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53화
사천당가가 있는 성도의 동북쪽.
섬서와 감숙의 경계로 사천을 넘어온 강시들은 면양, 삼합, 금당과 중강을 통해 성도의 북문을 향해 이동해왔다.
사천성 성도 북문 앞은 기암괴석들 사이로 난 단 하나의 길과 함께 산을 마주하고 있는 지형이었다.
즉, 강시들이 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길목은 북문 정면의 산이며, 산의 초입을 막으면 북문으로 향하는 길을 용이하게 막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한 산의 초입엔 강시들을 막아 민간인들을 지키겠다는 뜻을 모은 이들이 있었다.
당가와 아미파, 청성파, 사천 성도 중소방파, 그리고 유학와 있는 의각원의 하춘.
자칭 사천무림연합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수는 총 삼백여 명이었다.
당가가 백오십, 청성과 아미가 약 사십, 나머지가 사천 성도에 자리하고 있는 중소방파들이었다.
사천 전체에 퍼져 있는 정도무림세력의 도움이 있으면 좋겠지만, 모두 무림맹의 기치 아래 마교와의 전선에 투입된 상태다.
그러기에 이곳에 모인 삼백의 인원으로 강시들을 막아야만 했다.
“민간인들은?”
성도의 북문을 나와 목책에 도착한 당정아의 물음이었다.
“모두 성문 안으로 대피했습니다.”
상황을 지휘하던 당가칠영 중 하나가 즉각 대답을 했다.
“관은?”
곁에 있던 당철이 난색을 표했다.
“가주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홍건적과의 전투가 길어짐에 따라 사천 성도에서도 다수의 병력이 차출되었다.
그래서인지 성도의 관에선 함께 성문 밖부터 방어를 구축하자는 사천무림연합의 의견을 묵살했다.
오히려 성주는 이번 강시들의 진격에 대해 당가와 사천무림연합 모두를 질책했다.
무림의 일로 사천 성도와 양민들이 위험해졌다고.
거기에 더해 성주는 사천무림연합에게 성 밖에서 싸우라고 강요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국법에 따라 엄히 죄를 물을 것이라고 엄포까지 했다.
민간인의 안전을 위해 함께 싸워도 모자랄 판에 배척까지 하는 행태에 말문이 막혔다.
이에 당정아는 수백 번, 무력으로 성문을 장악하고 높은 성벽에 기대 강시들을 막아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도문파로서 성주를 제압하고 관의 영역까지 침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사천무림연합은 관병에게 민간인들의 안전을 맡기고, 어쩔 수 없이 북문 밖에서 강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당정아가 주위를 둘러봤다.
성도 북문으로 늘어진 산 아래에 목책이 겹겹이 둘러져 있었다.
각종 함정들도 목책의 전방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함정과 목책만으로도 적의 전력을 갉아먹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당정아가 얇은 입술을 짓씹었다.
군사부와 척후대의 정보에 포착된 강시들의 수가 수백이다.
저런 방비로는 너무나 큰 부족함이 느껴졌다.
차라리 성문으로 향하는 길을 내어주고 뱀처럼 늘어질 강시들의 후방부터 공략하면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성 안 민간인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무림의 일에 민간인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
그녀가 다시금 각오를 다질 때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발 구름의 수가 어찌나 많은지 대지가 흔들려 왔다.
“오는군요.”
당정아의 말에 청상파의 목미랑과 아미파의 나부약이 검을 뽑아들었다.
“사전에 이야기 나눈 대로 우리가 좌측을 맡으면 되는 건가.”
“우리는 우측을 맞겠습니다.”
의지가 충만한 그녀들의 호응에 맞춰 하춘도 말했다.
“그럼 저는 중앙에서 당가를 돕죠!”
당정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소방파 인물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들 여기 청성파와 아미파를 도와 방어를 도와주십시오.”
당정아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에 중소방파의 인물들도 그녀에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 모인 모든 이의 용맹함에 동참할 수 있어서 기쁘오.”
“새로운 사천당가의 배려 덕분에 우리가 이곳 성도에 자리 잡은 것 아니겠소. 마땅히 도리를 해야지.”
“맞네. 사천당가만의 성도도 아니며, 사천당가만의 민간인도 아니니까. 우리도 함께 지켜야지.”
“비록 우리의 실력이 여기 구파일방의 고수들보다야 높지 않더라도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되니 너무 걱정은 말게나.”
강한 의지를 보이는 중소방파의 인물들을 보며 당정아가 감동의 눈빛을 보였다.
새로이 당가의 가주가 된 후 그녀는 내실을 다짐과 동시에 주변을 챙겨왔다.
자신이 천애랑 가주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그렇게 주변과 어울릴 수 있어야 당가의 가치도 더 높아진다고 스스로를 격려해왔다.
그 결과가 눈앞에 있다.
그렇기에 당정아는 그간의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을 얻었다.
“감사합니다.”
당정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강시들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겅충겅충 뛰는 강시들이 산 능성과 계곡을 따라 산사태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모두 자리로!”
당정아가 크게 외쳤다.
