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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84화 (184/200)

기공술사 184화

제갈청은 의자에 깊게 눌러앉으며 손바닥에 고개를 파묻었다.

‘피곤하군.’

며칠 밤을 새운 건지 모를 그의 두 눈 아래엔 깊은 어둠이 내려앉아있었다.

지금의 무림맹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수이자 골머리는 천마였다.

현재 무림은 마교라는 외적이 전국 각지에 몰아치는 것을 해당 지역의 군사들이 각각 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적장이 소수의 별동대만 이끌고 아군 진형으로 들어와 휘젓는 꼴이었는데 적장이 너무 강해 이걸 막을 수가 없는 형국이었다.

제갈청은 마른세수를 했다.

군사란 어떠한 상황에서든 계책을 만들어내야 하는 직책이다. 하지만 제갈청은 천마의 등장 후부터 군사라는 직책이 필요성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전략을 짜봐야 뭐하나. 인외의 인물 하나에 모든 것이 무용지물인 것을.’

이제는 천마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갈청은 피곤함에 눈을 비비다 자연스레 탁상 위를 봤다.

그는 많은 서류들 중 시선에 잡힌 서류를 집어 들었다. 섬서에서 급보로 날아온 보고였다. 그리고 믿기지 않아 몇 번고 다시 읽어봤던 서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갈청은 무언가에 홀린 듯 서신을 다시 펼쳐 읽었다.

이건 하나의 습관이자 중독이었다. 글자를 보면 무조건 읽어봐야 하는.

“하아…….”

서신을 다 읽어낸 제갈청의 탄식이 고요한 집무실을 부유했다.

소림방장을 필두로 한 이번 정예전력은 냉철한 제갈청 조차도 큰 기대를 걸었던 한 수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천마의 압도적인 무위가 모든 계책을 무효화하기에 이쪽에서도 압도적인 무위들을 꾸린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짙은 아쉬움과 슬픔뿐이었다.

‘정도의 정의는 어디로 가는가.’

제갈청은 힘없이 서신을 내려놓고 다른 서신을 집어 들었다. 귀주에서 온 보고였다.

이번엔 절망 속에서 드문 희망의 내용이었다.

‘사천을 넘어 밀고 들어오는 마교 진격을 사천무림연합, 남림야수왕과 야수족, 그리고 신룡대주의 가솔들이 함께 막아내고 있다고.’

천마의 등장으로 정파는 청해성에 이어 사천성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파급되는 문제는 사천성과 인접한 운남과 귀주의 안전이었다.

사천의 남쪽에 위치한 운남은 안 그래도 무림맹의 영향력이 작은 곳이라 손을 쓸 방도가 없었고, 귀주는 마교를 막아낼 무인의 수가 적다는 것이 제갈청의 고민이었다.

특히 귀주는 곧장 호남과 광서로 통하는 길목이기에 무림맹 입장에서 최대한 방어를 해주는 것이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를 막아주고 있다라. 분명 마교의 장로들도 향한 걸로 들었는데. 허어.’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오고 있지만 제갈청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귀주에서 마교를 막는 문파들 모두가 무림맹의 손을 떠난 곳이다.

사천을 버린다는 무림맹의 선택과 동시에 사천무림연합은 무림맹을 탈퇴했으며 그들의 의지에 따라 귀주에서 방어를 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마교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느라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진 않지만 만약 이 전쟁이 끝난다면 어떻게 태도를 취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남림야수족과 기공가문의 가솔들은 모두 신룡대주의 사람들이니.’

제갈청은 현재 공생관계에 있는 신룡대주의 사람들을 쉬이 건드릴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제갈청이 집어든 다음 서신에 있었다. 이번엔 산서에서 천애랑이 보낸 서신이었다.

흑풍대주를 포함한 흑풍대를 전멸시켰다는 믿기지 않은 내용이 담담하게 적혀있었다.

‘역시 신룡대주라 해야 하나.’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 모든 임무를 성공시키는 그의 능력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안 그래도 거물이었지만 이젠 함부로 건들 수조차 없겠군.’

