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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82화 (182/200)

기공술사 182화

소림방장의 대범한 행동에 마인들이 놀란 눈들을 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지휘웅이 나섰다.

소림사에서의 끝내지 못한 결착도 있었지만, 천마의 위신을 살리고자 하는 행동이었다.

보통 전장에서의 대화는 그 급에 맞는 이들끼리 하는 거였다.

소림방장이라면 정파에서 최고봉에 위치한 인물.

즉, 현 정마대전에서 무림맹주를 제외하곤 천마와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였다.

무학의 종주 소림사라는 위치를 생각한다면 전 무림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소림방장을 현재 마교 진형에서 2인자인 지휘웅이 맞이한다는 것은 마교로선 기세가 사는 일이고, 정파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실제로 마교 진형에서 지휘웅이 나설 행동을 보이자 정파 진형에서 언짢음의 술렁임이 일었다.

하지만 소림방장은 평온한 표정으로 반장을 취했다.

“오랜만이오 시주.”

참배객을 맞이하는 듯한 태연한 말에 지휘웅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팔이 한쪽만 있어서 그러나 어찌 그때보다 더 야윈 것 같군.”

“허허. 시주께서 소승을 걱정해줄지는 몰랐소.”

“걱정은 지랄. 그나저나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이리 죽여주쇼 하고 앞으로 나온 거지?”

지휘웅의 물음에 소림방장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심후한 내공이 담겨 마교 진형에 모두 도달했다.

“마교의 드높은 세가 천하에 진동하네. 무인 하나하나 모두가 고련을 마친 정예들이며 이들을 이끄는 상급 무인들과 장로들 또한 천하에 기록될 이들이지.”

“…….”

일견 마교를 칭찬하는 듯한 소림방장의 말에 지휘웅이 의아한 눈을 했다.

“아마 후대에도 마교의 위대함에 대해서 기록되고 회자가 될 것이네.”

“땡중.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지휘웅의 성화에 소림방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마교는 만족함을 알고 그만 물러남이 어떻겠는가. 여기서 더 했다가는 후대에 위대한 마교가 아닌 살귀들이 가득한 마교로만 기억될 것이네.”

“……이 뭔 개소리야!”

지휘웅이 기운을 뿜어냈다. 이에 땅이 잘게 흔들리며 소림방장의 승복이 펄럭였다.

그러나 소림방장이 반장을 하며 염불을 외우자 그의 펄럭이던 승복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지휘웅의 기운을 역방향으로 누른 것이었다.

“아미타불. 시주. 소승은 그저 마교를 위한 조언을 했을 뿐이오.”

“그놈의 시주라는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죽인다.”

지휘웅의 윽박지름에 소림방장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주.”

“으아아아!”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한 지휘웅이 소림방장에게 신형을 날렸다.

갑작스런 기습이었지만 방장은 당황한 기색 없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옅은 황금빛이 어렸다.

항마복호장(降魔伏虎掌).

마귀를 굴복시킨다는 의미처럼 방장의 손에 어린 기운은 마기를 억제시키는 효능이 있었다.

소림방장의 장법에 마주 주먹을 뻗던 지휘웅은 흩어지는 마기에 인상을 썼다.

꽈아앙!

지휘웅의 신형이 주르륵 밀려났다. 그에 반해 소림방장은 제자리에 굳건하게 서있었다.

자존심이 상한 지휘웅이 다시 신형을 날렸다.

“이 땡중 새끼가!”

지휘웅에게서 더욱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넓게 거리를 벌린 마교와 정파의 진형에서도 느껴질 정도의 강한 기파였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소림방장에게선 동요란 없었다. 그는 그저 지휘웅을 향해 반장을 했다.

“아미타불.”

황금빛 내기가 아른거리며 소림방장의 전신을 뒤덮었다.

금강불괴(金剛不壞).

소림사의 전설과도 같은 절기이자 극성으로 익힌다면 도검불침의 몸이 되는 무공이 소림방장에게서 펼쳐졌다.

