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92화
‘소림사에서의 모습이로군.’
천애랑은 확연하게 변한 드라쿠의 모습을 관찰했다.
‘압도적인 내공과 재생력으로 신체의 영역을 확장한다라.’
당시에는 파악하지 못했던 기의 흐름이 눈에 보였다.
‘따라하진 못하겠어.’
어렴풋하게 묘리는 알겠다. 하지만 저걸 따라 하기 위해선 드라쿠처럼 타고난 체질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때, 드라쿠를 중심으로 내공이 폭발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드라쿠 주위에 강한 소용돌이가 발생했으며, 소용돌이에선 강맹한 흡입력이 발생했다.
드드드드드드드.
소용돌이는 주변 시체들뿐만 아니라 건물의 잔해들도 끌어당기고 있었다.
드라쿠에게 도달한 시체와 각종 잔해들은 소용돌이에 한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천애랑은 눈을 좁혔다. 소용돌이의 뒤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드라쿠를 살핌이었다.
‘거대한 기의 덩어리를 날리는 기술. 심양에서 나를 날려버렸던 공격을 준비함인가?’
과거 치명상을 입고 한동안 고생을 해야 했던 일격이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억이 났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심양에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양의 기운이라는 거였다.
‘대체 내공이 얼마나 많은 거지.’
드라쿠의 기운에 의한 여파는 시전을 넘어 무림맹 본부까지 도달했다.
드드드드드!
“무, 무슨!”
“피해라!”
무림맹 본부의 외벽이 거칠게 진동했다. 지진이라도 난 듯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흔들림이었다.
이에 외벽에 의지해 천애랑과 드라쿠의 전투를 지켜보던 무림맹 본부에서 소란이 일었다.
그 모습을 본 천애랑이 천선을 들었다. 드라쿠의 무공이 흥미로워 관찰하고 있긴 했지만 무고한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지게 만드는 건 사양이었다.
“여기까지.”
천애랑은 천선의 날을 여러 번 휘둘러 드라쿠의 흡입력을 절삭했다.
차착! 차악! 차차차착!
기의 흐름을 촘촘하게 잇는 것이 가능하다면 반대로 그 흐름을 끊는 것도 가능한 법.
이론으로만 가능한 일을 천애랑은 손쉽게 해내고 있었다.
쿠후우우우우우우.
태풍처럼 주위를 끌어들이던 기운이 죽자 진동도 가라앉았다.
“어떻게 된 거지?”
“휴우.”
무림맹 본부에 있던 이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애랑은 천선에 뇌기를 실어 드라쿠에게 날렸다.
‘어디 한 번.’
드라쿠를 감싸며 보호하는 소용돌이를 제거할 생각이었다.
까앙!
천선은 기의 소용돌이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역시 안 되나.’
호신강기보다 더 높은 강도를 보이는 기의 소용돌이였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뚫기 어려워 보였다.
다음 공격을 위해 천애랑이 천선을 회수할 때였다. 드라쿠를 감싸고 있던 소용돌이가 거세게 뒤흔들렸다.
천애랑의 두 눈이 커졌다.
“……!”
소용돌이가 흩어짐과 동시에 드라쿠가 만든 거대하고 붉은 기의 덩어리가 쏘아졌다. 문제는 그 방향이 완전하게 혼란이 진정되지 못한 무림맹 본부라는 거였다.
‘이런!’
천애랑은 당연히 드라쿠가 자신을 공격할 줄 알았다. 그래서 일격필살의 공격을 준비한다 여겼다.
‘여기서 무림맹 본부까지 거리가 오십 장.’
아무리 경신술이 빨라도 이미 쏘아져 바람처럼 날아가는 기운을 쫓기엔 무리가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천애랑은 고민 없이 발을 굴렀다.
‘내공을 아끼지 않고 대지의 결로.’
파파파파파팡!
폭약이 폭발하는 듯한 폭음과 함께 천애랑의 신형이 사라졌다.
무림맹 본부의 외벽과 드라쿠의 붉은 기운이 부딪히려는 찰나의 순간.
섬전처럼 천애랑이 외벽 앞에 나타났다. 천애랑은 방어를 준비하며 다가오는 기운 너머의 드라쿠를 보았다.
내가 뛰어들 거라는 이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한 표정과 행동력이었다.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는 내 마음을 이용함과 동시에 피를 수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유인한 건가?’
많은 생각을 하기에는 시간이 없는 상황.
‘차라리 잘 됐어. 드라쿠의 이질적인 기운도 자연지기 중 하나인지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다.’
천애랑은 드라쿠의 기운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부드러운 기운이 그물처럼 뻗어나갔다.
‘우선 잡는다.’
