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73화
호북성의 중앙 내륙에 위치한 형문(荊門).
남북으로 잇는 길이 잘 트여있어 다양한 물자들이 오가는 도시다.
장강의 물줄기가 호북성의 아래로 쳐져있기에 형문은 장강과 나름의 거리가 있었다.
대신 인근에 호수를 끼고 있기에 형문은 다양한 자원들이 풍부했다.
이러한 형문에 천애랑은 이틀간 쉬지 않고 축지법을 펼쳐 도착했다. 그러곤 곧장 포룡객잔을 찾았다.
‘이곳의 만두가 그렇게 맛있다고.’
이곳은 능 노인의 적극추천으로 찾은 객잔이었다. 능 노인은 무한에서 자리 잡기 전 형문에서 머물렀었고 포룡객잔을 애용했고 말했다.
천애랑은 삼층으로 크게 지어진 객잔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서 먹어봐야지!’
천애랑은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객잔에 들어섰다.
점소이가 놀란 눈을 하더니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천애랑의 용모에 점소이가 난색을 표했다.
이에 천애랑은 고개를 갸웃하며 넉넉하게 동전을 꺼내 건넸다.
“제일 좋은 자리로 부탁하오.”
이러한 천애랑의 행동에 점소이가 더욱 난색을 보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지금은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천애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객잔 내부엔 분명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손님들이 같은 복색에 병장기를 지닌 무인들이라는 것이 특이하긴 했다.
천애랑이 점소이에게 물었다.
“왜? 요리가 떨어졌소?”
“그건 아니지만…….”
점소이가 머뭇거릴 때 1층 객잔에서 식사를 하던 무인들 중 하나가 주목을 끌 정도로 거칠게 일어났다.
“거 참. 말귀를 못 알아먹는 놈이네.”
한 덩치를 자랑하는 사내가 건들거리며 천애랑에게 다가갔다.
어느덧 지근거리에 선 천애랑과 사내가 서로를 빤히 쳐다봤다. 사내의 태양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이 새끼 봐라? 우리가 누군지 몰라?”
사내는 어깨쯤에 수놓인 늑대모양의 그림을 강조했다. 이는 이곳 형문에서 가장 큰 무가인 형문세가를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그리고 형문세가에선 무공 수준이나 직급에 따라 늑대 수실의 색이 달랐다.
가장 낮은 것부터 흰색, 녹색, 적색, 흑색의 순서로 구분됐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사내는 녹색의 늑대였다.
하지만 천애랑이 어찌 이런 것을 알랴. 그는 그저 갑자기 시비를 걸어오는 사내를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태연자약한 천애랑의 태도에 사내의 표정이 붉어졌다.
점소이가 안절부절했다. 무언가 사달이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2층의 난간에서 비단옷을 입은 젊은 사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주거야. 외지인에게 함부로 대하면 되겠느냐. 다른 사람이 보면 우리 형문세가에 대해 오해를 하겠다.”
젊은 사내의 말에 주거라 불린 덩치의 사내가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공자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마치 아부를 하는 듯한 미소와 함께 주거가 천애랑에게서 몇 보 물러났다.
그런 후 2층의 사내가 천애랑을 보며 말했다.
“이보시오. 오늘 이 객잔은 우리 형문세가가 빌렸소이다. 그러니 식사를 하려거든 다른 데를 찾으시오.”
젊은 사내는 말을 하면서 자신에게 시선을 모으는 젊은 여인들에게 의식했다. 마치 자신의 포용심과 권위를 뽐내는 모양새였다.
그를 빤히 올려다보던 천애랑은 무심하게 시선을 돌려 점소이에게 말했다.
“만두 좀 싸주시오. 가져가겠소.”
점소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2층의 공자를 힐끔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형문세가 공자의 표정이 싸늘해지고 있었다.
점소이가 다급히 천애랑에게 속삭였다.
