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86화
천애랑을 둘러메고 도주를 한 암행복의 사내. 그는 마교의 소교주이자 천애랑의 의형제인 찬호였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가야 한다.’
찬호는 최선을 다해 경신술을 펼쳤다.
송소걸 덕분에 부상에서 회복된 후 찬호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교의 일정에 복귀했다.
소교주의 부재가 길어지면 찾기 위해서 마인들이 움직일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함께 있던 송소걸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복귀한 후 찬호가 처음 들은 보고는 천마의 행차였다.
천마동을 나온 천마의 경지가 탈마라는 소식.
전장에 참여한 천마가 파죽지세로 무림맹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소식.
이어 정파 정예와 큰 충돌 후 극소수 마인들의 수행만 받은 채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을 보고 받으며 찬호는 이동했다.
가장 앞선 의미로는 소교주로서 천마를 배알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천마가 머물 것이라 보고 받은 곳에 도착한 찬호는 때마침 의외의 광경을 목도하게 됐다.
‘설마 아버지랑 애랑이 싸우고 있었을 줄이야.’
의형제인 천애랑과 아버지이자 교주인 천마의 대결에 찬호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 쪽의 편도 들어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천애랑과 천마의 경천동지할 무공들이 오갔고 찬호는 귀식대법까지 펼치며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그러나 천애랑과 천마의 마지막 격돌에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움직인 후 정신을 차리니 지금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애랑…. 조금만 참아라.”
천애랑의 꺼져가는 숨소리를 들으며 찬호는 내공이 탈진하도록 발을 굴렸다.
그렇게 한나절을 달리고서야 멈춘 곳은 이름 모를 숲속 어딘가의 은밀한 동굴이었다.
‘잠시 휴식처로 찾았던 곳을 이렇게 쓸 줄이야.’
동굴 안에 도착한 찬호는 천애랑의 자리를 살피고 모닥불을 피우는 등 빠르게 움직였다.
모닥불 덕분에 어두운 동굴 안의 시야가 확보되며 사늘한 공기가 훈기로 바뀌었다.
이어서 찬호는 천애랑의 부상을 살폈다.
‘호흡이 거의 없다.’
죽은 듯이 누운 천애랑의 혈색은 창백했으며, 일격을 맞은 등엔 거미줄처럼 생긴 상처가 깊었다.
‘출혈도 많아.’
찬호는 급히 천애랑의 상처들을 지혈하곤 기운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천애랑의 호흡은 더욱 약해져만 갔다.
‘어쩌지.’
찬호가 불안한 눈빛으로 천애랑을 봤다.
아무리 정순하다 해도 찬호가 익힌 것은 마공. 즉, 천애랑에게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기운은 마기다.
특히 현재 천애랑의 내부는 천마신공의 마기가 침투해 헤집고 있는 상황.
‘마기를 최대한 정순하게 만들어서 보낸다 해도 천마신공이 알아보겠지.’
그렇게 되면 천애랑 내부의 마기가 찬호의 마기를 양분삼아 더욱 활개를 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찬호가 현재 손을 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천애랑의 죽음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애랑…….”
오랜만에 보는 친우이자 형제의 얼굴이 죽음의 그늘에 드리워지는 것은 마교의 소교주이자 숱한 죽음을 만들어냈던 찬호에게도 괴로운 일이었다.
찬호는 고민을 했다.
‘애랑의 가솔들이 의원들이라 하니 그들을 부른다면? 하지만 어떻게? 소걸이를 통해서?’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천애랑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각오를 다진 찬호가 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마교에 다시 복귀하면서 챙긴 마신단이었다.
마신단.
소림의 대환단, 북해빙궁의 빙백단, 화산파의 자소단처럼 마교를 가장 높이 대표하는 영약이었다.
마신단은 마교 내에서도 매우 희소한 영약이다. 소교주인 찬호조차도 현재는 한 개밖에 챙기지 못할 정도로.
마신단은 공청석유와 온갖 영초들에 오직 천마신공의 마기만을 가미해 특별한 방식으로 숙성시켜 만든다.
즉, 마신단은 극도로 정순한 기운과 마기가 결집된 영약이었다.
‘마기가 있다지만 정순한 기운도 있으니까.’
이게 찬호가 마신단에 기대하는 부분이었다. 영약에 담긴 마기만 어떻게 잘 통제하고 정순한 기운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천애랑의 치료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 해보자.”
찬호는 반듯하게 누운 천애랑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곤 하늘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천애랑 입을 벌렸다.
‘내가 정파놈들처럼 하늘에 기도를 하다니.’
실없는 생각과 함께 찬호는 손에 마기를 둘러 마신단을 쥐었다. 그러곤 마신단을 쥐어짜며 천애랑의 입에 강제로 우겨넣었다.
