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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72화 (172/200)

기공술사 172화

“나를?”

찬호가 팔짱을 끼었다.

‘복수를 위함인가.’

혈교주를 죽인 것은 찬호 자신이었다. 만약 혈교주가 부활한 게 사실이라면 충분히 복수를 꿈꿀 만도 했다.

‘거기에 과거보다 더 강한 무위를 되찾았다면.’

찬호가 낮게 웃었다.

“우습군.”

혈교주가 새로운 무공을 익히거나 현경의 경지를 넘어선 게 아니라면 결국 과거처럼 마기를 익혔을 것이다.

그렇단 말은 결국 혈교주의 마기는 천마신공 안에 종속된다는 의미와 같았다.

“혈교주가 건방져. 만약 새롭게 태어난 것이 진짜라면 조용히나 지낼 것이지. 감히.”

찬호가 명을 내렸다.

“당장 정보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혈교주의 위치를 찾아라. 이번에야말로 혈교 종자들의 씨를 확실히 없앨 것이다.”

“존명!”

***

정보의 진위여부에 대해선 며칠 만에 확인이 되었다.

소교주가 있던 곳인 난주 근처. 그곳의 민가에서 마기를 흩뿌리며 학살하는 이의 정보가 수집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흡혈 같은 이능을 쓴 듯 바짝 말라비틀어진 주민들의 시체도 발견됐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마교의 무인들 중 하나의 소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찬호는 고개를 저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현재 감숙성의 난주 인근은 마교의 전권을 대행하고 있는 소교주가 머무는 곳이다.

심지어 현재는 전시상황이기에 모든 마인들은 철저하게 명령 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전시상황에서의 명령불복종은 즉참(卽斬)의 처분이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마인 중 누군가가 함부로 명을 어기고 움직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정황상 혈교주일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말 그대로 가능성일 뿐이다.

그렇게 수색작업이 대대적으로 펼쳐졌고, 혈교주로 짐작되는 이의 위치를 찾았다는 보고가 속속들이 들어왔다.

그중에서 거르고 걸러 다섯 곳을 추려냈고, 찬호가 직접 행차해 확인했으나 모두 허탕이었다.

삼일의 시간을 허비한 찬호가 초토화가 된 산촌 마을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검, 도, 암, 편 네 명의 수신호위 중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교주여. 이만 돌아가시지요.”

원래 수신호위들은 천마를 섬기는 이들이었으나 천마가 폐관수련에 들어감과 동시에 소교주의 곁을 지키게 된 이들이다.

명목상으로는 소교주의 호위이지만 오직 충성은 천마에게만 향하니, 찬호의 입장에선 그저 자신을 감시하는 인물들일 뿐이었다.

“귀찮게 하지 말라.”

찬호의 차가운 대답에도 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찬호의 가벼운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재 마교를 대표하는 소교주께선 움직임이 태산과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끈 떨어진 혈교주를 직접 찾아서 어쩌겠다는 겁니까.”

찬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버지이자 대 천마신교의 교주인 천마의 심복들이라지만 이렇듯 한 번씩 선을 넘는 경우가 있었다.

불쾌한 찬호의 마음에 자연스레 마기가 일렁이고, 그의 손은 검병에 얹어졌다.

당장이라도 발검을 해 눈앞의 수신호위를 일도양단할 기세였다. 하지만 찬호는 긴 숨을 토해내며 기운을 갈무리하고 손을 저었다.

“마지막 경고다. 함부로 내 앞을 막지 마라.”

수신호위 검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숙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며 다시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찬호는 언짢은 마음에 혀를 차며 생각을 정리했다.

수신호위의 말처럼 교주대행을 하고 있는 자신이 이렇게 누군가를 죽이고자 직접 움직이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긴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쟁에 앞서 갑작스런 변수를 확실하게 제거하려 했던 그였다.

게다가 아무리 혈교주의 경지가 상승했더라도 모든 마기를 지배하는 천마신공이 있기에 이런 행동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쯧. 그럼 뭐하나 찾을 수가 있어야지.’

찬호가 턱을 긁적였다.

‘하긴. 극마를 넘어선 이를 쉽게 추적하리라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나.’

화경, 마교에선 극마라고 표현하는 경지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다.

작정하고 숨고자하면 어지간한 이들에게 꼬리를 밟히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의 움직임은 숨고자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대놓고 민가를 습격해 그 흔적이 남음을 신경 쓰지 않는 행보. 이는 누구든지 자신의 앞을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처럼 보였었다.

“흐음.”

찬호는 발치에 쓰러져 있는 시신을 바라봤다. 목내이처럼 바짝 쪼그라진 시신이 원통한지 눈도 못 감고 죽어있었다.

유심히 시신을 보던 찬호는 발로 시신을 밀었다. 이어서 찬호의 눈이 좁혀졌다.

