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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64화 (164/200)

기공술사 164화

호북성 성도 무한(武漢).

이 도시는 장강이 지나는 곳에 있어 수로를 통해 서쪽으로는 사천, 동쪽으로는 안휘, 강소로 이동할 수 있다.

또한 육로를 통해 북으로 가로지르면 곧장 하남과 하북, 그리고 북경에 다다른다.

즉, 교통의 요충지라는 의미인데 현재 강남의 홍건적과 전쟁을 치르는 황실군의 주둔지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천애랑은 깊은 죽립을 구매해 꾹 눌러썼다.

황군들이 수시로 움직이는 곳에서 불필요한 마찰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나온 천애랑은 무한 시내의 넓은 길을 보았다.

어깨를 피해할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길을 지나고 있었다.

많은 물자가 움직이는 도시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장훈이라는 사람부터 찾자.’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하는 기분이었지만 하오문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하오문의 거점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간판에 작게 그려진 개미.’

대장간을 표시하는 간판에 모퉁이에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를 개미 그림이 있었다. 하오문의 표식 중 하나였다.

천애랑은 곧장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철을 달구는 뜨거운 열기와 담금질 하는 뜨거운 연기가 대장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깡깡 거리는 굉음들 속에서 고성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이 새끼들아 불이 다 죽는다! 바람을 더 집어넣어!”

“예!”

“누가 무두질 멈추래! 네 목숨도 멈추고 싶냐!”

“죄송합니다!”

대장간의 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한참을 소리치다가 천애랑을 발견했다.

“음? 뭐요! 물건을 구매하려면 여기가 아니라 옆으로 가시오!”

기척도 없이 등장한 죽립 쓴 사내에 노인이 인상을 쓰고는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이에 천애랑은 조용히 말했다.

“개미가 홀로 먹고살기 힘들어 무리를 지었다.”

“음?!”

노인의 고개가 모로 움직였다. 자꾸 갸우뚱거리는 것이 암구호를 못 알아듣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천애랑은 천천히 죽립을 벗었다.

천애랑의 얼굴을 천천히 살핀 노인의 눈이 서서히 커져갔다.

“아이고야! 귀한 손님이었군요.”

노인이 급히 허리를 숙이며 천애랑을 반겼다.

그 모습에 노인에게 혼나면서 일하던 일꾼들이 놀란 시선을 모았다.

“이것들아 딴청 피우지 말고 일하고 있어!”

노인은 일꾼들에게 언성을 높이고는 천애랑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천애랑은 노인을 따라 대장간의 뒤쪽으로 갔다.

‘생각보다 넓네.’

대장간의 뒤편엔 마당을 낀 일 층 짜리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 규모가 제법이었다.

노인은 건물 중에서 한 곳으로 천애랑을 안내했다.

나름 신경 써서 안내한 것인지 비교적 깔끔한 곳이었다.

“편히 앉으시지요. 거친 직업이다 보니 대접할 것이 술밖에 없네요. 드립니까?”

“괜찮소.”

천애랑은 고개를 저으며 탁자 앞 의자에 앉았다.

노인은 대충 술병을 따 병나발을 불었다.

“크으! 좀 살겠네.”

크게 한 모금을 마신 노인이 대충 천애랑과 마주 앉았다.

“능 노인이라고 합니다. 저에 대한 호칭이야 편하신 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소. 천애랑이라고 하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능 노인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나저나 과거의 암구호를 말씀하셔서 잠시 당황했었습니다.”

‘아. 소걸이한테 들은 기억대로 했는데 그게 옛날 거였나.’

하긴 암구호라는 게 수시로도 바뀌는 것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노인의 질문에 천애랑은 ‘장훈’이라는 이에 대해 물었다.

거친 수염을 쓰다듬던 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장훈이라…. 아랫것들한테 조사를 맡기지 않아도 될 인물이군요.”

“그가 유명하오?”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겐 유명합니다. 어부인데 배를 모는 솜씨가 일품이어서요. 그래서 장사치들이 그에게 물건을 운반하는 의뢰도 종종 하는 편이죠.”

천애랑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가후가 신신당부하며 만나라고 했을 땐 반신반의했는데 이 정도로 평가받는 자일 줄은 몰랐다.