찬호는 천애랑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마신단의 기운을 관조하며 길을 인도했다.
중단전쯤에 이르자 예상했던 것처럼 천애랑의 혈도를 갉아먹던 마기가 느껴졌다.
천애랑의 중단전은 선천지기를 강제로 끌어 쓴 탓에 경계가 약해져 있었다.
그 틈을 천마의 마기가 침투하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침투가 성공한다면 중단전이 마기에 잠식된 채 천애랑은 죽을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찬호는 마신단의 기운을 재촉해 중단의 마기와 접촉을 시켰다.
그러자 마기는 마신단의 기운에서 유사함을 느꼈는지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마신단의 기운을 제압해 자신의 힘으로 품고자 아가리를 벌렸다.
‘생각보다 기운이 크다.’
마신단의 기운이 아직은 제대로 녹지 않은 상태. 천마의 마기에 질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럴 순 없지.’
찬호는 마신단의 마기에 자신의 기운을 더해 천마의 마기와 맞서 싸웠다.
쿵! 쿵!
마기끼리의 다툼에 혈도가 충격을 받으며 천애랑의 가슴께가 들썩거렸다.
‘마음껏 힘을 줄 수가 없어.’
성질 같아서는 마기를 잔뜩 주입해 힘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싶지만, 전장은 소중한 의형제의 혈도 안.
함부로 날뛸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에 찬호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몇 시진이나 흐른 것 같은 한식경의 섬세한 사투 끝에 찬호는 중단전 인근의 마기를 제압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중단전에서 하단전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자 경로상의 혈도들이 이미 마기로 잠식된 상태였다.
“후우.”
찬호는 깊은 심호흡과 함께 마신단의 기운을 이끌었다.
쿠구구구구!
앞서처럼 천마의 마기가 마신단의 기운을 먹어치우려 덤벼들었고, 찬호는 이를 차근차근 굴종시켜갔다.
***
장장 24시진. 꼬박 이틀의 시간을 소요하고서야 찬호는 천애랑에게서 손을 뗄 수 있었다.
“급한 불은 껐다.”
거친 심호흡을 하는 찬호의 몰골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선천지기까지 사용할 줄이야.’
혈도들의 마기들을 제압하며 마신단의 기운이 점점 몸집을 키운 덕에 혈도들의 마기를 제압하는 건 갈수록 쉬워지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하단전까지 마신단의 기운을 이끌고 목도한 것은 마기에 침투당한 하단전의 상황이었다.
단전이란 도자기와 같다.
한 번 깨어지면 고치기 힘들며 그곳에 아무리 기운을 불어넣어봐야 밑 빠직 독에 물 붓기만 될 뿐이다.
그리고 단전이 깨진 것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이질적인 다른 기운이 침투한다면 발생할 일은 두 가지다.
하단전이 도자기 깨지듯 산산조각 나거나, 하단전의 기운이 모두 역류하거나.
‘깨지든 역류하든 모두 죽음과 같은 의미다.’
그래서 찬호는 모험을 했다.
우선 몸집이 커진 마신단의 마기로 하단전을 파고든 마기를 유인했다.
물론 침투한 마기는 기공가의 정순한 기운이라는 탐스러운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발악을 했지만 결국엔 찬호에게 제압되었다.
하단전에서 마기가 빠져나옴으로 한시름을 덜었지만 진짜 문제가 남아있었다.
‘깨진 하단전을 메운다.’
정순한 기운의 결정체가 모인 하단전이다. 그러다보니 찬호나 마신단의 마기로는 이를 메울 수 없었다.
문제는 천애랑의 하단전이 너무 거대하다는 거였다. 마신단에 담긴 정순한 기운으로는 메울 양이 부족했다.
그래서 찬호는 선천지기를 이용했다.
인간 본연이 가진 기운.
정공을 익혔든 마기를 익혔든 상관없이 선천지기의 기운 자체는 정순했다. 마치 정순함 가득한 천애랑의 하단전과 큰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렇게 찬호는 선천지기와 마신단의 정순한 기운을 이용해 천애랑의 깨진 단전을 막았고 성공을 했다.
이어서 찬호는 천마의 마기를 먹고 거대해진 마신단의 마기를 가만히 두지 않고 소주천을 시켰다.
천애랑이 가진 기운과는 상성이 맞지 않지만 그래도 혈도를 타고 기운이 움직이자 멈추었던 장기들이 움직이고 피가 돌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진짜 하늘의 영역이네.’
찬호가 지친 몸을 이끌고 동굴 벽에 기댔다. 그러곤 불가항력으로 스스륵 잠이 들었다.
***
천애랑은 지독한 고통 속에서 눈을 떴다.
‘……살았나.’
당장이라도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지만 살았다는 감각이 들이찼다.
