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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68화 (168/200)

기공술사 168화

지난 회의에서 장훈은 장강오룡에게의 복수만을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천애랑이 진정 원하는 것은 장강수로연맹의 와해. 그러기 위해선 최소 장강수로연맹주를 붙잡든 죽이든 해야 했다.

단순히 수채 몇 개 없애고 장강오룡을 죽이는 걸로는 장강수로연맹의 힘을 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애랑의 의지에 장훈이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었다.

‘장강수로연맹의 총채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예상외의 희소식에 모두가 기뻐할 때 장훈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었다.

‘다만 문제가 있는데 그곳을 들어가는 방법이나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행들은 장강오룡을 이용하는 계획을 세웠다.

명색이 장강수로연맹의 중책을 맡은 장강오룡이라면 총채로 오가는 물길 정도는 알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천애랑은 힐끔 뒤를 돌아봤다.

악에 받쳐 소릴 지르는 이들을 보니 쉽게 추격을 포기할 것 같진 않았다. 그 경로가 저 거대한 소용돌이여도 말이다.

‘소용돌이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지날 수 있는 물길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할 터.’

애초의 계획처럼 장강오룡을 이용해 수로연맹의 총채로 진입해도 좋을 것이다.

천애랑은 소용돌이로 시선을 던졌다. 소용돌이가 가까워질수록 앞서 느꼈던 이질감이 강한 확신으로 바뀌었다.

‘역시 진법이야.’

소용돌이의 기운이 천애자연의 진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적벽에서의 진법처럼 자연이 강대한 기운을 불어넣는 모양이었다.

‘진법이라…….’

진법이라면 굳이 장강오룡을 유인해 복잡하게 길을 찾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때 장훈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 가주님! 꽉 붙잡으십시오! 소용돌이의 결을 타겠습니다!”

“잠시.”

“예?”

장훈이 의아한 눈빛을 보내자 천애랑이 손가락으로 소용돌이 가장자리의 한곳을 가리켰다.

“토끼모양 바위의 좌측으로 바짝 이동하시오.”

“예?”

“시키는 대로 가시오.”

천애랑의 단호한 말에 장훈이 어쩔 수 없이 선로를 조정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천 가주가 경천동지할 절대고수라곤 하나 물길에 관해서는 자신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천 가주 스스로도 인정했던 부분인지라 더욱 당혹스러운 장훈이었다.

“다음은 저쪽 거북이 모양의 바위로 향하시오.”

장훈은 의아해하면서도 착실하게 천애랑의 말에 따라 배를 몰았다.

“다음은 새 모양의 바위로.”

배는 어느새 소용돌이의 삼분지 일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천애랑은 뒤를 보았다.

소용돌이의 흐릿한 안개 속에서 수룡선의 선두가 보였다. 그 후미로 쾌속선들이 줄지어 뒤따르는 것도 보였다.

“천 가주님 이제 어디로 갑니까?”

“혹시 지금의 물길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소?”

“예?”

뜬금없는 물음에 장훈이 고민하길 잠시.

“단순히 버티는 것뿐이라면 한식경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천애랑은 눈에 이채를 띠고 장훈을 보았다.

‘대단하군.’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거친 물살을 만드는 소용돌이다.

엄청난 흡입력이 절로 느껴지는 상황인데도 장훈은 지시하는 대로 배를 움직였다.

‘생로가 그리 넓지 않은 진법의 길이다. 그것을 그저 간단한 설명만 듣고도 척척 움직이다니.’

당장도 배는 무저갱 같은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순전히 장훈의 솜씨로 버티는 중이었다.

이 상황에서 한식경(30분)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은 무공도 익히지 않은 필부가 할 수 있는 능력이라기엔 너무나 대단해보였다.

“그럼 잠시만 버티고 있으시오.”

말과 함께 천애랑은 배에서 뛰었다. 그러곤 새 모양의 바위를 밟고 크게 도약했다.

“천 가주님!”

