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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55화 (155/200)

기공술사 155화

“지금의 당가는 진정한 당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당가가 아니라니요. 당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민심을 얻고 있습니다. 주변과의 관계도 마찬가지고요.”

당정아는 뒤에 포진한 사천무림연합을 가리켰다.

이에 무각주가 비웃으며 말했다.

“이딴 관계? 웃기는 소리. 저런 것들에게 의지한다는 것 자체가 당가가 나약해졌다는 의미다.”

“그래서 천인공노할 짓을 벌였습니까? 강한 당가를 원해서?”

당정아가 강시들을 가리키자 무각주가 앙천대소를 했다.

“크하하하하! 맞다! 전 가주님께서 이루지 못한 당가천하의 꿈을 우리가 대신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무각주가 강시들을 자랑하듯 팔을 활짝 펼쳤다.

그를 보며 당정아가 물었다.

“그런데 강시들은 어디서 익혀 만든 겁니까. 당가에서도 기록으로밖에 없는 것인데요.”

“크크큭. 도움을 준 이들이 있었지.”

“무각주.”

암각주가 제지하자 무각주가 입을 다물었다.

정보를 빼내려 했던 당정아는 작은 아쉬움을 느끼며 말했다.

“천하가 지탄할 강시들을 통해서 당가천하를 이루겠다고요? 그런 걸 보고 아집이라 합니다. 비뚤어진 욕망이라고도 하고요. 만약 당가를 천하의 으뜸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그것은 당가의 힘으로 이뤄야 합니다. 이딴 죽은 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요.”

“크크크큭. 그래. 계집 따위와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 계집이 이끄는 지금의 당가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당정아는 눈에 힘을 주고 명령하듯 말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강시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마땅한 죄를 치르세요. 가주로서의 명입니다.”

“크큭… 크크큭. 크하하하하하!”

무각주가 어깨가 들썩이도록 웃더니 불타는 눈으로 당정아를 노려봤다.

“대화는 끝이다.”

무각주가 허리춤의 방울을 만졌다. 방울을 흔들어 강시들을 다시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파악하고 있던 당정아가 다급히 외쳤다.

“야수왕님!”

맹건이 맹호같이 빠르게 날아가 무각주를 공격했다.

빠아아아악!

엄청난 충돌음이 들렸고, 공격을 했던 맹건이 인상을 썼다.

단숨에 무각주라 불리는 주름 가득한 노인네를 때려눕히려 했는데, 순식간에 그 사이에 끼어들며 방어를 하는 존재가 있었다.

“이것 봐라?”

맹건이 눈을 좁히며 눈앞의 것들을 보았다.

시체처럼 차갑고 어두운 외모는 일반강시들과 같은데, 그 움직임은 전혀 다른 존재들이었다.

‘활강시라고 했나. 생각 이상으로 단단하다.’

아무리 화경고수의 주먹이라고 천하무적이겠나.

하지만 작정하고 내지른 화경고수의 주먹을 막고도 멀쩡한 이는 또 얼마나 있겠나.

‘부족 내에서도 내 일격을 제자리에서 견딜 놈들은 손에 꼽는다. 그런데 이것들이?’

무각주를 보호하듯 둘러싼 활강시 세 구가 맹건의 주먹을 막은 것도 모자라 역공을 가해오고 있었다.

이에 맹건은 방어를 위해 재차 주먹을 내질렀다.

‘으음?’

그러나 주먹은 허공을 갈랐고, 활강시 중 하나는 부드러운 몸짓으로 품으로 파고 들어오고 있었다.

“태극권! 무당이에요!”

빠악!

당정아의 외침과 함께 명치에 공격을 허용한 맹건이 인상을 썼다.

앞을 맞았는데 등까지 아릿해지는 것을 보니 내가중수법의 묘리가 담긴 공격이었다.

공격만 보면 최소 절정이상의 경지였다.

‘방어는 화경의 주먹을 막을 정도고, 공격력은 절정 이상이라.’

보통의 무림인이라면 말도 안 되는 균형의 경지였다.

맹건이 의아해 할 때 당상호가 빠르게 정보를 전달했다.

“활강시는 살아있는 무림인을 강시로 만든 겁니다! 그래서 생전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을 베어야 죽습니다!”

맹건의 눈에 이채가 들었다.

“생전의 무공을 사용한다라.”

작게 읊조린 맹건이 미소를 지었다.

“재밌네.”

맹건이 품에 파고들었던 활강시의 머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힘으로 강시의 머리를 몸통에서 뽑아냈다.

콰드드득!

엄청난 괴력에 모두가 놀란 눈을 했다.

