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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63화 (163/200)

기공술사 163화

무당파 장문인의 집무실.

그곳에서 장문인과 진강, 그리고 천애랑이 자리했다.

장문인이 진강을 보며 말했다.

“느낀 바가 있더냐.”

진강이 겸손 가득한 표정으로 답했다.

“불초한 제자의 오만함이 꺾였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저 또한 우물 안 개구리였더군요.”

“깨달은 바가 있었으면 되었다. 전장에 가거든 네가 무당파의 얼굴이 된다. 항시 오늘을 떠올리며 행동하거라.”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장문인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화경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제자다.

‘보통이라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기고만장 하겠지.’

물론 화경이라는 경지는 그래도 무방한 무위긴 했다. 하지만 강호라는 곳은 꽤나 많은 변수가 발생하는 곳이다.

‘경지가 낮다 무시한 이에게도 죽임을 당하는 게 강호다.’

그러기에 강호에선 3할의 힘을 숨기라는 명언이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항시 겸손하고, 자만의 암기들을 피해 살라는 의미기도 했다.

오늘 천애랑을 통해 그러한 점을 제자가 깨닫기 바랐고, 태도를 보아하니 성공적이었다.

장문인은 천애랑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무당을 체면을 세워주어 고맙네.”

수백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제자를 이길 수도 있었지만 천애랑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연막과도 같은 환경을 만들어 승패를 가려주었다.

진강도 다시금 포권을 취하며 천애랑에게 인사했다.

“저 또한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오.”

이에 천애랑도 마주 포권을 했다.

“별 말씀이오. 대단한 무공들에 오랜만에 두 눈이 호강했습니다. 다만.”

천애랑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너무 기를 제어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싶었소.”

장문인과 진강이 놀란 눈을 했다. 천애랑이 진강의 태극혜검에 대해 감평을 내놓는 거였기 때문이다.

이에 진강이 자세를 바로하며 물었다.

“경청하겠소이다. 편히 말씀해 주시겠소이까.”

무공이란 무인에게 있어서 자존심과 같다.

삼류무인도 자신이 노력해서 익힌 무공에 자부심을 갖는 법이다.

하물며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무당파다.

그 안에 담긴 무학에 대해 같은 사문이 아닌 타인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큰 실례와 같았다.

그럼에도 천애랑은 호의의 마음으로 어렵게 입을 열었고, 그 상대인 진강은 이를 경청하고자 함이었다.

심지어 문파를 대표하는 장문인도 기꺼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 절대 쉬운 태도가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발전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겸허였다.

‘미래의 구파일방 수좌는 화산이 아니라 무당이 될지도 모르겠군.’

내심 감탄한 천애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강 도인께서는 검강을 완벽히 제어하는 것보다 검강에 자유로움을 부여하고자 했던 것 같소.”

“맞소. 막대한 내공을 잡아먹는 태극혜검인 만큼 강기의 강도에는 자신 있으니 이를 좀 더 발전시켜보고자 했소이다.”

좋은 생각이었다. 살아있는 듯 길어지는 검강에 천애랑도 공격을 당할 뻔했었다.

“물론 위협적이지만 그뿐이었소. 완벽한 여전히 강기는 통제되었고 이것이 결정적인 한 수를 방해하는 기분이었다. 해서 내 생각엔 그냥 강기를 활짝 펼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소.”

진강이 경청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소이만. 자고로 기란 완벽한 통제 아래에 놓일 때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는 거 아니겠소.”

진강의 말은 강기에 부여하는 자유로움도 완벽히 통제되는 상황에서 이뤄야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였다.

천애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는 말이오. 하지만 진강 도인께선 막대한 내공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내공 통제력도 가지고 있소. 그러니 자유롭게 풀어놓은 강기들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오.”

“흐음.”

진강이 침음을 흘렸다.

새로운 의견에 대한 반발심리가 아니었다. 그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든 무공의 기본은 완벽한 통제다.

신체의 근육을 통제하고 그로 인해 검의 궤적을 완벽한 선으로 만들고, 잘 통제된 기를 이용해 결과적으로 완벽한 무공을 펼치는 것이 모든 무공의 흐름이었다.

즉 진강은 얼마나 통제를 빠르게, 그리고 많이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성장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눈앞의 천재, 그것도 기를 다루는 거라면 추종을 불허하는 기공가문의 가주의 말이다. 허투루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 진강을 지켜보던 천애랑이 일어나 잠시 거리를 벌렸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편할지도 모르겠소.”

양해를 구한 천애랑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집무실을 가득 메운 내기의 농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으음! 이건!”

장문인과 진강이 놀란 눈으로 기를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집무실 가득한 기운이 점차 강해지더니 하나의 강기처럼 변한 것이다.

들이쉬는 공기 하나하나가 언제든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는 상태가 된 거다.

“이건 그냥 내공을 강하게 뿜어낸 것에 불과하오. 물론 위협적이겠지만 불필요한 내공소모가 너무 많소.”

전방위적으로 무분별하게 내공을 펼친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천애랑의 말과 함께 내기가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의 곁에 일종의 검처럼 생긴 유형의 강기가 뭉쳐졌다.

“심검(心劍)?!”

장문인이 화들짝 놀라 외치자 천애랑이 고개를 저었다.

“다르오. 이것은 그저 대기의 결을 매개체 삼아 강기를 펼친 것이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기는 매개체가 필요했다.

검, 도, 창 등 병장기는 물론이거니와 최소한 손발이라는 매개체가 말이다.

천애랑은 대기의 결에 내기를 집어넣어 형태를 잡은 후 그 위에 강기를 덧씌운 것이었다.

