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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83화 (183/200)

기공술사 183화

흑풍대와의 전투 이후.

천애랑과 그 일행들은 충분한 휴식 없이 연이어 전쟁을 치르러 가는 거지만 눈빛만큼은 강한 자신감으로 차있었다.

공포의 대명사이던 흑풍대를 전멸시킨 자신감은 물론이거니와 현재 이동 중인 인원만 해도 정예로 근 300명이다.

게다가 절대고수가 둘이나 되는 이 조합이라면 어지간한 전투는 승리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천애랑이 고취되는 흥분감으로 말고삐를 강하게 쥐었다.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다.’

그간 천마와 마교에 복수할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십만대산에 틀어박혀있던 천마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으니 복수를 하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천마가 현경에 들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 또한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많은 실전 경험들과 수련으로 백두산에서 처음 하산했을 때와 비교해서 괄목상대할 성취를 얻었다.

천마를 떠올리는 천애랑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이런 천애랑을 보며 설엄이 미소를 보였다.

“표정이 좋구만.”

설엄의 말에 천애랑은 피식 웃었다.

“설화에게 가보지 않아도 되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강한 아이네. 그리고 다른 곳도 아니고 자네의 품에 있다는데 걱정할 필요가 있겠나.”

“품이라니…. 그냥 가솔들과 함께 지내는 거처일 뿐이오.”

“크흐흐. 그게 그거지.”

큭큭 거리며 웃던 설엄의 고개가 전방의 능선으로 빠르게 향했다. 이는 천애랑도 마찬가지였다.

“느꼈는가.”

천애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 냄새가 엄청나오.”

먼 거리를 격하고 피 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찔러왔다. 이는 말들도 느꼈는지 말들이 흥분하는 게 보였다.

“모용 가주! 지금부턴 경계를 해야겠소.”

“알겠소이다!”

설엄의 말에 모용단이 기마대의 진형과 속도를 조절했다. 그러곤 일행들은 능숙한 기마술로 능선을 넘었다. 이어 그들은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했다.

능선을 넘어 분지처럼 평지가 펼쳐진 곳엔 수백에 달하는 시신들이 시산혈해를 이루고 있었다.

복색들을 보아하니 마교와 정파 정예들의 시신인 게 확실해 보였다.

게다가 어찌나 대단한 전투들이 이뤄졌는지 멀쩡한 지형이 없었다.

“세상에.”

모용단이 경악성을 뱉었다.

“늦었나.”

설엄은 시신들을 보며 혀를 찼다.

천애랑은 곧장 말에서 내려 시체들의 바다로 달려갔다.

‘이건……?’

천애랑은 정파 시신의 복색 중에 개방의 것을 알아봤다. 그리고 개방의 시신들 중 허리춤에 9개의 매듭이 지어진 노인을 보았다.

‘개방의 방주가 이곳에 있었던가.’

노인의 몸에는 칼로 벤 듯한 자상들이 많았다. 개중 심장과 단전에 위치한 자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결정적인 상처겠지.’

천애랑은 그 자상들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마기다. 그것도 엄청난.’

죽은 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마기가 천애랑의 손바닥을 타고 내기로 침투하려 했다.

‘천마의 마기일까.’

개방주의 몸을 살핀 결과 듣던 소문과는 달리 상당히 단전과 혈도들이 대단했다.

‘화경의 경지던가. 그나저나 아무래도 천마가 맞는 것 같군.’

천애랑은 팔을 타고 기어들어오는 마기를 가볍게 밀어내 손을 털었다.

빠각!

천애랑에게서 떨어져나간 마기가 인근 바위를 부수며 흩어졌다.

천애랑은 시선을 돌렸다.

‘무당파도 참전했었나. 하긴 전쟁에 참여한다 했으니.’

대제자 진강 도인이 참전한다는 전장이 이곳이 됐을 줄은 몰랐다.

‘진강 도인은 안 보이는데?’

포로가 된 건지 생존해 도주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이의 시신이 보이지 않는 것에 천애랑은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헉! 소림방장님이시다!”

시신들을 수색하던 일행들에게서 경악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는 호칭에 천애랑도 빠르게 다가가 살폈다.

