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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74화 (174/200)

기공술사 174화

저리 젊은 청년이 소문의 백두신룡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진성도인이 허언을 할리는 없으니까.’

천하의 무당파다.

제 아무리 형문세가가 형문에서 괄목할만한 세를 가졌다곤 하나 무당파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천하에서의 명성으로만 비교해 봐도 무당파의 일대제자 진성이 형문세가의 대공자보다 월등히 높았다. 과장하자면 명성의 차이가 범과 고양이 정도였다.

그러니 진성도인이 하후강 자신에게 거짓된 말을 입에 담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직접 마주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군.’

하후강은 이곳 형문에서 이름 높은 절정의 고수다. 그런 그가 기감을 이용해 천애랑을 가늠했다.

‘까마득하군.’

온몸이 빈틈인 것 같은데 막상 그 틈으로 검을 내지르면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마치 무당파의 장문인을 바라봤을 때처럼 숨이 턱 막혀왔다.

하후강이 침을 삼켰다.

처음엔 어떤 왈패 같은 놈이 겁도 없이 자신의 가문을 핍박했나 싶었는데, 무언가 이유가 있는 듯했다.

특히 평소 망나니처럼 행동하는 막내 동생이 엮여있으니 사건의 시시비비에 불안감이 깊어져만 간다.

‘무조건 좋게 넘어가야 한다.’

혹여 가문의 잘못이 하나도 없다한들 상대는 화경의 고수다. 함부로 시시비비를 가릴 상대가 아니란 말이다.

만약 화경의 고수가 작정한다면 형문세가는 두 시진도 못 버틸 것이었다.

‘두 시진이 뭐냐.’

하후강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입을 열려다 경악을 했다.

“형님! 저 새끼가 감히 대 형문세가를 멸시했습니다! 당장 응징해야 합니다!”

‘저 망둥이 같은 새끼가!’

2층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막내 동생의 말에 하후강이 떨리는 눈동자로 천애랑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천애랑은 하후술의 외침이나 하후강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진성도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오.”

“오! 절 기억하시는 겁니까?!”

“해검지에서 뵙지 않았소.”

천애랑의 말에 진성도인이 크게 반색했다.

무당일검 진강과 백두신룡 천애랑의 비무는 지금도 무당파 내에서 오르내리는 화두였다.

특히 진성의 입장에서 대제자인 진강 사형의 패배는 큰 충격이었다.

진성에게 있어서 진강 사형은 이른 시기부터 특출한 재능으로 무당파의 미래라 불리던 천재였다.

또한 같은 배분의 진강이지만 그 능력은 장로님들보다 뛰어나니 다른 무당파 도인들처럼 진성도 대제자 진강 사형이 미래의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만약 그에 이르지 못 하더라도 최소한 천하제일검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진성 자신은 그러한 진강 사형을 평생을 거쳐 본받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 하늘같은 사형이 패배한 것이다. 그것도 더 젊은 신진고수에게.

물론 그날 관전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무의 결과가 비긴 거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당파 내부의 소수는 아니었다. 그 소수 중 하나가 진성이었다.

진성은 그 뒤로 백두신룡 천애랑을 내심 마음에 담아뒀다. 당연히 본받고 싶은 순수한 마음의 의미였다.

“영광이오! 언제 한 번 백두신룡을 뵙고 싶었소이다.”

진성도인의 반응에 천애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당파와 나름 우호적인 인연이 있다지만.’

그 반응이 예상외로 뜨거워 머쓱했다.

“예…….”

뜨뜻미지근한 천애랑의 반응에도 진성도인은 밝게 미소를 보였다.

“본도는 아직도 백두신룡의 움직임이 눈앞에 아른거린다오! 항상 똑같은 무공만 봐오던 제 눈이 백두신룡 덕분에 개안을 했지 뭐요. 하하하!”

격한 진성도인의 말에 천애랑은 작게 웃었다.

“깨달음이 있었던가 보오. 확실히 해검지에서 봤을 때보다 기도가 차분해 보이오. 축하하오.”

