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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69화 (169/200)

기공술사 169화

천애랑은 빠르게 다가오는 쾌속선 두 척을 가만히 지켜봤다.

각 배에 다섯씩, 총 10명의 수적들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여기까지 물고기라도 잡으러 나온 건가.”

“물고기라고는 잡은 게 없어 보이는데?”

“입구 지나오면서 다 버렸나 보지.”

“크크큭. 곱게 가자. 어디 하나 부러지기 싫으면 말이지?”

“크흐흐흐.”

수적들은 천애랑과 장훈을 조롱했다.

탁.

쾌속선 두 척에서 뻗어온 갈고리가 장훈의 배에 걸쳐졌다. 그대로 배를 끌고 갈 요량이었다.

“혹시 총채의 모든 전력이 나와 있는 건가.”

천애랑의 나지막한 말에 한 수적이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봤다.

“허! 건방진 새끼가! 개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수적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잠깐 돌아보는 사이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모두 쓰러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쓰러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싶은 후 벌어진 일이었다.

유일한 짐작이라고는 검은 무복에 담담한 시선, 그리고 활짝 펴진 쥘부채를 살랑거리는 사내가 그랬을 거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고, 고수…….”

수적이 허겁지겁 갈고리를 버리고 도망치려 했으나 목에 닿는 섬뜩한 감촉에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손에 있던 부채가 어느새 칼날처럼 날카롭게 목을 위협하고 있었다.

“으으…….”

“총채의 모든 전력이 나와 있는 건가.”

무미건조한 천애랑의 물음에 수적이 다급히 대답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동료들처럼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예, 예! 맞습니다! 이곳의 모두가 나와 있는 겁니다.”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이곤 천선을 회수했다.

털썩.

대답을 했던 수적마저도 쓰러졌다.

“허어…….”

조용히 지켜보던 장훈이 깊은 감탄사를 뱉었다. 천애랑의 무력과 과감성을 볼 때마다 놀라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그였다.

“앞으로 좀 전진하시오.”

천애랑의 말에 장훈은 가타부타 없이 배를 전진시켰다.

눈앞에 까마득한 수적들이 있어도 천애랑의 등을 보고 있노라면 묘하게 두려움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천애랑의 전진과 함께 더 많은 수적들이 접근을 해왔다. 수적들 너머로 수로연맹주의 언짢은 표정이 보였다.

천애랑은 낮게 혀를 찼다.

‘아직 나서지 않을 참인가.’

마음 같아서는 수적들을 가로질러 곧장 수로연맹주를 상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혼자 남은 장훈이 위험해질 것이다.

해서 눈앞의 모든 걸 하나씩 부수고 전진하는 투박한 방법을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겠지.’

이곳에 장강수로연맹의 정예들이 모인 상황.

이들을 모두 없앤다면 장강수로연맹은 그저 작은 수적들의 집단으로 와해될 것이다.

천애랑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호흡에 따라 천애랑의 온몸에 막대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장훈은 조용히 배의 후미로 물러나서 지금의 상황을 지켜봤다.

거대한 강 위의 작은 어선과 이를 향해 다가오는 수십 척의 수적선. 그리고 천애랑 단 한 명과 기백(幾百)이 넘는 수적들이 마주한 상황.

다른 이들은 당연히 중과부적, 당랑거철의 상황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장훈은 ‘천애랑이라면.’이라는 기대감이 강하게 들었다.

“후우.”

길게 숨을 뱉은 천애랑은 곧장 전방으로 신형을 날렸다.

아직 배와 배가 만나기엔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사람의 걸음으로 따진다면 족히 백 보는 필요한 거리.

그러한 거리를 천애랑은 등평도수. 즉, 물 위를 뛰는 최상의 경공술을 펼쳐 달렸다.

“미친!”

“놈이 온다!”

말도 안 되는 천애랑의 신법에 수적들이 놀라 소리쳤다.

“작살을 쏴! 암기들도 날리고!”

요란한 명령들이 순식간에 오고가며 이내 수많은 투척무기들이 천애랑을 향해 날아갔다.

쉬시시시시시식!

천애랑은 발바닥으로 내공을 강하게 발출했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크게 뛰어올랐다.

포포포포포포퐁!

도약 한 번으로 모든 투척무기를 피해낸 천애랑은 그대로 천선을 날렸다.

샤샤샤샤샥!

활짝 펼쳐진 천선이 강하게 회전하면서 수적들을 공격했다.

“크악!”

“컥!”

비명이 들렸다. 하지만 이곳은 장강수로연맹의 정예들이 있는 곳. 천선을 막아내는 고수들도 있었다.

까가가가강!

힘을 잃은 천선이 바닥에 떨어지려는 찰나, 천애랑은 천선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했다.

그러자 천선이 다시 생명을 얻은 듯 솟아오르며 막아낸 고수의 목을 쳐냈다.

