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85화
천마는 손등으로 천애랑의 기운을 후려쳤다. 그러나 기운은 눈이라도 달린 듯 천마의 손등을 피해냈다.
쉬식!
“흐음?!”
예상외의 광경에 천마가 실소를 뱉으며 반대 손바닥으로 허공을 할퀴었다.
부우우웅! 콰광!
거대한 기의 바람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천애랑의 탄지공을 터트렸다.
천마는 놀라운 기예를 보이는 천애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그의 눈앞엔 수십 개의 탄지공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슈슈슈슈슈슉!
“크크크큭. 역시 기공가인가. 좋다! 장단에 놀아주지.”
천마가 손가락을 활짝 펼쳐 어지러이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마다 채찍처럼 기다란 강기가 늘어졌다.
10개에 달하는 강기의 채찍이 마구 휘둘러졌다.
콰과과과과과광!
순식간에 주변이 초토화되는 것은 물론 방위를 점하며 다가오던 천애랑의 탄지공도 부서졌다.
‘대단하군.’
천마의 엄청난 무예에 순수히 감탄을 한 천애랑은 호흡을 정돈하며 손을 태극처럼 돌렸다.
그러자 벽처럼 넓고 두꺼운 기의 막이 천애랑의 전방에 형성됐다. 천애랑은 이를 천마에게 날렸다.
“하! 고작 기막 따위로?”
기막 치고는 꽤나 두꺼워 보이고, 이를 날리는 기예가 신기하다만 그래봐야 강기의 채찍 앞에선 부서질 터였다.
천마는 실망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손가락 마디마다 이어진 강기를 손 전체로 뭉쳤다. 그러자 2개의 두꺼운 채찍이 형성됐다.
천마는 이를 천애랑의 기막을 향해 휘둘렀다.
차라라라락!
천마의 강기 채찍은 뱀의 움직임처럼 나아가 천애랑의 기막을 깨뜨렸다.
짜자작!
도기가 깨진 듯이 비산한 수백의 파편들이 천마를 덮쳤다.
천마는 이를 호신강기로 가볍게 튕겨내려 했다. 그러나 파편들끼리 부르르 떨리더니 폭발을 했다.
쿠콰콰콰콰콰쾅!
“교주님!”
거대한 폭발에 멀찍이 물러나 있던 마인들이 화들짝 놀라 다가왔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곤 부복을 했다.
이어 천마의 서슬 퍼런 목소리와 함께 마인들을 목이 비틀어졌다. 마인들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감히 본좌를 의심하다니.”
수하들의 걱정을 불쾌함으로 받아들인 천마는 수하들을 죽임으로써 감정을 달랬다.
천마는 혀를 찼다.
“이것 참. 경지를 넘은 후 더는 본좌가 놀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천애랑의 이번 공격방식은 천마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천마가 좀 전의 공격을 떠올리며 말했다.
“기를 진흙처럼 뭉친 것이 아니라 조각내어 마치 갑주를 짜듯 연결한 거였군. 또한 기를 억지로 불안정하게 만들어서 폭발을 유도하고 말이지.”
천애랑은 천마의 깊은 통찰력에 눈을 좁혔다.
‘역시 전투가 만만치 않겠어.’
천애랑은 이번 공격으로 천마를 어찌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한 것은 천마의 반응과 경지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시험해본 것이었다.
이는 천마도 마찬가지인지라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전투를 치를 준빌 했다.
타탓.
작은 발돋움과 함께 천애랑의 신형이 쏘아졌다. 이형환위가 펼쳐지며 천애랑의 신형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났다.
천마도 마주 신형을 날리며 천애랑처럼 이형환위를 만들어냈다.
파팟! 파파팟! 파파파팟!
천애랑과 천마의 손발이 작은 마을의 곳곳에서 화려하게 뒤섞였다.
콰광! 콰과광! 콰과과광!
둘의 손발이 충돌할 때마다 발생한 기파가 주위의 건물들을 부수었다.
천애랑은 천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상대방의 빈틈을 노렸다.
하지만 공방이 길어질수록 천애랑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끝이 없다.’
천마가 장난을 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에 천애랑은 천마의 손을 털어내며 훌쩍 뒤로 물러났다.
콰지직.
착지를 하며 강하게 진각을 밟은 천애랑은 천선을 펼쳐 쭉 뻗어 날렸다.
파지지지지지직!
쏜살같이 날아가는 천선에 뇌전이 치며 주변의 자연지기를 요동치게 했다.
이에 천마는 손바닥을 입 앞에서 하늘로 향하게 펼쳤다. 그러곤 손바닥 위를 강하게 불었다.
후우우!
천마의 강한 숨이 마기가 되고 마기는 안개가 되었다. 그리고 안개는 뇌전을 일으키는 천선을 끈적하게 붙잡았다.
파직! 파지직!
그물에 걸린 생선처럼 마기의 안개 속에서 천선이 꿈틀거렸다.
