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61화
진강은 무당파의 대제자다.
그는 진 자 배가 삼대제자일 때부터 뛰어난 오성을 드러냈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소위 천재였다.
진강이 약관의 나이가 되어 이대 제자가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절정의 고수였다.
이는 대부분의 일대제자나 장로들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런 두드러진 천재성에 진강은 무당파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고, 승승장구 압도적인 성장을 보였다.
자연스레 그는 대제자가 되었다. 북숭소림 남존무당이라 불리는 무당파의 미래가 창창했다.
그의 성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초절정의 경지에서 하나의 벽을 마주한 그는 수년의 폐관수련을 거쳤고, 얼마 전 깨달음과 함께 폐관수련을 마쳤다. 마침내 사십의 나이로 화경에 발을 들인 것이다.
그렇게 폐관수련을 마친 그가 마주한 상황은 전쟁이었다.
정도 무림맹과 마교가 대대적인 전쟁을 시작했고, 무림맹에선 총력을 기울여 마교를 상대하고 있었다.
당연히 무림맹의 일원인 무당파도 지원 병력을 보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내려진 스승님이자 장문인의 명.
‘무림맹으로 가서 문도들을 챙겨라.’
무당파의 희생이 크지 않도록 앞장서라는 의미였다.
진강은 장문인의 명에 거부할 명분도 마음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기회라 생각했다.
자신의 성취를 실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
이를 통해 무당파의 위엄을 세상에 알릴 기회.
전쟁 후의 강호는 더 이상 화산파가 아닌 무당파가 이끌 것이라는 포부를 보일 기회였다.
그러한 뜻을 작게나마 처음 선보이는 자리를 오늘 마련했다.
방문객들과 무당파 제자들을 모은 자리에서 진강이 펼치는 무예.
방문객들에겐 무당파 대제자의 뛰어남을, 제자들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을 공유하는 시간이 될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비무를 한다고?”
대연무장 한쪽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준비를 하던 그에게 새롭게 명이 내려진 것이다.
“예. 비무 대상은 무림맹 신룡대의 대주라고 합니다. 세간에선 백두신룡이라는 별호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소식을 들고 온 사제의 말이었다. 이에 진강은 어깨를 으쓱였다.
“스승님께서 뜻하시는 바가 있으시겠지. 그리고 뭐가 됐든 상관없고.”
진강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를 바라보는 사제의 표정에도 사형이 질 거라는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그만큼 무당파에서 진강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뿌우우우------
연무장에서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진강에게 연무장으로 나오라는 신호였다.
“그럼 가볼까.”
진강은 한쪽에 기대 세운 자신의 애검을 들고선 보무당당하게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은 산의 분지와 같은 곳에 위치했으며, 청옥석 등으로 넓게 다져져 있었다.
산의 경사를 따라선 작은 층을 만들어 연무장을 지켜볼 수 있는 객석으로 마련했는데, 수용 가능인원이 족히 삼백은 되었다.
하지만 진강의 출정식을 보러온 방문객들은 그 수를 월등히 뛰어넘어 몸을 부대끼듯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객석에 자리하지 못한 많은 이들은 위험을 무릎 쓰고 연무장 가장자리에 서있었다.
그만큼 무당파의 위세나 진강의 입지가 대단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감이 자리한 연무장으로 진강이 등장했다.
와아아아아아------!
그의 등장과 함께 거대한 함성이 천지를 울렸다. 호북성 균현의 유명인사다운 반응이었다.
“진강 도인이다!”
“무당일검!”
“폐관수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더니 확실히 달리 보이는구만!”
“무당 최고다!”
관람 온 양민들과 무인들에게서 깊은 감탄사들이 터져 나왔다.
사십의 나이임에도 이십 줄의 얼굴로 보이는 그의 외모에 놀란 반응도 간간이 나왔다.
그때 진강의 맞은 편에 위치한 장로들 사이에서 천애랑이 걸어 나왔다.
이에 앞서 진강 때처럼 관중들에게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비무라니!”
“산동에서 유명하던 백두신룡이라지?”
