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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65화 (165/200)

기공술사 165화

“형님……?”

힘없이 들렸던 담대혁의 얼굴에 놀라움이 피어올랐다.

천애랑은 황당한 표정으로 의제를 보았다.

“여기서 뭐해?”

지극한 당혹에서 나오는 순수한 질문이었다.

주원장의 군사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들었는데 왜 이런 곳에 있단 말인가.

보통 군사라 함은 제갈청처럼 전쟁의 후방에서 계책을 내고 병사들을 지휘하지 않겠는가.

천애랑의 입장에선 당연히 담대혁이 그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적진의 가운데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갇혀있으니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그게…….”

담대혁이 대답하려던 때였다. 뇌옥 입구에서의 소란이 들렸다.

‘그새 시간 소요가 많이 됐었나.’

아무래도 관병들이 이상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나가서 이야기 하자.”

천애랑은 뇌옥의 강철자물쇠를 손으로 가볍게 부쉈다. 그러곤 담대혁의 몸을 구속하는 여러 구속구를 제거했다.

“윽!”

천애랑을 따라 일어나려던 담대혁이 고통의 신음을 뱉으며 주저앉았다.

‘몸이 많이 상했나.’

천애랑은 급히 담대혁의 등에 손을 올렸다.

“받아들여라.”

말과 동시에 천애랑은 담대혁의 등으로 기운을 불어넣었다.

시간이 없어 최소한의 기운으로 생력을 북돋는 거지만 도움은 될 것이었다.

잠시 후 담대혁이 한결 나아진 기분을 느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고문에 의한 통증들이 몸을 괴롭혔지만 좀 전에 비하면 확실히 좋아졌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런 인사는 됐다. 우선 나가보자.”

천애랑과 담대혁이 뇌옥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털썩.

뇌옥 내부를 살피러 온 관병과 입구를 경계하던 관병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기절할 뿐이었다.

“이쪽으로.”

천애랑은 뇌옥을 찾을 때 살폈던 지형지물들을 떠올리며 길을 안내했다.

이대로만 움직이면 큰 마찰 없이 관청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장훈이라는 자를 찾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애초의 목적을 이루진 못했지만 덕분에 의제를 구할 수 있었으니 관청을 넘은 것은 충분했다.

“형님. 잠시만요.”

높은 담벼락의 그늘에 숨을 때 담대혁이 천애랑을 불렀다.

이에 천애랑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담대혁이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매우 염치없는 건 알지만 혹시 한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요.”

“누구?”

천애랑의 의아한 시선을 받은 담대혁이 답했다.

“저를 구해준 사람인데요. 함께 뇌옥에 갇혔다가 고문실로 끌려갔습니다. 이름이 장훈이라 했습니다.”

말을 마친 담대혁이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천애랑은 그의 미안한 마음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혹시 담 아우가 말하는 장훈이라는 자가 배를 잘 모는 이인가?”

“어? 맞습니다. 배 모는 솜씨로는 이곳에서 유명한 자라고 했습니다.”

담대혁이 놀란 눈을 하자 천애랑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행방을 파악할 수 없어 포기하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고문을 받으러 끌려갔다고? 언제?”

“지금이면 끌려간 지 한식경쯤 됐겠네요.”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움직이면 가능하겠어.’

그리고 최대한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고문으로 장훈의 건강이 크게 상하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알았어. 장훈이라는 자를 찾아올 테니 너부터 몸을 숨기자. 숨 참아.”

“네.”

담대혁이 큰 호흡과 함께 숨을 참자 천애랑은 한 손으로 담대혁을 들었다.

그러곤 환영유령보보를 극성으로 펼치며 담벼락을 넘었다.

어두움에 완벽하게 가려진 두 사람을 알아챌 경계병들은 없었다.

그렇게 인근의 어두운 숲에 담대혁을 내려놓은 천애랑은 곧장 다시 관청으로 신형을 날렸다.

***

천애랑이 떠난 후 담대혁은 스스로의 상태를 살폈다.

내상을 크게 입은 것은 아닌지라 며칠 요양만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마 별다른 방안이 없다면 며칠 안에 죽을 목숨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천애랑의 등장은 천우신조였다.

‘이런 곳에서 형님이 나타나다니.’

안전의 확보에 따른 작은 안도감과 함께 담대혁은 입안이 급격히 써왔다.