“채, 채주님!”

고수의 수하들이 경악을 뱉을 때 천애랑은 수적들의 배에 올라탔다.

“놈은 하나다!”

“생포해라! 맹주님께서 원하신다!”

“으아아아아아!”

천애랑은 수적들의 강맹한 공격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발경(發勁).

내가중수법의 하나로 신체 외부가 아닌 내부에 타격을 주는 공격법.

실전에서 쓰기엔 지독히도 까다롭지만 자연체의 극에 달한 천애랑의 신체는 그 어떠한 부담도 없이 내공의 수발을 도왔다.

한 방에 한 사람씩. 천애랑은 최소한의 내공으로 최고의 효과를 보았다.

“커억!”

“윽!”

“어억!”

심장이나 급소를 맞은 수적들이 단말마의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천애랑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쾌속선에 탄 다섯 명의 수적들을 처리하면 곧장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착실하게 수적들을 공격했다.

전투 중간마다 이기어검의 묘리로 천선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간을 격하고 병장기를 움직이는 것은 많은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천애랑은 최고효율의 근접격투술을 펼침으로써 내공을 절약하고 있으니 한식경은 족히 끄떡없었다.

“맹주님께서 놈을 사살하라신다!”

“죽여라!”

“손에 자비를 두지 말고 죽여!”

천애랑을 생포하라던 맹주의 명이 어느새 바뀌었다.

천애랑은 먼 거리의 수로연맹주를 보았다. 그러곤 창처럼 긴 청룡언월도를 들고서 지켜보는 그에게 비릿한 미소를 날렸다.

그러자 수로연맹주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그 와중에도 천애랑의 움직임에 멈춤은 없어 쓰러지는 수적들의 수가 백을 넘어섰다.

그렇게 오십의 수적들을 더 쓰러뜨리자 수로연맹주의 사자후가 들려왔다.

“모두 비켜라!”

수로연맹주의 거대한 배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천애랑의 앞에서 멈춰 섰다.

“두렵지 않다면 올라와라.”

수로연맹주가 천애랑을 내려다보며 한 말이었다.

이에 천애랑은 주위를 둘러봤다. 많은 수를 죽였건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수적들이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엄청난 무력에 수적들의 기세가 다소 수그러진 분위기긴 했다.

천애랑은 뒤를 돌아봤다.

장훈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왔다. 자신은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에 천애랑은 수로연맹주가 탄 거대한 배 위로 도약해 올라갔다.

수적들 다섯 정도가 타는 쾌속선보다 몇 십 곱절은 거대한 배.

‘일전의 해적선보다 더 클 수도 있겠는데.’

그러한 감상도 잠시 천애랑이 갑판 위로 등장하자 수로연맹주가 입을 열었다.

“네놈은 누구냐.”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듯 수로연맹주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천애랑은 대답 대신 갑판 위의 상황을 살폈다.

당장 바다로 나가도 될 정도로 거대한 돛들이 접혀 있었고, 눈에 띄는 고수들이 많았다.

‘절정이상의 고수가 열다섯. 초절정의 경지도 보이고…. 무림맹이 왜 애를 먹는지 알겠네.’

무림맹이 토벌하기 어려워하던 녹림연맹과 수로연맹.

그 중 녹림연맹의 토벌에 애를 먹는 이유는 녹림연맹의 무력 때문이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녹림의 거점 범위가 너무나도 넓다는 것에 있었다.

천하에 산이 얼마나 많던가. 그 모든 산에 녹림도들이 흩어져 있으니 산채 몇 개 토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점조직 구조의 강점이었다.

이러한 녹림과 반대로 수로연맹의 경우엔 거점이 보다 명확했다.

그럼에도 무림맹이 장강수로연맹을 쉽게 토벌하지 못한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고수들의 숫자.’

녹림에도 절정 이상의 고수들이 있다. 하지만 모두 중책들을 맡아서 흩어져 있지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진 않는다.

절정 이상의 고수가 열다섯, 게다가 그 아래에 딸린 수백의 수하들까지 고려하면 숫제 대형문파였다.

‘게다가.’

천애랑의 시선이 수로연맹주에게로 향했다.

‘화경의 경지라.’

기세 싸움이라도 하려는 듯 경지를 감추지 않는 수로연맹주는 화경으로 보였다.

장강수로연맹이 화산파나 하북팽가처럼 체계 잡힌 역사와 후학양성방법이 없다뿐이지 당장의 무력만 놓고 봐서는 그 둘에 전혀 뒤처지지 않을 듯했다.

‘경우에 따라선 오히려 앞설지도.’

물 위에서의 전투력으로 놓으면 앞선 두 세력보다 더 강한 힘을 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본좌가 네놈은 누구냐 물었다.”

쿠구구구구구.