‘다른 건 몰라도 흙에 묻은 피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야.’

피 한줌 없던 시신의 자리엔 전투의 흔적인지 피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피의 상태를 보건대 길어야 한 시진 전의 피일 듯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찬호는 눈을 감고 기감을 넓혔다.

일 장, 십 장, 오십 장, 백 장.

빠른 속도로 감각이 넓혀지며 숲 안의 정보가 몰아쳐왔다.

나무나 돌 등 자연물들을 삭제하며 오직 이질적인 기운만을 찾아봤다.

그렇게 오백 장의 영역을 살피던 차.

“찾았다.”

찬호가 두 눈을 뜨며 신형을 날렸다.

“소, 소교주님을 뒤따라라!”

갑작스런 찬호의 행동에 수신호위는 물론, 주위를 지키던 마교 무인들이 다급히 찬호를 뒤따랐다.

***

또 하나의 작은 마을을 초토화시킨 혈교주가 입맛을 다셨다.

“부족해.”

“아직도 부족하다고?”

뒤늦게 혈교주에게 합류한 현성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반응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무림맹주와의 전투에서 작은 부상을 입은 혈교주다.

내부로 침투한 자하강기가 내공의 회복을 방해하는 터에 그는 연신 사람들의 피를 흡수하며 몸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그간 칠백이 넘는 사람의 피를 흡수하고서야 대부분의 몸 상태를 회복했다.

가늠하기에 백 정도의 사람들을 더 흡수하면 완전히 몸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혈교주의 고개가 휙 돌아섰다. 이어서 현성과 현곽도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모았다.

혈교주는 점차 가까워지는 기운을 느끼며 놀란 눈을 했다. 그러곤 이내 짙은 미소를 지었다.

“녀석이다.”

“누구?”

현성의 물음에 혈교주가 웃으며 말했다.

“내 목을 친 새끼.”

“……?!”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현성이 두 눈을 크게 뜰 때 벼락처럼 찬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찬호와 혈교주.

두 사람은 시선을 교차한 순간 너나할 것 없이 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에엑!

엄청난 쾌검들이 허공에서 맞붙었다.

까가가가가강!

순식간에 삼십여 합의 공방이 교차된 후 두 사람은 거리를 벌렸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혈교주인가.”

찬호가 눈썹을 들썩이며 놀람을 표했다. 공방 속에서 매우 익숙한 혈교주의 마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혈교주가 낮게 웃었다.

“크크크큭. 소교주 네놈이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찬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살아나더니 겁을 상실한 건가?”

“크크크크크크큭. 크하하하하하!”

청상의 몸을 한 혈교주가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앙천대소를 했다. 그러자 숲이 격하게 흔들렸다.

쿠구구구구구구.

막대한 마기에 의해 단단한 돌과 나무가 부서지고 부러졌다. 강맹한 기파는 찬호에게까지 뻗어갔다.

하지만 찬호가 진각을 밟자 다가오던 혈교주의 기파가 갈라져 흩어졌다.

“모든 마(魔)는 천마신공에 종속된다는 사실을 그새 잊은 건가.”

“크크크큭.”

혈교주는 그저 웃으며 다시금 마기를 쏘아 보냈다. 이에 찬호는 앞서와 같이 혈교주의 마기를 갈랐다.

“크크큭.”

혈교주의 마기가 또다시 쏘아지고 다시 찬호가 막기를 반복.

“크하하하!”

다시 이어지는 혈교주의 마기를 막아내던 찬호의 눈이 좁혀졌다.

콰과광!

찬호가 처음으로 검을 휘둘러 혈교주의 마기를 막아냈다.

“…….”

찬호는 자신의 검을 보며 조금 전 막아낸 마기에 대해서 분석했다.

‘순수한 마기가 아니었다.’

마기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섞인 느낌.

‘귀기(鬼氣)와 정공의 내기가……?’

내공이라는 것은 대자연의 기운을 저마다의 호흡법으로 가공한 것이다.

그 말인즉슨 대자연의 다양성만큼 내공도 다양하다는 말이고, 대자연의 변수만큼 내공에도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러한 다양한 변수들 중에는 종류가 다른 내공을 함께 익히는 행위가 존재한다. 마치 무당파의 양의심공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상극의 기운을 익히는 게 아니다.’

정도의 심공과 정도의 심공. 마도의 심공과 마도의 심공.

보통은 이렇게 비슷한 흐름을 가진 심공들을 익혀 각각의 내공이 가진 장점들을 쓰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혈교주가 쏘아낸 마기 안엔 함께 상종할 수 없는 두 기운이 섞여 있었다.

‘마기와 정파의 기운이라…… 지금 몸이 화산파의 것이라 했으니 화산파의 내공인가.’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는 모르나 여간 귀찮게 된 상황이었다.

