들이 불똥을 뛰며 떨어졌다.

‘혈영마신과 그 수하들은 사천당문에서 상대할 생각이로군.’

터전을 잃었다지만 사천당문은 정도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림세가다.

‘사천당문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그때, 전황을 지켜보며 중계를 하던 송소걸이 격앙된 목소리를 내었다.

“서열 10위! 암흑마제(暗黑魔帝)에요! 화경의 고수로 알려져 있어요. 그를 따르는 암흑마대도 있네요.”

앞서 마교 고수들을 언급하던 때와는 다른 놀람에 천애랑은 송소걸에게 물었다.

“대단한 자야?”

송소걸이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과거 교주를 배출했던 암흑종파의 후예예요. 지금의 천마가 화근을 제거하고자 암흑종파를 없애려 했지만 끝내 살아남아 마교의 중축을 맡고 있죠. 단순히 서열로만 볼 수 없는 인물이에요.”

“혈로를 걸어온 자라 이건가.”

송소걸이 놀란 이유를 알 것처럼 암흑마제의 움직임은 가히 군계일학이었다.

“확실히 전투에 능한 자로군. 게다가 경지가 단순한 화경은 아닌데?”

암흑마제의 전투를 유심히 살핀 결과 그는 화경의 경지에서도 상위의 존재였다.

정파가 쉽게 암흑마제를 막지 못하자 암흑마제가 움직이는 곳은 순식간에 피의 길이 되었다.

“개인으로 상대하려면 못 해도 남림야수왕이나 북해빙궁주 정도는 돼야겠어.”

절대고수의 등장에 천애랑은 당장이라도 전장에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제갈청과의 약속을 되뇌이며 꾸욱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때였다.

전황을 살피던 천애랑과 송소걸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형님……!”

“이런.”

마교의 소교주이자 두 사람의 의형제인 찬호가 수하들을 거느리고 전장에 합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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