점점 무너져가는 무림맹과 정도 무림을 지키기 위해선 반드시 신룡대주를 품에 안고 있어야 했다.

‘내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지.’

제갈청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신룡대주도 이미 섬서의 상황을 파악했겠지.’

아직 천애랑으로부터 별도의 서신은 없었지만 그간 지켜본 천애랑이라면 곧장 천마를 쫓아 추격할 것이라고 제갈청은 추측했다.

그런 추측 속에서 제갈청은 아주 작은 희망을 품었다.

‘혹시 신룡대주가 천마를 막아주진 않을까.’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덤덤하게 서신을 보내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제갈청의 피곤한 두 눈에 담기었다.

하지만 제갈청의 눈빛은 이내 어두워졌다.

‘만약 지금의 상황에서 신룡대주마저 천마를 막지 못한다면 답이 없다.’

천애랑과 그 일행들마저 천마에게 당한다면 정도무림의 선택지는 제한된다.

‘아마 강남을 포기하고 호북, 하남, 안휘, 산서, 산동으로 모든 전력을 끌어 모아야겠지.’

당연히 포기한 지역 문파들의 안위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무림맹으로선 더 이상 힘을 분산시킬 여유가 없는 대위기의 상황일 테다.

‘하아.’

이런 최후의 상황으로 흘러간다 하더라도 썩 희망이 있어보이진 않았기에 제갈청은 한숨을 쉬었다.

만에 하나 이렇게까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정도무림이 이긴다 할지라도 마교에 의해 무너진 문파와 지역들은 크나큰 치욕과 회복되지 않을 피해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제갈청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정파의 명운을 단 한 사람에게 기대는 자신의 무력함과 현 상황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제갈청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애랑의 서신을 고이 내려두었다.

‘부디 정도 무림에 희망이 남아 있기를.’

***

“찾았다.”

천애랑은 낮게 중얼거렸다.

흔적을 쫓는 과정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처음이야 길이 한 곳으로 쭉 나있기에 그냥 기감을 넓히고 달리기만 하면 됐었다.

‘그렇게 사흘.’

하지만 아무도 발견할 순 없었다. 그래도 감추지 않은 흔적들이 존재했기에 추격을 계속 이어갈 순 있었다.

‘그렇게 또 사흘.’

문제는 더 이상 길이 하나가 아닌 시점부터였다.

온갖 갈림길이 존재하는 곳부턴 흔적이 나뉘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천애랑은 의외로 가장 흔적이 없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다는 것을 반나절 만에 확인할 수 있었다.

‘천마!’

천마를 발견한 이곳은 산중의 이름 모를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는지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천마는 마을의 중앙에서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 곁엔 고작 세 명의 수하들만 있을 뿐이었다.

천애랑이 천마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을의 풍취로 물들기 시작한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유일하게 짙은 어둠인 한 사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람 자체가 곧 마기이자 마기가 곧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에 천애랑은 천마를 찾았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찬호랑 닮았어.’

잊을 수 없는 의형제를 닮은 모습에 천애랑의 얼굴은 복잡해졌다.

‘…….’

건물 벽 뒤에 기척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던 천애랑은 품속의 폭죽을 만지작거렸다.

생각보다 길어진 추격 탓에 이제와 폭죽을 쏘아본들 일행들이 알아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을 하던 천애랑의 귀에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쥐새끼처럼 숨어만 있지 말고 그만 나오지 그래?”

천마였다.

‘……나의 기척을 읽었다고?’

환영유령보보의 은신을 간파한 이는 처음이었다.

천애랑은 혀를 찼다. 더는 숨어있을 이유가 없었다.

‘모용가주나 빙궁주라면 몸을 뺀 후 함께하자고 잔소리하겠지만. 어떻게 만난 천마인가.’

천애랑은 건물 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천마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네 녀석이 천애랑이라는 놈이냐?”

“그렇다.”

천애랑은 기감을 높여 천마를 관찰했다.

‘깊이가 느껴지지 않아. 존재가 있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로군.’

처음 보는 탈마의 경지가 순수하게 경탄스러웠다.