이에 천애랑은 대지의 결을 이용해 내기를 전방으로 쏘아 보냈다.
드드드드드드드.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가 진동하더니 마기의 안개가 위치한 곳에서 폭발했다.
쿠콰광!
땅거죽이 크게 솟아오르며 마기의 안개로부터 천선을 떨쳐냈다.
천애랑의 신형이 길게 늘어지며 천선을 쥐었다. 그와 동시에 걷혀진 안개를 지나며 땅을 향해 천선을 찍었다.
토룡지와(土龍之臥).
천애랑의 막대한 기운이 대지의 결을 타고 천마에게로 향하더니 앞서처럼 땅거죽이 솟아오르며 천마를 덮쳤다.
천애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기운의 방향에 따라 천선을 휘둘렀다.
토룡지주(土龍之宙).
천애랑의 손짓에 따라 막대한 땅거죽들이 천마를 향해 응집했다.
콰드득!
순식간에 거대한 봉분이 생겼다. 이대로 천마를 묻어버리면 좋겠지만 봉분이 크게 흔들리며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천애랑은 공격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곧장 진각을 밟았다.
신룡군림보(神龍君臨步). 압(壓).
상대방을 봉인하듯 가두는 토룡지와, 토룡지주의 연계기 이후 거대한 내기의 압력이 더해지자 크게 흔들리던 봉분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러나 천마를 붙잡은 건 아니었다.
“아아. 그래. 이 공격들을 보니 그때가 생각나는군.”
호신강기를 두른 채 갇힌 천마가 손바닥을 빠르게 뻗었다.
천살만화장(天殺萬化掌).
마교 최고 장법 중 하나인 천살만화장의 위력이 폭발하며 봉분이 산산조각 부서졌다.
봉분에서 멀끔한 모습으로 빠져나온 천마가 진각을 밟았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모든 것을 무릎 꿇리는 강력한 진각이 천애랑을 향해 뻗어갔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피할 수 없다.’
순식간에 덮쳐드는 기운의 파도를 향해 천애랑도 마주 진각을 밟았다.
신룡군림보(神龍君臨步). 파쇄(破碎).
거대한 내기의 압력이 모든 것을 부수는 흐름을 만들어 내었다.
이내 두 신공절학이 맞부딪혔다.
콰드득! 콰드드득! 콰콰콰콰콰콰콰콰콰!
태풍과도 같은 기파가 작은 마을을 휩쓸었다.
땅이 뒤집어지고 건물이 무너졌으며 산천초목이 뒤흔들렸다.
‘엄청난 내공이로군.’
천마가 천애랑의 기운을 보며 놀란 눈을 했다.
탈마에 이르며 더는 내공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건만 천애랑의 내공을 마주하니 절로 사용 가능할 내공에 대해 생각하게 된 천마였다.
하지만 천마의 표정엔 여유가 있었다.
“그대로 짓눌러 주마.”
천마가 천마군림보를 재차 밟았다.
‘쿠쿵!’하는 진각의 소리와 함께 천애랑을 압박하는 기운이 배가 되었다.
쿠오오오오오오---
‘무지막지하네.’
끝을 알 수 없는 천마의 내공에 천애랑은 인상을 썼다.
‘단순한 힘 싸움만으로는 안 되겠어.’
신룡군림보에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승부를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뇌룡강림(雷龍降臨).
천애랑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몸에 힘이 넘쳤다.
천애랑은 높이 뛰어올랐다. 신룡군림보를 푼 탓에 천마군림보의 압박이 곧장 느껴졌지만 공중에서 섬전처럼 움직인 덕에 빠르게 천마군림보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어 천애랑은 한 마리의 매처럼 천마에게로 낙하했다.
뇌룡강림. 섬멸(殲滅).
천애랑에게로 가득 모인 뇌기는 하나의 번개가 되었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섬전처럼 날아간 천애랑은 그대로 천선을 뻗어 천마의 목을 노렸다.
‘닿는다.’
뇌룡강림의 수 이후부터 천마에게 쏘아지기까지 고작 눈 몇 번 깜빡할 찰나였다.
‘천마의 반응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이정도면 유효타는 날릴 수 있을 터.’
천애랑은 생각한 바와 같이 천마를 가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애랑은 이내 눈을 좁혔다.
‘닿지 않는다.’
분명 엄청난 뇌기가 담긴 천선이 천마의 목 끝에 닿았건만 그 이상을 파고들지 못했다.
‘마기?’
농도 깊은 마기가 천마의 신체 외부를 호신강기처럼 두르고 있었다. 그 은밀함과 얇기가 대단해 지척에 다다를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천마의 눈동자가 천애랑을 향했다.
“명불허전의 움직임이었다. 네놈의 아비도 이렇게 빠르게 움직였었지.”
갑작스레 언급된 아버지의 이야기에 후속타를 준비하려던 천애랑의 신형이 멈칫했다.