특히 강시를 전담해서 만들었던 무각주 당충수 장로가 경악을 했다.

“말도 안 되는!”

맹건이 다시금 무각주에게로 신형을 날렸다. 단번에 무각주의 목을 비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활강시들이 맹건을 막아섰다.

꽈아아아앙!

쇠를 때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막아섰던 활강시들이 날아갔다.

하지만 다른 활강시들이 즉각 빈틈을 메우며 맹건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당정아가 놀라했다.

‘활강시의 세뇌를 성공했음인가!’

강시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령술사들이 주술적 의미가 있는 방울을 흔들어야 했다. 이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일반강시를 상대하는 거라면 강시 자체를 죽이거나 사령술사를 죽이거나 둘 중 하나를 하면 됐다.

특히 지금처럼 수를 가늠키 어려운 강시들을 상대할 때는 강시를 통제하는 사령술사 하나를 제압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활강시들은 무각주의 별다른 방울소리 없이도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어떤 경우에서도 주인을 먼저 지킨다.’라는 명령어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세뇌는 강시들을 다루는 최상 단계의 술법이었고, 이는 사령술사가 죽어도 멈추지 않는다.

만약 무각주가 죽더라도 2차적으로 세뇌한 명령을 수행할 것이다.

만약 ‘눈앞의 모든 것을 쉬지 않고 죽인다.’와 같은 명령어가 들어가 있다면 활강시들은 죽을 때까지 명령을 수행할 거다.

‘그런데 이런 사령술은 당가의 기록에서도 그 존재만 있을 뿐 방법은 없었는데? 무각주는 어떻게 이런 수준의 사령술을 다룰 수 있게 된 거지?’

아마도 도움을 준 이들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았으나 당장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꽝! 꽈아앙!

맹건과 활강시들의 충돌로 연신 쇠를 때리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무각주를 잡아라!”

당정아는 급히 명을 내렸다. 맹건이 몰아붙일 때 무각주를 잡을 요량이었다.

그녀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만천화우.

당가의 암기술의 극의가 그녀의 손에서 펼쳐졌다.

쏴아아아아아!

한줄기 소나기가 내린 듯한 소리와 함께 수백 침들이 무각주에게 쏘아졌다.

당가의 다른 무인들도 당정아의 움직임에 맞춰 암기들을 쏘아냈다.

하지만 맹건을 상대하던 활강시 이외에도 활강시는 백여 구가 있었다.

그러한 활강시들이 무각주와 당가 이탈자들을 대신해 쏟아지는 침 세례를 막아냈다.

활강시의 엄청난 신체강도에 대부분의 암기들은 몸에 박히지도 않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 사이 몸을 뺀 무각주가 방울을 흔들었다.

딸랑.

크지 않지만 모두에게 들리는 방울소리가 전장을 휘감았다.

딸랑. 딸랑.

이어지는 방울소리에 고목처럼 멀뚱히 서있던 일반강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일했던 기습의 기회가 실패했다. 당정아가 다급하게 명을 내렸다.

“모두 후퇴합니다! 아미파와 청성파가 선두! 당가는 후퇴 길을 만드는 동시에 시간을 법니다! 소가주가 당가를 지휘하도록! 나는 야수왕님을 돕겠다!”

“알겠습니다!”

“알겠네!”

모두가 당정아의 명에 따라 일사불란 움직였다.

하지만 암각주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명을 내렸다.

“용독비도!”

그러자 암각과 무각의 일원들이 사천무림연합을 향해 단검을 날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암기술이었다면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단검 끝에 달린 작은 독주머니였다.

퍼퍼퍼펑!

“젠장! 제독하라!”

당상호가 다급히 외쳤다.

독이란 찰나의 위력이 있는 공격 방법이다.

찰나 간에 독을 호흡한 사천무림연합의 무인들이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당상호가 급히 소매를 펄럭였다.

당정아와 마찬가지로 독인으로 훈련받은 그는 독을 흡수해 내공으로 치환할 수 있었다.

당상호가 움직일수록 공기 중의 독이 없어져갔다.

하춘도 쓰러지는 이들에게 침을 날려 독이 퍼지는 것을 빠르게 막아냈다.

하지만 쓰러진 이들의 수가 꽤나 많아서 일사불란 후퇴를 시도하던 사천무림연합에 제동이 걸렸다.

그 와중에도 일반강시들이 밀려와 사천무림연합의 무인들이 난색을 표할 때였다.

야수족의 무인들이 사천무림연합을 보호하듯 움직이며 강시들을 막아냈다.

“우리가 막을 때 빨리 물러나라!”

“해독 같은 사치는 나중에 부리고 빨리 가라!”

“으랴아아!”