그러자 일사분란하게 무인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이미 당가에게 전권을 맡긴 아미파와 청성파도 명대로 움직였다.
구구구구.
강시들이 가까워질수록 지진과도 같은 흔들림이 더욱 커져갔다.
당정아가 전투를 대비해 손을 풀었다.
구구구구구구구구.
점차 가까워지는 강시들.
죽은 이의 피부를 한 역천의 존재들이 공격거리에 도달했다.
당정아가 크게 외쳤다.
“불을 붙여라!”
사전에 준비를 하고 있던 당가의 병력들이 화섭자에 불을 붙였다.
“투척!”
암기술의 고수들답게 불붙은 화섭자가 목책 너머의 원하는 위치로 절묘하게 던져졌다.
화르르르르륵!
강시들의 길목에 뿌려놓은 기름에 화섭자의 불이 만나니 순식간에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때마침 바람까지 도움을 줘 불길은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였다.
“됐다!”
아미파와 청성파, 중소방파의 무인들이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저 많은 강시들이 저 지옥불과 같은 불길에 모두 죽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들의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강시들의 발 구름이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파아아악!
불길을 뚫고, 불에 불타면서도 강시들이 다가왔다. 그러나 이어서 준비된 함정이 있었다.
진창.
사전에 물을 뿌려 질척하게 만든 땅에 강시들의 발이 푹푹 빠졌다.
경직된 몸의 일반 강시들은 무릎을 구부리지 못하기에 진창에서 허우적거렸다.
진창의 너비만도 일 장에 달하고 그 길이만도 이십 장에 달한다.
순식간에 백여 강시들이 발이 묶은 채 불탔다.
“오오!”
이번에도 무인들이 기대 어린 시선을 보냈다.
제발 저렇게 갈 길을 잃은 채 강시들이 무의미해졌으면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기대는 쉽게 무너졌다.
강시들의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불타면서 진창에 빠진 강시들에 의해 진창이 점점 마르고 있었다.
그러자 강시들이 강시들을 밟으며, 말라가는 진창을 넘으면서 돌진해왔다.
당정아는 당황하지 않고 외쳤다.
“지뢰구(地雷球)!”
그녀의 외침에 포진해 있던 당가 병사들이 다시금 화섭자를 던졌다.
날아간 화섭자가 바닥에 나란히 깔아놓은 지뢰구와 부딪혔다.
불에 폭발하는 돌가루들과 그 폭발력을 증대시킬 기타 가루들을 섞어 뭉친 게 지뢰구다.
관에서 사용하는 폭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작은 범위에 어느 정도의 폭발력을 기대할 수 있었다.
불에 예민한 지뢰구답게 화섭자의 불, 또는 불이 붙은 강시들에 의해 폭발하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바바방------!
연이은 폭발음과 함께 강시들의 신형이 고꾸라졌다.
지뢰구의 폭발로 발목이 날아가거나 뛸 수 없는 모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제법 효과가 좋았던지 이백이 넘는 강시들이 체증을 만들었다.
목책에 걸리고 넘어지고, 그 위에 또 걸려 넘어졌지만 이지가 없는 강시들은 적절한 문제해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강시들은 그저 사람을 물어뜯고 공격하려는 본능만 있어서 입을 벌리고 손발을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강시들이 하나의 방벽을 형성했고, 이는 더 큰 체증을 야기했다.
일부 강시들이 방벽을 넘어와 사천무림연합을 공격했지만, 무인들은 손쉽게 강시의 머리를 잘라내며 막아냈다.
“좋았어!”
예상외의 선전에 사천무림연합 무인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대로라면 남은 수백의 강시들도 비교적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이러한 전략을 주도한 당정아를 놀라운 눈빛으로 보았다.
아직 젊은 가주라고 내심 우려의 시선을 가졌던 이들에게선 의심이 싹 사라졌다.
그들은 ‘역시 당가!’라는 표정으로 당정아에게 신뢰를 보냈다.
그런 이들을 보며 당정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은 긴장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닙니다.”
“맞는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아미파 나부약이 동조를 했다.
그때 청성파 목미랑이 경악의 소리를 뱉었다.
“이런! 저길 보게!”
모두의 시선이 목미랑을 따라 강시 벽 너머로 향했다.
“헉!”
“무슨!”
“……세상에.”
저마다 경악성을 뱉었다.
아직 남은 수백의 강시 너머로 족히 오천은 넘어 보이는 강시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정보엔 없던 강시의 숫자였다.
앞서 상대한 강시들보다 몇 곱절이 훌쩍 넘는 물량에 기가 찼다.
“대체 누가 이만한 강시들을…….”
누군가의 의문이 일행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당정아도 심각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강시라는 게 어디 아무 무덤에서 시체를 꺼낸 뒤 만드는 게 아니다.
겅충겅충 뛰는 일반 강시의 경우만 해도 완전히 썩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 시신을 대상으로 작업이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눈앞의 강시들을 모두 보아하니 딱히 썩은 곳이 없었다.
말인즉슨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신들로 곧장 작업을 했다는 의미이다.