장훈의 경악을 뒤로하고 천애랑은 곧장 수룡선으로 신형을 날렸다.

“건방진 새끼가!”

갑작스런 천애랑의 접근에 장강오룡의 다섯째가 도를 휘둘렀다.

수룡도법(水龍刀法).

먼 옛날 장강의 이무기가 용이 됐다는 전설에 따라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상당히 거칠고 패도적인 도법이었는데, 수룡신법과 더불어 장강오룡의 성명절기였다.

두 무공은 흔들리는 환경에서 최고의 위력을 내는 특징을 가졌는데, 지금처럼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전투하기에 최적화된 무공이라는 의미기도 했다.

콰아아앙!

도와 부채의 부딪힘이라곤 믿기지 않는 거대한 기파가 발생했다.

“크윽!”

“윽!”

지척의 수적들이 기파에 견디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장강오룡의 다섯째는 흔들리는 배의 움직임에 맞춰 도의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그러자 자연스레 천애랑의 천선을 밀어내고 그대로 천애랑을 베어갔다.

하지만 상황은 다섯째의 계획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천선이 도에 찰싹 달라붙어서 도의 움직임에 따라 천애랑도 그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음?!”

천애랑의 신묘한 기술에 다섯째가 놀란 눈을 하기도 잠시. 천애랑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번들거렸다.

“빨리 끝내자.”

“건방… 무, 무슨!”

장강오룡의 다섯째는 노도처럼 불어나는 천애랑의 기운에 경악을 했다.

이내 다섯째는 천애랑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며 그대로 날아갔다.

콰가가가강!

갑판 위를 한참 구르고 난간에 부딪히고 나서야 다섯째의 움직임이 멈췄다.

“막내야!”

“감히!”

놀란 장강오룡의 셋째와 넷째가 합공을 시도했다.

쉬식! 쉬시시식!

오랜 시간 함께한 장강오룡 형제들의 절묘한 도식들이 사방을 점해왔다.

하지만 천애랑은 가볍게 사량발천근의 수로 놈들의 도를 막아냈다.

“죽어라!”

그때 장강오룡의 둘째가 강기가 가득한 도를 휘둘러왔다.

범람하는 장강의 물처럼 거대한 강기가 전방을 가득 메웠다.

쿠르릉!

작은 뇌성과 함께 천애랑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둘째의 뒤에 나타났다.

“이, 이런….”

둘째는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자신의 시야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툭, 투르륵.

바닥을 구르는 둘째의 머리에 장강오룡 형제들의 표정이 당혹으로 가득 찼다.

“두, 둘째가…!”

“이 새끼를!”

분노한 장강오룡의 첫째가 크게 진각을 밟았다.

쿠우웅!

수룡선이 크게 흔들거렸다. 흔들리는 배에 익숙한 수적들도 휘청거릴 만큼의 거대한 출렁거림이었다.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장강오룡의 첫째가 이를 갈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곤 곧장 천애랑에게 도법을 펼쳤다.

그는 배의 요동침으로 천애랑의 보법을 묶고 속전속결로 끝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장강오룡 첫째의 예상과는 다르게 배의 흔들림은 천애랑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천애랑은 거칠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태연하게 균형을 잡으며 첫째의 공격을 받아냈다.

까강! 까가가강!

쉬지 않고 몰아치는 첫째의 도격은 모든 것을 부술 것만 같았다.

까가강! 까강!

그럼에도 도를 막아내는 천애랑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장강오룡 첫째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마치 벽에다 도를 휘두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보다 천애랑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더 안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수룡도법의 모든 초식을 다 펼쳤음에도 단 한 번의 공격을 성공하지 못하니 격하게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끄으으윽! 죽인다!”

장강오룡의 첫째의 도에 어마어마한 강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형님!”

“우리도 함께 간다!”

넘어졌다가 다시 자리를 잡은 셋째와 넷째가 마찬가지로 거대한 도강을 만들어냈다.

