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91화
“누구…….”
남궁수검이 의아한 시선을 했다.
드라쿠의 기운은 누군가 함부로 개입해 끊어내는 게 불가한 힘이었다.
남궁수검 자신이 자극한 중단전이 빠르게 진정되는 것 또한 불가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사내 둘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니 남궁수검은 고통 속에서도 궁금증이 들었다.
이런 남궁수검의 의문에 대한 답은 제갈청에게서 나왔다.
“신룡대주!”
‘신룡대주……?’
제갈청이 저리 반색하는 것을 남궁수검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기공가의 어린 가주를 새로이 대주에 앉혔다 했는데. 그럼 저 자가?’
흑색무복에 절로 눈길이 가는 외모의 사내. 게다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내공을 가진 이.
‘신룡대주 천애랑.’
놀라는 남궁수검의 시선에 천애랑이 드라쿠에게 손을 뻗었고, 이에 맞은 드라쿠의 신형이 시전 가게들을 부수며 멀찍이 날아갔다.
“세상에…….”
남궁수검이 입을 떡 벌리며 경악을 했다.
한 시진 동안 검에 베일지언정 물러남이 없던 드라쿠였다. 그런데 고작 손짓 한 번에 날아가니 꿈인가 싶었다.
“아아. 또 꿈인가 싶은 표정이네요.”
갑작스런 말에 남궁수검은 자신을 붙잡은 이를 쳐다봤다. 여인처럼 고운 선을 가진 상당한 미공자였다.
“누구시오.”
“제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이지만 우선 피하죠!”
송소걸이 남궁수검을 대충 쥐고 옆으로 몸을 피했다. 이어서 좀 전까지 송소걸과 남궁수검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기운이 폭발했다.
“천애랑!”
드라쿠가 활짝 웃으며 손가락을 뻗었다.
“저걸 조심……!”
송소걸이 대충 던진 탓에 바닥을 구르던 남궁수검이 놀라 외쳤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하나하나에 엄청난 기운들이 담긴 드라쿠의 탄지공이 손쉽게 흩어졌기 때문이다.
“아. 저희 형님일랑 걱정 말고 아저씨 몸이나 피하세요. 방해됩니다.”
남궁수검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송소걸에게 돌아갔다.
“뭐라…? 아저씨? 방해?”
오십이 넘도록 처음 듣는 표현들이었다.
송소걸은 황당한 표정의 남궁수검을 뒤로 하고 이곳저곳에서 신음을 흘리는 창궁검대 대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저씨 힘 남았으면 식구들이나 좀 챙겨요. 읏차!”
송소걸은 창궁검대 대원들을 남궁수검에게로 던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일이 안고 나르기엔 언제 전장이 초토화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지노 어르신과 산도 부수던 형님인데 이깟 시전 정도야.’
송소걸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남궁수검은 허겁지겁 날아드는 대원들을 받으면서도 알 수 없는 울화가 끓어올랐다.
“뭘 멀뚱히 서 있어요! 식구들 챙겼으면 후딱 무림맹 안으로 도망가지 않고! 거 참 방해된다니까 되게 굼뜨시네.”
“이익…….”
남궁수검은 자신의 울화가 어디서 오는지 깨달았다. 아무리 자신을 구해줬다 한들 어른으로서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 때였다.
콰과과광!
어느새 날아든 거대한 기운이 남궁수검의 지척에서 폭발했다. 기운으로부터 남궁수검을 지킨 것은 송소걸이었다.
놀란 눈의 남궁수검을 보며 송소걸이 중얼거렸다.
“아 거참. 방해된다니까.”
이어 송소걸이 외쳤다.
“제갈 군사님! 여기 생존자 있어요! 좀 챙겨주세요!”
송소걸의 외침에 남궁수검과 제갈청 모두가 다소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생존자를 챙겨야 함은 맞기에 남궁수검과 무림맹은 분지하게 움직였다.
송소걸이 나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천애랑도 드라쿠와 분주하게 손을 섞고 있었다.
“뭘 먹었나? 그새 기운이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천애랑의 평가에 드라쿠가 높게 웃었다.
“흐하하! 역시 알아보는구나. 네 녀석을 잡기 위해 좋은 것들 좀 많이 먹었지.”
마교의 비보, 암시장, 하북팽가의 혼원벽력신단까지.
드라쿠는 경지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이라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했다. 그러곤 비처에서 모든 기운을 완전히 흡수했다.
‘그 결과 나는 탈마를 목전에 두었다.’
