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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70화 (170/200)

기공술사 170화

천애랑과 수로연맹주. 두 사람의 신형이 쏜살같이 쏘아졌다.

천선 끝의 황금빛 뇌기와 청룡언월도 끝의 푸른 강기가 충돌했다.

쿠우우우우우우우!

두 격돌에 따른 거대한 기파는 천지를 뒤흔들었다.

콰과광! 콰광!

번개가 치듯 번쩍거리며 움직이는 천애랑과 흔들리는 배처럼 유연한 보법을 밟아 대응하는 수로연맹주의 격돌이 이어졌다.

파랑창식(波浪槍式).

수로연맹주의 청룡언월도가 긴 거리를 격하고 거칠게 흔들렸다.

범람하는 장강의 물결처럼 거세고 비규칙적인 움직임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앗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를 마주한 천애랑의 눈빛에 흔들림은 없었다.

뇌룡강림(雷龍降臨). 광역(廣域).

천애랑의 주위 삼 장의 공간에 번개가 무차별적으로 내리쳤다.

쿠르르르르르! 콰과과과과과광!

뇌전의 기운이 수로연맹주의 강기들을 부수며 그 영역을 넓혀갔다.

“크윽.”

수로연맹주는 점차 잃어가는 제공권에 당혹했다.

‘군부에 있을 때도 내 창식을 막을 만한 이는 거의 없었건만. 이 무슨!’

파랑창식은 군부의 황룡창식 기초식에 수로연맹주 본인의 깨달음이 합쳐진 무공이었다.

이로 인해 군부에 있을 때보다 몇 단계는 성장했다고 믿는 수로연맹주였다.

‘그런 내 공격이 이리 쉽게 막힌다고?’

수로연맹주는 천애랑을 괴물 보듯 쳐다봤다.

세상천지 고수들 중 천재 소리 듣지 않은 이 누가 있던가.

이류는 평범 이상의 오성에 지난한 수련을 거치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여기까지만 해도 어지간한 지역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닐 수 있다.

일류의 경지는 제법 뛰어난 오성에 지난한 수련을 거치면 다다를 수 있다. 어딜 가든 무공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다고 확신해도 되는 경지다.

절정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출난 오성은 필수이며 기연과 운이 따라야 한다. 간혹 세상엔 아무런 가르침이 없이도 스스로 깨닫는 자들이 있다지만, 대개는 절정의 경지를 가능케 할 무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단순히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경지, 그것이 절정의 경지다.

그런데 초절정의 위상은 한층 달라진다.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 중 최고의 오성과 노력, 기연 등이 합쳐진 결정체가 초절정의 고수다.

그러한 초절정의 경지를 넘는 화경은 앞선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존재다.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이라는 의미로 인간의 한계를 아득하게 뛰어넘은 존재.

장강의 모래알처럼 까마득한 수의 사람들 중 손에 꼽히는 존재.

손짓 한 번에 자연재해와 같은 위력을 일으키는 존재.

전장에서 능히 만부지장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가 화경의 고수들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십 년 전 들어선 수로연맹주다.

‘그 후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수련을 이어왔건만.’

자신보다 족히 이십 년은 어려보이는 녀석에게 밀린다는 사실을 수로연맹주는 믿기 어려웠다.

‘아직이다!’

수로연맹주가 인상을 쓰며 창대를 강하게 쥐었다.

그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폭발적으로 나오더니 배가 격하게 흔들렸다.

으직! 으지지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갑판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배가 반파될 정도로 갑판이 뒤집어져 비산하자 수적들이 혼비백산 움직였다.

“난간을 붙잡아라! 아무거라도 붙잡아!”

“맹주님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져라!”

“으아아악!”

부서진 갑판조각들이 거대한 회오리에 휩싸이듯 수로연맹주의 창끝으로 모여들었다.

우우우우우웅!

청룡언월도의 끝이 잘게 떨리며 공명음을 토해냈다.

이에 맞서 천애랑은 천선을 살랑거렸다.

‘후우. 확실히 뇌기는 뇌기로군.’

대자연의 여러 기운 중 가장 흉폭하고 다루기 어려우나 가장 큰 파괴력을 자랑하는 것이 뇌기(雷氣)였다.

그런 뇌기를 몸에 담아서 극강의 신체능력을 얻는 뇌룡강림.

이에 그치지 않고 인공적으로 뇌전을 만들어 넓은 영역에 내리치는 광역의 기술은 많은 내공을 가진 천애랑일지라도 부담이었다.