“혹시 그자를 만날 수 있겠소?”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진 않을 겁니다. 다만 그자의 원칙이 ‘의뢰를 원하면 직접 찾아오라.’입니다.”

만나길 원한다면 천애랑이 직접 가야 하는 일이라고 노인이 에둘러 말한 것이었다.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를 부탁하겠소.”

***

천애랑은 장훈을 만나기 위해 능 노인과 함께 나루터에 도착했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장훈은 항시 이곳 나루터에 상주한다고 했다. 그러니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라 했다.

하지만 천애랑과 능 노인은 장훈을 만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 녀석이 사라졌다고?”

능 노인의 놀람에 배에서 그물을 걷던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영감. 나도 모릅니다. 그저 어느 날부터 보이질 않아요.”

노인의 눈이 좁혀졌다.

“채 가장 많이 컸어?”

노인의 날 선 말에 사내의 신형이 우뚝 멈췄다. 사내는 능 노인을 바라봤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영감님. 제게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사내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으나 능 노인을 표정은 더욱 차가워졌다.

“네놈이 여기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게 누구 덕분인지 그새 잊은 게냐. 마누라랑 딸내미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된 덕이 누군지 그새 잊었냔 말이야.”

사내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이내 사내가 답답한 듯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 다 영감님 덕분인 것을.”

“그런데 내게 그리 섭섭하게 굴어?”

“……말하면 죽을까 봐 그렇습니까. 죽을까 봐.”

사내의 표정이 더욱 울상이 되었다. 툭 건들면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그 모습에 노인이 불만이라는 듯 더 목소리를 높였다.

“죽기는 왜 죽어! 장훈이라는 놈이 어디 관군에라도 잡혀갔다더냐!”

터무니없는 상황을 언급하며 핀잔을 줌이었지만 사내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은 예상 밖의 경악이었다.

“허억! 영감님! 어떻게 아셨…! 그리고 목소리 좀 낮추세요!”

사내가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나루터에도 한 번씩 관군들이 순찰을 돌기 때문이다.

황당한 표정을 짓던 능 노인은 사내의 멱살을 붙잡듯 하며 나루터의 은밀한 곳으로 끌고 갔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한 톨의 거짓이라도 있으면 재미없을 줄 알어!”

“그, 근데 옆에는 누굽니까?”

입을 열려던 사내가 조심스레 천애랑의 존재를 지적하자 능 노인이 낮게 경고했다.

“자네가 알 바 없네. 다만 장훈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며, 어쩌면 지금 상황을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이시네.”

사내가 놀란 눈을 했다.

평소 성정이 불같은 능 노인이 이 정도로 존칭을 사용하는 상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들어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능 노인의 기세가 당장이라도 목을 쥐어 틀어버릴 정도라 속으로 삼켰다.

사내가 주위를 경계하며 조용히 말했다.

“이틀 전인가 그럴 겁니다. 오랜만에 새벽 물질 좀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사내의 말은 이랬다.

물질 후 나루터에 돌아오니 멀찍이서 장훈이 보였고 아는 척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관군들이 몰려오더니 장훈을 붙잡아서 끌고 가더라는 거다.

장훈을 끌고 가는 관군들의 기세가 흉흉해서 사내는 그저 몸을 숨기고 위기가 지나가길 바랐었다.

“제가 아는 것은 이게 답니다. 그 뒤로 이틀이나 지났지만 장훈의 행방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는 듯하고요.”

사내의 모든 말을 들은 능 노인이 천애랑을 보며 난색을 표했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천애랑도 난감한 상황이 됐음을 느꼈다. 매우 쉬워보이던 상황이 까다로운 상황으로 변했달까.

‘왜 장훈을 데리고 간 거지. 그들의 입장에선 그저 어부일 뿐인데.’

잠시 고민하던 천애랑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장훈이라는 자가 배를 모는 게 일품이라던데 여기의 다른 이들과 비교해선 어떻습니까.”

능 노인이 존칭을 사용하는 사내다. 그러기에 채 가장이라 불린 사내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배를 모는 것만을 말씀…. 하시는 겁니까?”

천애랑이 긍정을 하자 사내가 답했다.

