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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67화 (167/200)

기공술사 167화

“관청에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시작하시죠.”

담대혁의 신호와 함께 어두운 골목에서 네 인영이 몸을 움직였다.

담대혁, 능 노인, 장훈, 그리고 채 가장. 작전을 함께 계획했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어둠에 숨어 군선(軍船)이 정박된 나루터로 다가갔다.

“예상대로 관병들이 자리를 비웁니다.”

채 가장이 놀란 눈으로 조용히 말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담대혁의 기본 계획이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했으니 재차 관청에 불이 난다면 흩어진 관병들의 시선이 강하게 모일 것이라 예상했다.

자연스레 군선(軍船)을 지키는 나루터의 관병들의 시선도 움직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이 적중했다.

관청의 불길이 심상치가 않자 주춤거리던 나루터의 관병들이 더는 참지 못하고 관청방향으로 이동했다. 나루터에 남은 관병들의 수는 고작 둘에 불과했다.

퍼퍽!

담대혁의 재빠른 움직임에 관병 둘이 쉽게 제압됐다.

홍건적의 책사역할을 맡고 있다지만 담대혁은 명문가문의 장자로서 무공을 익힌 자.

무림의 경지로도 일류의 끝자락에 있었다. 일개 관병들보다는 확실히 높은 경지라는 의미다.

“제법이구만.”

능 노인의 놀람 섞인 칭찬에 담대혁이 피식 웃고선 말했다.

“빨리 작업하죠. 지금부턴 시간 싸움입니다.”

일행들이 모두 흩어져 군선(軍船)에 올라탔다.

이내 일행 모두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능 노인이 만든 기름 항아리였다.

째재재쟁.

군선 곳곳에 항아리를 깨트린 일행들 모두가 화섭자를 꺼내 불을 질렀다.

화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군선들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물과 불에 내성이 있도록 작업을 한 군선이라곤 하나 기름에 힘을 얻은 불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군선 열 척을 불태우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확실하게 불타는 군선들을 보며 담대혁이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밑 작업은 모두 끝났다.’

관청의 불은 동쪽으로 향하려던 황실군의 발을 며칠은 더 묶을 것이고, 이는 강소 남경을 확고하게 차지하고자 하는 홍건적에 도움을 줄 것이다.

군선의 불은 관병들의 장강에서의 영향력을 낮춰 천애랑과 일행들의 후위가 보다 안전해질 터였다.

“관병들이 몰려올 겁니다. 어서 몸을 피하죠.”

담대혁과 일행들은 다음 행선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

착실하게 관청 이곳저곳을 불태운 천애랑이 나루터에 도착했을 땐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였다.

어두웠던 시야가 점차 밝아져 충분히 배를 몰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천애랑은 어선들이 정박된 곳에서 장훈을 찾았다.

“가주님. 여깁니다.”

장훈이 부는 곳을 보니 다소 독특한 모양의 배가 하나 있었다.

배는 서너 명 정도 앉으면 가득 차는 작은 크기였는데 양쪽으론 넓은 판자가 성벽이나 방패처럼 높게 솟아있었다.

천애랑은 곧장 배에 올라탔다.

“다른 이들은 잘 피했소?”

“네. 관병들의 눈을 피해 다음 장소로 갔습니다. 가주님께 부디 건투를 빈다는 인사를 남겼습니다.”

천애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일행들이 앞으로의 행보를 함께하기엔 위험했다. 그래서 그들은 뭍에서 다른 임무들을 수행할 것이다.

‘어차피 이런 배에 많은 인원이 타기도 어려우니.’

배의 점검을 끝낸 장훈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럼 갑시다.”

천애랑의 허락과 함께 장훈이 긴 막대기로 배를 나루터에서 밀어냈다. 그러곤 배 뒤편에서 재빠르게 노를 저었다.

장훈의 노련함에 순식간에 배가 나루터에서 멀어지더니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배의 운전을 장훈에게 완전히 맡긴 천애랑은 선두에 앉아 앞으로 닥쳐올 전투를 대비했다.

***

바다처럼 넓은 장강엔 갖은 암초들과 섬들이 존재한다.

그중엔 사람이 거주할 수 있을 만큼 큰 돌섬들이 있었고, 이는 장강수로연맹의 거점들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 중 장강오룡은 단풍, 황강, 악주를 잇는 무한 인근의 요충지를 거점 삼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여인들의 품에서 느지막한 아침을 맞이하던 장강오룡 중 셋째가 한껏 인상을 쓰며 막사에서 나왔다.

