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59화
제갈청은 보고서류를 보며 놀란 눈을 했다.
“당가로 갔던 강시를 다 처리했다고? 허어.”
그는 이러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었다.
‘농성하며 시간이나 좀 끌어주면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제갈청의 지시로 군사부에서 함구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사천 성도 당가에게로 향하는 강시의 수가 2만이 넘는다는 것.
강시들의 수를 나누고 시간차를 두어 은밀하게 이동 중인 것을 제갈청은 파악하곤 있었다.
하지만 당가에겐 그 사실을 모두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압도적인 수적 열세를 느끼고 미리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전략적 후퇴든 어쩌든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됐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목적지를 잃은 강시들의 행선지를 특정 지을 수가 없었다.
그게 만약 사천 성도의 동쪽으로 향하게 되면 안 그래도 힘겨운 보급로가 위태해질 것이다.
혹은 서쪽으로 향하게 된다면, 이는 사천 성도의 서쪽 방면으로 전선을 형성한 무림맹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었다.
그래서 제갈청은 당가를 필두로 한 사천무림연합이 강시들에게 최대한 저항해주길 바랐다.
그렇다고 그들을 포기하거나 완전히 버리는 패로 생각한 건 아니었다.
‘폭약.’
황실에서만 취급하는 폭약을 각종 경로를 통해서 일부 확보했다.
원래라면 꿈도 못 꿀 물건이지만 전쟁으로 보안의 틈이 허술해진 덕분에 다량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폭약이 조금 전 도착했다.
신기제갈(神機諸葛) 제갈청.
그의 별호의 신기는 기계, 장치를 극히 잘 다룬다는 의미이다.
‘새로이 개발한 화포에 폭약을 이용하려 했건만.’
이 화포의 효능은 폭약의 폭발력을 증대시키는 것에 있었다.
제갈청은 이를 이용해 불에 약한 강시를 일망타진 할 계책이었다.
하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사천무림연합이 강시들을 모두 처리했단다.
‘분명 압도적인 수적 열세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던 거지.’
제갈청이 놀란 마음으로 서신을 읽어 내렸다.
‘사천무림연합의 저항에 큰 위기가 닥쳤었으나 남림야수왕이 이끄는 야수족들과 기공가문의 가솔들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제갈청이 턱을 쓸었다. 의외긴 해도 무림맹에게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갈청의 표정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좋은 상황이지. 좋은 상황이야. 하지만 변수가 너무 많으면 그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지.’
전략을 짜는 군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완벽하게 통제된, 또는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다.
변수라고 해도 통제 가능한 변수여야 제대로 된 의미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예측도 못했던 남림야수족과 기공가문의 가솔들은 통제 불가의 변수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기공가주가 새로이 무림맹에 합류했다는 점인데.’
그게 과연 통제가 가능할지는 아직까진 미지수였다.
제갈청은 시선을 돌려 때마침 도착한 기공가주, 즉 신룡대주의 서신을 받아 펼쳤다.
잠시 후. 서신을 다 읽은 제갈청은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하!”
곁에서 서류들을 분류하던 군사부의 무인들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교와의 전쟁이 터진 후부터 지금까지 제갈청이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사님. 좋은 소식이라도 있으십니까.”
수하의 말에 제갈청은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아! 있지. 있고말고.”
말과 함께 제갈청은 서신을 수하에게 넘겼다. 이를 받아 읽던 수하는 눈을 크게 떴다.
“녹림연맹의 총채를 모조리 불태웠고 그 자리에 있던 십 수 명의 간부들과 수백의 녹림도들이 죽였다. 그리고 녹림연맹주는 사로잡았으니 적당한 방법을 찾아 보내겠다.”
수하는 서신의 뒤집고는 뒷면을 마저 읽었다.
“신룡대주.”
군사부의 무인들이 모두 놀람을 표했다.
“세상에!”
“녹림연맹의 총채가 무너지고 녹림연맹주가 사로잡혔다면 녹림의 힘도 크게 꺾였겠군!”
“이를 말인가. 마교 놈들도 크게 당황했겠지.”
“군사님! 녹림연맹주의 신변을 확보한 즉시 산길을 확보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감탄은 계획으로 이어지며 순식간에 분위기가 회의처럼 변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제갈청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얼마만의 즐거운 기분인가.’
그동안 녹림연맹과의 자잘한 국지전투에서 얼마나 많은 정도 무인들이 죽었던가.
그럼에도 녹림연맹 총채의 꼬리를 잡기 위해 복수는커녕, 희생을 묵과했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희생당한 무인들의 문파에서 항의가 빗발쳤고, 마교와의 일생일대 전시상황이라는 특수성을 빌어 설득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한 오랜 답답함을 오랜만에 뚫어준 이가 생긴 것이다.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신룡대주의 필체가 이렇게 수려했던가.’
일필휘지로 쓰인 서신의 문체에서 상당한 학식이 느껴졌다.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깊이 고민한 이에게서 보이는 시원한 필체였다.
이는 학문을 하는 자라면 모두가 하는 고민이자 공부였고, 당연 제갈청 자신도 거쳐 온 과정이었기에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일전에 보낸 서신의 필체와는 다른 거 같은데.’
일필휘지 고민 없이 써내려가는 느낌은 있었지만 지금의 서신과는 필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대필이라도 했나 싶었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백두신룡이라더니. 역시 범상치 않은 자다. 그는 우리 무림맹을 하늘을 날 여의주로 여기는 것 같지만 상관없다.’
무림맹이 단순히 백두신룡의 여의주가 될지, 아니면 신룡의 등을 타는 주인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마교를 상대하는 지금에 있어선 더할 나위 없는 천군만마다.’