“아! 역시! 백두신룡은 알아채실 줄 알았소이다! 다 백두신룡 덕분이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표하오!”

실제로 진성도인은 무당파에서의 비무를 견식하며 깨달음을 얻었었다.

무당파의 검 중 쾌검을 주로 익힌 진성의 별호는 섬검(嬐劍). 극한의 빠른 검식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데 특기가 있는 인물이었다.

빠름에 집착하는 성격 때문인지 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급해져 종종 실수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실수도 사문의 비무에선 큰 실책으로 나타나지 않았었다.

‘비무 상대라고는 평생을 동문수학한 이들이자 그들의 무공은 형과 식을 뻔히 아는 사문의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견식하지 못했던 천애랑의 무공과 움직임을 보며 많은 깨달음을 얻은 진성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

무당파 장문인이 대제자인 진강에게 깨우치게 하고자 했던 것을 진성도 깨달은 것이다.

천애랑은 감사의 포권을 취해오는 진성을 향해 마주 포권을 했다. 그러곤 무당파 장문인이 천애랑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나는 그저 보였을 뿐. 거기서 무언가를 얻는다면 그것은 제가 아닌 본 사람의 덕이오.”

천애랑과 진성도인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후강의 눈동자가 갈피를 잃었다.

진성도인과 이곳까지 동행하는 내내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저리 환한 미소와 부드러운 어투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천애랑을 바라보는 진성도인의 미소가 짙어질수록 천애랑과 엮어진 자신의 동생과 가문의 일이 더욱 복잡하게 엉켜지는 기분이었다.

하후강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선 더 늦기 전에 천애랑에게 인사를 했다.

“형문세가의 대공자 하후강이라고 합니다. 위명이 자자한 백두신룡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후강의 인사에 진성도인이 살짝 자리를 비켜줬다.

“천애랑이오.”

다소 짧은 천애랑의 대답에도 하후강은 기분 나쁜 기색을 내비칠 수 없었다.

인사를 하느라 천애랑에게 가까이 다가온 지금, 아까보다 더 큰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형님! 뭐하시는 겁니까! 저 새끼가 우리 가문을 욕보이고 행패를 부렸다니까요!”

2층에서 여전히 상황파악을 못한 하후술의 외침이 하후강의 귓가에 벼락처럼 들려왔다.

‘저 새끼가!’

동생을 무섭게 노려본 하후강은 조심스레 천애랑에게 말했다.

“혹시 이곳에서 저희 가문과 무슨 문제라도 있으셨습니까?”

천애랑은 덤덤히 말했으나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저 만두 좀 포장해서 가려는데 자꾸만 사람을 귀찮게 하더군.”

천애랑의 대답을 들은 하후강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화경의 고수가 만두 좀 포장해서 가려는데 그걸 시비 걸었다고?’

하후강이 막내 동생 하후술을 올려다봤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동생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넌 안 죽은 게 다행이다.’

세상천지 무림인 중에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괴팍한 이들이 더 많지.’

무언가에 미친 듯이 몰두해서 성취를 이룬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노력과 행위다.

돈을 버는 것보다 무공에 미친 자들, 성욕보다 무공에 미친 자들, 목숨보다 무공에 미친 자들, 사회통념의 규율보다 무공에 미친 자들.

그렇게 무공에 미쳐서 성취를 이룬 자들의 끝에 화경의 고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무공의 성취가 높아질수록 무언가 정신 하나가 빠진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게 때로는 괴팍한 취향으로, 취미로, 성격으로.

자신들도 그게 다소 이상하다는 것을 알지만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무림은 오직 힘.

힘만 있다면 그 어떤 어려운 논쟁이나 분쟁도 해결할 수 있는 게 무림이다.

그러니 절대고수 반열에 오른 그들이 누구의 눈치를 보겠는가. 누굴 죽이고도 눈 깜짝 안 할 사람들이다. 그리고 누가 감히 그들에게 책임을 묻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하후강은 가문의 무인들이 백두신룡에게 덤비고도 이만하기를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죽은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후강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하후술은 다시금 소리쳤다.