수로연맹주에게서 뻗어 나오는 살기가 공기를 강하게 진동시켰다.

천애랑은 태연하게 수로연맹주와 시선을 마주하고 말했다.

“천애랑.”

“어린놈이 혀가 짧구나.”

으르렁거리던 수로연맹주의 곁으로 수하가 다가와 작게 말했다. 수하의 말을 들은 수로연맹주의 눈이 커졌다.

“뭐? 백두신룡인 거 같다고?”

작게 놀란 수로연맹주가 천애랑에게 물었다.

“네놈이 백두신룡이라는 녀석이냐?”

천애랑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게들 부르더군.”

“……그렇단 말이지.”

산동에서 8만 황실군을 와해시킨 주인공의 이야기는 장강전선을 구축한 황실군을 넘어 장강수로연맹까지 흘러왔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무언가를 고민하듯 수로연맹주의 읊조림이 반복됐다.

‘우장군을 죽인 놈이 이런 애송이란 말이지.’

수로연맹주에게 있어서 천애랑이 몇 천, 몇 만의 황실군을 죽였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화경의 고수로 이름 높던 우장군을 백두신룡이라는 애송이 녀석이 죽였다는 것.

과거 수로연맹주는 우장군과 악연이 있었다.

정쟁(政爭).

수로연맹주는 원래 군부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쟁투에서 우장군에게 밀려 토사구팽을 당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은 그다.

이 때문에 수로연맹주는 내심 우장군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벼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장군을 만날 일 자체가 없기에 오랜 세월 해묵은 감정으로 묵혀왔었다.

‘그런데 저 애송이 녀석이 죽였단 말이지. 그 우장군 녀석을…….’

천애랑이 수하들을 많이 죽였지만 오랜 복수의 대상을 대신 죽여줬으니 과실(過失)과 공로가 상충한다.

그런데 수로연맹주 입장에선 과보단 오랜 복수를 해결한 공로가 더 컸다.

이에 수로연맹주가 입을 열었다.

“너! 내 수하가 돼라.”

“…….”

천애랑은 못 볼꼴을 봤다는 표정으로 수로연맹주를 봤다. 그러자 수로연맹주가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백두신룡이 미천한 거점 하나 없이 떠돈다지? 네놈이 내 수하가 된다면 안휘의 거점을 주지.”

중원을 길게 가로지르는 장강. 그중에서 가장 비옥한 물길을 찾는다면 호북, 안휘, 강소였다.

그 중 안휘의 물길, 가장 좋은 거점을 주겠다는 의미였다. 그곳에서 벌어들일 돈만 생각하면 이름 높은 대문파의 예산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수로연맹주는 이러한 부가정보를 천애랑에 말했다. 수로연맹주 천애랑이 최소한 긍정적으로 고민해볼 것이라 생각했다.

“고작?”

하지만 천애랑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수로연맹주는 천애랑의 눈을 뚫어지게 보았다. 천애랑의 눈빛엔 그 어떠한 동요도 없다는 것을 읽었다.

‘진심인가.’

수로연맹주는 낮게 혀를 차며 말했다.

“네놈이 내 수하가 된다면 당장 2인자가 될 것이다. 그리되면 네놈은 모든 부귀영화는 물론 천하의 미인들을 얻을 것이다.”

그의 말에 곁을 지키던 수하들이 놀란 시선을 보냈다.

특히 초절정 극의 경지로 수로연맹주의 오른팔 노릇을 하던 수하가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감히 수로연맹주에게 속마음을 표현할 순 없었다.

수로연맹주는 천애랑의 반응을 살폈다.

‘이번에는 더 고민을 해보겠지.’

하지만 무심한 천애랑의 표정에 수로연맹주의 눈이 좁혀졌다.

“설마하니 조건이 부족하나? 이 넓은 장강 물길과 향후 바다까지 장악할 우리다. 그런 곳의 2인자란 말이다.”

이에 천애랑은 콧방귀를 꼈다.

“고작 수적 따위의 2인자라니. 게다가 나보다 약한 놈의 밑에서 지낼 일 따윈 없다.”

수로연맹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애송이가 자신을 갖고 놀았음을 깨달은 것이다.

수하들 앞에서 민망함까지 당했으니 그의 분노가 순식간에 극에 치달았다.

“오냐. 끝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들려 하다니. 후회하지 말거라.”

“그러든지.”

“…….”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천애랑의 대답에 수로연맹주가 이를 갈며 창대를 발로 툭 찼다. 그러자 청룡언월도가 빙그르 돌며 그의 두 손위에 안착했다.

자연스레 기수식을 잡았을 뿐임에도 그에게서 빈틈은 사라지고 강맹한 기세가 언월도 끝에 맺혔다.

이에 천애랑도 천선을 쥐고 기수식을 잡았다. 천애랑의 두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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