남림의 독무지대를 활보하는 야수족이다.

어지간한 독에는 면역이 되었기에 이들은 거뜬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야생동물들도 일정부분 독에 면역이 있어서 영향을 받지 않고 강시들을 휩쓸었다.

한편 당정아는 자신을 공격하는 활강시 둘을 보며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무각주. 어디까지 쓰레기가 된 겁니까!’

눈앞의 활강시 둘은 과거 무각의 일원이던 자들이었다.

생전의 무공을 기억하는 활강시답게 그들에게서 익숙한 무공들이 펼쳐졌다.

‘비서장과 암혈독보.’

어쩌다 무각주에게 버림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인을 위해서라도 단숨에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당정아가 두 활강시들의 방어력을 감안해 내기를 가득 끌어올렸다.

치이이익.

그녀의 몸에서 주변을 녹이는 독연과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이내 채찍에도 강기가 서렸다.

“하아압!”

기합성과 함께 그녀의 채찍이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졌다.

회타연편십삼식.

채찍이 회전을 이어가며 주변을 때리는 공방일체의 편법(鞭法).

본래는 큰 원을 그리는 회전 때문에 광범위한 공격에 특화됐지만, 당정아는 이를 변형해 눈앞의 두 강시들에게로 원의 범위를 줄였다.

그러자 두 강시들이 채찍의 원 안에서 갇히며 강하게 갈려나갔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각!

제아무리 신체가 강화된 활강시라고 해도 작정하고 펼친 당정아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과거 무각의 무인이었을 두 강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적을 죽이고도 당정아의 입안은 썼다.

기분이 불편한 당정아처럼 맹건도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짜증 나는데.’

일각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손에 아작이 난 활강시가 스무 구 가까이 됐다.

‘고작.’

활강시에 대해 아는 이들이 본다면 엄청난 성과였지만 맹건에겐 불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게다가 무각주를 뒤이어 당가의 이탈자들이 강시떼 사이로 몸을 숨긴 후부턴 활강시가 활개 치기 시작했다.

맹건과 당정아를 막는 것에 집중하던 활강시들이 흩어져서 사천무림연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활강시들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맹건을 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것들이! 내가 남림야수왕 맹건이다!”

맹건의 터질 듯한 근육이 더욱 팽창했다.

맹호참조(猛虎斬爪). 연(連).

맹건이 양손가락을 호랑이의 발톱처럼 쫙 펼치고선 크게 휘둘렀다.

극에 달한 그의 외공과 근육 하나하나에 새겨진 내공이 엄청난 바람을 일으켰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손톱으로 할퀴기라도 한 듯 맹건의 전방으로 거대한 고랑들이 생겨났다.

그 고랑에 존재했던 일반강시들 수백이 육편이 되었으며, 활강시 십 수 구가 바닥에서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세상에.”

천외에 달한 맹건의 공격에 당정아가 경탄을 금치 못했다.

맹건은 혀를 찼다. 고랑들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강시들로 채워졌다.

아직도 대지를 빼곡이 채우는 일반강시들의 수는 만이 넘었다. 활강시도 여전히 칠십이 넘는 수가 남아있었다.

“후퇴하라! 후퇴해!”

“업고서라도 뛰어라!”

아미파 나부약과 청성파 목미랑이 제자들과 사람들을 챙기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각고의 노력으로 후퇴가 재개되었지만 사천무림연합은 얼마 가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표홀한 경공술로 목책과 강시들을 뛰어넘은 활강시들이 성문까지의 길목을 막았기 때문이다.

첩첩산중, 진퇴양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고립된 모두가 크게 외쳤다.

“청성십칠검이 앞장서겠네!”

“아미파도 용맹함을 보이자!”

“사천 무인의 기세를 높여라!”

모두 목소리를 높이며 용기를 충전했지만, 이는 최후를 짐작한 유언과도 같았다.

그때였다.

사천 성도의 성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십여 명의 젊은 남녀들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들 하나하나의 기세가 일기당천과 같아서 시선들이 자연스레 모여들었다.

그들 중 가장 선두에 있는 여인이 크게 외쳤다.

“의각원이여! 맹우들을 구하라!”

그러자 뒤따르던 이들이 크게 호응했다.

“와아아! 전투다 전투야!”

“모두 비켜라! 가주님의 심복 설동이가 나가신다!”

“아니다! 가주님의 심복은 나 추담이다!”

“……오빠들 혹시라도 부주의하게 다치면 가주님께 말씀드려서 특별훈련 받게 한다!”

“그, 그것만은……!”

“모두 정신 바짝 차려!”

화란의 마지막 외침에 의각원생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곤 전장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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