지난밤의 숙취와 밝은 햇살에 인상을 쓰는 그는 나신에 가까운 차림새였다.

그의 근육질 몸엔 숱한 전투를 치른 백전노장의 흉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적입니다! 적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수하의 외침에 맞춰 장강오룡의 다른 형제들도 막사에서 나왔다.

“적? 누가? 설마 홍건적이냐?”

“그게…….”

수하가 우물쭈물하자 셋째가 수하의 목을 틀어쥐었다.

“내 앞에선 똑바로 말하라고 했지!”

“커컥! 호, 홍건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 두 명뿐인데…….”

“뭐? 두 명? 이 새끼가 장난하나!”

이곳은 여러 수채들이 품고 있는 섬이었다. 적이 나타나 활개 치기도 어려운 곳일뿐더러 만약 적이 나타난다면 대규모 전력이어야 가능했다.

그런데 단둘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장강오룡의 셋째가 수하를 윽박지르다가 소란을 듣고는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른 장강오룡 형제들도 마찬가지의 시선들을 모았다.

“이게 무슨….”

수하들의 쾌속선이 어떠한 배와 드잡이를 하고 있었는데, 무력하게 피해를 보고 있었다.

피해가 번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심상치 않았다. 벌써 반각도 되지 않아 다섯 척의 쾌속선이 불타고 부서지며 반파되었다.

이곳 섬엔 자잘한 쾌속선까지 하면 오십 척이 넘는 배가 있었다.

몇 척의 배가 파손되었다고 큰 지장은 없겠지만 이것을 가만 두고 보는 것은 장강오룡의 자존심이 허락지 못한다.

이에 장강오룡의 첫째가 인상을 쓰며 외쳤다.

“썅! 모두 승선해라!”

장강오룡 형제들은 일제히 달려 섬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그곳엔 그들이 타는 거대한 배, 일명 수룡선이 있었다.

수룡선은 ‘장강을 수호하는 용이 타는 배’라는 의미를 가졌다. 수적들이 쓰기엔 과분한 명칭이었으나 그 누구도 이에 대해 토를 달지 못했다. 정도 무림도, 홍건적도.

그만큼 현재 장강에서 장강수로연맹의 위상은 압도적이란 의미였다.

그런 장강수로연맹의 성장에 가장 큰 공적을 세운 이를 꼽는다면 단연코 장강오룡이었다.

의형제인 이들은 수룡도법과 수룡신법을 대성한 초절정의 고수들이었고, 두 무공은 물 위에서 극강의 위력을 보여주는 수공(水功)이었다.

장강오룡 중 첫째가 크게 외쳤다.

“놈들을 잡아라! 감히 장강오룡을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줄 것이다!”

뿌우우우---! 둥둥둥! 두두두둥!

뿔피리와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군선이 수전(水戰)을 치르기 위해 진격하는 모양새였다.

이러한 모습을 멀리서 확인한 천애랑은 장훈에게 말했다.

“드디어 나타났소.”

“알겠습니다!”

장훈이 재빠르게 타고 있던 배를 선회했다. 그 방향은 장강오룡의 수룡선이었다.

방향을 돌리는 배의 양쪽 높은 판자엔 각종 암기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이 때문에 배가 무거워져 휘청거렸다.

“가주님. 양쪽을 제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오.”

장훈의 말에 천애랑이 발경의 묘리를 담아 판자들을 쳤다.

절묘한 내공과 힘 조절에 판자가 잘게 갈라지며 적들을 향해 비산했다. 나무 조각 하나하나가 하나의 암기와 같았다.

“크윽!”

“컥!”

“으악!”

“피, 피해!”

천애랑과 장훈 가까이에 있던 수적들이 낭패를 보았다.

이러한 모습을 본 장강오룡이 이를 갈며 수하들을 닦달했다.

“속도를 높여라! 놈은 고작 작은 배다! 그대로 뭉개버려라!”

수룡선이 덩치에 맞지 않게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장강오룡의 말처럼 그대로 압사시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수룡선을 바라보는 장훈의 표정은 의연했다.

“가주님! 꽉 붙잡으십시오! 읏차!”

수룡선이 지척까지 도달한 찰나 장훈이 배를 뒤집을 듯 옆으로 누였다.