천애랑은 기의 그물로 붉은 기의 덩어리를 잡았다.
‘흐읍! 엄청난 기운!’
족히 3갑자는 넘지 않을까 싶은 내기의 무게가 느껴졌다.
‘하지만 잡을 수 있다.’
천애랑의 두 눈이 밝게 빛났다. 그러자 요동치던 기의 그물이 단단하게 붉은 기운을 붙잡았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천애랑의 그물 안에서 붉은 기운이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맹렬하게 회전했다.
‘흐름을 바꾼다.’
천애랑이 손짓하자 그물이 더욱 조여지며 붉은 기운을 멈춰 세웠다.
‘흐름을 유도한다.’
붉은 기운은 천애랑의 의지에 따라 잘게 흩어지더니 천애랑에게로 인도됐다.
‘담는다.’
천애랑은 드라쿠의 붉은 기운을 하나의 내공으로 흡수했다.
자연지기를 붙잡고, 흐름을 바꾸며, 이를 인도하여 단전에 담는 것.
이것은 모든 무림인들이 하는 내공심법의 방식이었다. 천애랑은 이러한 내공심법의 방식을 날아드는 드라쿠의 기운을 향해 시행한 것이었다.
천애랑은 자신의 몸에 가득 찬 기운을 느꼈다.
마기와는 또 다르게 매우 이질적인 기운이었지만 드라쿠의 기운은 더는 날뛰지 않고 잠잠히 천애랑의 처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흡수해 만들어진 기운이라서인지 드라쿠의 붉은 기운에선 역겨운 향이 나는 듯했다.
“후우. 엄청나긴 하지만 오래 담고 있진 못하겠어.”
드라쿠는 자신이 날린 기운이 허황되게 사라지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드라쿠를 바라보는 천애랑의 두 눈이 붉게 빛났다.
“다시 돌려주지.”
천애랑이 드라쿠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드라쿠가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기운이 쏘아졌다. 다만, 드라쿠처럼 핏빛이 아닌 꽃잎 같은 선홍색의 기운이었다.
뿌득.
기함할 기운에 드라쿠가 이를 갈았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피한다.’
드라쿠는 천애랑을 공격하는 것을 미루고 신형을 피했다. 인간의 신체를 초월한 상태이기에 쉽게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천애랑의 미소와 이어진 상황을 보는 순간 드라쿠는 자신이 악수를 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라쿠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집채만 한 기운을 보았다.
‘좀 전의 기운은 허초였나!’
분명 본신의 전력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기운이었건만 피한 곳에서 나타난 기운은 앞선 기운을 훨씬 상회했다.
“치잇! 이 정도로는 날 막을 수 없다!”
드라쿠의 검은 날개가 웅크리듯 드라쿠의 전방을 막았다. 동시에 팔로 얼굴을 막으며 드라쿠는 강행돌파를 시도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무림맹 본부를 뒤흔들었다.
무림맹 본부를 둘러싼 낮은 성벽은 물론, 범위에 있던 창고나 전각들 또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세상에…….”
“이게 정녕 인간들의 싸움인가.”
무림맹 무사들이 입을 떡 벌렸다. 이는 제갈청과 남궁수검도 마찬가지였다.
“정저지와라더니.”
남궁수검의 말을 제갈청도 공감했다.
제갈청은 과거 천애랑을 신룡대주로 무림맹에 입맹시키면서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무림맹이 신룡대주라는 용의 여의주냐 아니면 무림맹이 용의 등을 타는 주인이 되느냐를 점쳤었다.
‘이제 확실해졌군. 신룡대주에게 있어서 무림맹은 그저 하나의 여의주였다는 것이.’
천외천.
지금 천애랑의 무위를 보고 있자면 무림맹주와 비교하는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제갈청이 눈을 빛냈다.
‘신룡대주만이 천마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제갈청은 풍전등화의 정도무림에 있어서 밝은 빛이 드리우는 기분을 느꼈다.
쿠콰아앙!
거대한 충격 후 곧바로 이어지는 충격음에 제갈청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제갈청의 시선에 처참한 몰골의 드라쿠가 보였다. 드라쿠는 어떻게 살아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몸의 반쪽이 사라진 상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드라쿠는 도망치듯 하며 무림맹 무사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그 후 벌어질 상황은 이미 겪어봤기에 예측 가능한 것.
제갈청은 대경실색하며 크게 외쳤다.
“모두 물러나라! 뒤도 보지 말고 이곳에서 모두 도망쳐!”
으드득!
드라쿠가 무림맹 무사들을 무차별적으로 흡혈하기 시작했다.
으득! 으드득!