그는 이렇게 된 상황을 돌이켜 봤다.

장강 이남의 많은 부분을 장악한 홍건적이다.

그런 위기감에 수십만의 황군이 공격해왔지만 홍건적은 백중지세로 잘 막아내고 있었다.

이는 장강이라는 방파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에 따라 전쟁의 흐름은 점점 홍건적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정도문파와 마교와의 전쟁이 심상치 않아.’

마교와의 전쟁이 심화됨에 따라 홍건적을 돕던 정도문파의 제자들이 이탈하고 있었다.

병력의 중간관리나 별동대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던 정도무림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사문의 위기와 무림맹의 부름에 따라 더 이상 홍건적에 머물지 못하게 되자 홍건적은 일순간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지휘체계의 혼란이 왔었지.’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정도무림인들이 홍건적에서 빠져나가 사문을 구하러 간, 그래서 새롭게 지휘체계를 정비하는 시간.

‘고작 일주일 정도였을 뿐인데.’

하나의 체계를 정비하는데 드는 것치고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정보가 샜던 건지 그 일주일의 시간 사이에 황군들이 총공격을 해왔다.

그 때문에 장강을 기반으로 한 홍건적의 주요 거점 몇 개를 빼앗겼다.

그 중 가장 치명적인 곳은 강소성 남경(南京)이었다.

‘주 대장이 수도로 삼으려던 곳이었는데.’

홍건적의 제 일 거점으로 삼으려고 많은 관리와 투자를 하던 곳을 빼앗겼으니 홍건적은 비상이 걸렸다.

이곳 호북성 무한(武漢)을 빼앗긴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사건이었다.

이에 홍건적은 즉시 남경(南京) 탈환 작전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다른 전선을 유지 또는 후퇴하되 남경만은 무조건 탈환한다는 거였다.

이러한 홍건적의 움직임을 황군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그들 또한 어렵게 빼앗은 남경을 지키기 위해서 군세를 집중시키려 했다.

이에 담대혁이 직접 나섰다.

호북성 무한을 교란시켜 황군의 움직임에 큰 제한을 주는 것.

세부계획으로는 황군을 돕는 장강수로연맹을 공격해 장강을 장악하는 것과 무한의 재탈환. 그것이 담대혁의 계획이었다.

‘가능할 줄 알았는데.’

담대혁은 마른세수를 했다.

홍건적에서 수전(水戰)에 능한 이들만 무려 일만이나 선별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제아무리 장강에서 악명 높은 수적들이라 할지라도 쉽게 제압 가능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담대혁은 몇 개의 수로채를 없애며 장강장악이라는 계획의 성공을 자신했다. 장강오룡(五龍)이라 불리던 이들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괴물들.’

담대혁도 나름 홍건적 군사로 있으면서 많은 무인들을 봐왔지만 그들만큼 독특하고 강한 무인은 드물었다.

정확히는 물 위에서만큼은 그들보다 강한 무인은 없다 싶었다.

출렁이는 배 위에서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물론이거니와 물 위를 마치 평지처럼 내달리는 그들의 움직임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들 다섯에 의해 담대혁이 이끌던 수군들의 지휘체계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후로는 장강오룡이 이끄는 장강수로연맹의 정예들이 홍건적의 수군을 헤집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었어. 나의 불찰이다.’

담대혁이 자책감에 입술을 짓씹었다.

자신이야 우연히 장훈이라는 어부에게 구함 받았지만 다른 병력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담대혁은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배를 몰던 장훈을 떠올렸다.

배가 반파되어 거센 강물에 휩쓸리던 자신을 구해준 인물이었다.

‘선의로 구해주었건만 그 때문에 붙잡혀 고생을 겪다니.’

미안한 마음을 표할 길이 없었다. 다시 만난다면 다시 한 번 꼭 감사를 표하리라 생각하던 찰나.

담대혁은 가까워지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그 정체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천애랑이 장훈이라는 어부를 둘러업은 채 뛰어오고 있었다.

“형님!”

담대혁이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내 두 눈을 크게 뜨며 흔들던 손을 쭈뼛이 제자리로 내렸다.

천애랑의 뒤로 관청이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님?”

담대혁이 놀란 마음으로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할 때.

날렵한 맹수처럼 다가온 천애랑이 담대혁을 그대로 어깨에 들쳐 멨다.