뇌기를 거둔 천애랑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수기(水氣).

주위에 널리고 널린 물의 기운이 빠르게 천애랑의 빈 단전을 회복시켜왔다.

“후우.”

천애랑의 긴 날숨과 함께 그의 두 눈이 푸르게 번들거렸다.

수룡승천(水龍昇天).

쿠구구구구구구구구!

수로연맹주에 의해 배가 흔들린 것보다 더 큰 흔들림이 찾아왔다.

“어, 어?”

“어어어!”

간신히 난간이나 기둥을 붙잡고 버티던 수적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특히 절정의 경지가 넘는 수로연맹의 고수들은 믿을 수 없는 눈을 했다.

“세상에! 수룡이라니!”

“이게 정녕…….”

“사람 간의 싸움으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쿠콰아아아앙------!

천애랑과 수로연맹주의 공격들이 엄청난 굉음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이 탄 배가 산산조각 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근에 포진한 수십 척의 배까지 반파되었다.

그로 인해 수적들의 사상자가 순식간에 백이 넘어갔다.

망망대해와 같은 장강에서 디딜 곳이 없어진 두 사람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피와 물을 뒤집어쓴 수로연맹주가 다른 배의 파편들을 밟으며 천룡언월도를 휘둘렀다.

비교적 멀끔한 천애랑도 물 위에 뜬 나무 파편들을 딛으며 천선을 휘둘렀다.

까가가강!

강기들의 충돌에 물이 치솟아 파도를 만들어냈다.

“피해!”

“으아아악!”

“이쪽으로 온다! 피해!”

파편에서 배로, 배에서 다시 파편으로.

입이 떡 벌어지는 경신법과 무공들의 향연에 진열을 갖추고 배를 세웠던 수적들이 끊임없이 피해를 보았다.

천애랑과 수로연맹주의 전투도 절정을 지나 결말을 보고 있었다.

사삭!

“크으윽!”

쾌속선 위에 가까스로 착지한 수로연맹주가 목을 부여잡았다. 그는 손가락 사이로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했다.

빠르게 혈을 짚어 지혈을 하려 해도 파지직거리는 뇌기가 저항해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탁.

같은 쾌속선 끝에 올라탄 천애랑이 빠르게 숨을 고르며 수로연맹주를 바라봤다.

호흡만 가빨라졌다 뿐, 큰 상처가 없는 천애랑의 모습에 수로연맹주가 실소를 뱉었다.

‘팽 영감님이 해준 말이 생각나는구만.’

수로연맹주는 팽풍궐, 직책으로는 팽 태감을 떠올렸다.

‘천하는 넓고 기인이사는 많지. 보아하니 무림으로 갈 것 같은데 건투를 빌겠네.’

우 장군과의 정쟁에서 밀려 군부를 박차고 나갈 때 지나가던 팽 태감의 말이었다.

천하는 넓고 기인이사는 많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춰 의례건 쓰는 말이었고, 수로연맹주 본인도 그리 사용해 왔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이런 표현은 그저 겸양의 의미일 뿐.

누굴 만나도 ‘역시 천하는 넓구나!’라며 놀랄 일은 없다 자신해왔었다. 그러한 세월이 이십 년이 훌쩍 넘는다.

그러한 그가 오늘에서야 역시 천하는 넓고 그 속에 기인이사는 많다는 진정한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수로연맹주는 천애랑을 보았다.

눈앞의 청년은 당금을 넘어 고금의 역사에 남을 인물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런 이에게 패배한 것이니 아쉬워할 것 없다.’

수로연맹주가 각오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라.”

수로연맹주의 말과 동시에 천애랑이 고민 없이 천선을 휘둘렀다.

차아악!

수로연맹주의 머리가 높게 날아올랐다.

지켜보던 모두의 시선이 수로연맹주의 머리에서 천애랑에게로 향했다.

작은 배 위에 고고히 서있는 천애랑의 모습에 모두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이내 수적들은 손에 든 무기들을 모두 바닥이나 강에 던지며 항복을 표했다.

거대한 장강을 지배하던 수로연맹주의 최후이자 수로연맹이 와해되는 순간이었다.

***

장강에서 절대고수가 피를 흘릴 때 머나먼 감숙에서도 절대고수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무림맹주이자 화산파의 장문인, 또는 정도무림의 제일 고수라 불리는 신검(神劍) 백청선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역천의 괴물이 탄생했구나…….”