“허어! 설마 산동의 귀신?!”
“백두신룡이 흑의폭군이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흑의폭군이라면 동창을 만행을 때려잡았던!”
“세상에!”
천애랑을 지칭하는 다양한 호칭들과 함께 관중들의 열기가 달아올랐다.
신흥고수로 천하에 이름 높은 천애랑과 무당파의 미래라 불리는 진강의 비무.
그들은 머릿속으로 오늘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며 떠들어댔다.
그때 연무장의 중앙으로 한 인물이 표홀하게 등장했다.
“동도 여러분 모두 반갑소.”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소란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순식간에 잡혔다.
“태극지존!”
그들은 그저 눈앞의 인물을 보며 깊은 감탄과 존경을 보였다.
거창한 별호를 가진 이는 지금의 자리를 주선한 무당파의 장문인 양송이었다.
무당파의 대부분 무공을 통달했지만 그 중 태극권만큼은 개파조사인 장삼봉에 필적한다 하여 그에게 붙여진 별호였다.
장문인은 열렬한 시선을 모으는 방문객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이처럼 귀한 걸음을 해주심에 본도가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요.”
관중들은 장문인의 말에 경청했다.
이에 장문인이 부드러운 미소로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아시다시피 대제자의 출정식을 가지려 했소이다.”
장문인의 시선이 진강에 닿자 관중들이 뜨거운 함성을 보냈다.
와아아아! 무당일검!
“하지만 뜻하지 않게 귀한 손님이 왔으니.”
장문인의 시선이 이번엔 천애랑에게 닿았다.
와아아아! 백두신룡!
다양한 호칭들이 나왔지만 그래도 최근 가장 많이 알려진 백두신룡이 한목소리로 외쳐졌다.
장문인은 관중들의 반응에 흡족해하며 말했다.
“두 사람의 비무로 출정식을 대신하고자 하오. 괜찮겠소이까?”
“물론입니다!”
“더할 나위 없지요!”
“무당일검!”
“백두신룡!”
사람들의 흥분이 최고조로 고조되었다.
장문인은 천애랑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선 자신의 제자인 진강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조용히 말했다.
“배운다 생각하고 임하거라.”
장문인의 말에 진강의 미간이 좁혀졌다.
수십 년을 함께 한 사제지간이다. 그러기에 눈빛만 보고도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이기도 했다.
그런 스승님의 어투가 평소와 달랐다.
‘진정 배우라고 하시는 말씀이신가.’
진강은 최근 수년간의 폐관수련으로 백두신룡이니 흑의폭군이니 하는 별호와 소문들에 대해선 귀가 어두웠다.
사제에게 간략히 들은 바와 관중들의 반응을 보니 대단한 인물인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배우라 하신다라.’
스승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스승님의 뜻대로 진강은 마음가짐을 달리 먹으며 연무장의 한쪽으로 자리했다.
그에 맞춰 천애랑도 반대편에 자리했다.
자연스레 연무장의 끝에서 마주보는 형국.
“진강이라 하오.”
“천애랑이오.”
마주본 두 사람은 간단히 통성명을 하곤 입을 닫았다.
하지만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몸에서 상대방을 탐색하는 기파가 뻗어 나왔다.
양민들이나 하류 무인들의 눈엔 보이지 않은 절대고수들 간의 제공권 싸움.
드드득.
두 기파가 부딪히는 연무장의 중심 바닥이 살짝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본 장문인이 크게 외쳤다.
“시작하게!”
말과 함께 진강이 신형을 날렸다.
“무당일검이 선공을 취했다!”
관중들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진강의 손엔 검이 들려 있었고, 그 검은 천애랑의 목에 다다르고 있었다.
매우 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천애랑의 흐릿한 잔상만을 가를 뿐이었다.
“이형환위!”
관중석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이형환위는 극상의 빠름에 의해 본래의 자리에 잔상이 남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빠르다고 이형환위를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법과 함께 인위적으로 내공을 남겨야 그 형상이 찰나간이라도 유지되는 법이다.
이는 내공과 신법이 최상위에 다다라야 가능하다는 의미기도 했다.