“크크큭. 어쩐지 뒤가 간지럽더라니 기공가의 후예라. 이거 운이 좋군.”

“운이 좋은 건 누구인지를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크하하하하하하!”

쿠구구구구구구.

천마의 앙천대소에 대지가 떨려왔다.

“그래! 그래야지! 기공가의 녀석이라면 응당 이래야지! 암. 그래야 응징할 맛이 나지!”

천마가 즐거운 듯 격앙된 목소리를 했다.

그런 천마를 보며 천애랑은 조용히 천마와의 거리, 천마의 곁에 있는 마인들의 움직임을 감지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크큭. 혹시 도망칠 생각이더냐?”

“설마.”

천애랑은 천선을 살며시 쥠으로써 언제든 전투에 임할 준비를 마쳤다.

그 모습에 천마가 씨익 웃으며 곁의 수하들을 물렸다.

“비켜라.”

“존명.”

수하들은 가타부타 없이 천마의 명에 따라 멀리 물러났다.

천마는 두 팔을 길게 늘어뜨리고 마치 하수에게 삼초를 양보하듯 말했다.

“무인에게 긴 말이 무슨 필요하랴. 들어와 보거라!”

하지만 천애랑은 되려 천선을 까딱이며 천마를 자극했다.

“과거 나의 가문에 패한 이가 선수를 양보하는 모습은 좋지 못하군. 오라.”

천마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격장지계인가. 우습군.”

“진짜 우스운지는 두고 봐야지!”

천애랑이 천마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천마의 사각지대에서 천선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대화를 하는 동안 은밀하게 작업한 기습이었지만 천마의 손짓에 쉽게 막혔다.

콰광!

천마에게서 튕겨져 나가는 천선을 천애랑은 허공섭물로 재빨리 끌어당겼다.

“평범한 부채가 아니로군.”

천선을 부술 생각으로 휘둘렀지만 그러지 못했음에 천마는 작게 놀랐다.

“네놈이 잔재주를 보여줬으니 본좌도 보여주겠다.”

천마가 천애랑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이와 동시에 천마에게서 기함할 기운의 탄지공이 쏘아졌다.

천애랑은 방어 대신 회피를 선택했다.

탓.

한 번의 발돋음으로 이 장의 거리를 피해낸 천애랑이었다. 하지만 천마의 탄지공은 방향을 틀어 천애랑을 쫓아왔다.

‘발출된 기운을 이토록 자유롭게…….’

기를 발출하는 것은 절정의 경지라면 가능하다. 흔히 검기라 부르는 거다.

더 나아가 기운을 붙잡는 경지는 완숙한 초절정 이상이면 가능하다. 이를 강기라 부른다.

그러나 강기는 검이나 도, 또는 손날 등 매개체에 기를 붙잡는 거다. 아무런 매개체가 없는 허공에 강기를 만들 긴 어렵다.

‘대기의 결을 뭉쳐 매개체로 사용해본 경험은 있지만.’

또한 천애랑은 쏘아 보낸 기운을 공중에서 방향 전환시킬 수도 있었다.

‘다만 이건 기운의 실을 연결해 허공섭물의 묘리와 절묘하게 엮어야 가능한 것.’

그러나 지금 천마가 보이는 것은 순수하게 허공섭물로만 기를 움직이는 거를 넘어서 기운 스스로가 자아를 가진 듯 움직이는 거였다.

이는 천애랑이 그동안 해보았던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기예였다.

‘나도 될까.’

천마의 탄지공으로부터 연신 몸을 피하던 천애랑은 천마를 마주 탄지공을 탈렸다.

신룡지탄(神龍指彈).

파파파파팡!

순식간에 천마의 기운을 상쇄시킨 천애랑은 이어서 천마에게도 탄지공을 날렸다.

신룡지탄(神龍指彈). 회룡(回龍).

극도의 내공압축과 회전력을 가미한 탄지공이었다.

천애랑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정신을 더욱 집중했다.

추(追).

천애랑의 의지를 받은 탄지공이 복잡한 궤적을 만들며 천마에게로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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