팔십이라는 나이가 무색했던 그의 다부진 신체가 급격하게 노화를 맞이한 듯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힘에 겨운 듯 지팡이처럼 검에 기댄 그가 눈앞의 인물을 보았다.

화산파의 일대제자로서 익숙한 얼굴이지만 더는 익숙하지 않은 존재, 혈교주였다.

한가득 피를 뒤집어쓴 혈교주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크크큭. 두문불출한 천마를 제외하면 능히 천하제일이라 불린다던 이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구나!”

백청선은 이를 갈며 좀 전의 전투를 떠올렸다.

자신의 호위대로 따라나선 화산파의 정예들이 모두 전멸했다.

‘화산파의 무공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청상의 생전 기억을 가진 것인지 혈교주는 호위대의 공격을 모두 파훼했다.

한 번씩은 조롱하듯이 화산파의 검식을 사용해 호위대를 공격하기도 했다.

‘독공은 또 무어란 말인가.’

혈교주의 예상치 못한 공격 중엔 독공도 있었다.

‘마치 사천당가 같았다.’

사천당가의 직계들만 훈련받는다는 독인(毒人)처럼 혈교주의 내공이 독이 되어 뿜어졌다.

이는 가까스로 방진을 형성하며 상대하던 호위대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허를 찌르는 변칙적인 공격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혈교주 본신의 무공 또한 천외의 영역이어서 백청선과 호각지세를 이루었었다.

‘잠시뿐이었지만.’

백청선이 자하신공을 펼치자 혈교주가 큰 낭패를 보았었다. 무려 검을 쥐는 오른팔이 잘려나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팔이 잘린 혈교주는 그저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이에 의아해 하던 백청선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잘렸던 팔이 붙다니. 이게 정녕 말이 되는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어지간한 기현상들을 경험했다 자부했지만 도마뱀처럼 잘린 팔이 붙는 것은 처음 보는 백청선이었다.

혈교주의 기현상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흡혈마공도 가능했지.’

팔을 붙인 후 지친 기색이 다분했던 혈교주가 대뜸 쓰러진 호위대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 호위대원이 목내이가 되어 쪼그라들었다.

혈교주는 이러한 행동을 반복했다. 제자들의 시신을 훼손하는 혈교주를 막으려고 백청선이 쫓는데도 도망치면서 말이다.

백청선은 이내 혈교주가 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피를 빨아들임으로써의 원기 회복.’

심각한 점은 단순히 피만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죽은 이의 생전 내공에 선천지기까지 빨아들임인지 혈교주의 기세는 겉잡을 수없이 커져만 갔다.

이십여 구의 호위대를 먹어치운 혈교주의 기세는 자하신공을 최대치로 펼치는 백청선으로서도 막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결과가 현재다.

“후욱. 후욱.”

백청선이 거친 심호흡을 했다.

‘선천지기가 너무 빠져나갔어.’

혈교주의 공격에 큰 손해를 본 후 목이 잡힌 순간이었다. 고작 눈을 스무 번 깜빡일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것을 잃었다.

내공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 번 빠져나간 선천지기는 마땅히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선천지기가 급격하게 빠져나가자 그 부작용으로 노화가 진행돼 몸에 기력이 없는 게 큰 문제였다.

더 심각한 것은 화경의 고수로서 오랜 시간 누린 젊은 신체능력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오는 형용할 수 없는 상실감이었다.

“천하의 신검(神劍)을 죽여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리리라! 크하하하하!”

혈교주가 흑도의 왈패처럼 저열하게 웃다가 깜짝 놀라며 몸을 비틀었다.

째재재재재쟁!

갑작스런 기습.

진득한 살기들과 함께 이뤄진 짧은 공방이 허공에 불똥을 만들었다.

그때였다.

퍼퍼퍼펑!

공방 사이에 알 수 없는 주머니가 터지며 짙은 연기와 독을 뿜어냈다.

이에 혈교주는 당황하지 않고 크게 검을 휘둘렀다. 연기는 날리면 되고, 독은 소화시키면 된다.

그렇게 혈교주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승리감에 도취된 상태라지만 지척에 나타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한 은신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천하에 손꼽히는 살수가 확실했다.

그렇다고 신변에 큰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여흥거리를 찾는 기분으로 상대방을 찾을 뿐이었다.

그러나 혈교주의 표정은 이내 와락 구겨졌다.

“건방진 살수 놈이……!”

갑자기 나타난 살수는 물론이고 곧 죽을 것 같던 백청선 또한 사라진 뒤였다.

아무리 기감을 넓혀 봐도 둘은 이미 도망쳤는지 그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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