그러자 수룡선이 가르던 물살을 타며 자연스레 수룡선과의 충돌을 피했다.

오히려 수룡선의 옆면을 타고 있기에 각종 투척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였다.

“가주님. 배 옆면에 강한 공격 가능하시겠습니까!”

장훈의 말에 천애랑은 천선을 꺼내들었다.

이내 천애랑의 몸에서 강렬한 기파가 뿜어져 나오더니 모두 천선의 끝으로 모였다.

천애랑은 접힌 천선을 쭉 뻗어 배를 찔렀다.

그 모습에 천애랑을 바라보던 수적들이 의아한 눈을 했다.

당랑거철.

사마귀가 거대한 수레바퀴를 막으려는 것처럼 그 행동이 미약하고 무모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상황에 수적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엄청난 충격과 함께 수룡선이 크게 휘청거렸다. 당장이라도 옆으로 전복될 것 같은 상황이었다.

“세상에.”

장훈이 배를 모는 것도 잊은 채 입을 떡 벌렸다.

‘그저 배에 작은 충격이라도 주려 했던 건데…….’

천 가주는 단 한방에 거대한 배를 반파시키려 하고 있었다.

앞서 두 시진도 안 돼 네 개의 수채들을 와해시킨 장본인다웠다.

‘적응 좀 했다고 생각했더니 아직까진 어림도 없네.’

천애랑의 말도 안 되는 무위를 새삼스레 느끼던 장훈은 장강오룡의 거친 욕설과 쓰러지는 수룡선을 보았다.

“이런 쌰앙! 애들아!”

크게 쓰러지는 배 위에서 장강오룡이 거칠게 욕을 뱉으며 난간으로 달렸다.

한쪽으로 크게 기운 탓에 높은 위치에 있는 난간. 그곳을 장강오룡이 크게 밟았다.

장강오룡의 진각에 배가 다시 휘청거리며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이런!”

놀란 장훈이 노를 잡고선 급히 방향을 돌렸다.

거대한 수룡선이 제자리를 찾으며 만드는 여파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쿠웅! 촤아아아아아!

장훈의 예상처럼 거대한 배의 출렁임과 함께 큰 물결이 장훈의 배를 덮쳤다.

하지만 장훈은 이미 방향을 틀어 물결을 배의 후미가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상태였다.

게다가 선두에 무게중심을 둬 후미를 가볍게 들은 상태.

“꽉 잡으세요!”

쿠우우우우웅!

물결이 후미를 강하게 치자 배가 뒤집힐 것처럼 위태하게 앞으로 쏘아졌다.

그 속도가 어마어마해 순식간에 수룡선과의 거리가 벌어졌다.

“쫓아라! 놓치지 마라! 어영부영 움직이는 놈들은 다 죽일 것이다! 녀석들을 잡아!”

분노에 가득 찬 장강오룡의 고함이 수적들을 일깨웠다.

그렇게 장강에서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천애랑은 감탄 섞인 눈으로 장훈을 보았다.

배를 모는 장훈은 물 만난 물고기였다. 작은 배로 어찌나 요리조리 잘 움직이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장강의 각종 암초들도 장훈의 앞에선 장애물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이 보이는 듯 행동했으며 그러한 실력으로 수적들을 유인했다.

“잡아! 잡으라고 새끼들아!”

장강오룡은 줄어들지 않는 추격의 거리에 약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천 가주님. 도착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장훈의 말에 시선을 돌린 천애랑은 실소를 뱉었다.

‘이거 참… 강이 맞나?’

마치 바다에서나 볼법한 거대한 소용돌이가 눈앞에 있었다. 소용돌이의 위로는 시야를 뿌옇게 만드는 거친 강 안개가 있었다.

천애랑은 웅장한 대자연 앞에서 감탄을 뱉었다.

“생각보다 대단하오.”

“그렇지요. 어부들 사이에선 귀구(鬼口) 또는 지옥구(地獄口)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에 들어가서 쉬이 살아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죠.”

장훈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가끔 저 지옥구에 도전하는 어부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대상엔 대어도 있으니까요.”

“그대가 그런 어부 중 하나이자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거고.”

장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죽을 뻔했지만 그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죠.”

천애랑은 그가 이을 말이 무엇일지 알고 있었다. 회의에서 두루뭉술하게 나왔던 말이었으며 이렇게 적들을 유인한 이유.

“이곳이 장강수로연맹의 총채가 숨어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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