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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75화 (175/200)

기공술사 175화

찬호가 혀를 찼다.

‘괴물이군.’

아무리 베어도 혈교주의 몸은 거짓말처럼 회복됐다.

심지어 손가락이나 팔이 잘려도 혈교주는 그것들을 다시 갖다 붙였다.

‘피를 이용하는 술법인가.’

신체의 부상을 즉각 회복하다니. 매우 사기적인 기술이었다.

‘압도적인 피, 그리고 압도적인 내공.’

찬호가 파악하기론 두 가지가 혈교주가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제물이었다.

즉, 피와 내공만 있다면 잘린 신체부위도 다시 붙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인 셈이다.

하지만 찬호의 눈에 그것의 한계가 느껴졌다.

촤차착!

빠르게 검을 휘둘러 혈교주에게 작지만 많은 부상을 입힌 찬호가 크게 거리를 벌렸다.

혈교주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큭. 왜? 이제는 지쳐오나? 되도 않는 공격에, 오만한 네놈이 뒤로 물러나다니.”

“네놈이나 걱정하지? 그 잘난 회복도 이젠 꽤 더뎌 보이는데?”

찬호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검으로 혈교주의 몸을 가리켰다. 이에 혈교주의 표정이 왈칵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보며 찬호가 속으로 확신했다.

‘맞나보군.’

무차별적인 회복.

혈교주는 상처가 작든 크든 무조건 다 회복을 했다. 게다가 상처의 경중에 상관없이 회복에 필요한 피와 내공의 양이 동일한 느낌이었다.

이러한 점을 찬호는 진작 파악했었다. 그래서 혈교주의 빈틈을 만들어 상황을 역전시켜보고자 했었다.

하지만 그가 이틀의 전투 동안에 그러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찬호가 힐끔 주위를 둘러봤다.

두 사람의 격전, 그리고 호위대와 흑화간의 전투로 초토화가 돼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던 이들과 혈교주와 함께한 이들 모두가 죽어있었다.

찬호 자신을 따르는 호위대들은 결코 만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특히 네 명의 수신호위는 모두가 화경의 문턱을 바라볼 만큼 강한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근에 있던 수백 마인들의 합류가 이루어져 마교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됐었다.

그러나 흑화에는 화경의 고수가 둘이 있어 수적 열세에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여줬다.

‘흑화의 현성, 현곽이라 했던가.’

그렇게 찬호와 혈교주처럼 그들도 장장 이틀에 달하는 전투를 치렀고, 그 결과는 양패구상이었다.

찬호에게 있어서 아군이든 적군이든 수백의 인물들이 죽은 것은 큰 감흥거리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죽으며 흘린 피였다.

수백의 인물들이 흘린 피에 지난 이틀간 혈교주의 회복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의 피가 메말랐다.

그 결과로 혈교주의 이능력에 대한 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피가 부족하니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는군.’

조금 전 혈교주에게 만들어낸 얕은 상처들이 미세하지만 이전처럼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치명적인 공격이 아닌 자잘한 공격만으로도 혈교주에게 유의미한 내공소모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다소 놀란 눈을 하던 혈교주는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네놈이 본좌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말과 함께 혈교주의 신형이 사라졌다.

찬호는 다급히 측후방의 사각지대로 검을 휘둘렀다.

까아앙!

검과 검이 불똥을 만들어내며 전투의 재개를 알렸다.

까가가가강!

순식간에 수십 합이 오가며 분주하게 검이 움직였다.

사사삭!

찬호의 옷가지가 난도질당해 흩어졌다.

“크하하! 반응이 느려졌구나!”

혈교주가 크게 웃으며 공격을 이어갔다.

찬호가 이를 악다물었다.

찬호 그가 익힌 천마신공은 정공과 동공 모든 것에 효능이 있다.

이는 앉아서 정적으로 심공을 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움직이면서도 내공을 쌓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한 천마신공을 익힌 덕분에 찬호는 이립도 안 된 나이임에도 무려 이 갑자가 넘는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매우 효율적으로 기를 운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찬호는 어지간해서 전투로 지치지 않는다.

하지만 혈교주와의 지난 이틀간의 전투는 찬호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대로는 진다.’