“손님. 이러다 큰일 나십니다. 다음에 방문해 주시지요.”
점소이의 만류에도 천애랑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언제 이곳의 만두를 먹어볼 줄 알고.’
어찌나 이 가게에 대해서 능 노인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지 한껏 기대에 부푼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도보로 일주일은 걸릴 수 있는 길을 잠도 안 자고 이틀 만에 주파했다. 그러니 어찌 쉽게 물러나겠나.
“돈은 넉넉히 드릴 테니 포장만 해주시오. 내 반드시 먹어야겠소.”
천애랑의 고집스런 말에 점소이는 연신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이를 지켜보는 형문세가의 공자는 짜증스런 기색을 보였다.
형문세가 공자는 당장이라도 욕설을 뱉고 싶었지만 뒤에서 지켜보는 여인들을 의식하며 점잖게 말했다.
“이보시오. 오늘 형문세가가 이곳 객잔을 빌렸다는 말 안엔 모든 음식도 포함되어 있소이다. 그러니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물러나시오.”
천애랑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형문세가 공자를 힐끔거리고는 품에 손을 넣었다.
“그 음식 중 일부를 내가 사겠소.”
말과 함께 천애랑은 형문세가 공자에게 금전을 날렸다.
“헉! 금전!”
손바닥만 한 큰 금전을 보며 2층에 자리한 여인들이 놀란 소리를 뱉었다. 고작 만두를 사겠다는 값치고는 매우 큰 금액이었다.
조금만 돈을 더 보태면 자신이 객잔을 빌린 금액과 맞먹을 가치였다.
이에 형문세가 공자의 미간이 강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돈으로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디 상계의 놈인가. 점잖게 말할 때 알아서 기면 좋으련만 끝끝내 혼을 나봐야 정신 차리는 것들이 있지.’
형문세가의 공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감히 형문세가를 무시함인가!”
공자의 분노에 천애랑이 한숨을 쉬었다.
“만두 하나 포장해 가겠다는 것이 형문세가를 무시하는 행위던가? 참으로 무시 받는 기준이 낮은 곳이로군.”
“뭐, 뭐라?!”
하후술.
형문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형문세가의 막내로서 부족함 없이 자란 공자였다.
너무나 부족함이 없이 자란 탓에 이곳 형문에서 망나니라 소문이 자자하기도 했다.
항상 흥청망청 유흥을 즐기던 그가 이번에 객잔을 통째로 빌린 이유는 이른 자축과 허세였다.
하후술 그는 형제들에 비해선 무재가 약하지만 그래도 이립에 일류 끝자락의 실력을 가졌다.
조만간 가문에서 영약 하나를 받게 된다면 절정의 경지를 밟을 수 있을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하후술 그는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을 데리고 미리 축하의 자리를 가지는 중이었다. 내심 마음에 둔 여인들과 함께.
그런 상황이기에 하후술은 천애랑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여인들이 천애랑의 잘생긴 외모에 대해 숙덕거리는 것이 들리자 하후술의 심기가 완전히 뒤틀려버렸다.
“뭣들 하나! 감히 형문세가를 무시하는 녀석이다! 따끔하게 혼내주고 쫓아내라!”
드르르르륵.
각 층에 자리한 형문세가 무인들이 일제히 의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그러곤 위협적으로 천애랑에게 다가갔다.
“만두만 싸간다니까는.”
천애랑은 혀를 차며 주먹을 질러오는 덩치 큰 사내를 보았다. 그러곤 가볍게 손을 털어 사내를 날렸다.
쿠쾅쾅!
요란하게 식탁들을 부수며 날아간 덩치 큰 사내의 신형이 털썩 쓰러졌다. 단 한 수에 기절을 한 것이었다.
“무슨!”
이를 지켜본 하후술이 경악을 했다.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젊은 상대의 외견에 만만하게 봤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수?’