“큭!”

담대혁이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며 입술을 강하게 씹어버렸다.

칼에라도 베인 듯 입술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 뛴다.”

양어깨에 사람을 들쳐 멘 천애랑의 속도는 줄지 않았다.

담대혁은 천애랑의 어깨에서 자연스레 뒤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잡아라!”

“홍건적의 침입이다! 적을 잡아라!”

“불을 끄는 인원을 제외하곤 무조건 잡아라! 놈이 장군님을 죽였다!”

멀찍이서 들려오는 관병들의 말소리에 담대혁은 입을 떡 벌렸다.

사람 하나 몰래 구하러 갔다 오는 줄 알았더니 아주 관청을 초토화 시키고 오는 모양새였다.

특히 놀라운 점은 관병들이 말하는 장군은 초절정의 고수로 이곳 무한을 주로 관리하는 황군의 우두머리와 같았다.

‘그런 이를 죽였다고? 언제?’

천애랑이 장훈을 구하고자 움직인 지 불과 반 시진도 안 되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장훈의 위치를 찾아 구출해 빠져나오기만도 빠듯한 시간이다.

‘그런데 구하는 건 물론이고 불도 지르고, 심지어 초절정의 고수를 죽이기까지 하다니.’

수년간 집단전만을 경험했던 담대혁의 입장에선 오랜만의 신선함이었다.

군에서는 아무리 개인의 무력이 뛰어나다 해도 거대한 틀에서 움직이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개인의 무력이 그 어떤 집단보다 든든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져 실소가 나왔다.

그리고 그 개인이 자신의 의형인 천애랑이라는 것이 내심 뿌듯했다.

‘하여간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형님이로군.’

흐뭇하게 미소 짓는 담대혁의 입술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

다음 날 아침.

무한 시내가 시끄러워졌다.

밤새 불타던 관청의 소란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그와 관련돼 움직이는 관병들의 기세가 흉흉했다.

“수상한 자를 본 적이 없나?”

“역도들을 숨기는 자는 삼족이 멸할 것이다.”

“수상한 자를 본 자는 무조건 신고하라!”

“보고도 묵인하는 자는 공범으로 처벌할 것이다!”

무한 곳곳을 돌며 지난밤의 범인을 찾는 관병들이었다.

관병들의 탐문에 시달린 사람들은 각종 자리에서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대체 누가 관청을 공격한 거지?

“홍건적이라지 않나.”

“그게 말이 되나. 지금 여기엔 일반 관군들뿐 아니라 황군들도 상주하는데.”

“그렇다고 어디 틈이 없다던가. 홍건적들이 밤새 몰래 들어와 일 저지르고 갔나보지.”

“아닌데. 내가 듣기론 ‘들’이 아니라 혼자였대.”

“뭐?! 혼자서 그 난리를 피웠다고?”

“어디 무림 고수라도 되나.”

관청의 일로 떠들어대는 행인들을 지나 능 노인은 자신의 대장간으로 들어섰다.

대장간 안에서도 일꾼들이 어젯밤의 일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이에 능 노인이 크게 화를 냈다.

“관에 도둑이 들었든 어쨌든 그게 네놈들과 상관이 있더냐! 납기일 얼마 안 남은 거 잊었어! 왜? 목숨 아까운 것도 잊었나 보지!”

“죄송합니다!”

“모두 한눈팔지 말고 일하고 있어! 내 허락 없이 뒤뜰로 올 생각은 하지 말고! 알았냐!”

“예!”

능 노인의 윽박질에 일꾼들이 화들짝 놀라며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들에 콧방귀를 뀐 능 노인은 곧장 대장간 뒤편으로 향했다.

마당을 지나 한 전각으로 들어선 능 노인은 눈앞의 인물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가부좌를 튼 천애랑과 벽에 기대어 앉은 두 환자들. 지난밤 사건의 주인공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기밀 때문에 급하게 끌고 와 자리하게 한 채 가장이 눈치를 보며 구석에 앉아 있었다.

“왔소?”

맑고 청량한 천애랑의 목소리가 능 노인을 불렀다.

밖의 소란이 마치 꿈인 것만 같은, 그리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듯한 태연한 목소리에 능 노인은 기가 찼다.

“대체…….”

할 말은 많았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 능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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