혈교주의 이능력 한계를 파악했다지만 혈교주의 능력은 이능력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과거의 혈교주도 절대고수의 반열에 있던 자. 즉, 숱한 전투경험과 무공을 익힌 이었다.

이능력이 대단하긴 하나 혈교주의 전신전력은 아니라는 의미다.

빠악!

찬호의 검을 몸으로 막아내며 돌진한 혈교주의 발길질이 찬호의 복부에 명중했다.

빠악!

“크윽!”

찬호가 크게 물러나며 거리를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혈교주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거리를 좁혀왔다. 그 속도가 전광석화와 같아 이대로라면 찬호가 큰 위기에 놓일 듯했다.

그때 찬호의 눈이 검붉게 물들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만마복종(萬魔服從).

찬호의 등 뒤에서 아수라의 형상이 떠올랐다. 이내 아수라의 눈이 강렬하게 빛이 나며 사방을 꿰뚫었다.

이는 모든 마(魔)를 천마신공 아래로 굴복시키는 빛이었다.

만마복종의 빛을 받은 혈교주가 한가득 인상을 썼다.

과거 자신이 찬호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은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이다.

“크윽! 이제는 본좌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혈교주가 전신의 기운을 폭발적으로 일으켰다. 그 안에는 화산파의 기운도 함께였다.

만마복종의 빛은 마기가 아닌 화산파의 기운은 어찌할 수 없는지 서서히 흩어졌다.

전신을 옥죄는 기운에서 벗어난 혈교주는 이내 섬뜩한 감각을 느끼며 호신강기를 펼쳤다.

콰과과광!

큰 충격에 혈교주는 발밑에 큰 고랑을 만들며 주르륵 밀려났다.

혈교주가 인상을 쓰며 자신의 몸을 보았다.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지만 난도질을 당한 듯 온몸에 자상이 가득했다.

이내 상처는 혈교주의 피와 내공을 소모하며 회복을 시도했다. 그 때문에 혈교주의 혈색이 창백해졌다.

“이런 개자식이!”

수치심에 흉신악살처럼 얼굴이 변한 혈교주의 내공이 폭주했다. 산이 뒤흔들리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찬호가 다급히 심호흡을 했다.

‘아직도 저런 내공이 남았나…….’

조금 전의 공격은 회심의 일격이었다.

막대한 내공소모가 필요한 천마신공 만마복종을 펼쳐 상대를 묶고,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상을 주고자 했다.

그 때문에 그나마 남은 내공의 대부분을 소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교주의 기세는 꺾일 조짐이 보이지가 않는다.

‘검이 무겁다. 큰일이군.’

찬호는 현격하게 떨어진 체력을 느끼며 가까스로 혈교주의 공격을 막아냈다.

“크윽!”

검을 놓칠 뻔한 찬호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하지만 혈교주는 찬호에게 회복의 겨를을 주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접근했다.

“어딜!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주마!”

혈마현신(血魔現身).

천마신공을 대성해야만 쓸 수 있는 천마현신(天魔現身)을 보고 혈교주가 만든 무공이었다.

혈교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오만가지의 기운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유형화됐다. 마치 거대한 마귀를 보는 듯했다.

혈교주의 유형화된 기운은 넝쿨의 줄기처럼 늘어나며 찬호를 향해 일제히 쏘아졌다.

촤라라라라라락!

기운의 양이 어찌나 거대한지 공간자체가 일그러지는 듯했다.

찬호는 직감했다.

‘도망칠 수 없다. 그렇다고 막을 수가…….’

고심하던 찬호의 뇌리로 품속에 있던 잠폭단이 떠올랐다.

잠폭단.

가진 선천지기를 폭주시켜 기운으로 승화시키는 일종의 약이었다.

허나 말이 약이지 생명의 근원인 선천지기를 폭주시키는 거라 치명적인 부작용이 뒤따랐다. 가진 기운의 크기에 따라 심하면 사망하기도 했다.

찬호는 품에서 잠폭단을 꺼냈다.

마교의 무인들에게 지급되는 것과 같은 잠폭단이었지만 완숙한 극마의 경지인 찬호가 먹는다면 그 위력은 사뭇 다를 게 자명했다.