진강의 등 뒤에 나타난 천애랑이 가볍게 각법을 날렸다. 턱을 올려치는 단순한 승룡각이었다.
하지만 천애랑에게서 펼쳐지는 승룡각의 기세는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흡!”
진강이 다급히 고개를 젖혔다.
그러자 천애랑의 발끝이 코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시작하자마자 진강이 낭패를 볼 뻔했다.
그럼에도 진강의 눈빛은 차분했다. 그는 젖힌 몸을 횡으로 회전시키며 천애랑의 올려친 다리를 어깨로 들이받았다.
이에 천애랑은 진강의 어깨를 빠르게 밟아 뒤로 훌쩍 물러났다.
찰나 간 벌어진 공방이었다.
무공을 모르는 관중들은 둘이 가깝게 붙었다가 훌쩍 벌어지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음은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함성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함성 속에서 진강의 신형은 멈추지 않았다.
태극검.
간단히 말한다면 태극권을 검으로 펼치는 거다.
그렇다면 태극권처럼 부드러움을 떠올릴 수 있지만 마냥 그런 것은 아니다.
명색이 검법인 만큼 날카로운 일격들이 일품이었다.
특히 태극의 묘리를 담은 공방일체의 검식은 천애랑도 잠시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호오.’
천애랑은 진강의 태극검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보통은 검을 흘려보내면 검수들의 몸이 비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강에게선 그러한 틈이 없었다.
‘장법이라.’
오른손의 검술과 함께 왼손은 무당파 특유의 장법을 펼치고 있었다.
그럼 왼손의 장법을 피해 검을 쥔 오른손을 공략해도 되지 않겠나.
하지만 검을 쥔 진강의 오른손이 부드럽게 태극을 그리며 방어를 해왔다.
동시에 그의 검이 공방일체가 되어 다가왔다.
‘중단거리를 모두 장악하는 무공이라.’
꽤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틈이 없다면 만들면 될 뿐.’
천애랑은 진각을 강하게 밟았다.
대지의 결을 이용한 진각에 진강이 딛고선 바닥이 강하게 흔들렸다. 한 사람의 균형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강도.
“흐읍!”
균형이 무너지려는 진강의 손과 발이 어지러이 움직였다.
공방일체가 완벽하던 그에게서 틈이 벌어졌다.
천애랑은 축지법으로 순식간에 파고들며 명치라고도 불리는 거궐혈을 팔꿈치로 찍었다.
“크윽!”
진강이 인상을 쓰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 몸을 비틀었나.’
완벽하게 균형을 무너뜨린 후의 공격이라 생각했지만 진강은 예상외의 유연함으로 충격을 흡수했다.
두 사람의 엄청나게 빠른 공방에 관중들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몰입해 있었다.
잠시의 소강상태가 생기자 다시금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천애랑은 진강을 보며 미소 지었다. 오랜만에 흥이 돋았다.
압도적인 내공으로 찍어 누르는 전투가 아닌 이런 식의 비무도 꽤 재미가 있었다.
그때 진강이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조금 더 강도를 높여도 되겠소이까.”
보통의 비무라면 살수를 쓰지 않는, 서로의 무예를 겨루는 자리다.
그래서 내공을 크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기도 했다.
그런데 진강이 먼저 자존심을 굽히고선 실전에 가까운 내공을 사용해도 되는지 묻는 것이었다.
이에 천애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천애랑의 여유만만한 태도에 진강 또한 고개를 주억거리며 심호흡을 했다.
‘왜 스승님께서 배우는 자세를 말씀하셨는지 알겠군.’
화경 초입에 오르니 마치 세상의 끝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던 진강이었다.
하지만 천애랑과 짧게 수를 나눠보니 역시 사해구주는 넓고 천재는 많다는 진리가 크게 와 닿았다.
‘비웠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거만함에 잠겨 있었던가. 이대로 전장에 갔으면 큰 화를 치를 수도 있었겠군.’
완전히 마음을 비운 진강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런 변화를 눈치챈 천애랑이 마주 눈을 빛내며 기세를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