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79화
천애랑의 외침은 효과가 있었다.
불안함에 집중력을 잃어가던 산서무림연합의 눈빛이 빠르게 굳건해졌다.
적당히 분위기를 잡았다 여긴 천애랑은 곧장 말허리를 박차 내달렸다. 동시에 기운을 북돋아 자신의 말을 재촉했다.
“히랴!”
제갈청의 서신을 받은 뒤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지칠 대로 지친 말이었다.
하지만 말은 천애랑의 기운을 받자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큼직한 발구름을 보여주었다.
“허어.”
산서무림연합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탄사를 뱉어냈다.
거대한 흑색 물결에 단기필마로 마주 달려가는 천애랑의 뒷모습은 전설에나 나올법한 영웅의 모습이었다.
이에 산서무림연합 무인들도 말고삐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우리도 간다! 백두신룡을 따르자!”
“가자아!”
“이랴아아아!”
천애랑은 빠르게 뒤따라오는 산서무림연합에게 외쳤다.
“종렬 일자형으로 돌파할 것이오! 모두 내 뒤를 바짝 붙어 따라오되 절대 흩어지지 마시오!”
“알겠소!”
산서무림연합이 천애랑의 뒤로 바짝 따라 붙었다.
1천에 가까운 흑풍대와 고작 백여 명에 불과한 천애랑과 산서무림연합.
빠르게 흑풍대와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천애랑은 천선을 접어 쥐었다.
파지직.
천선에 순식간에 뇌기가 어렸고, 천애랑은 이를 흑풍대 선두를 향해 찌르듯이 날렸다. 정확한 목표는 말의 다리였다.
파지지지지지직!
천선으로부터 빠르게 뻗어간 뇌전이 말의 다리에 적중하자 말들이 크게 놀라 날뛰었다.
히이이잉!
하지만 흑풍대는 마교 최정예 기마부대. 혼란에 흔들리는 진형의 틈을 빠르게 메워왔다.
‘이 정도론 안 되나.’
혀를 찬 천애랑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화접탄(火蝶彈).
천선에서 불꽃 나비 수백이 빠르게 생성됐다.
대난무(大亂舞).
천애랑은 천선을 크게 횡으로 그으며 불꽃 나비들을 날렸다.
광범위한 붉은 나비들의 날갯짓이 전장을 밝힐 때 흑풍대주가 창대를 꽉 틀어쥐었다.
끼기기긱.
창대에서 격한 마찰음이 들리는 순간 흑풍대주가 창을 내질렀다.
난화흑풍창(亂花黑風槍).
강기를 쉼 없이 쏘아내는 흑풍대주의 절기가 펼쳐졌다.
과거 북해빙궁에서 천애랑에게 시전할 땐 부득불 창이 아닌 검으로 펼쳤지만 지금은 제대로 창을 갖춘 상황.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콰과과과과과광!
흑풍대주의 강기에 화접탄이 산산조각 났다. 그러고도 강기의 기운이 남아 천애랑에게 향했다.
이에 천애랑은 말에서 급히 뛰어내리며 거대한 진각을 밟았다.
신룡군림보. 파쇄(破碎).
신룡군림보는 내공의 집약으로 거대한 압력을 가하는 기공술이다.
보통은 대기의 기운을 밀집시키고 무겁게 만들어 상대방을 옭아매는 방향으로 사용하지만 지금처럼 변칙적인 사용이 가능했다.
밀집한 대기의 기운이 잘 벼린 칼날처럼 얇게 형상화됐다. 그러곤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콰지직! 콰지지지지직!
신룡군림보 파쇄는 흑풍대주의 강기들을 갉아버린 것에 그치지 않고 달려드는 흑풍대의 말들에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
히이이이잉!
“크윽!”
“당황하지 마라! 강기로 막아내!”
흑풍대에 작은 혼란이 일었다. 그로 인해 흑풍대 진형 한곳에 작은 틈이 생겼다. 그 틈이 위치한 곳은 산의 절벽과 마주한 평야의 한 지점.
“절벽을 이용해 방진을 이루시오!”
천애랑의 의도를 이해한 산서무림연합이 말허리를 더욱 박찼다.
“가자아!”
“산서무림의 힘을 보이자!”
와아아아!
순식간에 흑풍대와 산서무림연합이 뒤엉켰다.
기마전의 위력은 달리면서 만들어지는 속도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말이 멈춰서 엉켜버리면 기마전의 효용이 확실히 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기마의 실력이 부족한 산서무림연합보다 흑풍대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었다.