기운만 본다면 이미 탈마를 넘었겠지만 드라쿠에겐 아직 탈마라는 벽을 넘을 깨달음이 부족했다.
‘상관없다. 내 이능이라면 충분히 탈마의 능력을 발휘할 터.’
드라쿠는 이 정도의 성장이라면 이번에야말로 천애랑을 죽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어디 이번에도 막아봐라!”
홍혈지(紅血指).
드라쿠의 성명절기가 천애랑에게 쏘아졌다. 앞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맹한 기운이 드라쿠의 손짓에 담겼다.
이를 마주한 천애랑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그저 천선을 휘둘렀다.
파사사삭!
드라쿠의 강맹했던 기운이 천애랑의 의지에 따라 흩어졌다.
“……!”
드라쿠는 놀란 눈을 했다.
복잡한 내공의 흐름으로 허공에 발출된 기운을 해소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가능케 하려면 기운의 흐름을 정확히 역순의 흐름으로 파훼시키는 방법이었다. 이는 같은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만약 역순의 흐름으로 파훼하는 게 아니라면 압도적으로 높은 경지의 힘으로 찍어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천애랑이 드라쿠의 성명절기인 홍혈지를 알 리는 만무.
‘설마 나보다 경지가 더 높다고?’
드라쿠는 눈을 좁혔다.
‘확실히 소림사에서 봤을 때보다 더 성장한 것 같긴 한데.’
드라쿠 본인이 성장한 것처럼 천애랑에게서도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긴 했다.
‘괴물 같은 녀석. 뭐가 됐든 여기서 반드시 싹을 잘라내야겠어.’
드라쿠와 천애랑.
요녕의 심양에서부터 이어져 온 오랜 악연의 전투가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천애랑이 선공을 취했다.
신룡지탄(神龍指彈). 회룡(回龍).
무식하게 기운을 뭉쳐 쏘아내는 홍혈지완 달리 신룡지탄 회룡은 강맹한 회전력을 더한 탄지공이었다.
“흥! 이따위 탄지공.”
드라쿠는 천애랑의 탄지공을 가볍게 쳐냈다.
콰과광!
기운의 파편들이 시전 가게들을 부수었다.
천애랑이 다시금 손가락을 튕겼다.
신룡지탄(神龍指彈). 회룡(回龍). 추(追).
좀 전의 탄지공의 묘리에 천마를 만나며 얻은 심득을 섞었다.
“나를 무시하는가!”
드라쿠가 천애랑의 탄지공을 향해 마주 홍혈지를 날렸다. 힘으로 상쇄시킨 후 다음 공격을 이어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천애랑의 기운이 이기어검처럼 궤도를 변경해 드라쿠를 타격했다.
콰광! 콰과과광!
갑작스런 폭발이 드라쿠를 뒤덮었다.
이는 천애랑이 내기를 회전시키는 회룡, 자유롭게 상대방을 쫓는 추, 거기에 은밀하게 기운을 폭발시키는 폭(爆) 묘리를 더한 것이었다.
“…….”
드라쿠가 자신의 상의를 내려다봤다.
안 그래도 남궁세가의 협공에 많은 생채기가 났던 옷이었기에 폭발에 쉽게 넝마가 되어있었다.
“쯧. 아름답지 못하게.”
드라쿠는 신경질적으로 넝마가 된 옷을 찢어 벗었다. 그러자 무공을 익힌 사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뽀얀 피부가 드러났다.
이어 드라쿠는 반파된 포목점으로 손을 뻗었다.
쉬리리릭.
허공섭물로 먼 거리를 격하고 널따란 비단이 날아왔다. 드라쿠는 비단을 잡아선 자연스레 휘감아 입었다.
“나쁘진 않군.”
비단의 재질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드라쿠가 천애랑을 보았다.
“다시 시작 해볼까?”
말과 함께 드라쿠의 몸에서 강대한 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드라쿠 주변에 쌓인 시체들에서 피들이 방울방울 떠올랐다.
‘피를 이용한 공격인가.’
드라쿠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천애랑은 천선을 펼쳤다. 드라쿠의 주위로 생기는 기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슈슈슈슈슈슉!
드라쿠에게서 핏방울들이 하나의 암기가 되어 날아들었다.
이에 맞서 천애랑은 천선을 흔들었다. 대기의 결을 이용해 두꺼운 기의 막을 만들었다.
푸푸푸푸푸푸푸푹!
드라쿠의 공격을 막아낸 천애랑은 축지법을 펼쳤다.