“세상에 어찌…….”

모용단과 그 가문의 인물들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소림사라면 무학의 뿌리이자 정도 무림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곳.

그런 곳을 이끄는 이가 눈앞의 소림방장이었다.

게다가 현재의 소림방장은 지난 수십 년간 정도 무림의 정신적 지주로서 묵묵히 제 위치를 지켜온 인물이었다.

당연 정파의 무인이라면 알게 모르게 소림방장을 동경해왔고, 이는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떻게 소림방장이…….”

또한 현재는 화산파 장문인이자 무림맹주인 백청선이 정도무림의 천하제일인이라 알려졌지만 소림사의 방장도 그에 못지않다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이가 이곳에서 싸늘한 시신이 되어있으니 믿기지가 않은 것이다.

천애랑의 눈이 침중해졌다.

‘대환단의 도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들린다 했었는데…….’

과거 송소걸을 살리기 위해 소림사에 잠입했던 때.

소림방장은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꺼내며 흔쾌히 대환단을 내어주었었다.

그 대가라 하기엔 뭐하지만 소림사를 침입한 마교를 함께 막아내기도 했었고.

천애랑은 소림방장의 허전한 왼팔을 보았다.

드라쿠를 상대하느라 시선이 끌린 사이 지휘웅과 찬호의 협공에 의해 소림방장이 왼팔을 잃었었다.

‘내가 그때 더 강했더라면.’

천애랑이 혀를 찼다.

누구 하나 죽어도 눈 깜짝 않던 마음이 요동친다.

‘내가 알게 모르게 방장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나.’

그리고 소림방장의 포용심에 은근 마음을 열고 있었구나 싶었다.

천애랑은 요동치는 감정을 진정시켰다.

그때 소림방장의 상흔을 살피던 설엄이 말했다.

“열화공이로군.”

설엄은 이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양패구상이라도 했나 보군. 전 흑풍대주 놈과.”

천애랑과 일행들은 설엄이 가리키는 곳을 봤다. 그곳엔 지휘웅이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채 죽어있었다.

‘그래도 복수는 이루었는가.’

소림방장의 죽음이 마냥 허망한 것만은 아닌 듯하여 다행이었다.

이후 일행들이 파악한 시신들의 신원과 수는 이랬다.

“마교는 우호법과 좌호법, 그리고 80명 정도의 무인 사망.”

“정파 쪽은 소림방장, 개방주, 종남파 장문인, 그리고 700여 명의 사망자가 있었습니다.”

군사의 서신에 따르면 마교가 100여 명, 정파에선 1000여 명의 정예를 이끌고 있었다했다.

“생각보다 피해가 크군.”

“화경의 고수들끼리 양패구상을 한 것도 놀랍지만 마교가 압도적으로 많은 정파의 정예 무인들을 이렇게까지 죽였다는 게 믿기지 않소.”

설엄과 모용단의 대화였다. 천애랑이 끼어들었다.

“천마의 짓이오.”

“천마?”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했다.

“개방주와 종남파 장문인을 죽인 것은 천마요. 난 그곳에서 천마의 마기를 감지했소. 그리고 정파 무인들의 상흔들을 확인한 바.”

“천마의 마기가 남아있었다?”

“그런… 그렇다면 정녕 천마가 탈마의 경지를 밟았단 말인가.”

정마대전의 사활을 걸고 뭉친 정파의 정예들이다.

소림방장처럼 화경이라는 압도적인 무위는 아니라 할지라도 초절정과 절정 경지의 무인이 수십 명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이들을 상대로 마교의 수하들만으로 양패구상 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두렵지만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은 천마가 개방주와 종남파 장문인을 죽인 것을 넘어 정파 정예들을 학살했다는 의미였다.

이는 천마가 탈마의 경지를 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이기도 했다.

천마의 무시무시한 경지에 일행들에게 침묵이 흘렀다.

천애랑이 입을 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우리의 추측이 맞다면 천마는 현재 20명 채 안 되는 무인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말 아니오. 당장 천마를 추적해야 하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알고.”

“흐음…….”

모용단은 주위를 둘러 천중모용대가 파악한 길들을 바라봤다.