그리고 첫 임무부터 이 정도의 성과를 보여주니 그가 아무리 통제 불가능한 변수라도 상관없을 기분이었다.
제갈청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
녹림연맹의 총채가 있던 죽산의 산맥에서 가장 가까운 정도문파는 방현에 위치한 방림검파다.
총인원이 30명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의 문파이지만 문주 방원삼은 절정의 고수로 방현에서 이름이 높았다.
하지만 천애랑이 찾는 정도문파는 초절정 극에 달하는 녹림연맹주를 무림맹으로 후송할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림검파는 이 임무를 맡기에 다소 부족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방림검파 다음으로 가깝고, 초절정의 포로를 후송할 수 있는 세력이 하나 더 있다.
무당파.
방현에서 북쪽으로 200리 길에 위치한 무당산에 위치한 문파이자 구파일방의 일좌를 차지한 거대한 세력.
무림맹의 요직에 앉아 강대한 세를 구가하고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고수들도, 그리고 문도들의 수도 많을 것이다. 그런 곳이라면 안심하고 녹림연맹주를 맡길 수 있었다.
그래서 천애랑은 죽산에서 곧장 무당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간에 제갈청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은 상태다.
갈림길에서 송소걸이 불만에 찬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저보고 이 자를 데리고 가라고요?”
천애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며칠 지켜보니 심성이 나쁘지도 않고, 수 계산이나 장부정리에 큰 실력이 있는 자라고 소걸 네가 말했잖아?”
“그건 그랬습니다. 녹림연맹주의 거처에서 흩어진 장부들의 정리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왜 제가 같이 가야 합니까. 이제나 좀 형님이랑 같이 움직이나 했는데요.”
송소걸이 한가득 볼멘소리를 했다.
의각원에서 수년만의 외출이긴 했다. 그리고 천애랑과 함께 다니는 것 또한 매우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 때문에 송소걸은 최근 최고조의 기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가후를 그의 고향에 데리고 가서 모친까지 챙기고 합류하라고 하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족히 두 달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지금이야 가문이 중구난방이어도 괜찮다지만, 추후 가문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살림을 관장할 인물이 필요해.”
“그건 그렇지만.”
송소걸이 가후를 쳐다봤다.
연신 감동받은 표정으로 천애랑을 쳐다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천애랑이 송소걸 자신에게 지시해 가후의 모친을 의각원에 데려가 치료시키는 것은 물론.
가후의 재능을 살려 추후 가문의 총관직을 염두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거의 충신처럼 행동한다.
‘지금의 형님에게 무력은 충분해. 두뇌가 좋은 가솔들이 있으면 확실히 좋긴 하겠지.’
하오문의 소문주로서 교육을 받은 송소걸이 봐도 가후는 타고난 천재였다.
머리가 비상한 것은 물론, 기억력도 좋고, 수에도 밝으며, 눈치도 빠르고, 학문에도 밝다.
앞서 제갈청에게 보내는 서신을 대필하게 함으로써 그 재주를 일견 살폈을 때도 그랬다.
‘서신 내용만 보고도 애랑 형님의 다음 행선지와 그와 관련한 계책들을 제시해?’
머리만 좋은 게 아니라 실전에 적용하는 능력도 좋다는 의미다.
심지어 그의 과거를 들어보니 상재에도 밝은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가문의 총관이 아니더라도 추후 상단 하나를 신설해서 위임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이러한 재능만 따지고 보면 하오문에서도 탐나는 인재인 건 확실했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왜 내가 형님과의 오붓한 도적소탕 시간을 포기해야 하냐고! 혼자 보내서 모친 모시고 의각원으로 향하라면 되지.’
의각원의 위치가 극비인 건 둘째 치고, 요즘 같은 시국에 무공 하나 익히지 않은 모자(母子)가 먼 거리를 무사히 이동할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괜히 심통이 사나워지는 거다.
송소걸이 눈에 불을 키자 그 뜨거운 시선을 받은 가후가 움찔 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소걸아.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그래. 그러니 이런 부탁을 하는 거지.”
“……하아.”
송소걸이 마른세수를 했다.
“알겠어요. 후딱 해치우고 합류할 테니 행선지에 대한 정보를 하오문으로 흘려주세요.”
천애랑이 피식 웃으면서 송소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무리하지 말고.”
천애랑은 이어서 가후를 보았다.
“가후 너는 나를 대하는 것처럼 소걸이를 깍듯하게 대하며 따라라. 내게 중요한 사람이다.”
“물론입니다.”
가후가 지극히 공손하게 대답했다.
“너의 재능이 뛰어남은 확인했으나 너를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지는 아직 충족되지 않았음이다. 명심하고 행동해라.”
“이를 말입니까.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법. 앞으로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면식 없는 모친까지 신경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후가 부복을 하듯 천애랑을 향해 깊은 절을 했다.
***
모두가 떠난 후 천애랑은 홀로 무당산 어귀에 도착했다. 한 손엔 녹림연맹주를 담은 관을 들고 있었다.
녹림연맹주의 인상착의를 누군가 알아보고 소란이 일까 싶어 취한 조치였다.
‘흐음.’
천애랑은 무당산 초입을 둘러봤다. 작은 연못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해검지(解劍池).
무당산 개파조사 장삼봉을 기리는 연못인데, 존경의 의미로 방문객들의 병장기를 풀어놓는 장소다.
이를 관리하는 무당파 도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방문객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지?’
마교와의 전시 상황에 무당파는 조용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무림인으로 보이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천애랑은 사람들을 가로지르며 곧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도인 하나가 다급히 천애랑을 막아서며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