그리되면 비록 산서무림연합이 흑풍대에 무력으로나 숫자로나 부족하다지만 큰 저항이 가능할 터였다.
실제로도 산서무림연합의 무인들이 절벽을 이용해 흑풍대와 꽤나 치열한 결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산서무림연합이 흑풍대에 삼켜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천애랑은 산서무림연합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전쟁이란 지독히도 차갑고 잔혹한 것.
저들 모두를 살릴 생각도,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저들의 항전은 이제 온전히 저들의 몫이 되었다.
대신 천애랑은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가장 잘 하는 것을 할 뿐이었다.
‘군사의 부탁 또한 정도무림의 구원이 아니라 산서에서의 흑풍대 저지였으니.’
부우웅!
어느새 다가와 질러대는 흑풍대의 창을 천애랑은 가볍게 피해냈다. 그러곤 천선을 날렸다.
까가강!
흑풍대가 천선을 창대로 막아냈다.
‘역시 흑풍대인가.’
기를 덧씌워 날리는 천선의 날은 강력한 암기와 다를 바 없었다.
그간 다수와의 전투에선 대부분 통했던 공격이었건만 흑풍대에겐 바로 막혀버렸다.
‘하지만 상관없다.’
통하지 않는다면 통하게 만들면 될 뿐.
천애랑은 흑풍대 진형 속으로 파고들었다.
“막아라! 방심하지 마!”
과거 북해빙궁의 전장에 참여했던 흑풍대의 대원들이 다른 흑풍대원들에게 경고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광폭환.
천애랑의 손에서 만들어진 기의 폭탄이 흑풍대의 중심에 떨어졌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흑풍대원들이 다급히 창을 휘둘렀다. 필요에 따라 말을 버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흑풍대원들이 비산했다.
‘반응이 기민해. 마치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연습한 것처럼.’
별다른 피해가 없는 흑풍대를 보며 천애랑은 미간을 좁혔다.
‘이대로는 전투가 길어지겠네.’
천애랑은 주변을 둘러싼 흑풍대 너머의 흑풍대주를 찾았다.
‘내공소모가 심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천애랑은 곧장 크게 진각을 밟았다.
신룡군림보(神龍君臨步).
쿠구구구구구구!
천애랑 주변 이 장의 공간에 거대한 압력이 짓눌렀다.
영역 안에 있던 흑풍대원들이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다. 하지만 이들은 더욱 강해지는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크윽!”
“끄으윽!”
“무슨……!”
흑풍대가 경악의 표정으로 천애랑을 올려다봤다.
천애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룡군림보. 압(壓).
꾸그그그그그극!
아까보다 더 거대한 압력이 짓누르자 천애랑 주변의 흑풍대원들은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압력에 터져 죽었다.
경악스런 무위에 포위망을 형성하던 흑풍대에 정적이 흘렀다.
“그래. 수하들 수준으론 네 녀석을 상대하는 게 불가능하겠지.”
흑풍대주가 거대한 전마에서 내려섰다. 그 움직임에 왼팔이 펄럭였다.
“이 팔을 볼 때면 냉철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던 나조차도 분노를 감출 수가 없더군.”
“좋아 보이는데?”
사람 속을 긁는 천애랑의 말에 흑풍대주가 낮게 웃었다.
“크크큭. 네놈은 마교에서 생활했어도 아주 잘 했겠어.”
“별 거지 같은 소릴.”
“후우. 잡소리는 이쯤 하지. 원래라면 철저하게 수하들을 이용해 네놈을 괴롭히는 실리를 취했겠지만.”
흑풍대주가 창을 잡았다. 그러곤 이어 말했다.
“이 순간을 기다린 만큼 내가 직접 상대해주마.”
“제법이네. 남은 한쪽 팔도 잃을까 봐 겁먹고 내뺄 줄 알았더니. 그나저나 양 팔이 있어도 내 상대가 안 됐는데 한쪽 팔이 없는 상태로 덤비시게?”
빠득.
흑풍대주가 이를 갈았다. 지금의 대화가 서로에 대한 격장지계임을 알면서도 들끓는 분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흑풍대주는 신형을 날렸다.
“문답무용!”
“기껏 말은 다 해놓고선 끝까지 헛소리네.”
송소걸이 봤다면 칭찬을 마다하지 않을 격장지계에 천애랑은 내심 만족하며 마주 신형을 날렸다.