‘무슨 소리가……?’
누군가의 말소리에 천애랑이 눈동자를 돌렸다. 이내 천애랑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아니! 자꾸 어딜 가려고 그래요!”
“말했잖냐. 내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나를 찾으러 올 것이라고.”
“이 정도로 절묘하게 숨었으면 이곳을 쉽게 발견할 수 없을 거라고 했던 건 형님이잖아요.”
“절대 못 찾는다는 말은 아니잖냐.”
“그렇다고 또 저번처럼 말없이 사라지려고요?”
“아니.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어? 애랑 형님!”
찬호와 소걸이가 언쟁을 벌이다 천애랑을 쳐다봤다.
‘꿈인가.’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광경에 천애랑이 두 눈만 끔뻑거렸다. 그 모습에 송소걸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야! 애랑 형님 지금 ‘꿈인가?’이러고 있었죠?”
“……!”
천애랑이 놀란 눈을 하자 송소걸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흐흐흐흐. 거 누구랑 깨어났을 때의 표정이 똑같아서요.”
딱!
“아악!”
찬호에게 뒤통수를 맞은 송소걸이 머리를 부여잡고 찬호를 노려봤다.
천애랑은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애랑 형님 또 꿈인지 생신지 모를 표정... 아! 알았어요! 거 참 성격 돌아오시네. 얼마 전에만 해도 아주 절 붙잡고 함께 가자고 눈물 콧물 흘리던 사람이.”
“콧물은 흘린 적 없다.”
찬호가 송소걸을 노려본 후 천애랑을 내려다봤다. 천애랑 또한 찬호를 마주봤다.
잠시의 적막 후 천애랑이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끄으윽.”
“도와드릴게요.”
송소걸은 고통을 호소하는 천애랑을 부축하며 침상 벽에 기대 앉혔다.
“객잔이에요.”
송소걸의 말에 천애랑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문이 운영하는 객잔인가.’
만약 그렇다면 안전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송소걸이 말했다.
“애랑 형님. 천마랑 싸워서 이렇게 됐다면서요?”
“……소걸이 네가 날 구한 것이냐?”
송소걸은 천애랑의 상처부위를 능수능란하게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찬호 형님이 구했어요. 천마에게서 형님을 빼내고 다 죽어가는 형님을 치료한 후, 제게 연락을 취해 이곳으로 형님을 데리고 온 거예요.”
“…….”
천애랑은 미간을 좁히며 찬호를 바라봤다. 찬호 또한 천애랑을 조용히 바라봤다.
내기를 발산한 건 아니었지만 둘 간에 불편한 공기가 뒤엉켰다.
이에 송소걸이 혀를 차며 의자 두 개를 끌어와 침상 곁에 뒀다. 길어질 대화를 위함이었다.
“형님들? 그렇게 노려보면 눈빛만으로 사람 죽이겠어요. 그리고 찬호 형님!”
“……?”
찬호가 송소걸에게 고개를 돌렸다.
“찬호 형님 죽을 뻔한 걸 제가 살렸잖아요. 애랑 형님 가문의 영약을 써서요. 그렇죠? 심지어 제가 마교에 의해 죽을 뻔했음에도요.”
“……그렇지.”
찬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송소걸은 이어 천애랑을 쳐다봤다.
“애랑 형님. 뭐가 됐든 찬호 형님이 애랑 형님을 구했어요. 하나 밖에 없는 마신단과 본인의 선천지기까지 소모해서요.”
“…….”
송소걸의 말에 천애랑은 깊게 숨을 뱉으며 찬호에게 말했다.
“고맙단 말은 하지 않겠어.”
“나야말로.”
어색한 둘의 대화에 송소걸이 한숨을 쉬고는 방구석에 위치한 서랍을 열었다.
그러곤 그곳에서 술병을 꺼냈다.
“형님들. 이 술 기억납니까?”
송소걸이 흔드는 술병을 보며 천애랑과 찬호가 동시에 대답했다.
“두보주가 아니냐.”
“두보주가 아니냐.”
똑같이 대답함에 천애랑과 찬호는 서로를 쳐다보며 놀란 눈을 했다.
송소걸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술병을 크게 들이켰다.
꿀꺽꿀꺽.
목구멍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가는 소리가 천애랑과 찬호의 귀에 울렸다.
찬호는 송소걸과 두보주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천애랑은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입맛을 다셨다.
“캬아! 동정호 악양루에서 형님들과 마신 후 처음 마셔보네요. 어때요? 형님들도 하나씩 드릴까요?”
송소걸이 다시 서랍으로 가선 술병 두 개를 꺼내 흔들었다.
그 술병들을 천애랑과 찬호가 무심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강아지 꼬리 흔들 듯 살랑이는 송소걸의 손짓에 천애랑과 찬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