“형님! 가문이 모욕을 당했는데 그렇게 가만히만 있으실……!”

“이 새끼가! 죽을라고!”

하후강이 다급히 2층으로 날아오르며 동생 하후술을 걷어찼다.

쿠당탕!

“이 망아지 같은 놈이!”

퍽! 퍼벅!

손속에 사정을 뒀다지만 절정의 고수가 내지르는 주먹과 발길질이다.

“아, 아악!”

하후술이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하후강의 구타는 멈추지 않았다.

“으윽! 혀, 형님……?!”

하후술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자신의 형을 보았다.

하후술은 여인들의 놀란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그보다 처음 보는 형의 모습에 더 놀랐다.

평소 가문의 대소사를 처리하면서 냉철한 모습을 보이던 형이지만 이렇게까지 화를 낸 적을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자신에게만큼은 많은 포용력을 보여주던 형이었다. 그런 형이 오늘은 원수를 만난 것 마냥 불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커억!”

단말마와 비슷한 비명을 토해내는 동생을 향해 하후강이 작게 속삭였다.

“아프냐? 죽을 것 같아?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 자리에서 죽었다. 그리고 너 때문에 우리 가문이 몰살당할 수도 있었음이야.”

의식을 잃어가는 하후술을 뒤로하고 하후강이 다시 1층으로 내려섰다.

그는 지극히 정중한 태도로 천애랑에게 고개를 숙였다.

“철없는 막내의 무례를 대신하여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문 무인들을 향한 손속사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괜찮소.”

천애랑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형문세가와의 작은 시비는 그동안의 사건들에 비하면 신경이 거슬릴 정도의 일도 아니었다. 그저 작은 귀찮음에 불과했다.

그래서 천애랑은 더 이상의 귀찮음 없이 상황이 정리됐음에 만족했다.

천애랑은 곧장 객잔 내부를 살펴 누군가를 찾았다.

그 시선에 눈치를 보던 하후강이 물었다.

“혹시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천애랑은 대충 고개를 젓고선 크게 불렀다.

“점소이!”

그러자 주방에 몸을 피해있던 점소이가 조심히 다가왔다.

천애랑이 진중한 표정으로 점소이를 부른 터라 지켜보던 하후강과 진성도인이 의아한 시선을 했다.

혹여 점소이가 천애랑에게 어떠한 큰 실수라도 한 것인지 싶어서 진성도인이 걱정스레 말릴 요량의 태도를 취했다.

“하문하실 일이라도…….”

점소이가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도 말했다.

천애랑의 엄청난 무위도 물론이거니와 형문에서 엄청난 권위를 자랑하던 형문세가, 그곳의 대공자가 천애랑에게 저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천애랑은 점소이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이제는 만두 포장이 가능하겠소?”

“예?”

점소이의 놀람과 함께 긴장 가득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진성도인과 하후강도 놀란 눈을 했다.

“안 되오?”

천애랑의 미간이 좁혀졌다. 상당히 심기가 언짢은 게 주변인들에게 티가 났다.

천애랑의 기세가 사뭇 대단해 지켜보던 진성도인이 침을 삼킬 지경이었다.

점소이가 다급히 대답했다.

“되, 됩니다! 당연히 됩니다!”

그제야 천애랑이 표정이 활짝 펴졌다. 덩달아 시선을 모으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포장해 주시오. 종류별로 다.”

***

천애랑이 무한에서 형문까지 이동했던 이틀의 시간.

그 이틀의 시간동안 찬호와 혈교주의 결투는 밤새워 이뤄지고 있었다.

콰과광!

줄기차게 뻗어가는 혈교주의 마기를 찬호가 가까스로 쳐냈다.

절대고수간의 공방엔 자잘한 내공의 격돌 따윈 없었다. 오직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일격필살의 공격뿐.

제 아무리 천외의 경지의 고수들이라곤 하나 내공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혈교주를 상대하는 찬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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