천애랑은 세 방위에서 다가오는 강맹한 도강을 보았다.

모든 내공을 쥐어짜낸 장강오룡 형제들의 일격인 만큼 그 기세가 엄청났다.

‘온몸이 저릿하군.’

천애랑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천선의 날을 펴서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장강오룡과 천애랑의 강기가 격돌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굉음과 함께 벌어진 상황에 지켜보던 수적들이 기함을 하며 놀랐다.

장강수로연맹의 오호대장군으로도 불리던 장강오룡 모두가 한 젊은 청년에 의해 죽은 것이다. 이에 수적들은 갈 곳 잃은 시선과 움직임을 보였다.

그때 수룡선이 거친 울음을 토해냈다.

쿠구구구구구.

강렬한 기의 충돌에 튼튼함을 자랑하던 수룡선이 반파되고 있었다.

“어, 어어어?”

수적들이 급격히 당황을 했다.

이곳은 거친 소용돌이 물살 위. 이대로 물에 빠진다면 제 아무리 물이 뭍보다 편한 수적들이라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우왕좌왕하는 수적들을 뒤로 하고 천애랑은 허공에 천선을 날렸다. 그러곤 빠르게 도약해 천선 위에 올라탔다.

“신선…….”

놀란 눈을 한 수적의 말이었다.

흐릿한 강안개와 함께 하니 천애랑의 모습은 마치 구름을 타고 노니는 신선처럼 보였다.

그렇게 천애랑은 볼 일을 마친 후 장훈의 배로 돌아왔다.

“천 가주님!”

장훈의 놀람과 반가움을 보며 천애랑이 입을 열었다.

“장강오룡을 모두 죽였소.”

“예?!”

장훈이 경악성을 뱉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천애랑과 수룡선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던 그다. 그저 뇌성이 낮게 들린 후 수룡선이 반파되는 게 어렴풋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천애랑이 장강오룡을 죽이고 수룡선을 반파시킨 거라니. 심지어 천애랑이 말했던 한식경이 되지 않았다.

“세상에.”

장훈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부득이 장강오룡을 생포하거나 시체를 챙기진 못했소. 미안하오.”

시간적, 상황적 여유가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장강오룡에 대한 장훈의 복수를 온전하게 이뤄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장훈이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렸다.

“아닙니다. 제 복수를 이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먼저 죽은 아내와 딸을 볼 낯이 생겼습니다…….”

장훈이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았다. 그러곤 굳세진 눈빛으로 천애랑에게 물었다.

“이제 어찌합니까? 이대로 총채로 가십니까?”

천애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겠소.”

“알겠습니다. 꽉 잡으십시오!”

***

천애랑과 장훈은 수월하게 소용돌이를 빠져나왔다.

진법의 길이 보이는 천애랑과 물고기처럼 배를 모는 장훈의 실력 덕분이었다.

그렇게 잔잔한 강물을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앞엔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

앞선 천애랑의 무위에 두려움 따윈 없던 장훈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백여 척이 넘는 수로연맹의 정예선들이 성벽처럼 횡렬로 줄지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치 자신들을 마중 나온 모양새였다.

그때 가장 거대한 배 위에서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적답지 않게 잘 가꿔진 수염을 쓰다듬고, 한 손엔 긴 청룡언월도를 든 인물.

“수로연맹주…….”

장훈의 읊조림에 천애랑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하! 어떤 애새끼들이 진법을 울려대나 했더니 이게 뭐냐. 애송이 두 명?”

수로연맹주의 말에 수적들이 호응하며 웃어댔다.

생전 없던 진법의 요란함에 홍건적의 대군이 쳐들어왔나 싶어 만반의 준비를 했던 수적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진법을 빠져나온 면면을 보니 청년 하나와 어부뿐이다. 심지어 타고 있는 배는 어선이었다.

“젠장. 괜히 힘만 뺐네. 가서 잡아와라.”

수로연맹주의 말에 쾌속선 두 척이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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