추적을 위한 흔적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정파의 생존자들이 뿔뿔이 흩어졌는지 흔적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하지만 모용단은 개중에서 가장 유력한 경로를 꼽았다.

“그럼에도 세 군데나 된단 말인가?”

설엄의 물음에 모용단이 난색을 표했다.

인원을 나누어 모든 경로로 추적을 하면 좋겠지만 이는 전력분산의 의미기도 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천마라도 만난다면 나눠진 전력으로 상대해야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천애랑과 설엄은 자신감을 비췄지만 모용단은 솔직하게 말했다.

“천마가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소. 그래서 전력을 분산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건지 조심스럽소.”

이런 모용단의 솔직함을 천애랑과 설엄은 쉽게 이해했다.

‘모용의 가주는 초절정의 경지이니 천마에게 시간을 끄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천중모용대가 개개인의 무력만으로 평가받진 않는다지만 천마다.

특히 탈마가 확실해 보이는 천마라면 모용의 가주가 일합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우려 속에서도 모용단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움직여야하지 않겠소. 만약 지금의 선택이 무림의 안녕을 좌지우지할 절호의 기회고, 그것을 단순히 두려움이나 걱정만으로 차버릴 순 없는 노릇이니.”

“역시 모용가주요.”

설엄이 껄껄거리며 모용단의 어깨를 쳤다. 천애랑도 미소를 보였다.

두 사람의 응원에 용기를 얻은 모용단이 말했다.

“그럼 세 곳으로 나눠서 움직입시다.”

“천중모용대는 말이 있어야 진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니 우리 북해빙궁은 이제부터 걸어서 움직이겠네.”

앞서는 천중모용대원들의 뒤에 얻어 타고 이동했던 북해빙궁이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세 길에 대한 추적조는 빠르게 구성됐다.

모용세가의 천중모용대, 북해빙궁의 전사들, 그리고 천애랑이 나뉘어 움직일 것이다.

“정녕 혼자서 괜찮겠는가?”

“아무리 천 가주라도 그렇지.”

혼자 움직이겠다는 천애랑의 말에 두 사람이 깊은 우려를 보내왔다. 하지만 천애랑의 마음은 단호했다.

“내가 천중모용대나 북해의 전사들을 이끌고 어떤 합을 맞추겠소. 아마 내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불편할 것이오. 그리고 난 혼자가 편하오. 그리고 만약 천마를 발견한다 해도 지원을 기다릴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오.”

천애랑은 모용단이 쥐여준 폭죽을 들어보였다. 심지에 불을 붙여 하늘 높이 쏘아내면 폭발에 의한 밝은 빛과 소리가 주위에 신호를 알릴 것이다.

설엄은 어깨를 으쓱이며 크게 웃었다.

“그래그래! 내 사위라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사위는 무슨. 천 가주. 만약 이번 정마대전이 끝나거든 모용가로 꼭 방문하게. 내 친척 중에 예쁜 여식이 하나 있다네.”

“모용 가주! 그게 무슨 말이지? 이제 와서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려고?”

“크크큭. 욕심이 나는 걸 어떻게 하겠소이까.”

“크하하하하! 그건 그렇지!”

“으하하하하!”

설엄과 모용단을 따라 천중모용대와 북해의 전사들도 저마다 잡담을 나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광경을 보며 천애랑은 실소를 뱉었다. 두 사람 덕분에 천마라는 거대한 적을 추적하는 일행들의 긴장이 풀리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자!”

한껏 웃은 모용단이 운을 떼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추격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그럼 더 늦기 전에 가봅시다. 천중모용대!”

쿵쿵쿵!

모용단의 외침에 천중모용대의 말들이 발을 굴렀다. 그러자 땅이 흔들렸다. 이어 모용단이 말허리를 박차며 나아갔다.

“가자!”

쿠구구구구구구!

천중모용대가 일사불란하게 말을 몰아 달렸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설엄도 크게 외쳤다.

“우리도 간다!”

설엄과 북해의 전사들이 떠나가며 천애랑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모두가 떠난 후 천애랑은 마지막 남은 길로 축지법을 펼쳤다.

‘기다려라, 천마.’

제발 자신이 천마를 발견하길 기원하며 천애랑은 속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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