‘순간적으로 기운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잘만 하면 탈마의 경지를 엿볼 수 있을지도.’

얻어지는 효과가 클 만큼 그에 따른 후유증도 클 것이다.

‘아마 죽을지도.’

죽음이 엿보이는데도 찬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혈마현신의 기운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꿀꺽.

찬호가 빠르게 잠폭단을 삼킴과 동시에 인위적으로 내공과 선천지기를 폭주시켰다.

그러자 촌각의 순간에 잠폭단이 내부에서 녹아들며 그 효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찬호의 기경팔맥과 모든 세맥들에 폭주하는 기운들이 가득 차 일견 찬호의 몸이 울퉁불퉁하게 보였다.

당장이라도 온몸이 터질 것만 같은 고통에 휩싸인 찬호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

찬호에게서 거대한 기운이 폭발하며 주위를 휩쓸었다. 그 대상에는 혈교주의 기운도 포함이었다.

콰드드득! 콰자자자자자작!

찬호의 두 눈이 검붉게 물들었다. 그의 홍채엔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천마현신(天魔現身).

혈교주처럼 찬호의 몸도 마기에 휩싸이며 거대해졌다. 차이라고는 찬호의 덩치가 더욱 거대하다는 점이었다.

“말도 안 되는…….”

혈교주가 경악을 했다.

새롭게 부활하며 과거보다 높은 경지를 개척한 그다. 탈마의 벽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이것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그리고 극마의 극이라는 지금의 경지만으로도 마교의 소교주를 참하는 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같은 화경이라도 그 급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찬호의 경지가 높았고, 이틀간 고생을 했다. 그럼에도 혈교주는 걱정하지 않았다.

‘녀석보다 본좌의 능력과 내공이 더 뛰어나다.’

그러한 생각이 소교주에게의 복수라는 결과로 곧 이어질 듯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모든 힘을 잃은 소교주의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더니 내기의 집합체인 혈마현신보다 더 거대한 천마현신을 보여준다.

게다가 아수라의 형상을 한 천마현신의 모습이 매우 선명하다.

이는 현재 소교주의 경지가 혈교주 자신보다 더 높을 수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말도 안 된다!”

혈교주가 악을 쓰며 모든 기운을 아낌없이 뿜어냈다. 그러자 그의 혈마현신이 더욱 덩치를 키웠다. 종래엔 천마현신보다 덩치에서 우위를 만들어냈다.

이내 두 사람의 유형화된 마신들이 두 손을 뻗었다. 그러곤 힘겨루기를 하듯 서로의 손을 잡아 밀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 쩌저저저적!

거대한 기의 공명음과 함께 두 사람이 딛고 있는 지반이 크게 갈라졌다.

이에 인근의 지형지물들이 무너지는 등 천재지변의 한 장면을 보였다.

두 마신의 힘겨루기가 반각에 이를 때 혈교주의 입가로 피가 흘렀다.

“크윽. 마, 말도 안 되는…….”

혈교주가 경악을 했다.

급하게 모든 기운으로 더 큰 덩치를 만들어냈다 여겼지만 천마현신의 밀도 앞에서 점점 격차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격차는 아무리 애를 써도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혈교주에게 가장 큰 수치심은 자신을 하찮게 보는 찬호의 눈빛이었다.

덤덤하며 차가운 찬호의 눈빛이 과거 죽음을 맞이할 때를 상기시켰다.

‘다시는… 그럴 순 없다!’

혈교주가 어렵사리 몸의 사혈 몇 개를 찍었다. 그러자 마치 잠폭단을 먹은 것처럼 혈교주가 가진 선천지기가 폭주했다.

그 덕분에 혈마현신의 마신이 천마현신의 아수라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다시 승기를 잡은 혈교주이지만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찬호의 눈동자가 매우 침중했기 때문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찬호의 홍채에 어린 푸른 불꽃이 더욱 활활 타오르더니 이내 검은 불꽃으로 변한 것이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절대앙복(絶對仰伏).

찬호의 두 눈동자, 동시에 천마현신 된 아수라의 눈동자에서 빛이라 표현하기 어려운 검은 무언가가 쏘아졌다.

이를 맞은 혈교주가 각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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