하지만 이미 여인들 앞에서 큰소리를 친 상황이다. 하후술은 물러날 수 없다는 듯 외쳤다.
“무기를 써 이것들아!”
이에 무인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스릉. 스르르릉.
날붙이의 마찰음들이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살기까지 느껴지는 광경에 여인들이 두려운 눈빛을 했다.
“어떡해…….”
한 여인의 걱정의 목소리가 하후술을 자극했다.
이에 하후술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상단의 여식이자 하후술이 가장 마음에 담아 둔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이 아닌 엉뚱한 사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으득.
하후술이 이를 갈며 고개를 돌렸다. 곱상하게 생긴 놈의 팔이라도 하나 병신으로 만들라고 명할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무, 무슨……!”
촌각이다.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되돌아온 시간이.
뜨거운 차 한 잔도 다 비우기 어려울 그런 시간.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객잔 1층의 수하들이 모두 쓰러져있었다. 그 수가 족히 이십은 넘었다.
“말도 안 되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하후술이 엉거주춤 자세를 취할 때 천애랑과 시선이 마주쳤다.
“헉!”
천애랑의 서늘한 눈빛을 받은 하후술이 화들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는 이내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는 빨개진 얼굴로 소리를 쳤다.
“뭣들 해!”
객실만 있는 3층을 제외하곤 아직 2층에도 형문세가의 무인들이 있었다.
그것도 1층의 무인들보다 수준이 높은 적색의 늑대 수실을 단 이들.
그들이 일제히 천애랑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에 하후술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녹색 늑대의 무인들은 대개 이류 경지의 무인들이었다.
일류 끝자락인 자신도 녀석처럼 이류 무인 이십은 쓰러뜨릴 수 있었다. 물론 녀석과는 달리 넉넉한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즉, 곱상한 녀석이 하후술 자신보다 강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는데 상관없었다.
적색 늑대는 모두 일류의 고수들로 하후술 형문세가의 정예들이었다.
실력으로도 하후술 자신에게 뒤처진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런 이가 열 명이나 된다.
그렇기에 하후술은 이번에야말로 재수 없는 녀석을 혼쭐 내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콰광! 콰과광!
요란한 굉음들과 함께 하후술은 자신의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일류고수들 열이 단 일합 만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
하후술이 할 말을 잃은 채 경악을 하던 때, 객잔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백색 도복을 입은 도인과 사십 줄로 보이는 강인한 인상의 사내였다.
하후술은 강인한 인상의 사내를 보고선 반갑게 외쳤다. 지금의 곤란함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형님!”
하후술이 형님이라 부른 이는 형문세가의 대공자이자 절정의 고수인 하후강이었다.
하후강은 동생의 표정과 객잔 안의 상황을 파악하느라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인과관계가 어찌 되었든 이곳저곳에 쓰러져 있는 가문의 무인들만 봐도 당장 검을 뽑아야 할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검이 향할 대상은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 거라 짐작되는 눈앞의 청년이었다.
그렇게 하후강이 검에 손을 가져갈 때였다.
“어어?!”
함께 온 도인이 반가운 감탄을 뱉었다. 이에 하후강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도인은 무당파 일대제자 진성.
일대제자 중 상위의 권한을 가진 인물로서 현재는 형문세가와 무당파간의 거래를 위해 직접 모신 귀인이었다.
“진성도인께서 아시는 자입니까……?”
진성도인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무당파의 귀한 인연이시오. 그의 별호는 하후강 도우께서도 들어봤을 것이오.”
“……네?”
의아해하는 하후강에게 진성도인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저분이 백두신룡이외다.”
“네?!”
하후강이 경악성을 뱉었다.
백두신룡의 활약상과 무당파의 인연에 대해선 동행하는 내내 귀가 따갑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백두신룡 천애랑은 천하를 오시한다던 화경의 경지이자 일대종사의 인물이라 했다.
하후강이 놀란 눈으로 천애랑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