“네 녀석을 보고 있자니 가솔들이 운무를 만들고, 그 힘을 받아 하나의 뇌전이 되었던 전 기공가주가 새록새록 떠오르는군.”
천마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천애랑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었다. 멸문시킨 이에게서 듣는 가문의 소식은 생각보다 기분이 더러웠다.
천마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의 가주에 비하면 네놈의 뇌전이 좀 더 나은 것 같군. 그런데 네놈이 이렇게까지 수련한 것은 아마 복수를 위해서겠지? 크크큭.”
말과 함께 천마의 몸을 덮던 마기가 찰나에 반경 십 장의 공간을 잠식했다.
천애랑은 천마의 나불거리는 주둥이를 쳐내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그때 천마의 두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천마현신(天魔現身). 절대영역(絶對領域).
공간을 잠식한 마기가 엄청난 속도로 천마에게 빨려 들어왔다. 그 영향으로 천애랑은 공간 자체가 쥐어짜지는 듯한 강한 압박을 느꼈다.
“……!”
천애랑은 뻗던 팔을 다급히 거두며 호신강기를 펼쳤다. 몸을 압박하는 기운이 엄청나서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호신강기가 깨질 것만 같았다.
“드디어 붙잡았군.”
사냥한 동물을 감상하듯 천마의 모습에 여유가 넘쳤다.
“원래라면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네 녀석을 죽이고 싶었다.”
호신강기를 유지하느라 집중하는 천애랑에게 천마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야 기공가에 대해 환상을 갖는 녀석들에게 절망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뭐, 그렇다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니다.”
천마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네놈을 죽일 것이고, 그로 인해 기공가와의 악연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꾸드득!
“크윽!”
천애랑이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우선 몸을 빼내야 하건만 생전 처음 겪는 압박감에 발조차 제대로 떼어지지 않았다.
“이제 기공가와 본좌 간의 악연을 정리하자꾸나.”
천마에게 뭉친 마기는 유형화되어 거대한 마신이 되었다.
‘흑풍대주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어마어마한 천마의 기운에 천애랑은 기함하듯 놀랐다. 마신의 덩치가 어찌나 큰지 올려다보는 하늘이 밤처럼 어둡게 보였다.
“이대로 네놈을 한줌 먼지로 만들어주마!”
거대한 마신의 손바닥이 천애랑에게 떨어져 내렸다.
경천동지할 압박 속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천애랑은 다급하게 모든 단전을 열었다.
‘이대로는 죽는다!’
마혈이라도 짚힌 듯 꼼짝도 하지 않는 상황.
천애랑은 모든 단전을 열었다.
하단전에서는 남아있는 모든 내공이, 중단전에서는 선천지기가 폭발적으로 혈도를 내달렸다.
마지막으로 상단전으로 자연지기가 거침없이 들이닥쳤다. 문제는 주변에 가득한 마기도 빨려 들어온 것이다.
“끄으윽!”
천애랑은 격통을 느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미 기호지세다.’
천애랑의 내부로부터 폭발하는 기운들이 마기의 압박을 밀어냈다. 이어서 천애랑의 두 눈이 어두워진 황금빛을 띠며 강하게 빛났다.
‘제공권.’
절대적인 영역이 천애랑의 주위를 먹어치우며 공간을 확보해갔다. 이내 제공권은 마신의 손바닥과 충돌했다.
콰지지직!
천애랑의 제공권에 마신의 손이 사라졌다.
“무슨!”
천마가 놀란 눈을 했지만 공격을 멈추진 않았다.
마신의 반대 손을 바라보며 천애랑은 입술을 짓씹었다.
다급함에 선천지기까지 끌어다 쓴 상황이다. 게다가 상단전으로 침투하는 마기의 기운은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는 것을 각오해서라도 승부를 봐야했다.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빠르게.
천애랑은 마신의 손바닥에 대한 방어를 무시하고 천마에게로 신형을 날렸다.
본래의 능력보다 더 많아진 기운에 천애랑의 움직임은 한줄기의 빛과 같았다.
파지직!
천애랑의 손이 천마의 복부를 훑고 지나갔다. 동시에 마신의 손바닥이 천애랑을 후려쳤다.
빠아아아악!
“커헉!”
천애랑은 피를 토하며 멀찍이 바닥을 굴렀다.
천마는 자신의 복부를 봤다. 내장이 보일 정도로 살점이 크게 뜯겨진 상태였다.
“크윽.”
천마는 급히 살을 지져 지혈을 했다. 조금만 반응을 늦게 했다면 단전이 상했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천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를……!”
천마는 쓰러진 천애랑을 확실하게 마무리하고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천마는 보았다.
암행복을 입은 누군가가 축 처진 천애랑을 어깨에 둘러메고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어떤 건방진 새끼가……. 큭!”
당장 쫓으려던 천마는 상처 부위에서 날뛰는 천애랑의 뇌기에 신형을 멈추었다.
천마가 뇌기를 제거하고 다시 추격을 하려 할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