꾸우우웅!

거대한 종을 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꽈앙! 꽈아아앙!

지휘웅의 주먹이 쉬지 않고 소림방장을 때렸건만 소림방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표정으로 염불을 욀 뿐이었다.

지휘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땡중이 그새 대환단이라도 처먹었나.”

“아미타불.”

“오냐! 그 짜증나는 염불부터 못 뱉게 만들어주마!”

지휘웅의 두 눈을 포함한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수증기가 크게 일렁였다.

천살열공권(天殺熱功拳).

천살성의 옛 마교 고수가 창안한 열양공이자 현잰 지휘웅의 절기가 소림방장에게 쏘아졌다.

이번 공격은 경시하지 못하겠는지 소림방장은 반장을 풀고 손발을 움직였다.

이내 지휘웅과 소림방장 두 사람의 손발이 어지러이 얽혀갔다.

천마는 두 사람의 전투를 가만히 지켜봤다.

지휘웅과 소림방장의 경지는 백중세였다.

‘아니, 휘웅이가 조금은 밀리려나.’

끝을 알 수 없는 소림방장의 내공과 마기와 상극인 소림의 무공이 우위를 만드는 듯했다.

하지만 전 흑풍대주로서 천하를 호령했던 지휘웅이다. 실전경험으로만 따지만 지휘웅이 소림방장보다 앞설 것이기에 승부는 쉽게 결판나지 않을 듯했다.

‘그나저나 휘웅이만큼이나 소림방장도 제법 초식과 투로가 아름답군.’

대개 한 가지의 무공을 익히면 한 가지의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무공을 익혀도 수십, 수백 가지의 형태로 구현되는 게 실상이다.

검법을 익힌 이라고 다 섬세하고 유려한 검술을 펼치는 게 아니듯이 권각술을 익혔다고 투박한 모습만을 보이는 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휘웅과 소림방장의 권각술은 두 사람의 외견과는 달리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보는 맛은 있군. 허나 언제까지 구경만 할 필욘 없겠지.”

천마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자연스레 뒤에 시립해있던 마교의 정예들도 진형을 갖춘 채 뒤따라 움직였다.

이에 맞서 정파의 진형에서도 일사불란하게 거리를 좁혀왔다.

천마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자신들을 막겠다며 스러져간 무림맹의 무인들 중 눈앞의 정파 녀석들의 눈빛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들에게선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게 느껴졌다.

“재밌군.”

공포를 모른다면 확실히 알려주면 될 뿐.

천마가 가볍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기함할 마기가 정파 진형으로 길게 쏘아졌다.

쿠구구구구!

주변의 공기를 찢으며 날아간 마기는 그대로 정파진형에 큰 구멍을 만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 종남파의 장문인이 앞으로 나서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콰과아아앙!

천마의 마기가 튕겨져나갔다.

“호오.”

천마가 작은 감탄을 했다.

섬서성 정도무림을 화산파와 함께 양분하는 종남파다웠다.

“세는 크지 않아도 개개인의 실력이 좋다더니. 나쁘지 않군.”

천마의 품평 같은 말에도 종남파 장문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소리를 내면 내부가 진탕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발출된 기를 막았을 뿐인데….’

천마의 경지가 탈마라는 군사의 말이 사뭇 거짓이라 생각했던 종남파 장문인이었다.

만약 진짜로 천마가 현경의 경지인 탈마가 맞다한들 자신 또한 완숙한 화경의 고수. 아마도 그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을 거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마주해보니 현경, 즉 탈마라는 경지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게 강하게 느껴졌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어쭙잖게 동료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다 죽겠지.’

절정 이하의 경지라면 천마의 일격조차 받지 못할 것 같았다.

이에 종남파 장문인은 함께 온 인물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무당파의 대제자이자 새로이 화경의 경지를 밟은 진강 도인. 그의 도움이라면 어찌 천마를 상대해볼 수 있을까 싶은 그였다.

그러나 장문인의 시선이 진강 도인에게 닿았을 땐 이미 진강 도인이 마교의 좌호법과 손발을 섞고 있었다.