“배를 모는 기술만 따지만 장훈이 이곳에서 최고입니다. 아니, 어쩌면 천하에서 최고일지도 모릅니다.”

확신에 찬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이곳 무한에서 그만큼 배를 잘 모는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글쎄 어찌나 배를 잘 모는지 예전엔 수적들이 데려가려고도 했었죠.”

사내의 말을 듣고 나니 천애랑의 고심이 깊어졌다.

천애랑은 능 노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실은 내가 장강수로연맹을 치러가는 길이오. 그 과정에서 장훈을 추천받았음인데 그대가 생각하기에 어떠오. 장훈이 꼭 필요하겠소. 아니면 배제해도 되겠소.]

능 노인의 눈이 놀라움으로 가득해졌다. 잠시 고민을 하던 노인이 조심스레 답했다.

“그러하신 목적이라면 꼭 필요할 듯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물의 온도가 높아질 땐 그 어느 때보다 물살이 거세집니다. 그래서 뱃사람들도 멀리 못 나가고 인근에서 낚시하거나 물질을 하죠.”

모든 답을 얻은 후 천애랑의 고민은 쉽게 정리됐다.

“장훈이라는 자의 인상착의가 어떻게 되오?”

천애랑의 물음에 두 사람이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줬다.

채 가장이라 불린 사내는 장훈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인물이었기에 착의를 말해줬고, 능 노인은 하오문도답게 꽤나 상세한 얼굴묘사를 해주었다.

워낙 자세한 설명에 꽤나 명확한 외모가 그려졌다.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천애랑은 능 노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장훈이라는 자를 찾아봐야겠소. 그러고 나서 판단을 다시 하는 것이 좋겠소. 안내와 정보 고맙소.]

“예?!”

능 노인이 화들짝 놀라 천애랑을 보았지만 천애랑의 신형은 귀신처럼 사라져 있었다.

“귀, 귀신……!”

눈앞에 있던 이가 갑자기 사라지니 사내가 기겁을 하며 그대로 기절했다.

능 노인은 쓰러진 사내를 무시하곤 그저 천애랑의 무위에 감탄을 했다.

“역시 소문대로 신출귀몰 하군.”

***

어두운 밤.

천애랑은 관청의 담벼락을 넘었다.

‘만약 장훈이라는 자를 죄인 취급하는 거라면 뇌옥에 갇혀있을 가능성이 있다.’

환영유령보보로 완벽하게 모습을 지운 천애랑을 발견할 관병들은 없었다.

‘뇌옥은 어디이려나.’

천애랑은 기감을 활짝 열고 뇌옥을 찾고자 노력했다.

관병들의 대화들과 뇌옥 특유의 울리는 소리에 유념한 결과 일각 만에 뇌옥을 찾을 수 있었다.

천애랑은 뇌옥 입구를 지키는 관병 둘을 가볍게 기절시키곤 어두운 건물 옆에 숨겼다. 그러곤 뇌옥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섰다.

“나는 억울하오! 홍건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단 말이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무한에서 나고 자라 그저 글공부나 하는 학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홍건적이라니요!”

“어머니가 장강 이남에 사실 뿐입니다. 그저 뵙고 왔을 뿐인데 홍건적이라뇨! 억울합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뇌옥 안에선 잡힌 이들이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들의 몰골이 모두 봉두난발한 죄인의 그것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억울함을 말하는 이들은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으아아아악! 가까이 오지 마! 나는 몰라! 나는 모른다고!”

“죽여주시오! 차라리 죽여줘!”

“쿨럭! 쿨럭!”

뇌옥의 안쪽으로 갈수록 더욱 모진 고문을 받았는지 피투성이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들이 가득했다.

모두가 신경이 쓰였지만 당장은 급한 일이 있었다.

‘장훈이라는 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급선무다.’

뇌옥이 나름 규모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을 확인하는 데엔 고작 반각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린 장훈의 인상착의와 일치하는 이는 없었다.

‘여기엔 없는 건가.’

그렇게 뇌옥의 가장 구석진 곳.

그곳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던 천애랑은 신형을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봉두난발에 고단한 표정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담 아우 여기서 뭐하나?”

천애랑은 환영유령보보를 풀고 오랜만에 보는 의제, 담대혁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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