즉, 수천이 넘는 강시들을 확보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사람들을 죽이고 바로 작업에 들어간 듯했다.
이러한 정보를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잔악무도한!”
“모두 살아남아라! 그래서 이런 비인륜적인 짓을 벌인 이를 벌하자!”
“당가도 모든 적을 처단한다! 우리는 당가다!”
와아아아아아!
사천무림연합의 모두가 기합성을 뱉으며 의지를 불태웠다.
“의각원! 와아아아아!”
하춘도 잊지 않고 의지를 불태웠다.
당정아가 모두의 기세를 등에 업고 내공을 실어 크게 외쳤다.
“자! 모두 사천무림의 힘을 보이자!”
와아아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격전이 시작됐다.
콰과과과과!
압도적인 인해전술 앞에서 강시들의 방벽이 범람하는 둑처럼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의 함정도 없었기에 이제는 직접 맞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다.
“크아악!”
“죽어라!”
“좌측이 빈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베어도 베어도 끝없이 밀려들어오는 숫자 앞에선 늪에라도 빠진 듯 무인들이 체력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폭우침을 사용해!”
당정아의 외침에 당가무인들이 죽통처럼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러곤 죽통 끝에 달린 줄을 강하게 당겼다.
파바바바바바박!
줄을 당긴 죽통의 반대편에서 수백 개의 침이 날아가 강시들에게 박혔다.
치이익!
침 끝엔 화골산이 발라져 있어 강사들의 피부를 녹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강시들은 몸이 녹아내려도 무인들을 공격해왔다.
“젠장.”
당정아가 몰려드는 강시들에게 손을 털었다.
독인인 그녀의 내공이 독으로 변하며 강시들을 덮쳤다.
치이이이이익!
화골산보다 더 강한 독에 십 수 강시들이 그대로 녹아 내렸다.
당정아는 내공을 아끼지 않고 강시들을 휘저으면서 부지런히 손을 털었다.
치이이이이익!
그녀의 독공에 또다시 수십 강시들이 녹아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전장의 전체를 살핀다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밀려드는 강시들은 수는 여전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당정아가 혀를 찼다.
‘독으로는 내공만 급격히 소모할 뿐 끝이 없겠어.’
강시에 대한 독의 상성이 좋지 못했다.
대상에게 고통을 주고 쉽게 무력화시키는 게 독의 장점이건만 강시들은 그런 독에 대한 반응이 없다.
마찬가지로 절묘하게 급소를 노리는 암기술도 강시들에겐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독이 주특기인 당가무인들이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당정아가 주위를 둘러봤다.
“으아악!”
“아악!”
사천무림연합의 무인들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강시들에게 짓밟히고, 물리고, 날카로운 손에 찔리며 피를 토해냈다.
강시들의 수는 여전한데 사천무림연합의 수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 속엔 식구와도 같은 당가무인들의 피가 제일 많았다.
“젠장!”
당정아가 거친 숨을 토해내며 가솔들을 공격하는 강시에게 단검을 날렸다.
머리에 단검을 맞은 강시가 벌러덩 자빠졌다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당정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후퇴해야 한다. 이대로는 전멸밖에 되지 않아.’
앞선 천여 구의 강시들까지는 파악된 정보를 통해 상정된 범위였다.
만약 오차범위로 강시들의 수가 조금 더 늘어난다 해도 사천무림연합의 무인들은 그러한 변수를 극복할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오천여의 강시는 단순하게 오차범위라고 치부할 수준이 아니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절정의 수준을 넘지 않은 무인들은 금세 체력적 한계를 맞이할 것이고, 절정이라 할지라도 생존을 확신하기 어려워 보였다.
이미 체력적 한계에 쓰러지는 결과들이 보이고 있지 않은가.
의각원의 하춘이 빠르게 움직이며 전투보단 의원의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혼자서는 중과부적이다.
‘무림인 간의 일이라고 성문을 틀어막은 관군들을 제압해서라도 성문 안으로 후퇴해야 한다.’
후일이 어찌되든 그래야 했다. 만약 사천무림연합이 여기서 전멸한다면 사천 성도 자체가 위험했다.
지금 강시들의 수는 단순히 성벽에 의지해 방어할 수준을 넘어선다.
마음을 먹은 당정아는 후퇴를 명하고자 입을 열었다.
“후퇴……. 응?”
그러나 그녀는 명을 내리지 못했다.
측방에서 소란이 일더니 일단의 무리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그런데 다가오는 무리의 얼굴들이 모두 익숙했다.
우선 말을 타고 있는 이들은 곤륜파의 구원을 위해 자리를 비웠었던 남동생 당상호와 당가 무인들이었다.
그리고 동생과 당가무인들 옆으로 야생동물들을 타며 함께 달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익숙한 얼굴과 무리들이었다.
“여! 오랜만이다! 그런데 이 거무튀튀한 것들은 뭐냐!”
거친 언행만큼 거친 기세를 풍기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
야수족의 수장이자 남림을 지배하는 남림야수왕 맹건이었다.