땅을 접는 신법인 축지법은 기공가의 핵심 신법 중 하나이기에 깊이 공들여 익힌 거라 할 수 있었다. 당연 백두산을 하산하기 전부터 극성으로 익힌 무공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은 후 그간 한계까지 익혔다고 생각했던 무공들이 새롭게 보였다.
축지법도 마찬가지였다.
‘가볍다.’
천애랑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드라쿠의 후위에서 나타났다.
“어딜!”
예리한 기감으로 천애랑을 파악한 드라쿠가 손을 뻗었다.
파파파팟!
순식간에 허공에서 드라쿠와 천애랑의 손이 뒤섞였다.
천애랑은 눈을 빛냈다.
‘가벼워.’
물론 드라쿠의 권각술 하나하나가 대기와 살을 찢을 만큼 강하긴 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상대하는데 있어서 느껴지는 압박감 등이 비교적 가벼웠다.
‘지노 어르신과의 비무에서도 느꼈지만 내가 진정 현경의 벽을 넘은 거군.’
현경.
신선의 영역이라 불리는 지고한 경지다.
화경의 극에 이른 드라쿠를 상대해보니 현경의 경지에 대한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천마의 시선이 이런 느낌일 거라는 의미고.’
마교에서 현경과 같은 의미로 불리는 탈마. 현재 천마의 무위였다.
천애랑은 내공의 제약을 풀고 드라쿠에게 주먹을 날렸다.
쿠루루루루!
절로 뇌기가 반응하며 천애랑의 권격에 깃들었다.
빠아악!
일격을 맞은 드라쿠의 신형이 멀찍이 날아갔다. 드라쿠의 표정에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천애랑은 발을 굴렸다.
그러자 대지가 절로 감응하며 천애랑의 신형을 밀어냈다.
사삭.
천애랑은 다시금 드라쿠의 후위를 점하고는 주먹을 뻗었다.
빠아악!
“크윽!”
이번엔 드라쿠가 몸을 비틀며 주먹을 막아냈지만 충격을 해소하지 못하고 주르륵 밀려났다.
천애랑은 천선을 날렸다.
짜르르르르르!
천선에 특별한 의지를 부여하지 않았음에도 천선은 저절로 풍기(風氣)를 머금고, 대기의 결을 따라 나는 한 마리의 매가 되었다.
차차차차착!
드라쿠가 방어를 위해 무지막지한 내공으로 호신강기를 펼쳤지만 천선은 드라쿠의 호신강기를 난도했다.
“건방진!”
수세에 몰린 드라쿠가 거칠게 진각을 밟았다.
무공의 상승을 내공의 양에서 찾은 드라쿠이기에 그는 압도적인 내공으로 천애랑을 찍어 누르고자 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드라쿠의 거대한 내기가 폭발했다. 그 여파로 이곳이 시전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천애랑은 손을 뻗어 천선을 회수한 후 드라쿠의 기파를 향해 천선을 찔렀다.
쩌저저적!
천선이 방대한 기파의 일점을 가르자 딱 천애랑이 피할 만큼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천애랑은 그 틈을 향해 천선을 휘둘렀다.
화접탄(火蝶彈). 초난무(超亂舞).
평소의 화접탄과는 달리 거대한 크기의 불꽃 나비 하나가 드라쿠에게로 날아갔다.
천애랑의 나비를 향해 드라쿠가 손바닥을 펼쳤다.
혈수산염(血髓酸染).
드라쿠의 손바닥에서 피의 덩어리가 나와 천애랑의 화접탄과 충돌했다.
꾸우우우우우우웅!
두 기운 간에 기의 공명이 크게 일었다. 그렇게 한참 기 싸움을 하던 두 기운은 폭발하거나 해소되지 않고 그대로 역류되었다.
“흐읍!”
드라쿠는 급히 손을 저어 역류되는 기운의 방향을 틀었다.
쿠우웅! 치이이이익!
모든 것을 녹이는 드라쿠의 혈수산염이 인근 건물을 녹여버렸다.
그와 반대로 천애랑은 가볍게 천선을 휘둘러 기운을 해소시켰다.
비교될 정도로 여유로운 천애랑의 대처에 드라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으득.
드라쿠가 이를 갈았다. 그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고서는 천애랑과 결착을 맺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래. 어설프게 네놈을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말과 함께 드라쿠에게서 붉은 혈기(血氣)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뿜어져 나왔다.
이어 일렁이던 혈기는 드라쿠의 등 뒤로 형상화 되어 박쥐의 것 같은 거대한 날개를 만들었다.
그의 두 눈은 핏빛과 같았고 양 손톱은 기다랗게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