흑풍대주의 창대가 잘게 흔들렸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실상은 초월적으로 빠른 찌르기가 수십 차례 이뤄진 것이었다.
난화흑풍창(亂花黑風槍). 일점(一點).
광범위하게 강기를 난사하는 난화흑풍창이 단 한 명에게만 쏘아졌다.
이에 맞서 천애랑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뇌룡강림(雷龍降臨). 섬멸(殲滅).
일 갑자의 기운에 준하는 뇌기가 필요한 기술이자 광범위하게 뇌전을 내리치는 뇌룡강림 광역(廣域)의 상위 기술이 섬멸이었다.
흑풍대주의 몰아치는 묵빛 강기와 천애랑의 황금빛 뇌기가 충돌했다.
쿠르르르 콰아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드드드드득!
천지를 뒤흔드는 충격의 여파에 흑풍대가 경악하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흑풍대는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도 했다.
“으아악!”
“피, 피해라! 휩싸이면 죽는다!”
“컥!”
자연재해와 같은 흑풍대주와 천애랑의 격돌은 이어졌다.
두 사람에게 탐색전 따윈 없었다. 그저 일격필살의 공격을 쏘아낼 뿐이었다.
흑룡아(黑龍牙)
흑풍대주의 창이 크게 휘둘러졌다. 그러자 그의 광폭한 기운이 눈앞의 모든 걸 찢어발길 듯 크게 할퀴어왔다.
“후우.”
천애랑은 심호흡을 하며 천선을 든 손을 늘어뜨렸다. 그러곤 상단전을 크게 개방했다.
순식간에 기운이 머리로 치달으며 천애랑의 두 눈이 밝게 빛났다.
이어 천애랑은 무당파의 장문인에게서 얻은 깨달음을 떠올리며 흑풍대주의 기운을 관찰했다.
‘흐름, 내공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
무당파 장문인은 내공끼리의 연결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마치 하나의 신체처럼.’
이는 평생을 내공에 대해서 연구하고 익혀왔던 기공가의 시선에서도 대단한 수준이었다.
천애랑은 그 뒤로 무당파 장문인의 제공권을 시간이 될 때마다 분석하고 체화시켜왔다.
‘어설픈 부분은 힘으로라도.’
천애랑이 흑룡대주의 흑룡아를 향해 천선을 휘둘렀다.
천애랑 스스로의 잣대가 높기에 어설픈 부분이라 했을 뿐이지 현재까지 체화시킨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선보였다.
촤아아아아악!
흑풍대주의 거대한 기운이 속절없이 흩어졌다. 천애랑이 흑룡아를 이루는 기운의 흐름 하나하나를 단절시킨 탓이었다.
“……!”
흑풍대주가 크게 놀랄 때 천애랑은 제공권을 유지하며 신형을 날렸다.
절대적인 방어와 공격이 가능한 제공권을 유지하는 건 극도의 심력과 내공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천애랑은 모든 내공을 소모하더라도 과감하게 속전속결을 이룰 생각이었다.
이러한 천애랑의 승부수를 파악한 흑풍대주는 창을 돌려 자세를 정비하곤 기운을 폭발시켰다.
“그래! 승부를 보자!”
흑풍대주의 몸에서 세상을 어둡게 물들이는 살기가 유형화 되었다.
파가각. 파가가각.
천마신공의 천마현신처럼 뚜렷한 마신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 같은 형상을 한 그것은 하나의 창을 높게 들었다.
“세상에…….”
한참 흑풍대와 전투를 치르던 산서무림연합의 무인들이 경악을 했다.
혼란스럽게 뒤엉킨 전장 어디에서도 쉬이 보일 정도로 흑풍대주의 기운은 거대했다. 이는 먼 거리에 위치한 태원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몸 안의 모든 기운을 끌어 쓴 흑풍대주의 구멍들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흑풍대주는 멈추지 않았다.
“반드시 죽인다.”
과거 북해빙궁에서 천애랑의 제공권에 당해 왼팔을 잃은 흑풍대주다.
그렇기에 지금 천애랑이 펼치는 제공권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흑풍대주는 천애랑의 제공권을 피하는 것 대신 부숴버릴 의지를 불태웠다.
그것이 무인으로서 그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기에.
“흐아아아아아압!”
흑풍대주가 혼신을 담은 일격을 날렸다.
이에 맞서 천애랑도 모든 단전과 세맥을 개방하고 제공권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