도움을 구하기 난감한 상황에 장문인이 이를 갈며 검을 바로 세웠다.

‘죽더라도 맞선다!’

그런 장문인의 모습을 본 천마가 낮게 웃었다.

“크흐흐. 기개가 좋군. 좀 놀아 볼까.”

천마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종남파 장문인의 지척에 도달했다.

“하압!”

빠르게 천마의 위치를 파악한 장문인이 검을 휘둘렀다. 이에 천마도 손을 뻗었다.

까앙! 까아앙! 까아아앙!

순식간에 삼십여 합의 공방이 오고갔다.

공방이 길어질수록 장문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벽이다. 벽이야. 틈이 보이지 않아.’

평생을 고련한 무공들을 펼쳐보지만 천마에게 적중하는 게 없었다. 화경의 경지를 밟은 후 이렇게 절망에 가까운 막연함은 처음이었다.

천마는 손가락을 세워 가볍게 휘둘렀다.

만류귀종.

무학은 다양해도 그 끝은 결국 같다는 의미처럼 천마는 손가락으로 검술을 펼친 것이었다.

종남파 장문인이 대경실색하며 태을무극검법을 펼쳤다.

12개의 방위로 내보낸 내기들 중 7번째 위치인 사방위(巳方位)로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천마의 기운이 흩어졌다.

“크윽!”

종남파 장문인의 검법 선택과 초식의 완성도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내공의 양과 더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천마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제법이긴 하다만. 점점 흥미를 잃어가려 하는군. 더 보여줄 게 없다면 이만 죽어라.”

천마의 손가락에서 짙게 유형화된 강기가 검이 되어 장문인을 덮쳤다.

장문인은 방어를 위해 마주 검을 휘두르면서도 직감했다.

‘이건 막을 수 없다.’

주마등이 스쳐가는 장문인의 곁으로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천마의 공격을 밀어냈다.

쿠우우우웅!

‘개방주?’

장문인이 놀란 눈으로 곁을 봤다. 그곳엔 개방의 방주 취옥개가 고고하게 서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초절정의 경지인 개방주 당신이 천마의 공격을 막을 수 있냐는 종남파 장문인의 의문이었다.

이러한 의아함은 천마도 마찬가지였다. 그간의 보고와 현장에서의 기감에도 개방주의 무위는 초절정의 극, 잘해야 화경의 문턱이었다.

“몸을 숨기는 재주가 있었군.”

천마의 말에 취옥개가 혀를 찼다.

“네놈의 가슴팍에 비수를 꽂기 전까지 숨어보려 했지만 그러질 못한 게 아쉽구만.”

취옥개의 의도 자체는 말한 바와 같았다.

숨겨진 검.

취옥개는 적군은 물론 아군도 모르는 비장의 한 수로써 천마에게 큰 타격을 주려 했었다.

완숙한 화경을 넘어 그 끝에 이른 취옥개의 무위는 제자인 방덕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러기에 천마와 마교의 침공으로부터 비장의 수를 보일 수 있으리라 내심 자신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강해져서 나타난 천마를 보면 볼수록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기습 따위가 통할 인물이 아니야.’

지금의 개입은 종남파 장문인을 귀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천마에게 기습을 성공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크하하하하! 역시 재밌군. 재밌어. 소림방장보다 더 재밌을지도 모르겠어.”

천마가 흡족하게 웃으며 신형을 날렸고, 이에 맞서 취옥개도 전신의 기운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협공하겠소!”

빠르게 신색을 회복한 종남파 장문인도 모든 내기를 끌어 모으며 취옥개와 함께 몸을 날렸다.

마교와 정파, 그리고 어쩌면 전쟁의 종식을 결정지을 절대고수들의 격돌이 이어졌다.

***

한편 천애랑은 모용세가, 북해빙궁의 정예들과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목표는 마교를 상대하러 갔다는 정도무림의 최정예 고수들의 지원이자 천마의 척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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