무사들의 뼈가 뒤틀리며 피가 빨려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이때 남궁수검이 검을 들었다. 내상의 후유증으로 그의 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몸을 추스른 창궁검대는 들으라!”
“충!”
남궁수검처럼 상태가 온전치 않은 창궁검대 여섯이 검을 들었다.
“남궁세가는 남궁의 의와 협에 따라 무림맹 무사들의 피해를 막는다!”
“충!”
남궁수검과 함께 창궁검대가 드라쿠를 향해 돌진했다.
아무리 드라쿠가 부상을 입었다지만 남궁세가의 모두도 부상을 입은 상태.
‘목숨을 걸었음인가.’
앙숙과도 같은 남궁수검과 창궁검대의 등을 바라보던 제갈청은 혀를 찼다.
“쯧!”
제갈청은 후방에서의 지시를 접어두고 전장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분명 맹의 군사로서는 옳지 못한 판단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남궁수검도, 창궁검대도, 제갈청도 협의를 향한 의지를 불사를 기회가 없었다.
“드라쿠!”
한가득 피를 뒤집어쓴 천애랑의 신형이 번쩍이며 나타나더니 드라쿠를 그대로 걷어찼다.
쿠당탕탕!
볼품없이 바닥을 구른 드라쿠가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짧은 흡혈로 반쯤 날아갔던 몸의 상당부분이 회복되어있었다.
하지만 천애랑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인 상태.
“크윽!”
드라쿠는 천애랑에게서 신형을 빼 도망쳤다.
‘괴물이군.’
드라쿠의 계획은 천애랑의 기운을 몸으로 견뎌내고 무림맹 무사들로 회복한 후 다시 천애랑을 상대하는 거였다.
그런 계획을 품고 거대한 기운을 몸으로 받아냈다. 기운으로 만든 날개가 찢겨졌지만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부지불식간 부채가 몸을 찔러왔고, 그곳을 통해 뇌기가 침투해 몸을 마비시켰다.
드라쿠는 몸에 침투한 천애랑의 뇌기를 폭발적인 내공으로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천애랑의 뇌기는 압도적인 양으로 드라쿠 자신의 기운을 밀어냈다.
‘대체 내공의 끝이 어떻게 되는 건지.’
드라쿠는 자신보다 내공이 많은 이를 처음 봤다. 천마조차도 내공의 양으로만 따지면 자신보다 아래였다.
이대로는 몸이 마비된 채 속절없이 죽겠다 싶었기에 드라쿠는 과감한 수를 선택했다.
‘혈폭(血爆)에서도 멀쩡하다니.’
혈폭(血爆).
피와 내공이 응축된 심장을 터트려 동귀어진을 이루는 최후이자 최강의 수였다.
혈폭 이후 빠르게 피를 수급하면 생존에 필요한 만큼은 회복 가능했기에 드라쿠는 천애랑의 지척에서 심장을 터트렸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의 혈폭이라면 못해도 천애랑에게 치명적인 부상은 선사할 거라 확신했다.
‘분명 혈폭을 고스란히 맞았는데 왜 멀쩡하냔 말이다!’
드라쿠는 천애랑을 질린 표정으로 봤다.
‘우선 몸을 피해야 한다.’
그렇게 드라쿠가 도주를 하려 할 때였다.
“어딜 가려고. 이제 지긋지긋한 악연을 끝내야지.”
무심한 눈빛의 천애랑이 어느새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쿠구구구궁!
“크윽!”
전신을 짓누르는 엄청난 압박에 드라쿠가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했다.
드라쿠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압박은 더욱 강해져만 갔다.
‘끝이군.’
드라쿠는 자신의 저항이 부질없으며 이 전투가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드라쿠는 현재 자신의 발악이 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드라쿠는 급히 외쳤다.
“자, 잠시!”
압박의 강도가 잠시 멈추었다. 말할 때를 놓칠 새라 드라쿠가 빠르게 말했다.
“아름답게 죽게 해다오.”
“…….”
압박의 강도가 느슨해졌다.
드라쿠는 가부좌를 튼 자세를 취하곤 봉두난발이 된 머리를 가지런히 질끈 묶었다. 한쪽 팔이 온전치 않은 탓에 머리를 묶는 게 용의치 않았다.
이어 드라쿠는 자신의 얼굴에 잔뜩 묻은 피를 손으로 쓱쓱 닦아냈다. 그러자 드라쿠의 외모가 나름 깔끔하게 돌아왔다.
몸가짐을 가지런히 한 드라쿠가 말했다.
“이제 죽여라.”
말과 함께 드라쿠는 서늘한 감각이 목을 훑는 것을 느꼈다. 이어 드라쿠는 빙그르르 도는 최후의 시선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