‘정공의 기운 때문에 놈의 마기가 제대로 제압되지가 않아.’

찬호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혈교주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재밌지 않나? 그놈의 천마신공이란 것이 통하지 않는 기분이?”

“그래봐야.”

말과 함께 찬호의 신형이 쏘아졌다.

찬호의 검신에서 칠흑처럼 짙은 마기가 서렸다. 이에 맞서 혈교주도 검을 휘둘렀다.

꽈과광!

두 절대고수의 격돌이 이어질 때.

“소교주님!”

뒤따라온 마교의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고 전장에 끼어들었다.

그들을 보며 현성이 혀를 찼다.

‘달갑지 않은 상황인데.’

흑화의 입장에서 혈교주가 마교의 소교주와 드잡이를 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언젠가 복수를 위해 충돌할 것을 예상했었고 무엇보다 혈교주가 질 것 같지가 않았다.

곧 주위에 천라지망을 펼칠 수천의 마인들도 큰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들과 혈교주의 무력이라면 어지간한 포위망도 힘으로 뚫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나타난 것들인데.’

소교주의 호위대인 듯 나타난 면면들의 실력이 상당했다. 모두가 최소 절정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림자를 이용해 다가오며 저릿한 살기를 뿜어내는 네 명의 인영이 압권이었다. 설핏 화경에 가까운 기운들이었다.

‘역시 마교인가.’

단일 집단으로서는 천하에서 가장 고수를 많이 보유한 곳이 마교였다.

‘늦장 피우면 안 되겠군.’

현성이 흑화에게 명을 내렸다.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말아라! 방심하면 죽는다!”

그렇게 소교주와 혈교주의 전투에 이어 소교주 호위대와 흑화간의 전투도 시작됐다.

***

한편 천애랑은 무한에서의 모든 일을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좀 더 쉬다 가시지 않고요.”

마중을 나온 담대혁이 매우 아쉬운 표정을 했다. 이에 천애랑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여기 남아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천애랑이 장강수로연맹을 와해시킨 후 담대혁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무한으로 가는 물줄기의 앞뒤를 수군으로 빠르게 장악하고, 동호 아래로 남아있던 홍건적들을 빠르게 정비해 무한을 총공격했다.

동쪽으로 움직이던 황군이 황급히 되돌아와 대응했지만 여기서도 천애랑의 큰 도움으로 홍건적이 승리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거라고는 전후처리와 무한의 방비를 단단히 하는 것뿐.

이것은 홍건적의 일이기에 딱히 천애랑이 나설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회복이 덜 되지 않았잖습니까.”

담대혁은 천애랑의 회복을 걱정했다.

종횡무진 몸을 아끼지 않고 활약했던 천애랑이다. 내공 또한 탈진할 정도로 사용했기에 충분한 회복이 필요했다.

“큰 부상이 없어서 칠 할 정도는 회복됐어. 천천히 이동하며 살피면 문제없을 거야.”

“그렇지만…….”

아쉬움 가득한 담대혁의 어깨에 천애랑은 손을 얹었다.

“작게나마 회포를 풀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이 확고한 천애랑을 보며 담대혁이 한숨을 쉬었다.

“저도요. 형님 덕분에 저나 가문이나 큰 위기를 넘겼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형제끼리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그런 낯 간지러운 인사는 사양이다.”

담대혁이 피식 웃었다. 자신의 사람이라면 한없이 챙기는 천애랑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담대혁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자리를 옆으로 비켜섰다. 이에 장훈과 천애랑이 시선을 마주했다.

장훈이 말했다.

“저는 여전히 은공을 따라가고 싶습니다만.”

장훈은 장강오룡에 대한 복수를 이뤄준 천애랑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렇게 새로이 기공가문의 가솔이 된 장훈에게 천애랑은 담대혁의 밑에서 잠시 머물기를 권했다.

“아직 우리 가문은 제대로 터를 잡지 못했다. 임시 거처가 있다하지만 그곳은 산 속. 물에 밝은 네 재능이 꽃필 장소는 아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많은 것을 익히고 추후 합류해라. 그때는 네가 우리 가문에서 큰 역할을 해줘야 할 것이다.”

천애랑의 말에 장훈은 사나이의 웅심이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크게 생각해주는 이는 처음이기도 했다.

장훈은 천애랑을 향해 절을 했다.

“알겠습니다. 분골쇄신의 각오로 이곳에서 가주님의 명을 수행하고, 추후의 부름을 기다리겠습니다.”

천애랑은 장훈을 일으켜 세우곤 몸에 묻은 흙을 털어줬다. 그러곤 장훈과 담대혁, 두 사람에게 마지막 눈인사를 보냈다.

“모두 다음에 보자.”

몸을 돌려 떠나는 천애랑의 행선지는 사천성의 사천당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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