뭐가 됐든 지극히 놀라운 경지기에 장문인과 진강의 표정이 감탄 가득이었다.

“허어.”

천애랑은 허공에 만들어낸 강기의 검에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검이 빠르게 장문인에게 쏘아졌다.

쉬이이익!

“무슨!”

화들짝 놀란 진강이 강기의 검을 막으려 하자 천애랑의 손가락이 다시금 까딱였다.

쉬쉭!

그러자 검은 장문인에게서 진강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헛!”

갑작스런 변화에 진강이 철판교의 수로 몸을 젖혔다.

진강을 스쳐지나간 강기의 검이 이어지는 천애랑의 손짓에 따라 움직였다.

“매개체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오.”

천애랑의 말과 함께 강기의 검에서 강기가 분리되어 쏘아졌다. 그 방향이 집무실 벽들이었다.

빠직! 콰지직!

강기가 벽에 닿으려 할 때마다 급격한 방향을 트는 탓에 집무실 벽에 놓인 장식품과 집기들이 부서지기를 반복했다.

“제자야. 천 도우를 잘 보거라.”

놀람에 씩씩거리던 진강이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애랑을 관찰했다.

“흐음.”

진강의 관찰이 길어졌다. 그는 무언가 보일 듯 말 듯 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곤 마침내 진강이 놀란 눈을 했다.

“아!”

“보았느냐.”

진강이 깊은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강기의 검을 꽉 붙잡고 휘두르던 게 아니었군요. 방향을 바꿀 때. 즉, 필요할 때만 순간적으로 제어를 하는 거였어요.”

진강은 천애랑이 보여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지금은 강기를 자유로이 뿌리되 검사처럼 얇은 기의 실로 강기를 붙잡고 있고요. 그런 방식으로 쏘아진 강기를 통제하는….”

진강이 우두커니 서서 생각을 이어갔다.

천애랑이 보여주는 것은 더 나은 강가의 자유로움이었다.

진강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그러곤 태극혜검의 강기를 펼쳤다.

이후부턴 천애랑이 보여준 대로 강기를 휘두르고자 시도했다.

강기를 날리고선 요란한 검짓으로 그것을 통제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

콰광! 콰과광!

통제에 실패한 강기들이 집무실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다 비싼 것들이건만…….”

행여나 제자의 무아지경에 방해가 될세라 장문인이 작게 읊조렸다.

쉬익! 쾅!

진강에게서 쏘아진 검강이 벽에 닿기 전 급격히 방향을 트는 데 성공했다.

그런 모습을 멍하니 보던 진강은 이내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기었다.

그제야 장문인은 조심스레 움직였고, 천애랑도 눈치껏 장문인을 따라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무림인에게 깨달음이란 선물과도 같다.

누군가에겐 자주 올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평생을 통틀어 한 번도 안 오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나마 앞서간 선배들의 조언이 있다면 내 깨달음이 부족하더라도 차근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것이 문파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승관계의 의의다.

다만 어느 무인들이나 겪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상승의 경지에 다다를수록 깨달음을 구하기 어렵다는 거다.

특히 화경의 경지쯤 되면 조언을 구할 선배가 없다.

주변에 화경의 인물이 있다 한들 그게 타인이라면 본인의 깨달음을 공유해줄 리 만무하다.

그런 귀한 깨달음을 천애랑이 진강에게 베풀었음이니 진강의 스승이자 무당파 장문인의 입장에서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진심으로 감사하네. 무당이, 그리고 한 제자의 스승이 자네에게 깊은 은을 입었네.”

천애랑은 이에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도움은 신룡대주가 아닌 기공가의 가주로서 드리는 거라 생각해주시오.”

의미를 이해한 장문인이 크게 주억거리며 웃었다.

“이를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이와 관련해서 선물이 있네.”

***

이튿날.

무당파에서 적당히 여독을 푼 천애랑은 곧장 무당파를 떠났다.

장문인과 밤새 깊은 깨달음을 얻은 진강이 극구 붙잡았지만 그에겐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빨리 수로연맹을 치고 애들이랑 합류해야지.’

송소걸을 비롯한 의각원생들.

그들을 생각하면 모두 물가에 내놓은 자식 같은 불안감이 든다.

특히 의각원생들은 가면 갈수록 그 성정들이 종잡을 수가 없어서 더 걱정이다.

‘화란이 있어서 마음이 놓이긴 하는데. 설동 그놈이….’

종잡을 수 없는 가장 주요 원인, 설동이었다.

“그나저나.”

천애랑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았다.

상아(象牙)로 만든 귀한 패에 무당지은(武當之恩)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무당의 은인에게 주는 신성한 패이니 추후 어떠한 도움이든 무당은 성심껏 임하겠다라.’

장문인의 말을 떠올리며 천애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보답에 대한 규모도 기한도 없는 최상의 보은패였다.

“소걸이나 가후랑 의논해봐야겠군.”

가문을 재건할 직접적인 돈도 좋고, 그게 아니면 상권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소림과 함께 오랜 역사를 가진 무당이다.

그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상계의 인물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무당이 원하기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천금의 돈을 가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돈 많은 문파니 뭘 요구하기도 부담 없겠어.’

보은패가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다.

천애랑은 흡족한 미소와 함께 가야할 방향을 가늠했다. 가후가 신신당부한 이를 찾아야 했다.

‘장훈이라 했나.’

호북성의 성도인 무한에서 장훈이라는 어부가 있다했다.

가후의 말에 따르면 장강수로연맹의 위치와 전투는 주로 물 위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장훈이라는 자의 도움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가보면 알겠지.”

방향을 정한 천애랑은 축지법을 펼쳐 빠르게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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